성철큰스님 말씀

장경(藏經)을 시주받다

근와(槿瓦) 2014. 8. 16. 00:59

장경(藏經)을 시주받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충청도 청주에 사는 김병용 거사가 있었다. 그는 청신사로서 손색이 없는 부처님을 향한 신앙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다른 취미가 있어 젊었을 적부터 불서에 열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심혈과 사재를 기울여 부처님 경전을 모으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불경을 수집하는 데는 거의 광적이었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능가경과 신수대장경을 위시하여 기신론 목각판 등 제경을 거의 한 트럭분이나 모을 수 있었다.

김병용 거사의 유일한 즐거움은 방안에 산적한 제불경들을 관망하고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마음이 돌변했다. 생사 윤회의 법칙대로 그의 육신의 기력이 서서히 쇠진해 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그는 산적한 불경들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저 많은 경전을 관리하고 연구하겠는가. 자손들을 떠올렸다. 고개를 힘없이 가로저었다. 깊은 사념에 잠겨 있던 그의 눈이 갑자기 반짝 빛이 났다. 그렇다. 저 경전들을 어느 훌륭한 스님에게 기증하자. 그러면 그 스님은 계계승승 제자에게 전하고, 나의 고생한 보람도 헛되지 않으리라.

 

 

 

그는 다음날 여비를 준비하여 고승을 찾는 순례길에 나섰다. 그때가 신록이 우거진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그의 마음은 이번이 삶에 있어 마지막 전국 순례의 길이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결심이 대단했다.

그는 부처님께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그가 찾는 고승은 보통 승려가 아니었다. 경(經) · 율(律) · 논(論) 삼장과 현대철학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선(禪)을 터득한 분이었다.

그의 이상적인 고승은 한 마디로 선교(禪敎)가 구족한 사람이었다. 김병용 거사는 운수납자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고승을 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에 계합된 고승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선(禪)이 훌륭하면 교(敎)가 약하거나 아예 없는 상태뿐이었다. 그것은 입산 처음부터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는 언어에 심취하여 사교입선(捨敎入禪)해 버린 탓이었다. 반대로 교학이 괜찮다 싶으면 선의 깊이가 없었다.

어느날 산기슭 풀숲에 지친 다리를 쉬며 자탄해 마지 않았다. 내가 소장한 경전을 헌납할 고승은 아예 없는 것일까? 벌건 해가 산 너머로 져가는 것을 보는 그의 눈자위는 축축히 물기에 젖어들었다.

김병용 거사의 기도가 부처님을 감응시켰나 보았다. 그는 발길을 문경 봉암사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는 문경 쪽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어느 선승이 십년이란 세월을 자리에 눕지 않고 좌선삼매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십년이나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참선 공부를 한 선승이 있다는 말이요?」행인은 틀림없다고 말하며 봉암사 방향을 가리키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십년 장좌불와를 끝내고 깨달음을 얻어 법상에 올라 사자후로 법문을 열어 우리 같은 중생을 깨우쳐 준답니다.」

김병용 거사는 기뻐하며 봉암사로 달려갔다.

 

 

 

그날 밤, 김병용 거사는 최초로 꿈에도 그리던 이상적인 고승을 만났다. 김병용 거사는 수많은 경전들을 시험관처럼 질문했고, 그 답변은 감동적이었다. 특히 그 선승이 개진하는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은 처음 듣는 바로써 더욱 놀라웠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찾는 사람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더더욱 현대 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안에 눈물을 적시며 그 선승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소장한 불설제경을 시주하겠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김병용 거사의 소장한 경전은 모두 그 선승에게 시주되었다. 그는 선승을 떠나 하산하며 그 선승이야말로 진정한 사교입선한 것을 확신해 마지않았다. 능살(能殺) · 능활(能活) 할 수 있는 경지가 진정한 선(禪)이 아니던가. 그날의 선승은 오늘의 성철대종사이다.

 

출전 : 큰빛 큰지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성철큰스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식송(八識頌)   (0) 2014.09.05
높은 분이 뵙잡니다  (0) 2014.09.01
중생 공양이 제불(諸佛) 공양  (0) 2014.08.12
승가 대학을 세워라   (0) 2014.08.06
신은 마음이 만든 허깨비   (0) 201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