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025-20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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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닌다고 하느니라.”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믿음의 욕구가 구족하다고 말하며 어떤 뜻을 보리심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믿음의 욕구가 구족하다는 것은 이것이 견실하여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며, 굳건하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니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엎어지거나 잃어버림이 없는 까닭이며, 엎어지거나 잃어버림이 없다는 것은 잘 머무르는 까닭이며, 잘 머무른다는 것은 물러나지 않는 까닭이요,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을 관찰하는 까닭이요, 중생을 관찰한다는 것은 크게 가상히 여기는 마음이 근본이 된 까닭이요, 크게 가상히 여기는 마음이 근본이 되었다는 것은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은 까닭이요,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을 성숙시키는 까닭이요, 중생을 성숙시킨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움을 잘 아는 까닭이요, 스스로 즐거움을 잘 안다는 것은 다른 희망이 없는 까닭이요, 다른 희망이 없다는 것은 살림살이에 애착하지 않는 까닭이요, 살림살이에 애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의 의지가 되는 까닭이니라.
중생의 의지가 된다는 것은 하열한 중생을 관찰하여 대우하는 까닭이요, 하열한 중생을 관찰하여 대우한다는 것은 구제자가 되는 까닭이요, 구제자가 된다는 것은 귀의처가 되는 까닭이요, 귀의처가 된다는 것은 사납고 난폭하지 않은 까닭이요, 사납고 난폭하지 않다는 것은 잘 관찰하는 까닭이요, 잘 관찰한다는 것은 원한과 미움이 없는 까닭이요, 원한과 미움이 없다는 것은 믿음의 욕구를 잘 길들인 까닭이요, 믿음의 욕구를 잘 길들인다는 것은 마음에 아무것도 둠이 없는 까닭이요, 아무것도 둠이 없다는 것은 청정한 까닭이요, 청정하다는 것은 미묘하고 결백한 까닭이요, 미묘하고 결백하다는 것은 안으로 때를 여읜 까닭이요, 안으로 때를 여의었다는 것은 밖으로 청정한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단단하고 여물어서 무너뜨리기 어려우며 나아가 안으로 때를 여의고 밖으로 매우 청정하면 이것을 믿음의 욕구가 구족하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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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다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보리심이란 어떤 모습이고, 어떤 형상인가? 사리자야, 보리심은 허물이 없나니 일체 번뇌의 물듦이 되지 않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서로 이어 끊어지지 않나니 나머지 승(乘) 가운데 증득할 것이 아닌 까닭이요, 보리심은 견고하여 움직이기 어렵나니 외도의 이론(異論)에 끌려가지 않기 때문이요, 보리심은 파괴하지 못하나니 일체 천마(天魔)가 기울여 무너뜨리지 못한 까닭이요, 보리심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나니 선근의 자량이 쌓여 모인 까닭이요, 보리심은 흔들어 움직일 수 없나니 반드시 홀로 모든 부처님 법을 증득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묘하게 잘 머무르나니 보살 지위에 잘 머무르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중간에 끊어짐이 없나니 나머지 법으로 대치(對治)할 것이 되지 않는 까닭이니라.
보리심은 마치 금강(金剛)과 같나니 능히 부처님의 깊은 법을 꿰뚫어 통달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장 훌륭한 평등이니 모든 중생의 갖가지 욕구와 인식이 고르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장 훌륭한 청정이니 성품이 물들지 않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티끌과 때가 없나니 지혜를 발명한 까닭이요, 보리심은 너그럽고 넓어 걸림이 없나니 일체 중생의 성품을 머금어 지니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넓고 크기가 끝이 없나니 허공과 같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장애됨이 없나니 걸림 없는 지혜로 일체에 인연 없이 가상히 여기는 마음[無緣大悲] 끊이지 않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친근할 만한 것이니 모든 슬기로운 이가 칭찬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종자와 같으니 능히 모든 부처님의 법을 내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능히 건립함이 되나니 일체 기쁘고 즐거운 일을 건립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모든 원(願)을 발생하나니 계(戒)가 깨끗한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히 꺾어 없애기 어렵나니 참음에 머무름으로 말미암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억누를 수 없나니 바른 노력[正勤]으로 말미암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장 적정함이니 일체의 대정려(大靜慮)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궁핍함이 없나니 지혜의 자량이 원만한 까닭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리심은 곧 여래의 계율[尸羅蘊]·삼마지[三摩地蘊]·지혜[般羅若蘊]·해탈[解脫蘊]·해탈지견[解脫智見蘊]의 근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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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리심은 곧 여래의 10력(力)·4무소외(無所畏)·18불공법[不共佛法]의 근본이니라.”
사리자가 말하였다.
“보리심이란 것은 이 마음이 보리로써 이룩될 바탕을 삼으므로 보리라 이름하는 것입니까?”
“그러하니라.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믿음의 욕구인 보리심을 성취하였으므로 보리살타(菩提薩埵)라 이름하며, 광대살타(廣大薩埵)라 이름하며, 극묘살타(極妙薩埵)라 이름하며, 승출일체삼계살타(勝出一切三界薩埵)라 이름하며, 몸의 업이 잃음이 없고 말의 업이 잃음이 없고 뜻의 업이 잃음이 없다 이름하며, 몸의 업이 청정하고 말의 업이 청정하며 뜻의 업이 청정하다 이름하며, 몸의 업이 움직임 없고 말의 업이 움직임 없고 뜻의 업이 움직임 없다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모든 업의 깨끗함을 갖추므로 천마와 마군의 동요하거나 어지럽힐 대상이 되지 않으며, 처음 온갖 지혜의 마음을 냄으로부터 바른 행을 닦아서 지위마다 뛰어난 선교방편을 더하여 일체 세간법에 움직이지 아니하며, 능히 중생을 위하여 큰 길잡이가 되며, 거룩한 길잡이가 되며, 두루 길잡이가 되며, 큰 횃불이 되며, 큰 사다리가 되며, 다리가 되며, 배가 되며, 건져 주는 자가 되며, 저 언덕으로 건네주는 이가 되며, 집이
되며, 구호자가 되며, 귀의처가 되며, 나아갈 곳이 되나니,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온갖 지혜의 마음을 내므로 악마와 마군이 능히 기울여 움직이지 못하느니라.”
그 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깨끗한 믿음의 욕구를 갖춤으로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고는 마음으로 깨끗한 믿음이 많으며, 성현 보기를 즐기며, 바른 법 듣기를 즐기며, 간탐하고 인색하지 않기를 즐기며, 마음과 손을 열어 펴서 큰 보시를 행하며, 크게 놓아 버리기를 즐기며, 고루 널리 베풀기를 즐겨 모든 중생에 마음의 걸림이 없으며, 마음에 더러운 찌꺼기가 없으며, 마음의 시끄럽고 어지러움이 없으며, 마음에 틈나고 잡됨이 없어서 저 업과 업보에 깊은 마음으로 받들어 공경하여 의심함 없고 생각함 없이 검고 흰 법의 과보가 무너지지 않는 줄을 알며, 나아가 목숨이 위험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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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지라도 사나운 마음을 내지 아니하며, 산 목숨 죽이는 일·주지 않는 것 가지는 일·삿된 음행·거짓말·이간질하는 말·거칠고 사나운 말·꾸밈말·탐욕·성냄·어리석음과 삿된 견해를 길이 여의느니라. 이러한 착하지 않은 업의 길[不善業道]을 끊기 위하여 열 가지 착한 업의 길을 받아 지니고 받들어 행하느니라.
믿음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문과 바라문에 바로 이르고 바로 행하며, 덕을 갖추고 계를 갖춘 이에게 그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여 길들이는 법을 이룩하며, 많은 지식을 갖추고 부지런히 묻기를 좋아하며, 바른 생각을 닦아 마음이 잘 고르고 고요하여 적멸에 가까우며, 다투어 송사하는 일을 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말을 하지 아니하며, 믿음의 욕구를 잘 알아서 잘 알지 못함이 아니며, 착한 법과 서로 응하여 나쁜 법을 멀리 여의며, 들뜨지 않고 교만하지 아니하여 성품이 조급하게 움직임을 여의며, 성품이 거친 말을 여의어 말이 뜨고 잡됨이 없으며, 생각을 지키어 올바로 머물러서 마음이 묘한 선정[定]에 편안하며, 번뇌의 근본을 잘 끊어서 독화살에 중상을 입지 아니하며, 무거운 짐을 놓아버리고 의심의 생각과 뒤에 받아 남을 뛰어 건너며, 모든 부처님 세존과 보살마하살·성문·독각 등 이러한 선지식에게서 여실히 알고는 친히 뵙고 공경하며 우러러 받들어 섬기고 행자가 이와 같이 선지식에게 몸으로 받들어 섬기며, 다시 법으로 베풀어 거두어 주되 묘한 법을 선설(宣說)하여 가르쳐 보이며 찬탄하여 기쁘게 하느니라.
이를테면 만일 보시[拕那]를 행하면 큰 재물을 얻고 계[尸羅]를 행하면 하늘에 나는 즐거움을 얻고, 많이 듣기를 좋아하면 큰 지혜를 얻고, 온갖 선정을 닦으면 얽매임을 여의느니라.
또 온갖 미묘하고 청정한 법을 열어 보이되 '이것은 보시요, 이것은 보시의 과보이다. 이것은 간탐이요, 이것은 간탐의 과보이다. 이것은 계요, 이것은 계의 과보이다. 이것은 계를 범함이요, 이것은 계 범함의 과보이다. 이것은 욕됨 참음[忍辱]이요, 이것은 욕됨 참음의 과보이다. 이것은 성냄이요, 이것은 성냄의 과보이다. 이것은 부지런히 닦음[正勤]이요, 이것은 부지런히 닦음의 과보이다. 이것은 게으름이요, 이것은 게으름의 과보이다. 이것은 고요히 생각함[靜慮]이요, 이것은 고요히 생각함의 과보이다. 이것은 어지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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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요, 이것은 어지러운 마음의 과보이다. 이것은 지혜요, 이것은 지혜의 과보이다. 이것은 나쁜 지혜요, 이것은 나쁜 지혜의 과보이다. 이것은 몸의 묘한 행위요, 이것은 몸의 묘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몸의 나쁜 행위요, 이것은 몸의 나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말의 묘한 행위요, 이것은 말의 묘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말의 나쁜 행위요, 이것은 말의 나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뜻의 묘한 행위요, 이것은 뜻의 묘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뜻의 나쁜 행위요, 이것은 뜻의 나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착함이요, 이것은 착하지 못함이다. 이것은 마땅히 할 것이요, 이것은 마땅히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렇게 하면 긴 밤에 뜻 있고 이익되고 안락함을 얻을 것이요, 이것을 만일 하면 긴 밤에 뜻 없고 이익 없고 안락하지 못한 결과를 얻으리라'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행자가 이렇게 여러 좋은 벗을 위하여 이런 법을 선설하여 가르쳐 보이고 찬탄하여 기쁘게 하느니라. 이미 큰 법을 감당할 그릇임을 깨달아 알고는 곧 그를 위하여 매우 깊고 미묘한 공(空)의 이치와 서로 응하는 법을 열어 보이나니, 이른바 공한 법[空法]·형상 없는 법[無相法]·원함 없는 법[無願法]·지어감 없는 법[無行法]·남이 없는 법[無生法]·일어남 없는 법[無起法]·나 없는 법[無我法]·삭취취 없는 법[無數取法]·수명 없는 법[無壽命法]·중생 없는 법[無衆生法]이니라.
또 그를 위하여 매우 깊은 연기(緣起)를 열어 보이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나므로 저것이 나나니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을 반연하고, 지어감은 의식[識]을 반연하고, 의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6처(處)를 반연하고, 6처는 접촉[觸]을 반연하고, 접촉은 느낌[受]을 반연하고, 느낌은 애착[愛]을 반연하고, 애착은 취(取)를 반연하고, 취는 유(有)를 반연하고, 유는 남[生]을 반연하고, 남은 늙고 죽음과 근심·탄식·걱정·괴로움·몸과 마음이 타는 듯한 시달림을 반연하나니 이러한 갖가지가 큰 괴로움의 무더기를 내느니라.
또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나니, 이른바 무명이 멸하므로 지어감이 멸하고 지어감이 멸하므로 의식이 멸하며 나아가 남이 멸하므로 늙고 죽음이 멸하며 이렇게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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