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030-206

근와(槿瓦) 2017. 1. 31. 04:27

대보적경-1030-20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26 / 3476]

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설하나니 이 가운데 한 가지 법도 '이것이 가히 얻을 것이다, 가히 없앨 것이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 온갖 법이 인연으로 좇아 생겼으므로 주재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지은 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지음을 받은 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 인연 따라 구를 뿐이기 때문이니라.
또 한 가지 법도 유전하여 다시 돌아오는 것도 없으며 또한 따라 구름[隨轉]도 없건만 어리석고 망령됨으로 말미암아 임시로 삼계를 세웠을 뿐이니, 번뇌의 괴로움을 좇아 유전하는 것, 다만 임시로 시설하여 나타날 뿐이니라. 행자가 이렇게 여실히 어리석고 망령됨을 관찰할 때에 한 가지 법도 능히 나머지 법을 지음이 없느니라.
만일 이 가운데 지은 자가 없다면 지은 자를 가히 얻지 못하리라. 나아가 한 가지 법도 유전하거나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없나니 유전하고 다시 돌아옴을 가히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행자가 만일 이렇게 깊은 법을 듣고 의심함 없고 생각함 없이 모든 법의 걸림 없는 성품에 잘 들어가면 이 사람은 물질[]에 사로잡히지 아니하며, 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도 사로잡히지 아니하며, 눈의 빛깔[眼色] 및 눈의 의식[眼識]에도 사로잡히지 아니하며, ·····법과 의식(意識)에도 사로잡히지 아니하리니, 다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다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성품이 공()한 법을 믿어 받아들이면 부처님을 뵙는 데서 물러나지 아니하며, 법을 듣는 데서 물러나지 아니하며 스님 대중[] 받듦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나는 곳마다 부처님 뵙기를 여의지 아니하며 법 듣기를 여의지 아니하며 스님 대중 받들기를 여의지 아니하고 부처님 앞에 나서 용맹스레 정진[正勤]하여 착한 법을 뜻하여 구하리라.
이 사람은 정근에 머무르고는 집에 있어서 남녀·권속·종과 온갖 살림살이를 돌아보지 않고 음욕에 시달림 되지 않고 곧 이 세상에서 한창 나이의 욕락을 버리고 깨끗한 신심으로 불법 가운데로 출가하여 도에 입문할 것이요, 이미 출가하여서는 선지식과 좋은 도반과 좋은 벗을 만나 고요한 생각에


                                                                            [1027 / 3476]

잘 머무르며 믿음의 욕구에 잘 머무르느니라.
믿음의 욕구에 잘 머무르므로 법을 잘 듣고 견고하게 받들어 수행하고 다만 말만으로 목적을 삼지 아니하며, 지혜의 깨달음을 성취하여 많이 들음을 구하되 싫증냄 없으며, 들은 법대로 물든 마음 없이 남을 위하여 널리 연설하되 이익·공경·명예를 바라는 뜻이 없으며, 바른 뜻을 버리고 망령되이 남을 위하여 말하지 않느니라. 그 들은 대로, 그 머무른 대로 위하여 법을 설하며 법 듣는 무리에게 크게 사랑한 마음을 일으키며 모든 중생을 크게 가상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사리자야, 행자가 이렇게 많이 들으므로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고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며, 고요함을 좋아하여 쉽게 만족하고 쉽게 장양하며, 비고 조용한 데 있기를 좋아하여 들은 법대로 그 뜻을 관찰하여 참뜻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않으며, 모든 하늘 사람·아소락 세계의 의지처가 되어서 오로지 나를 위함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하여 대승을 구하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지혜·비등함 없는 지혜·무엇으로 견줄 수 없는 지혜·삼계를 뛰어넘는 지혜이니라. 사리자야, 나는 이 사람이 제일가는 방일하지 않은 법[不放逸法]을 얻었다고 하리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방일하지 않은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모든 감관의 적정함이니라. 어떤 것을 모든 감관이 적정하다 하는가? 이른바 눈으로 빛깔을 보되 겉모양에 사로잡히지 않고 실답게 빛깔의 맛과 빛깔의 근심과 빛깔의 벗어남을 깨달아 아느니라. 이렇게 귀로 듣는 소리와 코로 맡는 냄새와 혀로 보는 맛, 몸으로 깨닫는 접촉과 뜻으로 알아내는 법에도겉모양에 사로잡히지 않고 실답게 법의 맛·법의 근심과 법의 벗어남을 깨달아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마음의 방일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또 방일하지 않음이란 제 마음을 잘 길들이며 남의 마음을 잘 보호하여 번뇌에 따르는 마음을 제거하고 바른 법 좋아하는 데 나아가며, 욕심의 생각·분함의 생각·해칠 생각을 내지 않고 탐냄의 착하지 못한 뿌리·성냄의 착하지 못한 뿌리·어리석음의 착하지 못한 뿌리를 그냥 두지 않으며, 몸의 나쁜 짓·입의 나쁜 짓·뜻의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이치답지 못한 생각을 내지 않으며, 온갖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지 않나니 이것을 방일하지


                                                                            [1028 / 3476]

않음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들이 이미 방일하지 않다면 능히 이치다운 생각[如理作意]을 부지런히 닦아 익힐 것이니라. 만일 법이 있는 것이면 여실히 있는 줄을 알고 만일 법이 없는 것이면 여실히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있는 것이며 어떤 것이 없는 것인지를 관찰하여 곧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능히 알고 올바로 닦아 익히는 이는 성스러운 해탈이 있지만 잘못 닦아 익히는 이는 성스러운 해탈이 없느니라. 업보가 없는 이는 이것이 곧 있지만 업보가 있는 이는 이것이 곧 없느니라.
또 눈을 있는 것이라 하여 눈을 두는 것은 없으며, ····뜻이 있다고 하여 뜻을 두는 것은 없느니라.
또 물질[]이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여 달라지는 법이라 하면 이것은 곧 있지만, 물질이 항상 머물러 있으며 변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면 이것은 곧 없느니라.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여 달라지는 법이라 하면 이것은 곧 있지만,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하면 이것은 곧 없느니라.


또 무명이 인연이 되면 지어감이 곧 있지만 만일 무명이 없으면 지어감이 곧 없느니라. 나아가 남[]이 인연이 되면 늙고 죽음이 있지만 만일 남이 없으면 늙고 죽음이 또한 없으리라.
또 보시로 큰 재물의 감응은 있지만 보시로 빈궁의 감응을 얻는다는 것은 없느니라. 계를 지니면 하늘에 난다는 것은 있지만 계를 범하고서 하늘에 난다는 것은 없느니라. 많이 들으면 큰 지혜가 생긴다는 것은 있지만 온갖 나쁜 지혜로써 능히 큰 지혜를 낸다는 것은 없느니라. 선정을 닦으면 얽매임을 여읜다는 것은 있지만 선정을 닦으면 얽매인다는 것은 없느니라.
또 만일 이치답게 생각하면 얽매임이 있고 이치답지 않게 생각하면 얽매임을 여읜다면 이 둘은 모두 없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부지런히 닦으면 보리가 곧 있지만 만일 게으르면 보리가 곧 없느니라. 만일 교만함이 없이 출가하면 도를 얻는 것은 있다고 하지만 교만한 자는 적멸의 도가 없느니라.
또 일체처에 충만한 공성(空性)은 이것이 있지만 일체처에 충만하여 나와 삭취취와 중생과 수명과 장부 등의 부류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없는 것이


                                                                            [1029 / 3476]

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만일 여러 보살마하살이 방일하지 않음을 행하면 능히 이치다운 생각을 닦아 익힐 것이니, 세간의 슬기로운 이와 같이 이 있는 것을 유()라 한 줄을 알고, 세간의 슬기로운 이와 같이 이 없는 것을 무()라 한 줄을 아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결정코 있다고 말하면 올바르게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요, 만일 결정코 없다고 말하면 이것도 또한 올바로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말씀하신 실다운 뜻은 능히 따라 깨달으라고 한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큰 지혜의 힘을 갖추어서 모든 법을 거두어 잡아 네 가지 오타남(鄔拕南:法印) 가운데 안치(安置)한 까닭이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고, 일체의 행은 괴로움이며, 온갖 법은 나가 없고, 열반은 적멸하다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일체의 행이 항상됨 없다고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항상 하다고 생각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항상하다는 생각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일체의 행이 다 괴로움이라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즐겁다고 생각하는 중생을 위하여 즐겁다는 생각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온갖 법이 나가 없다고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나라고 생각하는 중생을 위하여 나라는 생각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적멸이 열반법이라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얻을 것이 있다는 데 머무른 뒤바뀐 중생을 위하여 얻을 것이 있다는 뒤바뀐 마음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들이 만일 여래가 일체의 행이 항상됨 없다고 말함을 들으면 곧 능히 마침내 항상됨 없는 이치에 잘 들어가게 되며, 만일 일체의 행이 괴로움이라고 말함을 들으면 곧 능히 싫증을 일으켜 바람[] 여읠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만일 모든 법이 나가 없다고 말함을 들으면 곧 능히 삼마지(三摩地)의 묘한 해탈문을 닦아 익히리라. 만일 적멸한 열반을 말함을 들으면 곧 형상 없는[無相] 삼마지를 닦아 익혀서 얼마 되지 않아 진제(眞際)에 나아가게 되리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만일 여러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러한 법을 잘 닦아


                                                                           [1030 / 3476]

익히면, 끝까지 일체의 착한 법에서 물러나 잃지 않고 속히 일체 불법을 원만히 성취하리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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