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이교도(異敎徒)와의 문답 68

근와(槿瓦) 2014. 8. 11. 01:53

이교도(異敎徒)와의 문답 68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께서는 그로부터 구시나라를 떠나서 비사리를 향해 대삼림의 중각(重閣) 강당에 머무르셨다. 그때 교사라와 마갈타의 두 나라에서 어떤 업무를 위해 많은 바라문들이 파견되었는데, 세존께서 대삼림에 머무르고 계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찾아와서 시자인 나기다에게,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지금 향실(香室)에 들어가 계시니 뵐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잠시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차족(離車族)의 앙다타(央多陀)도 많은 리차 사람들을 데리고 세존을 찾아와 곁에 앉아서 뵐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기다의 조카인 사자(獅子)라고 하는 견습 제자가 곁에서 말하기를,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만나 뵙고자 찾아와 있으니 차례대로 뵙게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자여, 그대가 세존께 말씀드려라.”

“잘 알겠습니다.”

고 답하고 세존께 이 사실을 여쭈었다.

 

 

세존의 분부로 정사 앞 그늘에 자리를 마련하자, 세존은 향실을 나오셔서 찾아 온 사람들을 만나셨다. 바라문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곁에 앉자, 앙다타(央多陀)가 세존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이삼일 전 리차족의 수나카타(須那他)가 저의 처소에 찾아와서 ‘마하리(摩訶梨)여, 나는 세존의 곁에 머무른지 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사람의 소망을 충족시킨다는 즐거운 신의 모양은 볼 수 있었으나 아직 신의 음성은 듣지 못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한 신의 음성은 있는 것이옵니까?”

“마하리여, 물론 그와 같은 신의 음성은 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수나카타는 들을 수 없는 것이옵니까?”

“마하리여, 여기에 한 불제자가 있어 사방에 아름다운 신의 모양을 보고 싶어 마음을 가다듬고 선정에 들거나, 아름다운 신의 모양을 보고 유쾌한 신의 음성을 듣고자 선정에 든다면, 유쾌한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불제자들이 세존 밑에서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은 그와 같은 선정을 얻기 위함이옵니까?“

“마하리여, 그렇지 않다. 더욱 수승하고 미묘한 법에 이르기 위해 행을 닦는 것이다. 마하리여, 세 가지의 계박을 끊는다면 불의 성류(聖流)에 예참(預參)하는 예류과(預流果)를 얻어 두 번 다시 악취에 빠지지 않고 마침내는 각을 얻을 것이다. 세 가지의 계박을 끊고 탐(貪), 진(瞋), 치(癡)를 적게 한다면, 한 번 이 욕계에 태어나서 고뇌의 종말을 고하는 일래과(一來果)를 얻게 된다. 이 몸을 이 욕계에 계박하는 다섯 가지 번뇌를 끊으면 천계에 태어나 다시 이 욕계에 환생함이 없이 열반에 드는 불환과(不還果)를 얻게 된다. 욕과 유(有)와 무명과 견(見)의 네 가지 번뇌의 폭류(暴流)를 모두 멸하면 이 현세에서 각을 얻는 성자가 된다. 마하리여, 이와 같은 수승한 경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제자들은 내 밑에서 청정한 행을 닦아야 할 것이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은 수승한 경지에 드는 길은 무엇이옵니까?“

“마하리여, 그것은 다만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팔정도(八正道)이다.

 

 

마하리여, 내가 일찍이 교상미(常彌)의 구사다(瞿師多) 정사에 머물러 있을 때 유행자인 만뎃사와 다루바제가(陀留波帝迦)의 제자 사리야(邪利耶)가 나의 곁에 와서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사리야여,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도 가르쳤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그의 가르침을 듣고 신심을 일으켜 출가하여 계율에 따라 몸을 지키며, 바르게 행하여 즐기고 작은 죄도 두려워하며 오관(五官)을 지켜 바른 지혜를 갖추어 살생하지 않고 인(仁)을 지니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사음을 범하지 않으며, 거짓말이나 거친 말을 내뱉지 않으며, 바른 생활을 영위하고 탐욕을 버리고 노여움을 피하며 졸음을 멀리하고 마음에 도거(掉擧)와 뉘우침이 있고 의심을 거두어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제자가 이와 같이 행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얻어 선정에 들 때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세존이여,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리야여, 나는 이와 같이 알고 보고 있는 것이므로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리야여, 또 그 제자가 점차 선정에 나아가 마침내 몸도 마음도 청정하고 투명(透明)한 감각에 충만되어 어떠한 것에도 괴로워하지 않는 마음이 되었을 때, 이 육체에 대해 생각하되 이 육체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부모님에 의해 태어났으며 음식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나 무상하여 무너지는 것임을 알고 또 나아가서 사성제(四聖)의 이치를 여실히 알며 욕의 더러움에서 해탈하여 ’나는 해탈하였다‘는 지견(知見)을 낳게 된다. 사리야여,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그러고도 오히려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가, 다른가를 문제로 삼을 것인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리야여, 나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있기에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하리여, 이와 같은 문답을 해서 사리야는 나의 설에 만족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앙다타를 위시하여 여러 바라문들은 모두 이와 같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였다.

 

 

세존께서는 차례로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시다가 해를 넘겨 왕사성에 돌아와 영취산에 오르셨다. 그때 마침 우돈바리카 왕비(王妃)가 기부한 동산에 니구로타라고 이름하는 유행자가 3천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산타나(散陀那)라는 거사(居士)가 세존을 찾아뵈려고 했으나 도중에서 생각하기를 ‘세존께서는 지금 물러가시어 선정에 드는 시간이고 제자들도 마찬가지니까 지금 찾아가는 것은 좋지 않다. 우돈바리카 동산에 있는 니구로타 유행자를 찾아가 보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거사는 그 숲속으로 향하였다.

그때 니구로타는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큰 소리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장관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관한 이야기, 의식에 관한 이야기, 유령에 관한 이야기, 그 밖의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산타나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모두 조용히 하라. 소리를 높이지 말라. 저기에 교답마의 신자인 산타나가 오고 있다. 그들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사람을 찬양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조용하면 조용한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오게 될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 말에 조용해졌다. 잠시 후 산타나는 그곳으로 와서 곧 말하기를,

“대덕(大德)들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세존께서는 인기척이 없고 쓸쓸하며 조용한 곳인 명상하기에 알맞은 숲속에 자리를 잡고 계신다.”

“오오, 거사여, 그대는 교답마가 누구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누구와 이야기하여 지혜를 얻는지 알고 있는가. 교답마는 사람이 없는 집에 머물면서 엉터리 지혜를 얻고 전통 있는 지혜를 지니지 못한 자이다. 그러기에 구석진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나 밖에 없는 소가 목장의 가장자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과 같은 꼴이다. 만일 그가 여기에 오는 일이 있다면 우리들은 한 가지 물음으로 굴복시켜 빈 통과 같이 뒹굴게 할 것이다.”

 

 

그때 우연히 세존께서는 영취산을 내려와 그 동산에 있는 스마가다 연못가에 있는 공작원의 빈터를 거닐고 계셨다. 재빨리 이것을 본 니구로타는 우선 자기 동배들을 조용하게 하라고 일렀다. 세존이 오셨을 때 물을 것을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세존께서는 이곳에 이르러 마련된 자리에 앉으시면서,

“무슨 일로 이와 같이 모여 있는가”고 물으셨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공작원(孔雀苑)을 거닐고 계시는 세존을 보고 만약 이곳에 이르신다면 세존께서 제자들을 수련하는 법을 물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멈추고 있는 중입니다.”

“니구로타여, 가르침이 다르고 의견이 다른 그대들로서 나의 법을 알기는 어렵다. 그 보다는 차라리 ‘어떻게 하면 고행과 욕의 염리(厭離)가 완전하게 될 것인가’하고, 그대의 가르침에서 말할 수 있는 바 뛰어난 염리에 대해서 묻는 것이 좋겠다.”

그 좌석에 같이 앉아 있던 유행자들은 큰 소리로,

“교답마는 참으로 위대한 힘이 있다. 유리한 자기 주장을 제쳐놓고 남의 주장을 취한다.”며 감탄하였다. 니구로타는 그 같은 시끄러움을 진정시키고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고행과 염화를 주의로 하여 그것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이 고행과 염리는 어떻게 하면 완성시킬 수 있는가?”

“니구로타여, 벌거숭이로 살며 세간의 습관을 무시하고, 식후에 손도 씻지 않고 자며, 음식으로 보시하는 자가 초대해도 가지 않고, 기다려 달라고 만류해도 듣지 않으며, 자신에게 가져다 준 음식도 받지 않고, 자신을 위하여 남비나 솥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끓는 남비나 끓는 솥에서 음식을 받지 않으며, 특히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음식을 받지 않으며 둘이 식사하는 곳에서도 받지 않으며, 임부(姙婦)나 젖을 먹이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남녀가 유희하는 처소에서 받지 않으며, 흉년이 들었을 때 자기를 위해서 거둔 음식을 받는다. 더구나 있는 집의 음식을 받지 않으며, 파리떼가 날고 있는 집의 음식을 받지 않으며,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 않으며, 주류를 마시지 않으며, 첫째 집에서 한 술의 밥을 얻고 둘째 집에서 두 술의 밥을 얻으며, 그리고 일곱째 집에서 일곱 술의 밥을 얻어 그것으로 만족하여 몸을 지탱하며, 하루에 한끼씩 7일 동안 먹으며, 보름 동안 단식을 시켜 떡잎사귀나, 쭉정이쌀, 짐승 가죽을 벗기고 버린 물건, 쌀겨, 솥에 타다 남은 누룽지, 채종(採種)찌꺼기, 쇠똥, 나무뿌리, 썩어서 떨어진 과일 등을 먹는다. 의복으로는 대마(大麻)나 그 밖의 엉성한 천, 쓰레기통에서 주은 누더기, 나무껍질, 짐승의 가죽, 풀로 만든 옷, 머리털을 뽑는 수행, 항시 서서 있는 수행, 항시 웅크리고 있는 수행, 가시로 된 잠자리에서 자는 수행, 땅바닥에서 자는 수행, 몸에 기름을 바르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옆으로만 자는 수행, 불결한 것을 먹는 수행, 물을 마시지 않는 수행, 물에 들어가는 수행을 지키기만 하면 고행과 염리를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존이시여, 저는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니구로타여, 나는 지금 그대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고행과 염리의 부정(不淨)함을 들어 보겠노라. 지금 여기에 어떤 고행자가 그와 같은 고행을 닦았다고 하자. 그는 그와 같은 고행을 기뻐하며 나는 고행을 이루었다고 자랑한다. 이 자랑이 부정의 첫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자기가 고행을 지켰다는 데에서 자기를 들어 남을 헐뜯는다. 이것이 그 부정의 두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그 고행을 닦았다는 것에 취하여 기뻐 날뛰고 뽐냄과 동시에 방자해진다. 이것이 그 부정의 세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그 고행으로서 명예와 존경과 이양(利養)을 얻고서 기뻐 날뛴다. 이것이 그 부정의 네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자기가 명예와 존경과 이양을 얻는 데에서 자기를 내세워 헐뜯는다. 이것이 그 부정의 다섯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그 명리(名利)에 취해서 방일에 빠진다. 이것이 그 부정의 여섯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점차 음식물의 선택을 즐겨 집착을 일으키고 그 환난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그 부정의 일곱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점차 그 명리를 증장시켜 왕이나 대신이나 그 누구든지 자기를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 부정의 여덟 번째이다. 다음은 그가 출가자를 보고, 이 사람들은 사치스러워 무엇이든지 먹는다고 비난한다. 이것이 그 부정의 아홉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출가자들이 공양 받는 것을 보고 이 집에서는 이와 같이 사치스러운 사람들에게 공양하면서 고행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질투를 한다. 이것이 그 부정의 열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사람이 보고 있는 데에서 수행하게 된다. 이것이 그 부정의 열 한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자기의 덕을 자랑하기 위하여 재가자를 찾아가 이것이 나의 고행의 일부다라고 뽐낸다. 이것이 그 부정의 열 두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감내할 수 없는 것을 감내할 수 있다고 대답하며, 참을 수 있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그 부정의 열 세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부처나 불제자의 설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 부정의 열 네 번째이다. 다음에 그는 분노와 원한을 품고 거만하게 되어 질시하고 인색하며 거짓과 아첨, 어리석고 오만하고 악욕(惡欲) 등의 번뇌를 일으켜 현세에 집착하게 된다. 이것이 그 부정의 열 다섯 번째이다.

니구로타여, 이와 같은 것이라면 이 고행과 염리에는 부정이 있다. 또 이와 같은 부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고행과 염리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다음에 이 고행자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오욕(五欲)에 빠지지 않는 이 네 가지를 제어하여 지키고 한가한 곳에 물러앉아 욕과 진과 게으름, 마음의 도거(掉擧)와 뉘우침, 의심의 다섯 가지와 마음의 부개(覆蓋)를 버리고 자, 비, 희, 사의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써 모든 세계에 충만하게 된다. 다음에 그는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여 숙명을 알고 또 중생들의 차별을 보고 타심통(他心通)을 지득한다.

니구로타여, 이에 이르러 비로소 고행과 염리는 이를 곳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그대가 처음에 물었던 나의 법, 그것에 의해 나는 제자를 연마시키고 제자들은 그것으로 단련되어, 이에서 터득한 안을 얻는 법은 그것보다도 수승한 것이다.

이 설법이 행해졌을 때, 늘어 앉은 유행자들은 큰 소리로 ‘이 스승과 대등한 자는 없다’고 진심으로 찬탄하였다.

그때 산타나는 말하기를,

“니구로타여, 존자는 나에게 여러 가지로 우리 세존께 나쁜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 말대로 지금 세존을 빈 통을 굴리듯이 굴려 보는 것이 어떻겠소?‘

이 말을 듣고 니구로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지 못하였다.

“니구로타여, 지금 산타나의 말은 사실인가?‘

라는 세존의 물음에 니구로타는 점점 난처해져서,

‘세존이시여, 저는 어리석게도 마음이 흐트러진 채 그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사과했다.

“니구로타여, 그대는 일찍이 그대의 선배로부터 ‘옛 각자(覺者)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왕이나 대신이나 도둑이나 군대 이야기 등 쓸모 없는 잡담을 큰 소리로 늘어놓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는가. 또는 ‘옛 각자는 인적 없는 쓸쓸하고 조용한, 명상하기 적합한 숲속에서 자리를 정해 선정에 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후자이옵니다.”

“니구로타여, 그런데 그대는 지혜도 있고 정념(正念)도 있고 노성자(老成者)이면서 무엇 때문에 ‘세존은 보리(菩提)를 얻어 보리를 위하여 설법하고 일신을 조복(調伏)하고 조복을 위하여 설법하며, 번뇌를 가라앉히고 번뇌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설법하며, 스스로 각의 피안을 향해 남을 제도하기 위하여 설법하고 열반에 들어가서 남을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하여 설법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세존이시여, 어리석은 저는 마음이 흐트러져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앞으로 재차 범하지 않게 저의 이번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니구로타여, 그대는 분명히 마음이 흐트러져서 죄를 지은 것이다. 나는 그대가 미래에 스스로를 제어하게끔 그 죄를 용서할 것이다.

 

 

니구로타여,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노라. ‘오너라, 지혜가 있고 속이지 않으며 아첨하지 않고 바르고 곧은 마음을 가진 자여, 나는 여기 법을 설하노라. 만약 이 법을 좇아서 수행한다면 출가한 목적을 7년, 아니 1년, 아니 7일로써 성취할 것이다.’ 그러나 니구로타여, 그대는 ‘교답마가 나를 제자로 삼고 싶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을 이 지방에서 내쫓기 위해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서 생활을 빼앗기 위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선(善)을 여의게 하고 불선(不善)에 집착시키기 위해 이와 같이 말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대의 스승으로 하여금 그대의 스승답게 하라. 그대의 고향으로 하여금 그대의 고향답게 하라. 그대의 생활로 하여금 그대의 생활답게 하라. 나는 단지 망집의 생사(生死)에 씨앗이 되는 불선의 법을 여의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몸을 닦는다면 그대의 더러운 법은 사라지고 청정한 법이 증장하여 원만한 지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좌석에 무리지어 있던 유행자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초조한 빛으로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는 열반을 위해 겨우 7일간의 행도 닦을 생각이 없는 악마에 사로잡힌 속 빈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영취산으로 돌아가셨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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