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의 기연(奇緣) 52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때 세존은 이 회좌(會座)에 모여 있었던 모든 대보살들에게 대하여, "너희들은 나의 법 가운데에서 무엇을 기연으로 하여 각에 들어갔는가?"하고 물으니 그들은 삼가 각자의 오도(悟道)에 대해 말하였다.
향엄동자(香嚴童子) : "저는 일찍, 세존이 모든 유위(有爲)의 상(相)을 관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어두운 방에 물러가 조용하게 명상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제자들이 침수향(沈水香)을 태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한 줄기 향기가 조용히 흘러나와 나의 코를 찔렀습니다. 저는 그때 '그 꽃다운 향기는 나무 그 자체도 아니요, 바람도 아니다. 연기 그 자체도 아니요, 불도 아니다. 정해져 가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요, 오는 데 정한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무나 바람, 연기나 불이 오가는 길을 버리고 이 방향(芳香)을 구할 수는 없다'라는 것을 알고서, 석연히 무명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향기로 장엄한 세계를 인연으로 하여 각을 얻어 진애의 습기가 없어지고 묘향으로 짙게 훈습된 몸이 되었습니다."
필릉다바차(畢陵陀婆蹉) : "어느 날 저는, 세상은 즐거운 것이 못된다는 세존의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고 도성(都城)으로 걸식(乞食)하기 위해 나갔는데, 도중에 독이 있는 가시에 찔려 전신에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하기를 '저에게 지각이 있으므로 이 동통(疼痛)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통 가운데서도 법열을 일으키자 어느 새 상처의 동통도 잊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몸의 내부에 특별한 동통을 깨달을만한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나의 마음이 인연에 부딪쳐 통감(痛感)으로 되고 법열로도 되는 것이다. 결국 마음에는 정한 성이 없다. 어지러우면 번뇌가 되고 다스리면 보리가 된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잠시 생각을 거두어 들이고 있는 중에, 완전히 동통을 잊고 몸도 마음도 공이 되어 어떤 것에도 장애를 받지 않고 계박되지 않게끔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37일에 모든 번뇌를 제거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깨달음을 얻은 인연은 이와 같이 감각의 내력을 염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추슬마(烏芻瑟摩) : "먼 옛날을 생각할 때 저는 욕이 많은 성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왕(空王)이라는 부처님이 나오셨을 때, 저를 위해 욕이 많은 중생은 맹화의 취적이 된다고 설하시고, 체내의 냉기와 난기를 관(觀)하라고 말씀하여 저는 말씀대로 관하고 있노라니까, 얼마 후 체내에서 존귀한 빛이 솟아올라 다욕(多欲)한 번뇌의 신목(新木)이 어느 새 지혜의 불이 되어 타기 시작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화광삼매(火光三昧)의 힘에 의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은 저를 오추슬마(火頭)라고 부르게 되었고 저는 또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이 성도하실 때에 역사(力士)가 되어 악마를 항복받게 할 것을 맹세한 것입니다."
지지(持地)보살 : "세존이시여, 그 옛날 보광이라는 부처님이 나오셨을 때, 저는 출가하여 그의 제자로서 언제나 더러운 길이나 하구(河口) 혹은 전지(田地) 등, 험하여 수레나 말이 상하는 일이 많은 곳을 평탄하게 고루거나 다리를 놓거나 하여 오랜 동안 수행하면서 많은 부처님의 출현을 맞이했습니다. 또 잡답(雜畓)한 속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쩔쩔 매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품삯을 받지 않고 운반해 주었고, 기근이 일어났을 때에는 먼 거리를 싫다 않고 찾아가서 사람들을 업어 주기도 하고, 혹은 진흙탕에 빠져 애를 먹는 달구지를 보고는 힘을 내어 뒤를 밀어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비사부(毘舍浮)라는 부처님이 출현하여 당시 국왕께서 제(齋)에 초대를 하셨을 때 저는 도중의 길을 평탄하게 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그때 부처님은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너의 심지(心地)를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면 세계의 대지도 모조리 다스려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이르러 저는 '모든 차별이 있는 세계는 원래 여래장에 허망한 견해가 작용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몸을 이루는 미진(微塵)도 이 망상에서 나타난 것일진대 우주를 이루는 미진도 이 망상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 두 개의 미진은 그 성이 오로지 같다'고 깨닫고는 마음이 갑자기 열려 지혜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유리광(瑠璃光)보살 : "세존이시여, 한없이 먼 옛날의 일입니다. 저는 아미타불의 출현을 만나, 본래 우리들에게 갖추어진 각의 묘심에 대한 일과 이 차별 있는 세계와 무상한 육체는 오로지 망상에 의해 생한 것이라는 것 등을 듣고, 세계와 몸과 마음을 관하여, 시방의 수많은 중생은 모두 다 허망한 상(相)으로써 마치 작은 그릇 가운데 많은 모기나 등에(虻)가 들어가 요란스럽게 울고 있는 것 같은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에 이르러 저는 부처님을 만난지 얼마 후에 몸도 마음도 빛을 발하는 것 같은, 응체(凝滯)가 없는 경계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에 대세지 보살이 52의 보살님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우러러보고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항하의 모래 수만큼이나 오랜 옛날의 일입니다. 무량광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그 다음을 이어서 열두 부처님이 12겁 사이에 출현하셨으며, 그 최후의 부처님을 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이라 하였는데, 이 부처님은 저에게 염불삼매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시방의 부처님은 다 중생들을 아들처럼 어여삐 여겨 주시므로 중생들도 또 아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심정으로 부처님을 마음 속 깊이 새긴다면, 현세나 후세의 어디에서나 머지않아 부처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염불삼매에 있는 것을 향광(香光) 장엄이라고 이름하는데, 그것은 마치 향에 젖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향기가 있는 것처럼, 염불삼매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부처님의 지혜의 향기에 의해서 장엄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그 수행할 때에 염불하던 마음으로써 생사가 없는 공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세계에 출현하여 역시 염불하는 사람을 섭수하여 부처님의 정도에 돌아가도록 힘쓰는 것이옵니다."
그때 세존은 몸에서 빛을 발하여 멀리 시방의 한없이 많은 부처와 보살들을 비추시니, 그 부처들도 또한 널리 빛을 발하여 이 회좌(會座)를 비추었다. 나무도 숲도 못도 늪도 이 빛에 비추니 홀연히 법 그대로를 갖춘 참이치를 나타내, 각각 빛을 발하고 빛을 교차시켜 보석을 늘어뜨린 그물처럼 비추어 시방의 허공은 칠보처럼 존귀한 상(相)으로 변하여, 대지나 산하도 그 추한 차별의 상은 사라져 버렸다. 세상은 모두 하나의 빛 가운데에 용해되어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법을 찬탄하는 노래가 솟아났다.
이때 문수보살이 세존의 뜻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족하에 예배하고 노래하였다.
각성(覺性)의 바다는 원만하고 그것은 본래 맑도다. 신비스러워, 만일 그 빛을 비추게 되는 날이면「비추다」「비치다」의 차별도 멸한다. 번뇌에 미혹되어 허공을 보고, 허공에 의해 이 세계를 이룬다. 무상(無想)을 국토(國土)로 삼고 유상(有相)을 중생으로 삼는다.
묘유(妙有)의 본각(本覺)이 넓으니 허공 가운데 이러한 것이 있음은 바다에 물거품이 떠 있는 것과 흡사하다. 한없이 더러운 국토가 모두 이 허공에 의해 생긴다.
거품이 꺼지면 본래 거품은 없고, 진로(塵勞)를 떨어 버리면 본래 허공은 없다. 허공에 세운 국토 또한 멸하고, 중생도 환상처럼 사라진다. 사라지면 본래 차별은 없고 오직 갖가지의 방편만이 있도다.
묘유의 존귀한 성으로써 통하지 않는 바 없으므로 순역의 세간사란 모두 부처님의 방편임을 알게 될 것을.
아난을 비롯하여 모든 대중들은 이들 보살의 고백과 찬가를 듣고 마음이 홀연히 열려, 멀리 유행하면서도 고향길을 분명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본래부터의 묘유한 여래장의 진심에 대하여 밝게 알 수 있었다. 아난은 의복을 정제하고 합장하며 삼가 세존에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가 되는 도에 대하여 밝게 깨달을 수가 있으며, 도를 닦는데 대해서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미래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세계에서 멀어지므로, 한없이 사악한 스승에게 미혹되고 말 것입니다. 이때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려 마에 흔들리지 않고 용감하게 도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너의 질문은 말세의 중생들을 한없이 행복하게 할 것이다. 자세히 들어라. 저를 위해 설하리라. 아난이여, 나는 일찌기 계행과 선정과 지혜 등 삼학(三學)에 대해서 설한 바 있다. 즉 마음을 수습하는 것이 계행이며, 계행에 의해 선정이 생기고 선정에 의해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마음을 수습하느냐 하면, 첫째로 탐심을 제거해야 한다. 만일 이 마음을 제거하면 생사의 망집이 계속되는 일이 없다. 또 선정을 닦는다는 것은 본래 번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비록 아무리 선정을 쌓고 지혜를 닦는다 하더라도 탐심을 끊지 않으면 반드시 마의 길에 떨어져, 많은 중생을 헷갈리게 할 것이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깨달은 사람같이 말하고 사람들의 선지식(善知識)이 되어 애착의 나락(奈落)으로 이끄는 것 등은 모두 이것이다. 그러므로 선정을 닦는데 대해서도, 먼저 탐심을 끊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도 실은 이것을 첫째로 친다. 아난이여, 탐심을 끊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은 마치 모래나 돌을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백천겁을 찌더라도 다만 뜨거운 모래 밖에는 얻을 것이 없는 것처럼, 백천겁에 걸쳐서도 삼악도(三惡道)를 윤회하는 도리밖에 없다.
또 아난이여, 살생을 여의고 도둑질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끝내 번뇌의 진에를 벗어날 수 없다. 비록 아무리 선정을 닦고 지혜를 연마해도 살생을 여의지 않으면 귀신의 도에 떨어지고, 도둑질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악령의 도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이여, 다시 이러한 살생, 투도, 탐심을 여의더라도 거짓말을 하면 불종(佛種)을 잃게 될 것이다. 즉, 아직 얻지 못한 경지를 얻었다고 말하고, 깨닫지 못하고서도 깨달았다고 말하고, 스스로 세간에서 가장 뛰어난 듯이 큰소리 치며 세간의 공양을 탐하는 것 등은, 길이 선근(善根)과 비슷하게 하여, 전단의 향기를 구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불제자가 된 자는 항상 그 마음을 바른 거문고 줄처럼 만들어 놓으면 참된 선정에 들어갈 수 있고, 길이 마의 업(業)에서 벗어나 보살의 지혜를 이루게 될 것이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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