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22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2. 대사, 빈민을 구제하며 보시(布施)의 뜻을 설하다
다시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이 왔다. 곤륜산에서 연봉은 순식간에 은백 일색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흥림국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겨울이 일찍 올 뿐 아니라 그 추위 또한 극심했다.
대사가 머물고 있는 금광명사는 더욱이나 깊은 산속에 있어서 이 냉한기의 추위는 살을 에이는 듯하여 모든 사람들이 동농(冬籠)외 되어버린다.
그토록 융성하던 설법회도 혹독한 추위 때문에 모이는 사람이 극히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하게 추운 겨울날이라 웬만한 외출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그렇게도 열성적이던 신도들이 한풍이 불어오자 갑자기 격감됐으므로 대사는 보모에게 그 원인을 물었다. 혹시 자신의 설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우에서였다.
“제가 알기로는 청법하러 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빈한한 사람들인데 금년 겨울은 예년에 비해 유달리 추운데다 방한복이 없어 오고자해도 올 수 없는 처지라 합니다.”
“그랬었군요. 그렇다면 진작에 말씀을 좀 해주시지 않고…….”
대사는 곧 바로 사내 대중을 불러모아 사원 여승들이 직조한 옷감을 모두 꺼내어 서둘러 의복과 모자를 봉제하도록 했다. 부족분은 성내 시장에서 옷감을 사들여 비구니들은 물론 우바이(재가 여신도)들까지 합심하여 밤을 새워가며 만들어 냈다.
이 소문이 전해지자 양잠하는 집에서는 양잠생사를 보내 왔으며 직조하는 집에서는 옷감을, 또 목축직물을 하는 집에서는 모직물을, 그리고 면화를 재배하는 집에서는 이불솜들을 보내와 산같이 쌓이게 되었다.
모든 백성들 역시 대사가 사람들에게서 보시(布施)만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추위를 무릅쓰고 밤중에 몰래 운반하여 사원의 적당한 곳에 놓고 돌아가 버리곤 했다.
흥림국은 농사외에 면화를 많이 심었고 또한 토지가 뽕나무 경작에도 알맞아서 양잠생사의 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또한 목축으로는 면양을 많이 길렀으므로 모직물의 산출도 풍부하여 직물산업이 특히 발달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의복과 방한모를 대사의 설법회에 온 사람들에게 보시하여 고루고루 나누어 입고 쓰게 했다. 또 멀리 산과 물을 건너 구법을 위해 온 사람들은 유숙을 하도록 해서 따뜻한 음식과 새 의복을 주고 휴식토록 했다.
대사는 원근을 불문하고 구법 구도차 온 사람들에게 일시동인(一視同仁)평등사상으로 정중히 대접하고 성실하게 설법을 강론하였다.
이와 같은 대사의 자상한 배려에 따라 알게 모르게 수많은 백성이 구제를 얻게되고 설법회에 온 사람들은 전보다 더욱 활기에 넘치게 되었고 설법회는 더욱 성황을 이루었다. 언제나 자비심깊은 대사 가까이에 살기를 원하여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격증하게 되었는데 대사는 이들에게 근처 산림을 개척하여 각자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구법대중이 기뻐하며 속속 이주해 와 맹호가 많다고 두려워하던 야마산록일대(耶摩山麓一帶)는 시가지로 일변해졌을 뿐 아니라 대사를 숭경하는 구법대중의 시가지가 됨으로 서로 돕고 사는 모범적이며 자비심 넘치는 아름다운 곳으로 되어갔다.
마음이 윤택하고 번뇌와 걱정이 없는 생활이라면 어떠한 부귀나 지위보다도 못할 것이 없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두려워함이나 위구(危惧), 번민이 있는 자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생사의 불안없이 안심입명(安心立命)으로 영구히 초탈(超脫)을 얻은 사람들의 마음은 천하를 쥐고 흔드는 사람의 마음보다 더 강인한 법이다. 일세를 풍미할 수 있는 권력을 잡았다 해도 끝내는 그것을 잃게 되는 것일진대 오히려 구원(久遠)의 덕을 쌓는 것이 훨씬 가치있고 보람된 일이 아니겠는가. 야마산(耶摩山)의 별천지는 모든 이들에게 동경의 장소로 변하여 이상적인 상락경으로 일변한 것이다.
대사의 자비심은 많은 민중들의 지주(支柱)가 되었고, 작은 정성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힘이 되었다. 성내의 부호, 재산가들도 감동되어 다액의 희사를 제의해 왔으나 대사는 일부인의 허영심과 공명심에 이용됨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정중하게 이를 거절하였다.
부호들은 자기의 성의가 받아지지 않음에 불만이 많았으나 대사의 진의를 알고서는 그래도 자기들의 성의표시가 진실임을 표의하기 위해 익명으로 금광명사의 보시상자에 거금을 넣었다. 이로 인해 대사의 빈민에 대한 보시가 길게 오래도록 가능하여 단절됨이 없었다. 이와 같이 전국 각지에서 익명의 금품이 이어 기증되어 오자 이를 취급하는 비구니 중에는 은연중에 물품에 대해 소홀히 하는 자가 간혹 있었다.
대사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이완과 해이가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엄하게 경계했다.
“여러 비구니들이여! 물질을 소홀히 하여 아무렇게나 조말(粗末)하게 취급함은 사람의 진실을 아무렇게나 조말하게 취급함과 같습니다. 불타의 가르침 중에 불가의 일푼은 무겁기가 수미산같으며 만약 성심을 가지고 다루지 아니하면 내생(來生)에 털을 뒤집어쓰고 딱딱한 껍질(甲)을 받아나게 된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수행자는 사람들의 보시를 자기를 위해 써서는 안되며 오로지 공익에 합당되도록 함에 틀림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 특히 한 사람만을 위한 보시를 경계하며 무릇 불문에 귀의한 자는 한푼의 보시를 받아도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됩니다. 만약 이를 소홀히 하고 또 보응하지 않으면 내세에는 축생으로 전생(轉生)하여 갚게 됩니다. 사람들의 보시에 이를 잊고 사람들에게 보답을 베풀 것을 잊는 자는 큰 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때 영련이 대사에게 물었다.
“대사께서는 부호들의 희사를 극력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는 어찌된 연유입니까? 희사의 경중에 달리 의미가 있습니까?”
대사는 영련을 보고
“부자, 빈자의 보시에 양의 다소는 있어도 진심의 표시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그를 받아 쓰는 우리들에게 사람을 달리 보는 눈의 높고 낮음이 있음을 두려워 할 뿐입니다.”
“왜 그러하옵니까?”
“빈부의 차는 있어도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소가 없으나 수행이 미숙한 사람은 받은 양의 대소에 따라 사람을 보는 눈에 구별이 생깁니다.”
“그렇게 일러지나 행자는 시방의 공양을 받아도 좋다고 듣고 있사옵니다만…….”
영련은 납득이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시방의 제보시를 받더라도 이제 말하듯이 시방에 법보시를 돌려 베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행자는 법을 구하며 정각에 이르기까지 갖은 고행을 합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도움을 빌리는 것입니다.
우선 임시의 육신을 유지하려고 진심(眞心)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음식을 구걸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자기가 그 숭고한 법을 깨달아 득도한 때에는 역으로 그 사람의 영혼에 법보시를 돌려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받아들인 양만큼의 법을 우리들은 법보시로써 여러 사람들의 마음의 기갈을 풀어줄 수가 있을른지요?”
“잘 모르겠사옵니다.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옵소서.”
“행자는 법을 구하기 위해 먹을 것을 받게 됩니다. 이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좋을 것입니다. 속가(俗家)는 그에 의해 행자와의 인연이 맺어져 불문에 공덕을 쌓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한 공기의 남은 밥이라도 불타의 인연이 되며 한 숟가락의 찬물에도 보살의 연이 있습니다. 보시받은 행자는 하루 빨리 득도하여 정과성취(正果成就)한 후 그 사람들을 제도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법을 오득(悟得)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법을 오득했다 해도 그 사람들에 불연의 기(機)가 숙달해 있는지 알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법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재시(財施=기증)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해서 부호들에 법보시로 들려 베풀지 못한다 하옵니까?”
“부호들에게는 물질로 인한 교만이 있습니다. 그 미망(迷妄)이 깊고 깊어서 같은 베품에도 빈자에 비교해서 공명심이 강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보시(財布施)가 구제의 조건이 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기에 같은 희사를 받는다 해도 우선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희사를 받아 왔으며 그것은 법보시할 수 있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옵니까?”
“익명의 희사는 나에게가 아닌 불문에 기증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득도(得道)하지 않은 나에게는 응공자(應供者)로 될 자격이 없습니다. 불문에 희사하면 필경 불타의 득각정법을 성취할 기회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데 그 재시(財施)는 실제로는 불타에게 올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시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불타는 금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보은의 생각으로 헌납한 금전이나 물품은 이번에는 불타은덕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우리들은 보시한 사람과 그것을 받은 사람 양쪽에 연을 맺게 하여 주고 있습니다. 어느 편이거나 간에 불타가 득도한 정각을 구해 얻게 되겠지요!”
“희사하면 공덕이 주어진다고 일러지나 익명이더라도 알게 되옵니까?”
“법광(法光)은 무량무변,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치며 천안 불안(佛眼)은 시방세계를 빠짐없이 다 보십니다. 익명으로 해도 얼마든지 공덕으로 남게 됩니다. 그대신 우리들은 사심없이 공명정대하게 이들의 기증을 중생제도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할 바인 것입니다.”
영련은 감격해서 대사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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