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말씀

잦은 삭발

근와(槿瓦) 2016. 10. 8. 03:02

잦은 삭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내 일상생활 중에서 기분이 가장 상쾌할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삭발하고 목욕한 다음이라고.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안팎으로 맑고 깨끗한 상태 안에서 우리는 가장 홀가분하다. 그것은 갓 태어난 것 같은 그런 기분.


승가에서는 한달에 두 차례씩 공통적으로 삭발과 목욕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계절과 취향에 따라 자주 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어떤 선사(禪師)들은 일과삼아 날마다 하는 분도 있는데, 티끌 하나 용납지 않으려는 그 결백성과 날듯이 홀가분한 그 쾌청(快晴)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집 자체를 개조하여 없어지고 말았지만, 10여 년 전 해인사의 선원인 퇴설당(堆雪堂)에는 거기 딸린 욕실이 따로 있었다. 위층은 다락으로 여름철 같은 때 좌선(坐禪)을 할 수 있도록 되었고, 그 아래는 부엌과 욕실이었다. 그 욕실 벽 한쪽에 불켜는 초를 가지고 써놓은 낙서가 있었다.「차외하소구(此外何所求)」, 이밖에 구할 것이 무엇이랴고 한 이 글은, 삭발하고 목욕하고 난 다음의 그 기분을 어떤 스님이 장난삼아 써놓았을 것이다.


얼마나 기분이 상쾌했으면, 이밖에 무엇을 또 구할 것인가 하고 낙서까지 했을까. 욕심이 없다면 전혀 없다 하겠지만, 크다면 그 이상 더 큰 욕심이 또 없을 것이다. 그 위에 더 바랄 게 없다니 이 얼마나 큰 욕심인가.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건 허무맹랑한 소리. 절에서는 흔히 동료들끼리 서로 삭발을 해주기 때문에 전직이 이발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삭발을 할 줄 안다. 뿐만 아니라 대개는 손수 자기 머리도 깎을 수 있다. 처음으로 자기 머리를 깎고 났을 때의 대견스런 그 기분을 누가 알까.


몇해 전, 그때까지 내 삭발시중을 들어주던 한 스님이 병으로 입원을 하고 말았다. 다른 스님한테 부탁할까 하다가, 에라 이런 기회에 내 머리를 내가 깎아보자 하고 거울 앞에 앉아 조심조심 면도질을 했다. 예상외로 한 군데도 베지 않고 말끔히 깎을 수 있었다. 그때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마치 새로 출가라도 한 것 같았다. 그야말로 그밖에 구할 것이 없었다. 그 길로 가사를 걸치고 법당에 올라가 복전에 무수히 예배를 드렸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어서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삭발할 때마다 이 스님 저 스님의 신세를 지던 터라 속으로 늘 미안스러웠다. 또 한 가지는 이 다음 외떨어진 암자에서 홀로 지낼 경우를 생각하면 삭발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그날 손수 머리를 깎게 되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이튿날 거리에 나가 기념으로 거울을 하나 사왔었다. 뒷면에는 붓글씨로「아무날 손수 삭발하다」라고 써 놓았다.


그후부터 나는 기분이 내키면 남의 손을 빌지 않고 그 거울 앞에서 손수 삭발을 한다. 좋을 때는 좋아서, 언짢을 때는 언짢아서 삭발을 한다. 삭발을 하고 나면 그때마다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 생각을 씻어버리기 위해 나는 또 삭발을 한다. 며칠 전에는 아무 혐의도 없이 관할서에 불려가 종일 시달리다 왔다.


이래서 요즘에는 전에 없이 삭발을 자주 하게 된다. 온갖 비리로부터 거듭거듭 출가하고 싶어서다.



출전 : 서 있는 사람들(법정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