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600-1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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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오욕으로 즐겼다. 그들은 가만히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욕심은 항상됨 없이 오래지 않아 시들어지는 것이니 나는 결정코 불법을 구하리라. 만일 법을 들으면 가르침과 같이 수행하여 나고 죽음의 긴밤에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리라.' 마침 이렇게 생각할 때에 문득 하늘 사람이 공중에 나타나서 그 왕에게 일러 말하였다. '착하다. 대장부여, 이제 변조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어 바른 법을 연설하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이 다 진선진미하나니 왕은 속히 저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서 바른 법을 들으라. 왕께서 긴 밤 속에 이익되고 안락케 하여 불법을 성취하고 불법을 원만케 하리라.'
왕은 하늘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그 권속에게 둘러싸여 큰 변조여래의 처소로 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법으로 모든 법의 교묘한 방편을 거두어 능히 범행을 속히 원만케 하오리까? 제가 닦아 행하려 하나이다.'이렇게 묻자, 그때에 저 여래는 널리 왕을 위하여 열어 보시었다. 왕은 법을 듣고 그 권속과 함께 안락한 생활의 수용품을 놓아서 변조여래와 모든 대중을 공경·공양하기를 이만 세를 채웠다. 그리고 변조여래 법 가운데 집을 떠나서 바른 법을 수행하였느니라. 법을 받아 들은 착한 뿌리와 법을 지닌 착한 뿌리와 법을 설하는 착한 뿌리를 얻어서 법을 듣기만 하면 생각하여 잊지 않으며, 한량없는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익히고 '원하옵건대 여래의 삼시(三時)의 바른 법을 가지고 모든 중생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법을 설하여지이다'라고 서원을 세웠다. 이렇게 원을 세우고는 초승 겁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낱낱이 친절하게 공양하고 이어 섬기고는 그 모든 여래의 현재의 바른 법과 중간 시대의 바른 법과 나중 시대[後時]의 바른 법을 다 능히 받아 지니고, 사만 팔천 구지 나유타 중생을 교화하여 성취시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며, 방편으로써 한량없는 중생을 길들여 성문·벽지불 지위에 머무르게 하였느니라. 그 겁 가운데 최후의 여래의 호를 전광(電光)이라 하였다. 용맹군 비구는 전광여래의 설법을 들을 때에 무생법인을 얻었다. 전광여래는 곧 그를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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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증언하셨다. '너 용맹군아, 저 오는 세상에 한량없는 천불 세존을 공양하고 여래의 삼시 바른 법을 받아 지니며, 수없는 중생을 이익하며, 백천 구지 나유타 중생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서게 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성문승에 머물게 하리라. 이렇게 아승지겁을 지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니 호를 무변정진광명공덕초승왕(無邊精進光明功德超勝王)여래라 하리라. 그 부처님의 국토는 한량없는 청정 공덕을 쌓아 모아서 안온하고 풍락하며, 인민이 충만하고 성문 및 보살 중이 많으며 그 부처의 수명은 다섯 소겁에 이르리라. 열반에 든 뒤에 바른 법이 일소겁을 머무를 것이며, 법교가 널리 유포되어 인간·천상이 받아 지니며 사리(舍利)의 탑과 사당이 모든 국토에 가득 차리라.'이러므로 승혜야, 모든 보살은 이 청정하고 깊은 법을 마땅히 받아 지니고 닦아 익힐지며, 법의 장엄구로 그 몸을 장엄하며, 법을 장엄하므로 여래의 금강으로 이룩된 큰 나라연의 견고한 몸을 증득하리니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그 몸의 힘을 다하여 그 견고한 몸을 파괴하려 하더라도 능히 꺾어 엎을 자가 없으며, 일체 세간 천상·인간·아수라 가운데 법의 광명을 연설하되 또한 능히 맞서 의론할 자가 없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깊은 법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며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 그 뜻의 원함을 따라서 청정한 큰 성바지에 태어나며,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명칭이 갖추어지며, 세계가 수묘하여 다른 길[異道:外道]에 섞이지 아니하나니 어찌 바라문이 자란 악견(惡見)·사도의 무리가 있겠느냐? 모든 좋지 못한 법은 일찍이 듣지도 못하였거니 어찌 불선(不善)의 종자를 닦아 익히는 자가 있겠느냐? 능히 발가락으로 큰 광명을 놓아서 두루 끝없는 세계를 비추면 모든 중생으로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다 안락을 얻으며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라. 이러므로 승혜야, 만일 보살이 이 법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자는 이러한 훌륭한 공덕을 얻으리라. 만일 갖추어 말하려면 끝이 없느니라.”그리고 부처님은 무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무변혜야, 만일 이 보살도에 머무르는 이는 부지런히 이렇게 청정한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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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닦아서 공과 서로 응하며, 적정과 서로 응하여 법의 광명을 얻어서 법의 광명으로써 온갖 법 자성이 다름없음을 보느니라. 성품이 다름없으므로 보는 것이 청정하며, 보는 것이 청정하므로 곧 법의 견해가 없고 또한 법도 없으며, 자성의 견해를 여의고 법의 견해가 청정하므로 또한 청정함도 없으며, 청정한 자도 없으며, 청정한 때[時]도 없으며, 능히 청정한 지혜의 경계를 얻으며, 모든 법계가 계(界)가 아니며, 계가 아님을 보므로 계의 견해가 청정하여 멀리 모든 계의 가지가지의 성(性)이라는 생각을 여의며, 성이라는 생각을 여의므로 저 계의 이취에 대한 비밀한 언사(言辭)를 능히 깨달아 알며, 또한 능히 모든 법이 계가 아님을 두루 아나니 법계가 차별 없음을 본 까닭이며, 가히 무너뜨리지 못하는 까닭이며 변하여 달라지지 않는 까닭으로, 문득 법계 이취의 선교방편을 얻으며, 선교방편으로써 두루 능히 법계 이취를 깨달아 알고 등지(等持)의 힘으로 모든 법계 차별·이취에 따라 들어가느니라. 이 행에 머무를 때에 온갖 법 선교방편으로써 온갖 법에 머무름도 없고 집착함도 없나니,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능히 일체 법계 이취에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갖가지로 열어 보이며, 등지의 힘으로 다시 능히 정려(靜慮)·해탈·등지(等志)·등지(等至)를 내며, 신통에 노닐면서 하나를 변화하여 많음을 만들고 많은 것을 변화하여 하나를 만들며, 산과 돌과 장벽에 걸림 없이 자재로이 날아다니며, 교묘하게 능히 네 가지 요소가 화합한 것을 알아서 계에 머무르지 아니하나니 일체계가 공계(空界)와 합한 줄을 알아서 허공계에 집착함 없고 얽매임 없으며, 계의 화합을 아는 선교자(善巧者)로서 일체계에 방편으로 닦아 익히는 까닭에 수계(水界)를 결정하여 알고는 능히 수계에 혹은 연기를 일으키며 혹 그 가운데 연기와 불꽃이 함께 치성하게도 하며, 한량없이 갖가지로 변화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익을 지어서 능히 법계 이취·선교방편에 안주(安住)시키되 움직인 일 없이 그 뜻에 좋아하는 대로 어떤 부처님 세계든지 인간·천상에 태로 받아 나는 몸을 굴려서 변화하는 몸을 받아 항상 시방 모든 세계 부처님을 뵈옵나니 저 모든 부처님의 명호며, 족성(族姓)이며, 회중이며, 설법 등을 다 분별하여 아느니라.”그때에 대중 가운데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무변승(無邊勝)이다.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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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앞에 나와 사뢰었다.“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이 어떤 법에 머물러야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과 같이 능히 이러한 가장 거룩한 공덕을 얻으리이까?”부처님은 무변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무변승아, 보살이 온갖 법에 머무르는 바가 없을진대 내가 말한 것과 같이 능히 이러한 가장 거룩한 공덕을 얻으리라.무변승아, 모든 보살이 만일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머무르거나 혹 지계·수계·화계·풍계·공계에 머무르거나 혹 욕계·색계·무색계에 머무르면 나는 이 경에서 이러한 공덕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모든 보살이 온갖 법에 머무르는 것이 없으며, 들어감도 아니요, 나아감도 아닐새.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마땅히 끝없는 큰 공덕의 바다를 얻는다고 말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이 조그만 법이라도 얻을 것·머무를 것이 없으며, 또한 조그만 법도 혹 들어가거나 나아갈 것이 없으며, 능히 모든 법 이취에 편히 잘 머물러서 움직일 수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머무름도 없고 움직임도 없나니, 움직임이 없는 까닭에 높은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으며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높은 것을 멀리 여의고 낮음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며, 머무르지 아니하므로 좋은 곳에 머무른다고 말하며, 좋은 곳에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곳에 머무름이 없으며, 어떤 곳에 머무름이 없다는 것은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아니 함이니라. 모든 보살은 조그만 법이라도 혹 가리어 세우거나 혹 쌓아 모으거나 함이 없나니 어떤 곳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고 지음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곳이란 것을 얻을 수 없나니, 곳이 없으므로 곧 분별이 없으며, 분별이 없으므로 움직이지 않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법계의 머무름과 같으며, 어느 곳에 머무름이 없으면 곧 머무름 자체가 없는 것이니라. 어떤 곳이라든가 곳이 없다 하는 데 집착함이 없는 것이 잘 머무름이 된다고 이름하느니라. 무변승아, 모든 보살이 법의 이취에 안주한다는 것은 이렇게 설 곳에 서되 머무름 없는 데 머무르며 머무름 없는 곳에 머물러서 일체 법계를 보되 분별함이 없나니 이러한 분별 없는 행에 머무르며, 이러한 행으로 온갖 법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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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 움직임이 없으면 곧 이치와 같이 머무름과 서로 응하며, 이치답게 움직이지 않음과 서로 응하며, 이치와 같이 취하지 않음과 서로 응하느니라.”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바른 법을 잘 기억하며 그 뜻을 어김 없이 사유하나니 모든 법 가운데 머물지 않을새 이것을 말하여 지자(智者)라 하네. 일찍이 조그만 법도 가리어 세울 자 없으며 가리어 세울 것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도다. 어떤 색상(色相)에도 서지 않으며 어떤 감수(感受)에도 서지 않으며 어떤 상음(上陰)이나 행음(行陰)이거나 식음(識陰)도 그러하네. 이미 5온(蘊)에도 머물지 않고 십팔계·십이처도 또한 그렇고 접촉하는 곳이거나 곳 아니거나 또한 언제나 머무름 없도다. 지계(地界)에 일찍이 머물지 않고 수계(水界)에도 또한 머물지 않고 화계(火界)와 풍계(風界)도 다름이 없이 언제나 그 속에는 머물지 않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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