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7. 가샤아바(迦葉), 수미산(須彌山)에서 백련(白蓮)을 보다
묘장왕은 노재상 아나라와 백련의 유무(有無)를 확인할 사람을 보내기 위해 그에 따르는 제반문제를 의논했다.
아나라는,
“이곳에서 수미산까지는 먼 길을 가야할 뿐아니라 광막한 고원과 사막, 깊은 숲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옵니다. 높은 절벽을 등반하고 차디찬 냉기와도 싸워나가지 않아서는 아니되니 강건한 체력과 담력 그리고 높은 식견을 겸비한 자들을 선발하여야 시작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옵니다. 또한 이들을 통솔할 자는 실로 충직한 자가 아니면 아니될 것이온즉, 가벼이 행동하는 자라면 도중에서 그만 두거나 거짓을 꾸며 전할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옵니다. 심사숙고하시어 결정하실 일인 줄로 아옵니다.”
묘장왕은 다시 한번 아나라야말로 실로 총명한 재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곰곰히 숙고하더니 이윽고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치전장(値殿將) 가샤아바(迦葉)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 가샤아바만이 이 임무를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하오?”
기실 아나라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즉시 찬의를 표했다. “가샤아바”는 워낙 심성이 강직청렴한데다 무용(武勇)이 뛰어나고 지혜가 수승한 외에 특히 신앙심이 깊어서 생활태도 역시 근면성실한 보기드문 무장(無將)이라는 점외에 더욱이 왕실의 가신(家臣)이었으므로 가장 적임자라 할 수 있었다.
묘장왕은 즉시 가샤아바 장군을 등전케 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임무를 수행할 것을 명했다.
가샤아바는 기필코 임무를 수행하여 삼가 왕명을 받들어 지킬 것을 굳게 언약하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병영으로 돌아온 가샤아바는 즉시 믿을 수 있는 부하장병 50명을 선발하고 다시 먼 여행에 필요한 제반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이튿날 가샤아바를 위시한 원정대원들은 묘장왕과 문무백관의 전송을 받으며 장도에 오르게 되었다. 출발에 앞서 왕은 가샤아바에게 삼배의 술을 하사하고 또한 50명의 대원들을 일일이 위로하고 장도를 격려했다.
그로부터 일행은 낙타에 분승하여 장도에 올라 수미산을 향하게 되었다. 광막한 사막, 울창한 숲, 세찬 급류, 험준한 절벽 등 계속되는 갖가지 난관에는 건장한 대원들도 피로의 감(感)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낮에는 길을 재촉하고 밤에는 바람없는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피로함을 달랬으나 부락에서 떨어진 수십리 행로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고 집한채 보지못한 때가 허다하였다.
이렇듯 새벽부터 밤늦도록의 강행군을 시작한지 약 2개월이 지나갈 무렵이 되자 비로소 아득히 먼 곳에 백설을 쓰고있는 수미산의 웅장한 봉우리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대원들이 하나같이 함성을 지르며 환호작약했다.
수미산의 각 봉우리들은 하늘을 찌르듯 우뚝우뚝 의연하게 솟아 있는데 정상에는 한여름인데도 태고적부터의 만년설(萬年雪)로 뒤덮여 있었다. 병사들은 웅장한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면서 다시금 원기를 얻어 힘차게 행군해 나갔다.
그후 이틀째되는 날 가샤아바와 대원들은 겨우 수미산의 북쪽 기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부근일대에는 부락은 커녕 한 채의 집도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날이 서서히 저무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해가 지고 어두워져 더 이상 행군을 계속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샤아바는 적당한 곳을 골라 장막을 치고 대원들을 휴식토록 했다.
식후 대원들은 모두 피로에 지쳐있었던 터이라 즉시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으나 가샤아바는 웬일인지 가슴이 뛰고 피가 끓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대망의 백련을 찾게 된다. 일흔두개의 봉우리중 과연 어느 봉우리가 설련봉일까?」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고 몸을 뒤척이던 가샤아바는 갑자기 무엇에 끌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어입고 한자루 검을 허리에 찬 채 단신으로 장막을 뛰쳐나왔다. 설련봉이 바로 옆에 있는 듯한 생각이 자꾸 엄습해 왔던 것이다. 가샤아바는 자신도 모르게 울창하게 우거진 수림근처로 닥아와 있었다.
문득 위를 쳐다보니 산이 워낙 높은 탓이었을까 달빛이 유난히 밝고 밤이슬은 차가워 바람을 부르고 있는데 멀리 쳐다보니 일대의 수풀이 시꺼멓게 달빛에 드러나 있었고 정상에 쌓인 눈은 푸른 달빛에 요요히 빛나고 있어 눈에 비치는 은광(銀光)이 가히 장관이었다.
가샤아바는 그 장엄한 장관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눈에 덮힌 봉우리들이 가까이 보이는 곳까지 다가서서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눈을 옮기고 있노라니 돌연 가운데 한 봉우리가 무엇에 휘감기듯 하얀 안개가 걷히더니 눈에 덮힌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순간 가벼운 공포감과 더불어 가슴이 고동쳐 옴을 느꼈으나 너무나도 황홀한 경관에 넋을 잃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방향(芳香)이 주변에 가득히 서려와 더욱 황홀감을 더하는 것이었다.「대체 이 고운 향기는 또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황홀함속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느 골짜기에서인가 한 줄기 맑고 영롱한 빛이 은은히 비쳐오고 있었다. 그 빛의 맑고 영롱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방향은 그 빛을 타고 흘러내려 오는 듯했다.
마침내 가샤아바는 알 수 없는 신비속으로 자신이 빠져들어 가고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차츰 정신이 혼미해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뒷머리를 내려치듯 어떤 생각이 홀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 빛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비치어오는 것이란 말인가? 만약 저 빛이 비치어오는 봉우리야말로 백련봉임에 틀림이 없어.」
가샤아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는 벌써 새벽에 가까워 고령(高嶺)위에 밝은 빛이 드리워오고 있었다. 그에 따라 은은히 주위를 감싸고 있던 방향도 알 수 없는 영롱한 빛도 사라져갔다. 그제서야 제 정신을 찾은 가샤아바는 빛이 비치어오던 눈앞의 봉우리야말로 신령스런 연꽃이 피어있다는 설련봉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굳어져갔다.
이러한 확신이 어떤 신비감과 더불어 하나의 사실로 다시 가샤아바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을 때 그는 온 몸에 번지는 희열을 억제할 수 없어 마구 고함을 내지르며 장막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깊이 잠들어 있던 대원들은 고함소리에 놀라 모두들 잠이 깨어 가지고 희색이 만면하여 달려들어오는 가샤아바를 보고는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가샤아바의 이야기를 대강 전해들은 그들은 모두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와 그야말로 환호작약했다.
가샤아바는 대원들을 재촉하여 아침식사를 든든히 하게한 뒤 즉시 준비를 갖추어 설련봉을 향해 출발했다.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출발하였으나 산을 절반도 오르지 못하였는데 이미 석양이 뉘엿뉘엿 자기 시작했다. 도고봉(徒高峰) 뒤편으로 기울어가는 석양은 언뜻 보기에 명주옷을 입힌 양 신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가 진 후에도 가샤아바는 대원들을 재촉하여 계속 봉우리를 올라갔다. 완전히 해가 지자 설련봉은 거므스레한 설모(雪帽)를 쓴 채 조용히 잠들어 갔지만 대원들은 등뒤로부터 비치어오는 심오야의 밝은 달빛에 쌓여 마치 별천지를 가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샤아바는 주의를 기울여 주위를 살피며 계속 대원들을 재촉하여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나가다보니 갑자기 평평한 벌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벌판이 끝나는 곳에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서 있었는데 그 절벽의 한가운데에 큰 동굴이 있었고 그 속으로부터 맑고 깨끗한 한줄기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샤아바는 일단 대원들을 뒤에 머물도록 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단신 동굴을 향하여 나아갔다. 동굴앞에 당도하여 보니 부근일대는 마치 대낮같이 밝았다. 가샤아바는 비상히 정신력을 집중하여 그 빛의 중심을 좇아보니 과연 그곳에는 무어라 할 수 없이 아름다운 백련 한송이가 만고(萬古)의 신비를 머금은 채 흰눈 위에 피어 있었다.
눈을 쏘듯하는 영롱한 빛은 바로 그 연꽃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뒤이어 가샤아바를 쫓아온 대원들은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엄청난 이적(異蹟)에 그만 자신들을 잊은 채 환호성을 올리며 탄성을 연발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도 잠시였다. 그들의 환호성에 뒤이어 다시금 그들을 실망시키는 이적이 일어났으니 기이하게도 지금까지 만개하여 있던 백련이 대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자 금시에 눈속으로 숨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어 빛도 향기도 사라지고 따라서 지금까지 대낮처럼 밝던 주위도 순식간에 어두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니…….”
“이런!”
놀란 대원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가샤아바는 그제서야 백련이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숨어버린다는 말을 기억해 내고 대원들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키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며 즉시 엄히 대원들을 타일러 소란스러움을 무마하였으나 눈속으로 사라져간 백련은 다시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가샤아바의 설명을 듣고난 대원들도 모두 자신들의 경거망동했음을 뉘우치며 허탈감에 빠져들었으나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가샤아바는 일단 하산하기로 작정하고 대원들을 인솔하여 장막으로 돌아왔다.
고산(高山)의 한기(寒氣)가 더욱 스며드는데 백련을 발견했던 기쁨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신들의 경거망동에 대한 후회스러움은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었다.
그로부터 칠일칠야를 서로 교대하여 가며 동굴 주위를 맴돌며 다시 백련이 피어나기를 고대하였지만 한번 사라져버린 백련은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내 가샤아바는 다시는 백련을 볼 수 없음을 감지하고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의(無意)한 것이라 판단하고 귀국하여 복명할 것을 결심하였다.
기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백련을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탐색하는 것이었으므로 백련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일단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생각하고 진영을 정비하여 곧 귀국길에 올랐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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