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원효(성전)-211-종조10

근와(槿瓦) 2016. 8. 8. 01:47

원효(성전)-211-종조1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 軍國機務


우리나라 불교 특색중의 하나로서 승려의 參政과 또는 護國 · 救國의 활동이 있다. 高僧國師 · 王師로 모시고 軍國機務를 자문하였고 승려로 百高座 仁王法會를 열어 鎭護國家를 기원하였으며, 護國을 위한 建塔佛事(黃龍寺 九層塔 )등이며 圓光法師請兵疏를 낸 것과 高句麗僧 道琳百濟僧 道琛 등의 군사활동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시대의 승려는 · 分立된 경위가 아니기 때문에 高僧일수록 호국 · 구국의 활동이 더욱 컸던 것이다.


원효대사도 그 一例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한 군국기무에 참여하여 중요한 활동을 한 것을 잘 알 수 있다. 稱號上誓幢和尙이라고 함은 당시 軍職 九誓幢의 하나이다. 三國史記 金庾信傳에 의하면 太宗二年(西紀六五五)· 合力하여 고구려를 侵伐하게 되었다. 唐將 蘇定方은 평양부근에 이르러서 신라에 군량을 청구하였다. 김유신은 軍糧二萬斛을 가지고 군병을 이끌고 고구려국경에 들어가 唐軍과 만났다. 먼저 然期 · 兵川 등을 唐軍中에 보내어 會期를 약속하게 하였는데, 때마침 적군이 뒤쫓으므로 소정방은 그 使者에게 종이에 그림 그린 鸞鳥와 글씨로 犢字를 써서 회답하였다. 庾信은 이것을 받고 군사에 물어도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을 원효성사에게 묻게 했다. 聖師

속히 돌아가라는 뜻(速還)이니 빨리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것은書犢切音法으로()이요畵鸞()이 된다. 이것은 군사기밀이므로 중간에 누설될까 염려하여 암호로 한 것이다. 이것을 聖師는 능히 풀어냈다. 그 말을 들은 庾信은 군사에 명하여빨리 浿江을 건너게 하되 뒤에 건너는 자는 버리라하였다. 군사들이 다투어 건넌 뒤에 고구려군이 追到하여 건너지 못한 자는 擊殺되었다. 이 때에 일각이라도 늦었으면 敵軍에 몰살될 것을 구출한 것은 聖師智慧이었다. 聖師의 은밀한 공덕은 이런 곳에도 숨어흘렀다.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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