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세존의 귀성(歸城) 18

근와(槿瓦) 2014. 5. 3. 00:54

세존의 귀성(歸城) 18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이 성도하셨다는 소식은 널리 인도의 여러 나라에 알려졌다. 이 소식을 가장 기뻐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아버지인 정반왕이었다. 일찌기 6년 고행을 하던 중 태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왕은 이것을 믿지 않았다. 지금 세존은 득도하여 부처가 되었다. 왕은 하루 빨리 세존을 만나기를 원하였고, 왕의 사자는 몇 사람이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 세존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수도하는데 급급하여 그 사명을 잊고 부왕의 간절한 마음을 세존께 전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정반왕은 드디어 가루타이(迦留陀夷)를 재촉하여 남쪽 유순(由旬)이나 되는 왕사성으로 내려 보냈다. 가루타이는 세존과 같은 해에 출생한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왕에게 여쭙기를,

"왕이 만일 신에게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사명을 다할 것입니다."

왕은 이를 허락하되 다만 세존을 가비라 성으로 돌아오게 하도록 명하였다. 가루타이는 세존을 뵙고 법을 들은 후 출가하여 각을 얻었는데, 섣달 보름날 세존을 뵙고 노래로써 세존의 뜻을 움직이려 했다.

세존이시여, 나무들은 바야흐로 단풍으로 물들고, 과일은 바로 익으려 하고 시든 잎은 흩어져 불꽃처럼 번쩍이는데,

더위, 추위가 알맞아 지금은 놀기 좋은 절기라, 얼마나 즐거운 계절이련가.

고국 사람들이 세존을 우러러 받들 수 있도록 서쪽으로 향하시어 로오히니의 강을 건너소서.

원이 있어 밭을 갈고 원이 있어 씨앗을 뿌리는 것이며 보물을 가져올 희망을 가지고 상인은 바다에 들어가는 관습이라. 그 때문에 여기 머물은 나의 소원, 어찌 이루어지지 않으랴.

세존은 이 노래를 듣고 가족을 구원할 때가 온 것을 아시자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북쪽 60유순이나 되는 고향으로 향하셨다. 세존은 하루에 1유순씩 행정을 정하자 가루타이는 공중으로 날아 정반왕이 있는 곳에 이르러 세존의 행정(行程)을 알렸다.

가비라 성의 석가족은 세존을 맞을 준비에 바빴는데, 먼저 니구로다 수원을 깨끗이 치워 세존과 제자들을 그 동산으로 모셨다. 원래 석가족에게는 교만한 가풍이 있어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켰는데, 이때에도 원래부터의 천성인 교만에 사로잡혀 세존이 자리에 좌정하셔도 일족의 장로들은 배례하기를 즐겨 하지 않았다. '교답마는 우리들보다 젊으니 그에게 예배할 것까지는 없다. 젊은 자들은 나와서 배례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리들은 뒤쪽에 있으리라.' 세존은 그들의 마음 속을 알아차리고 그 교만한 마음을 꺾으려고 하늘에 올라가 신통을 나타내셨다. 정반왕은 이 기적을 보고 세존의 발 밑에 예배하니 나머지 석가족들도 또한 머리를 숙여 공손히 세존께 절을 올렸다. 이에 이르러 세존은 공중에서 내려와 자리에 나아가 친족들에게 둘러싸여 베삼다라(參多羅)의 이야기를 하셨다.

"옛날 시비왕(尸毘王)이 시비국의 제트다라 시에 군림하고 있었다. 왕에게는 산사야(刪耶)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므로 마츠다왕의 딸인 프사티이에게 장가들게 하고 왕국을 물려 주었다.

프사티이는 산사야 대왕의 총애하는 바가 되어 많은 후비들 중에서 제일 왕비가 되었다. 그때 제석천이 생각하기를, '이것으로 프사티이의 전생에 있어 내가 약속한 열 가지 원사(願事) 가운데 아홉 가지는 성취되었다. 이번에는 아들의 약속을 이행해야겠다.' 제석천은 도리천에서 천계의 수명이 장차 끝나려 하는 보살에게 접근하여 인세에 내려가기를 권했다.

'존자여, 인계에 내려가 산사야왕의 왕비 프사티이의 태에 들도록 하라'고 했다.

왕비는 임신과 함께 보시할 마음이 동하여 성의 네 문과 거리의 중앙과 후궁의 성문 밖 여섯 곳에 대시장(大施場)을 만들어 매일 60만 금을 보시하고 싶다고 원했으며, 점장이는 또 '보시에 마음을 기울인 지칠줄 모르는 보살이 왕후의 태중에 드셨다'고 말하였으므로, 대왕도 기뻐하여 왕비의 소원대로 큰 보시를 행하였다.

열달 후 왕비는 대왕의 허락을 얻어 수레를 시중으로 몰아 서민들이 사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산기가 있어 급히 지은 산실에 들어가 보살을 낳았다. 베에사(서민의 거리)에서 탄생했다고 하여 베삼다라라고 이름하였다.

왕자는 태어난 후 어머니에게 청하여 천금을 보시케 하고 그후 소유 재물을 기울여 사람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했다. 8세 때에 의자에 기대여 생각하기를 '내가 보시하는 것은 모두 밖에서 들여온 것이다. 나는 그것에 만족할 수 없다. 나는 내 자신의 무언가를 보시해야 한다. 만일 누구든지 내 심장을 갖고자 원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꺼내 주리라. 눈을 원하는 자에게는 눈을, 살을 원하는 자에게는 살이라도 베어 주겠다.'고 했다. 이때 땅이 진동하고 산은 기울어지고 하늘과 바다에는 서상이 나타나 신들은 그 지원(志願)을 찬양하였다.

16세 때에 여러 가지 기예에 통달했으며 마츠다 왕가의 딸 마츠데이에게 장가들고 태자의 자리에 나아가 하루에 60만 금씩을 보시하였다. 그후 얼마 안 있어 왕손이 탄생했는데 사리(梨)라고 이름하였으며 이어서 한하사리(漢訶梨)라는 따님이 탄생하였다.

베삼다라는 자기의 탄생과 함께 출생한「파차야」라고 이름한 백상(白象)을 타고 매일 여섯 보시장을 돌아보았다. 이 흰 코끼리는 불가사의한 덕이 있었는데 그 발자국이 찍힌 땅에는 마음대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었다. 그때 마침 카링가의 나라에 가뭄이 계속되어 기근이 일어나 사람들은 굶주림과 도둑 때문에 고통을 받아 괴로운 나머지 왕궁에 몰려와서 왕을 원망하였다. 왕은 계(戒)를 지키고 보시를 해서 그 공력에 의해 비를 내리게 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시민의 권고를 받아들여 바라문을 파견하여 베삼다라에서 흰 코끼리를 청하게 했다. 왕명을 받은 바라문들은 일부러 티끌을 뒤집어쓰고 진흙을 바르고는 먼 여행을 거듭한 양 꾸미고 제트다라 시에 들어가 보름날 성의 남문에서 태자를 뵙고 시비국을 번영케하는 보물, 세상을 구원하는 흰 코기리를 카링가의 나라에 보내 달라고 원했다.

태자는 '나 자신도 보시하려는데 항차 나 이외의 것이란 쉬운 일이다'라고 즉석에서 백상의 등에서 내려 많은 재보와 함께 이것을 그대로 바라문에게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의 놀라움과 분노는 대단하여 '우리들은 망한다. 우리들은 망한다'고 외치면서 태자를 비난하자 백상에 탔던 바라문들은 바삐 성을 도망쳐 나갔는데 시민의 분노는 소요로 화하여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민중의 격렬한 요구는 드디어 왕을 움직여 태자를 왕카의 산에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태자는 하기 어려운 보시를 했으므로 마음은 즐거워 추방된 것도 개의치 않고 이튿날 비(妃)인 마츠데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히말라야의 산 속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마츠데이 비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헤어지기를 거절했다.

숲의 무성함과 같이 우리 아이들 모습도 번영하여 맑은 노래 소리에 웃음지으리.

사슴도 모여 들고 공작도 춤추는 꽃 피는 숲에 코끼리는 떼지어 있고 새벽에 긷는 맑은 청수 떠놓고 긴나라(緊那羅)는 노래한다. 비록 도읍을 버렸다 해도 아이들이 있는 곳은 나의 집, 깊은 산중일지라도 님과 함께 있으리.

베삼다라가 비를 동반할 것을 허락 받고서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사두(四頭) 마차에 두 아이를 태우고 산길을 향하여 나그네 길에 올랐다. 도중에 어떤 바라문이 원하는 대로 그에게 말과 수레를 준 후, 비에게는 공주의 손을 잡게 하고 자신은 왕자를 업고서 길을 재촉하여 왕카의 산에 들어갔다. 산에는 독사와 맹수 등이 많았으나 모두 태자의 덕을 사모하여 서로 화목하니, 태자의 일가는 7개월 동안을 무사히 보냈다.

그때 카링가의 나라에 트시니비타라는 바라문 마을이 있었는데, 슈우바카라고 하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부탁으로 한 사람의 몸종을 사려고 했지만 돈이 없었으므로 베삼다라의 보시하는 마음을 이용하려고 먼 나그네 길을 계속하였다. 마침 비가 왕카의 산에 올라 나무 열매를 줍기 위해 집을 비우고 있음을 알고 태자 앞에 나아가 '저 큰 강물은 언제나 목마른 자의 요구를 채워주듯이 존자는 반드시 나에게 두 아이를 주시겠지요'라고 말했다. 태자는 도망쳐 숨으려는 두 아이를 붙잡아 바라문에게 주었다. '자리야, 칸하야, 숨지 말라. 이 바라문과 함께 산을 내려가 그의 시중을 들라. 나로 하여금 각의 언덕에 이르는 행을 원만히 하여 나를 위해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배가 되어 달라. 아아, 자식은 귀엽다. 그러나 각은 아들의 사랑보다 백, 천, 억 배인 것이다.' 태자는 이 말을 하고는 무정하게도 등덩굴에 묶여서 무심하게도 떠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바라문은 아이들을 재촉하면서 마구 채찍질했다. 살가죽은 터지고 피는 흘러서 그들은 몇번씩이나 비틀거렸다. 문득 바라문이 돌에 걸려서 넘어지자 묶은 끈이 아이들의 보드라운 몸에서 풀렸다. 그들은 정신 없이 울면서 태자의 곁으로 달려 돌아와 그의 두 다리를 붙들고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참아 주십사'하고 애원했다. 태자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만물의 운명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어머닙입니다. 어머님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실 것입니다. 칸하를 잃은 슬픔을 안고, 눈물은 언제까지나 강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바라문은 이 광경을 보고도 더욱 무정하고 거칠게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 어머니, 안녕히. 소나 코끼리나 말도 우리들의 모든 것은 어머님의 편이기를, 그것들이나마 어머니의 슬픔을 덜어드려라.' 이처럼 울부짖으면서 아이들은 끌려갔다. 태자의 가슴은 열이 뿜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 참지 못하고 오두막집에 들어가 울었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검을 들고 바라문을 뒤따라가 죽이려고 했으나 태자의 지혜는 정을 억눌렀다. 바라문은 두 아이들을 몰아 산을 내려오는데 애를 먹었다. 자리는 또 한번 포박을 빠져 나와 아버지에게로 달려왔다. 겨우「자리」를 데리고 오니 누이동생「칸하」는 비틀거리면서 달려가 아버지의 다리에 매달렸다. '아버지여, 제발, 제발, 저 사람이 저를 때립니다. 바라문이 아니고 악귀입니다. 아버지, 살려 주세요.' 태자의 마음은 동요했고 눈에서는 눈물대신 피가 스며 나왔다. '이 고통은 모름지기 갈애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랑을 버리고 사심(捨心)을 얻어야만 한다.' 지혜의 빛에 의해서 태자는 허덕임을 꾹 참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비인 마츠데이는 산 속 깊은 곳에서 나무 열매를 줍고 나무 뿌리를 캐 가지고 저녁녘에 오두막집으로 돌아 왔으나 두 아이가 보이지 않으므로, 지난 밤의 무서운 꿈을 생각하여 미친 듯이 뛰어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찾았다. 태자는 잠자코 있으면서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찾고 또 찾아 미친 듯이 찾다가 새벽에 오두막집에 돌아와 그대로 실신했는데, 태자의 간호로 겨우 숨을 되돌렸다.

이 처참한 보시의 대행(大行)은 제석천을 놀라게 했다. 하늘은 태자의 뜻을 시험하기 위해 바라문의 모습을 하고 태자비를 달라고 청했다. '어제 두 아이를 주었는데 지금 또 어떻게 아내를 줄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천금의 보자기를 내던지는 것처럼 조금도 집착하지 않고 병을 들어 바라문의 손에 물을 붓고서 그대로 아내를 내 주었다. 태자비는 성숙하게 그의 분부를 따랐다. 이것도 모두가 도의 성취를 위해서였다. 제석천은 태자의 뜻과 태자비의 절조에 감동하여 즉시 신의 모습을 나타내어 태자비를 태자에게 되돌려 주었다. 자리와 칸하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간 바라문도 신에게 이끌려, 카링가에 갈 예정이었던 것이 제트타라 시로 돌아왔다. 두 아이는 조부의 손에 들어가고, 태자와 태자비는 또한 맞아들여서 나라에서는 더욱 큰 보시의 모임이 행해졌다."

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석가족은 매우 기뻐하며 숲을 떠나 돌아왔으나 누구 한 사람도 이튿날 식사에 세존을 초대한 사람은 없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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