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사리불(舍利弗)과 목련(目連) 14

근와(槿瓦) 2014. 4. 25. 00:02

사리불(舍利弗)과 목련(目連) 14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왕사성의 동북에서 얼마 멀지 않은 나라타(那羅陀)의 부자집에 우바제수(優波帝須)라 불리는 젊은이가 있었다. 이웃 마을의 구율타(俱律陀)와 친히 사귀어 서로의 뜻을 털어 놓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부근의 산제(山祭)에 들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양을 보고 역겨운 마음이 일어나, 조용한 곳에 가서 산기슭의 왕사성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었다. '저 소란, 저 군중, 순간의 꿈을 탐하여 환락에 여념이 없는 저 군중도 백년을 지낸 후면 누가 살아 남을 것인가. 신의 악사인 건달바(乾婆)가 연주하는 음악에 심취하고 있는 동안에도 인간의 슬픔은 가차없이 찾아 온다. 저 멀리 보이는 대도시도 언젠가는 멸망하는 때가 온다. 멸망하는 자가 멸망하는 자를 구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한 두 사람은 드디어 서로 이끌고 출가하여 왕사성에 들어가, 당시 유명한 수행자의 한 사람이었던 산사야(山耶)의 제자가 되었다.

 

그때 산사야에게는 2백 50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이미 스승과 같은 정도에 이른 우바제수와 구율타는 제자 중의 상석으로서 모든 제자들의 섬김을 받으면서 열심히 도를 구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누구든지 불사의 각에 이른 사람은 곧 이를 다른 한 사람에게 알린다'고 하는 굳은 약속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아설시(阿說示)라는 부처의 제자가 왕사성에 탁발을 나갔다. 그 위의가 단정함은 마침 지l나가던 우바제수의 마음을 끌었다. '아아, 얼마나 기품이 있는 모습인가. 세상에 만일 각을 체득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출가자는 확실히 그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우바제수는 아설시에게로 다가가서 도를 물으려 하다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탁발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설시의 뒤를 따랐다. 이설시가 탁발을 끝내고 거리를 떠나자 우바제수는 나아가서 물었다.

"벗이여, 당신의 몸은 진실로 고요함에 충만하고 청결하여 흐림이 없다.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벗이여, 지금 석가의 일족에서 출가한 위대한 출가자가 있습니다. 나는 그 세존의 가르침을 받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스승은 어떤 것을 설하고 계십니까?"

"저는 그 교에 새로 들어온 자이므로 그것을 자세히 설할 수는 없으나, 요약해서 말하면 법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인연에 의해 멸한다는 것입니다."

우바제수는 그 간단한 가르침을 듣고 '생자는 필멸이다'라는 도리를 깨닫고 전에 약속했던 구율타에게 그날 일어났던 일을 말하고 또 2백 50명의 친구들에게도 이 일을 알렸다. 이에 그들도 두 사람을 따라 세존의 도를 닦겠다고 앙청했다. 두 사람은 산사야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스승의 만류를 뿌리치며 2백 50명을 거느리고 세존이 계시는 죽림원으로 갔다.

 

세존은 멀리서 그들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제자들에게 고하셨다.

"제자들이여, 여기에 두 사람의 친구가 오고 있다. 그들은 나의 대제자(大弟子)가 될 것이다."

얼마 후에 이 두 사람은 세존의 제자가 되었으며, 제자 중의 상좌(上座)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 이후 우바제수는 사리불이라고 불렀으나 구율타는 목련(目連)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고참 제자들 사이에서는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불평이 일어났다. 세존은 이것을 알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사리불과 목련을 상좌의 제자로 삼은 것은 편애해서 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전생의 선근(善根)과 지원(志願)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무상의 열반을 지향하여 출가한 자가 지위의 고하를 다투는 것은 걸맞지 않는 일이다. 스스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한눈도 팔지 말고 일심으로 정진해야만 한다."

이리하여 칠불통계(七佛通誡)의 게(偈)를 설하셨다.

 

모든 악을 짓지 말라. 많은 선을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다.

 

사리불과 목련이 출가한 이후 마갈타의 유명한 가문의 자제들은 잇달아 세존의 제자가 되었다. 때문에 '교답마는 어버이로 하여금 아들을 잃게 하고, 아내로 하여금 남편을 잃게 하고, 한 집안의 계사(繼嗣)를 끊게 하는 자이다'라는 비난이 일어났다. '천 명의 불을 만드는 교도들이 출가했고, 2백 50명의 고명한 산사야의 제자들이 출가했으며, 마갈타의 유명한 가문의 자제가 출가했다. 이 다음에는 누구를 끌어 들일 것인가'라고 쑥덕거리며, 제자들 중에서는 조소하는 노래를 부르는 자까지 나타났다.

 

마갈타 산의 도읍에 위대한 출가자가 나타났도다.

산사야의 제자를 끌어들이고 다음은 누구를 뺏아 가려나.

 

제자들은 이 일을 세존께 말씀드렸더니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이 소리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이레 후에는 없어질 것이다. 제자들이여, 만일 거리에 나가 이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좋다."

 

바른 법으로서 부처님은 인도하도다. 그러니 사실상 시기하는 화살쯤이 무엇이란 말이냐.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 드디어 비웃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왕사성의 동북에 있는 영취산의 돈굴동(豚洞)에 사는 사리불의 숙부인 장조 범사(長蚤梵士)가 조카의 선생님을 뵈려고 세존께로 찾아 왔다.

"세존이시여, 나는 일체를 인정치 않는다는 주의입니다."

"범사여, 일체를 인정치 않는다면 그대는 인정치 않는다는 주의도 인정치 않을 것이다."

"그대로입니다. 만일 인정치 않는다는 주의를 인정하면 일체를 인정하는 것이 될 터이니까요."

"범사여, 그대와 같이 잘못을 보고 있으면서 그 잘못된 주의를 버리지 않는 자가 많고, 그 주의를 떠나는 자도 적다. 세간에는 일체를 인정한다는 자도 있고 일체를 인정치 않는다는 자도 있으며, 혹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어떤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자도 있다. 이러한 견해 가운데 대체로 일체를 인정한다는 주의는 탐욕과 계박()과 집착에 가깝고, 일체를 인정치 않는다는 주의는 그것과 먼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러한 주의에 강하게 집착하면 적이 나타나 싸우게 되며, 장애가 생기고 망집이 일어난다. 지혜 있는 자는 이를 알아 그 무기를 버리는 것이다.

범사여, 부모로부터 나서 음식에 의해 유지되는 육체는 무상하여 무너지는 것, 괴로움, 무아, 허무한 것이다. 이 도리를 보고 신체에 대한 욕과 집착을 여의어야 한다. 또 우리들의 감각에는 苦와 樂과 不苦 不樂의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因緣에 의해 생긴 것으로서 無常하며 滅하는 것으로 執着할 것이 못 된다. 이 교에 의한 나의 제자들은 苦와 함께 樂을, 不苦 不樂을 싫어하며 탐욕을 버리고 해탈하여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다."

 

때에 사리불은 세존의 뒤에 서서 세존께 부채로 바람을 보내고 있었는데, '세존은 실로 欲을 여의는 일에 관해 밝히고 계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번뇌를 남김없이 여읠 수 있었다. 장조 범사도「生者 必滅」이라는 법안을 얻어 일생을 삼보에 귀의하는 신자가 되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