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10-2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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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 보현행원(普賢行願)에 머물러서 행하는 바에 집착이 없는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한 까닭이며, 끝없는 몸을 변화하는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는 까닭이며, 관계하는 끝없는 경계가 청정한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의 신변(神變)을 깨달아 안 까닭이며, 한량없는 곳에 나아가는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이 등각(等覺)을 나타내시는 곳에 나아가서 잠깐도 쉼이 없는 까닭이며, 끝없는 광명자(光明者)이니 온갖 법 실상의 바다에서 끝없는 지혜 광명을 얻은 까닭이며, 끝없는 겁(劫)에서 공덕을 연설하기를 다함 없는 이들이니 변재가 청정한 까닭이며, 허공계와 같은 이들이니 지혜로 행하는 경계가 청정한 까닭이며, 의지함이 없는 이들이니 세간이 좋아하는 데를 따라 몸을 나타내어 보이는 까닭이며, 능히 가리움을 여읜 이들이니 중생계가 없는 줄을 깨달아 아는 까닭이며, 허공과 같은 지혜를 지닌 이들이니 광명의 그물을 놓아 법계에 가득한 까닭이며, 근본까지 적정(寂靜)한 이들이니 마음이 적정한 까닭이며, 일체 다라니 종성의 지혜 경계에 이른 이들이며, 삼매에 용맹스러워 두려움이 없는 이들이며, 눈으로 법계 끝을 다한 경계에 머무른 이들이며, 온갖 법에 얻을 것 없는데 머무른 이들이며, 끝없는 지혜 바다에 노니는 이들이며, 지혜의 저 언덕에 건너간 이들이며, 지혜 바라밀을 성취한 이들이며, 지혜 바라밀로 일체 세간 바라밀에 도달한 이들이며, 삼매 저 언덕에 자재를 얻은 이들이었다.
또 오백 비구니와 함께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마하 바사바제(摩訶波闍波提)비구니·구담미(瞿曇彌)비구니·안온(安穩)비구니·우발라꽃(優鉢羅華)비구니·수구담미(瘦瞿曇彌)비구니·야수타라(耶輸陀羅)비구니 등을 상수로 하였다.
또 오백 우바새와 함께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선위덕(善威德)우바새·천위덕(天威德)우바새·혜광(慧光)우바새·명칭위덕(名稱威德)우바새·월환희(月歡喜)우바새·대환희(大歡喜)우바새·라후현우바새·대현(大賢)우바새 등을 상수로 하였다.
또 오백 우바이와 함께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대광(大光)우바이·선광(善光)우바이·선신(善身)우바이·가락신(可樂身)우바이·현덕(賢德)우바이·월광(月光)우바이·광명(光明)우바이·승광(勝光)우바이·선안(善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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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를 상수로 하였다.
그리고 한량없는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이 둘러싸고 공경하였다. 부처님은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는데, 이른바 삼률의품(三律儀品)을 널리 말씀하시니 그것은 일체 여래의 율법(律法)이었다. 일체 보살행을 열어 보이며, 법계를 밝게 비추어 모든 법문에 들어가며, 능히 모든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고, 모든 삿된 이름을 꺾고, 마군을 항복받아 중생계로 하여금 마음에 환희를 얻게 하며, 유정(有情)의 번뇌 숲을 열어 밝히어 중생의 뜻을 따라 선설(宣說)하시며, 중생의 모든 감관을 열어 보이고 비추어 그들을 좋은 데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때에 존자 마하 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어깨에 가사를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중생이 부처님 법의 힘과 두려움 없는 것을 구하려면 어떤 법을 받아 지녀서 수행하며, 어떤 법을 받아 지녀서 모든 부처님 도를 길러 성숙하며, 어떤 법을 받아 지녀 모든 공덕을 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불퇴전을 얻게 되오리까?”
부처님은 마하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가섭아, 네가 이제 물은 것은 안온케 할 바가 많도다. 세간을 불쌍히 여기고 인간과 천상을 이롭게 하고 안락케 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물었으니, 너는 이제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할지니라. 나는 너를 위해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마하 가섭과 대중들은 분부를 받고 듣고 있었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중생이 부처의 지혜력과 두려움 없음을 구하려면 적은 법도 얻을 것이 있다고 하지 말 것이며, 의지하고 기대임 없이 모든 착한 뿌리[善根]를 심을지니라.
가섭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 얻을 것이 있는 자는 곧 상(想)에 집착하게 되느니라. 만일 상에 집착하면 불법 외에 유위상(有爲想)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어 곧 불법에 상의 집착함을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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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알음알이의 집착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어 곧 불법에 상의 집착함을 내며, 또한 알음알이의 집착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알음알이의 집착을 일으킬 때에는 불법 가운데 굳게 주착(住着)되어 버리지 않느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위없는 불도로 향해 나아간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불법에 상을 일으키고 '나[我]'에 집착함으로써 부지런히 닦음을 삼나니 곧 '아집(我執)'과 자주 서로 응하는 까닭에 분별과 분별하는 것을 놓아버리지 못하느니라.
이 분별과 분별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곧 해치는 바가 되나니, 만일 해치는 바가 되면 이내 그에 끌려가게 되며, 만일 끌려가게 되면 흘러 구르게 되며, 만일 흘러 구르게 되면 구멍 뚫리게 되고, 구멍 뚫리게 되면 망상이 있게 되고, 망상이 있으면 분별이 있고, 분별이 있으면 망상을 더 늘게 하고, 망상이 늘게 되면 변계(遍計)가 있고, 변계가 있으면 적정(寂靜)을 여의게 되고, 적정을 여의면 따라 좇아 가게 되고, 따라 좇아 가면 몰아남이 있고, 놀아남이 있으면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어떤 것을 잃어버림이라 하는가. 안온을 잃어버림이라 하나니, 어떤 것을 안온이라 하는가 하면, 분별 없는 것을 말함이니라. 만일 잃어버리면 늘 들어가게 되고, 늘 들어가면 친근하게 되고, 친근하면 수면(睡眠 : 번뇌)이 있게 되고, 수면이 있으면 상속(相續)이 있고, 상속이 있으면 증상속(增相續)이 있고, 증상속이 있으면 변상속(遍相續)이 있고, 변상속이 있으면 말이 미쳐 어지럽고, 말이 미쳐 어지러우면 속이 미혹하게 되고, 속이 미혹하면 근심·걱정하게 되고, 근심·걱정하면 뉘우쳐 한하게 되고, 뉘우쳐 한하면 무명(無明)에 의탁하여 변민의 손해가 되느니라.
이 가운데 적은 법도 의지하고 기댈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망상의 흐름에서 생기는 까닭에 상(想)의 얽힘이 되고, 상의 얽힘에서 상이 상속하므로 상의 얽힘이라 할지언정 실다운 것이 없느니라. 모든 탐욕·분함·성냄·어리석음이 다 허망한 변계의 분별에 분별을 더하며, 계탁(計度)에 계탁을 더할 뿐이니라. 이러므로 저 사람은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얻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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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것을 '애처(愛處)'라 이름하니 어찌하며 애처라 하는가. 정한 법 없는 것을 '애(愛)'라 하나니 애라 한 것을 '애의 처소'라 이름하느니라. 그러나 애가 있다는 것은 다만 굳은 집착으로 말미암음이니, 굳게 집착할 때에는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애착함이니,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집착을 내는 이는 곧 애의 집착, 아애(我愛)의 집착자, 중생애(衆生愛)의 집착자, 선(善과) 불선(不善)의 집착자가 되느니라.
가섭아, 이 사람은 일체 '공(空)'한 법에서 공이 아니라는 분별을 일으키어 '물(物)'이 아닌 것을 물이라 생각하느니라.
어떤 것을 물이라 하는가. 이른바 '보리'로써 물이라 하나니 만일 보리로써 물이라 한다면 저 중생의 '아상(我想)'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 아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니라. 이 가운데서 생각[想]이란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 가운데서 생각하는 자도 또한 얻지 못할 것이니, 이것을 아상은 진실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아상을 부질 없는 말[增語 : 增益語]이라 이름한 것이니라.
만일 또 살타(薩埵)를 원만히 함이 있다고 하면 곧 보리를 원만히 한다고 하리니 무엇을 보리라 하는가. 말하자면 원만하다는 것은 마치 요술과 같으니 어떤 것을 요술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대아상자(大我想者)와 대명상자(大命想者)를 말함이니라.
만일 또 생각으로써 생각에 의지한다는 자는 곧 생각 아닌 것으로 생각 아닌 데 의지한다는 것과 같다. 만일 생각 아닌 것으로써 생각 아닌 데 의지한다면 곧 생각이 돌았기 때문에 돌았다는 것과 같다. 만일 돌았기 때문에 돌았다면 곧 일부러 괴로움을 만들어서 괴로움에 따라가는 것과 같다. 만일 괴로움을 만들어 괴로움에 따라간다면, 모든 여래가 다 미쳐 떠들며 돌아 다니는 자라고 말하느니라. 어떤 것을 미쳐 떠들며 돌아 다니는 자라 하는가. 쓸데없이 뜻을 일으킴을 말함이니라. 만일 쓸데없이 뜻을 일으키면 곧 잘난 체하고 잘난 체하면 곧 쓸데없는 언설(言說)이 있고, 만일 언설이 있으면 곧 부질없는 말[增說]이 있고, 부질없는 말이 있으면 여래는 이것을 말쟁이[言說者]며, 말품팔이[敎授者]며, 말만 지닌 자[所持者]라고 말하느니라. 이러므로 모든 법이 다 뜻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생장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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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저 공중에 구름 덩어리가 일어나는 것과 같아서 사방(四方)·사유(四維)·상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여래를 실다운 말을 하는 자(實語者)라고 하느니라. 이 구름 덩어리가 시방(十方)에서 온 것이 아닌 줄 알고 사실과 같이 말하며, 그 뜻대로 말하며, 이치에 맞도록 말하느니라.
구름 덩어리라 함은 덩어리가 아니언만 일부러 덩어리라고 이름한 것이니 어찌하여 구름 덩어리라 하는가. 그것은 본래 각기 다른 부분이 모여 이룩된 형상인 까닭이니라. 어떤 것이 갖가지 다른 형상인가. 그것은 갖가지 형상이 한데 연결되어 큰 덩어리로 나타났으므로 그 가운데 작고 큰 모양을 분별할 수 없느니라. 네가 저 구름 덩어리를 보아라. 광대한 모양[廣大相]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광대한 모양이 아니니라. 만일 생각이 없으면 다만 저 광대한 모양이라고 하는 것도 실로 구름 덩어리가 없는 것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같이 그늘진 곳에 나아가 앉겠는가.' 슬기로운 이는 말하기를 '그늘이란 형상 없는 것이니 어떻게 가서 앉겠느냐?' 그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그늘의 형상을 말한 것이 아니요, 다만 이 그늘진 곳이라고 말하였노라.' 그때에 슬기로운 이가 다시 말하기를 '네가 말한 그늘이란 것이 곧 그늘이 아니니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네가 저 사람을 보아라. 오히려 이렇게 세속을 따라서 능히 깨우쳐 주기를 이와 같이 하도다. 이와 같이 가섭아, 여래는 여실히 모든 법의 진실 이성(眞實理性)을 깨달아 알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獅子吼)를 하느니라.
가섭아, 여래가 법에 수순하여 머무르기를 즐겨하지만 상(想)에 따르지는 않느니라. 모든 중생이 지닌 아상은 여래에 있어서는 이것이 제일의(第一義)가 되나니, 그 까닭은 여래는 이제 이미 저 생각을 알고 일체 중생의 생각이 곧 생각 아님을 아느니라. 이것이 가장 그윽한 비밀의 말이니라.
혹 어리석은 사람이 이 이치를 등지고 여래와 다투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상이 나와 다툴지언정 내가 세상과 다투는 것은 아니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세상이라 하느냐? 중생을 말함이니, 왜 중생을 세상이라 하는가. 여래가 이러한 세간을 알기 때문에 중생을 세상이라 하느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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