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전)-110-교리문7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7절 거룩한 과보
「이러한 사람은 두가지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비록 집을 떠나지 않았으나 재가(在家)에 머물지 않으며 비록 법복(法服)이 없고「파라제목차(波羅提木叉=別解脫戒)」를 갖추지 아니하며 포살(布薩)에 들지 않더라도 능히 그 마음으로 함이 없이 마음대로 하되 성인의 도과(道果)를 얻어서「二乘」에 머물지 아니하고「보살도」에 들어간 뒤에는「보살지」가 차차「불보리」를 이루느니라.」
「매우 희유하옵니다. 이러한 사람은 비록 집을 나지 않았으나 집을 나지 않음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열반」의 궁전에 들어가서 여래의 옷을 입고「보리좌」에 앉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사문(沙門)」이라도 그를 마땅히 공경·공양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다. 왜냐하면「열반」의 궁전에 들어가서 마음으로「三界」를 뛰어나며 여래의 옷을 입고 법이 공한 곳에 들어가「보리좌」에 앉아서 바른 깨달음의 첫 자리에 올랐으니 그런 사람은 마음으로「두가지 나(二我)」를 뛰어났거늘 하물며「사문」으로서 공경 공양치 않겠느냐.」
「그러한「첫자리」와 및 공바다(空海)는「二乘」사람들은 보지 못하리이다.」
「그렇다. 저 二乘 사람은「삼매」에 탐착하여「삼매몸」을 얻어서 저 공바다 첫 자리에 드는 것은 마치 주정뱅이가 깜박 취하여 깨지 못하고(내지) 두어 겁을 지나도 오히려 깨지 못하다가 술기운이 다 없어져야 비로소 깨어서 이행(利己)을 닦은 뒤에「부처몸」을 얻는 것과 같으니라. 그 사람은「일천제(一闡提)」를 버리고「六行」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자리에서 한 생각의 깨끗한 마음이 뚜렷이 명백하여「금강지혜」의 힘과 물러남이 없는 자리에서 중생을 제도할 때에 자비가 다함이 없느니라.」
대력보살은 사뢰었다.
「그런 사람은 계율을 지키지 않으리니 저 계율을 지키는「사문」을 공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계율을 설명한다는 이(二乘)는 제 잘난체하는 까닭이며 심식바다의 파도가 이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 보살의 마음자리는「八識」바다가 개이고「九識」의 흐름이 청정하여 바람도 능히 그것을 움직이지 못하고 파랑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계율의 체성은 허공과 같아서 그것을 지닌다는 것은 도리어 헤매고 도는 일이니라. 그런 사람은「七識·六識」이 나지 않고「식」으로부터 일어나는 분별(諸集)이 사라져 고요하며「세부처(三佛=마음·중생·여래갈무리)」를 여의지 아니하고「보리심」을 내느니라. 그래서 세가지 형상없는 가운데「一心法」을 따라 그윽한 이치에 들어가서,「三寶」를 깊이 공경하고 위의를 잃지 아니하기 때문에 저「사문」에게 공경치 않음이 없느니라. 그 보살은 세간의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법에 머물지 아니하고「삼공(三空)」의 부락에 들어가서「삼유(三有)」의 마음을 없애느니라.」
대력보살은 말했다.
「그런 보살은 과보 공덕의 구족한 부처와「여래장」부처와 등상불 등 이러한 부처님 앞에서「보리심」을 내어「세가지 계(三聚戒)」에 들어가서 그 상(相)에 머물지 아니하며「三有」의 마음을 없애되 공적한 자리에 머물지 아니하며 대중을 버리지 아니하고 고르지 못한 땅(중생계)에 들어가는 일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원효(元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효(성전)-112-교리문81 (0) | 2016.05.03 |
---|---|
원효(성전)-111-교리문80 (0) | 2016.05.02 |
원효(성전)-109-교리문78 (0) | 2016.04.30 |
원효(성전)-108-교리문77 (0) | 2016.04.29 |
원효(성전)-107-교리문76 (0) | 2016.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