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전)-77-교리문4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 여러 가지「깨달음」의 뜻
그 뜻을 다시 말하자면 만일 범부가 먼저 일어난 나쁜 생각을 깨달아 알고 능히 다음 생각을 그치어 일어나지 않게 하면 비록 그것을「깨달음」이라고는 하지마는 그것은 아직「깨닫지 못함」이다.
만일「二乘」의 지혜로서나 처음 발심한 보살들이 생각이 달라진 모습(異相)을 깨닫고 생각에 다른 모습이 없이 머트러운 분별의 집착상을 놓아버리면 그것은「비슷한 깨달음(相似覺)」이라 한다.
만일「법의 몸」을 본 보살로서「생각 멈춰진 모습(住相)」을 깨닫고서 생각에 멈추었다는 모습이 없이 분별심 가운데 머트러운 생각을 여의면 그것은「부분의 깨달음(隨分覺)」이라 한다.
만일「보살지(菩薩地)」가 끝나고 방편이 구족하여 한 생각이 서로 응하여 마음이 처음 일어나던 자리를 깨닫고 마음에 처음이란 모습(初相=生相)도 없이 아주 가는 생각을 멀리 여읨으로써 심성을 사무쳐 보아서 마음이 곧 항상 머무르면 그것은「마지막 깨달음(究竟覺)」이라 한다.
그러므로 경에서「만일 중생이「無念」을 관하면 곧「부처의 지혜(佛智)」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또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처음 일어나는 모습을 알 수 없고 그 처음 모습을 안다는 것도 곧 생각 없는(無念) 경계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을「깨달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본래부터 생각생각이 서로 이어 일찍이 생각을 여의지 못하므로「시작한 곳 없는(無始) 무명(無明)」이라 하느니라.
만일「무념」을 얻으면 곧 마음의 나고·머물고·달라지고·사라지는(生·住·異·滅)모습이「무념」과 꼭 같은 줄을 아는 까닭에 실로「처음 깨달음」이란 다른 모습이 없나니 네가지 모습이 함께 있지만 다 자체가 없어 그 바탕이 본래 평등하여 하나의「깨달음」인 까닭이다.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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