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158)-145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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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버림[捨]과 기억[念]이 청정한 제4선(第四禪)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모든 생각[想]을 건너(이 부분에 대한 원문은 “도일체상(度一切想)”으로 되어 있는데, “도일체색상(度一切色想)”이 되어야 맞다. 따라서 “모든 색(色)에 대한 생각[想]을 건”으로 해석해야 옳다.) 대상이 있다는 생각[有對想]을 멸해서 별다른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가이없는 허공처(虛空處)에 들어가고, 가이없는 허공처를 건너 가이없는 식처(識處)에 들어가고, 가이없는 식처를 건너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고, 무소유처를 건너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가고, 비상비비상처를 건너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드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초선(初禪)에 머무는 자는 음성(音聲)의 자극을 멸하고, 제2선에 머무는 자는 각(覺)과 관(觀)의 자극을 멸하고, 제3선에 머무는 자는 기쁨[喜]의 자극을 멸하고, 제4선에 머무는 자는 드나드는 숨[出入息]의 자극을 멸하고, 가이없는 허공처에 머무는 자는 색의 자극을 멸하고, 가이없는 식처에 머무는 자는 허공의 자극을 멸하고, 무소유처에 머무는 자는 식의 자극을 멸하고, 비상비비상처에 머무는 자는 무소유처의 자극을 멸하고, 멸수상정에 머무는 자는 느낌[受]과 생각[想]의 자극을 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몸의 행이 의지하게 되고 입의 행이 의지하게 되고 뜻의 행이 의지하게 된다고 하느니라.
8해탈(解脫)의 선사(禪士)는 멸진정(滅盡定)을 얻어서 저 언덕에 이르며, 아라한은 이곳을 의지하여 4념처(念處)와 4정근(正勤)과 4여의족(如意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분(覺分)과 8성도분(聖道分)과 3해탈문(解脫門)과 4무애변(無礙辨)을 얻고, 또 이곳을 의지하여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얻느니라. 이는 보살의 행이 청정 평등하지 않으면 4섭사(攝事)와 4범주(梵住)와 3불호(不護)와 4무소외(無所畏)과 10력(力)과 18불공법(不共法)과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성문·연각·여래가 다 함께하는 선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먼저 연각승(緣覺乘)을 닦고 물러나서 성문승(聲聞乘)에 들어가 성문의 행을 행한다면, 이 사람은 초선에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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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터 나아가 멸진정에 들어가기까지 이 선정에 의지하여 3탈문과 4무애변은 얻지만 4섭사와 4범주와 3불호를 얻지 못하고 나아가 일체지지(一切智智)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성문·연각·여래가 다 함께하는 선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먼저 대승을 닦고 물러나서 성문의 승에 든다면, 이 사람은 초선에 들어가면서부터 나아가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기까지 3해탈문과 4섭사와 4범주는 얻어도 3불호는 얻지 못하고 나아가 일체지지도 얻지 못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성문·연각·여래가 함께하는 선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저 연각과 여래는 함께하지만 성문과는 함께하지 않는 선정이란 어떤 것인가. 만약 어떤 중생이 오래도록 성문의 승을 닦은 뒤에 연각의 승에 들어간다면, 이 사람은 예전부터 초선을 얻지 못하다가 얻고 나서는 인연법을 구함을 사유하고, 나아가 제4선을 얻고 나서도 인연법 구함을 사유해서 공삼매와 무원(無願)삼매와 무상(無相)삼매에 들어가고, 저 삼매로써 버리고 여읨을 사유하여 무색계의 선정을 증득하고, 또 저 3해탈문으로써 멸진정에 들어가 어디서나 연각법 구하기를 사유하니, 이 사람은 인연법에서 제일의 이치와 몸·입·뜻 세 가지 행의 남김없이 멸함과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님과 멸진정을 구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연각과 여래는 함께하지만 성문과는 함께하지 않는 선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또 만약에 어떤 사람이 성문승을 배우지 않고서 연각승을 잘 배웠다면, 이 사람은 초선에 들어가서 인연법 구하기를 사유하고, 이 사람은 초선에 의지하여 저 다른 선정과 무색계의 선정을 초월해서 세 가지 행의 남김없이 멸함과 제일의제의 멸진정에 들어가니, 이것을 이름하여 연각과 여래는 함께하지만 성문과는 함께하지 않는 선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여진이여, 만약에 또 어떤 사람이 성문승과 연각승을 배우지 않고 먼저 대승을 배우고서 도로 물러나 연각승에 들어간다면, 이 사람은 초선에 들어가 그 선정 중에 인연법 구하기를 사유하고, 이와 같이 제4선의 선정 중에도 인연법 구하기를 사유하고, 또 이와 같이 4무색계의 선정과 모든 곳에서 인연법 구하기를 사유하느니라. 이처럼 세 가지 행의 남김없이 멸함과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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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의 멸진정은 3해탈문으로써 불가설(不可說)삼매를 얻나니, 그곳은 바로 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으며, 증득도 아니고 수행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이 언덕도 아니고 저 언덕도 아니며, 어둠도 아니고 밝음도 아니며, 헤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분별하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연각의 세간에 뛰어난 복밭[福田]이라 하고, 또 이것을 선정의 청정 평등한 제일의제로서 연각과 여래는 함께하지만 성문과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그곳은 모든 생사의 바다를 끊고, 지어감의 괴로움[行苦]과 덧괴로움[苦苦]과 파괴의 괴로움[壞苦]도 끊어서 불가설(不可說)의 이치를 능히 스스로 자각해 아나니, 이를 이름하여 제일의제 선정의 청정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성문이나 연각과 함께하지 않는 여래의 제일의제로서 선정의 청정 평등이란 어떤 것인가? 만약 여래가 초선에 들되 음(陰)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계(界)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입(入)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며, 땅의 경계와 물·불·바람의 경계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허공처의 경계와 식처(識處)의 경계와 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계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계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멸하는 경계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현재세와 미래세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생겨남에도 의지하지 않고 멸함에도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있음에도 의지하지 않고 없음에도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고, 의지하는 바가 없어서 의지하는 곳에도 의지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여래는 초선에 들어가서도 이와 같고, 제2선·제3선·제4선의 선정과 허공처의 경계·식처의 경계와 무소유처의 경계와 비상비비상처의 경계에서도 이와 같으니라.
여래가 멸하는 경계의 선정에 들어감은 음(陰)에 의지하지 않고서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성문이나 연각과 함께하지 않는 여래 제일의제 선정의 청정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저 성문·연각 및 일체 중생과 함께하는 여래의 선정의 청정 평등이란 어떤 것인가? 여래가 세간의 초선에 들어가고 나아가 세간의 제4선에 들어가는 것처럼, 연각·성문도 역시 세간의 초선과 나아가 제4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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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능히 들어갈 수 있느니라. 일체 중생도 겁수가 다하고자 할 때엔 역시 세간의 초선에서 나아가 제4선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뒤 나쁜 마음의 인연으로 선정 수행에서 물러나 성내고 미워하고 거칠어서 후세의 두려움을 관찰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에 대해 자비와 연민이 없이 그 피와 살을 먹는다면 3악취에 떨어지느니라.
다시 만약 여래가 세간의 초선에 들어가고 나아가 세간의 제4선에 들어갈 때에 저 모든 중생과 하늘·사람·아귀·축생·지옥의 중생들은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여래의 심(心)과 심법(心法)은 어느 곳을 다니고 어느 곳에 머무르던 간에 저 모든 중생으로부터 나아가 벌레, 개미까지도 부처님 힘의 가호 때문에 부처님의 심왕·심수 법이 초선에 머무는 걸 알고 나아가 제4선에 머무는 것도 안다.’
이것 역시 일체 중생과 함께하는 여래 선정의 평등이며, 이 선정의 평등은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경지가 아니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선정의 청정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저 지혜 그릇[智器]의 청정 평등이란 어떤 것인가? 지혜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의 지혜요, 둘째는 출세간의 지혜이니라.
어진 이들이여, 무엇이 세간의 지혜인가? 세속의 서적은 입으로 말한 것을 모으고 해석하며, 또 언어의 길인 음성으로 연설하고 문자로 모든 논설을 나타내 보이며, 혹은 글자·글귀의 이치를 쓰거나, 혹은 산(算)·수(數)·인(印)과 갖가지 고행하는 법을 실천하거나, 혹은 공교(工巧)한 일을 배우나니, 이렇게 말해진 갖가지 업을 지음은 그 구하는 바에 따라 다 성취하게 되며, 그 밖에 3세(世)의 속된 생각으로 하는 일, 즉 접촉하거나 느끼거나 상상하거나 사량(思量)하거나 생각하는 이런 것들은 일체가 열반의 그릇[涅槃器]이 아니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의 지혜 그릇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저 세간의 지혜 그릇의 평등이란 어떤 것인가? 여러 어진 이여, 세간의 지혜 그릇의 평등이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문혜(聞慧)의 지혜 그릇이 평등한 것이니라.
세간에서 보시를 행하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란 무엇인가? 여러 어진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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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기 몸이 다할 때까지 살생과 도둑질과 삿된 음행과 망령된 말과 술 마시는 따위의 방일한 짓을 그치고, 모든 중생을 인자한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구제하는 마음에 안주시킨다면 이것이 열반의 그릇이니, 여러 어진 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보시를 행하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저 세간에서 계를 지니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란 어떤 것인가? 여러 어진 이여, 만약 일체 중생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갖추고 후세의 두려움을 관찰하여서 항상 인자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이로운 마음과 원수 없는 마음과 질투 없는 마음과 거칠지 않은 마음과 이간질 하지 않는 마음과 교만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는 마음, 연민의 마음에 머문다면, 여러 어진 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계를 지니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저 세간에서 인욕하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란 무엇인가? 여러 어진 이여, 만약 중생들의 갖가지 나쁜 말과 우둔한 말과 거친 말과 더러운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듣고서도 취하지 않고, 갑자기 폭발하지 않고, 혼탁하게 변하지도 않고, 성내는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으면서 그들 중생에 대해 능히 참을 수 있다면, 여러 어진 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인욕하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만약 중생들이 내 것[我所]에 대하여 악을 짓고, 허물을 짓고, 죄를 짓고, 이익 없는 일을 짓거나, 혹은 색(色)을 헐거나, 소리·냄새·맛·접촉을 헐거나, 몸을 헐거나, 수명을 허는 것을 본다면, 이러한 중생에게는 항상 인욕을 닦을 수 있으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리라.
‘이 중생들은 무시(無始) 이래로 생사유전을 하면서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익히고 선지식을 여의어 일찍이 닦고 배우지 못하였다. 나는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나는 능히 닦고 배울 것이며, 나는 모든 즐거움을 구하리라.’
그리하여 저런 모든 중생을 보고나서도 그 행위를 취하지도 않고, 갑자기 폭발하지도 않고, 혼탁하게 변하지도 않고, 성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인욕하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여러 어진 이여, 저 세간에서 정진하는 지혜 그릇의 평등이란 무엇인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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