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153)-143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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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비구가 '나는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정하게 하지 않고도 마음의 공을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그 비구는 스스로 크게 피로하기만 할 것이다. 아난아, 비구는 어떻게 마음을 꼭 붙잡고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하는가? 비구가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에 그 몸을 모두 담그고 적시면 두루 충만해져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아난아, 마치 사람이 목욕하는 그릇에 가루비누를 담고 거기에 물을 섞어 환을 만들고 그 몸을 담그고 적시면 두루 충만해져 안팎에 골고루 빠진 곳이 없게 되는 것과 같다. 비구도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에 그 몸을 모두 담그고 적시면 두루 충만해져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되느니라. 아난아,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한다. 그는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한 뒤에는 마땅히 마음의 공(空)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마음의 공을 생각한 뒤에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마음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마음의 공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마음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바깥의 공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가 바깥 공을 생각한 뒤에도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바깥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바깥의 공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고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바깥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마음의 공과 바깥의 공을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가 안팎의 공을 생각한 뒤에도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안팎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안팎의 공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안팎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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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생각한 뒤에도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런 저런 마음을 정(定)으로 다루고 또 다루고, 익히고 또 익히며, 부드럽고 또 부드럽게 하여 좋고 유쾌하고 온화하게 하고 멀리 떠난 즐거움을 누리게 해야 한다. 만일 이런 저런 마음을 이런 저런 정으로 다루고 또 다루고, 익히고 또 익히며, 부드럽고 또 부드럽게 하여, 좋고 유쾌하고 온화하게 되고 멀리 떠난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면, 마땅히 마음의 공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마음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마음의 공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마음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마음의 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비구는 마땅히 바깥의 공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바깥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바깥의 공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바깥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바깥의 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비구는 마땅히 안팎의 공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안팎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안팎의 공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안팎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안팎의 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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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마땅히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그 비구가 이 곳에 머무르면서 만일 그 마음이 거닐고자 하면, 그 비구는 선실(禪室)에서 나와 바깥의 선실 그늘을 거닐며, 모든 근을 안에 머물게 하고 마음이 밖으로 향하지 않게 하며 뒤에도 앞의 생각을 계속해야 한다. 이와 같이 거닌 뒤 마음 속에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그 비구가 이 곳에 머물면서 만일 그 마음이 앉아서 선정에 들려고 하면, 그 비구는 거닐기를 그만두고 거니는 길 머리로 가서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야 한다. 이와 같이 앉아서 선정에 든 뒤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그 비구가 이 곳에 머물면서 만일 그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고자 하면, 그 비구는 만일 그것이 욕심 성냄 해침의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악한 생각이면 그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악한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만일 그것이 욕심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해침이 없는 세가지 착한 생각이면 그 세 가지 착한 생각을 마땅히 생각하여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뒤 마음 속에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그 비구가 이 곳에 머물면서 그 마음이 만일 무엇을 말하고자 하면, 그 비구는 만일 그 이야기가 거룩하지 않은 이야기로서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이른바 왕론(王論) 적론(賊論) 투쟁론(鬪爭論) 음식론(飮食論) 의복론(衣服論) 부인론(婦人論) 동녀론(童女論) 음녀론(淫女論) 세간론(世間論) 사도론(邪道論) 해중론(海中論)과 같은 여러 가지 축생론(畜生論)이면 논하지 말고, 만일 그 이야기가 거룩한 논으로서 이치와 서로 걸맞아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모든 음개(陰蓋)가 없는 이른바 시론(施論) 계론(戒論) 정론(定論) 혜론(慧論) 해탈론(解脫論) 해탈지견론(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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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知見論) 점손론(漸損論) 불회론(不會論) 소욕론(少欲論) 지족론(知足論) 무욕론(無欲論) 단론(斷論) 멸론(滅論) 연좌론(燕坐論) 연기론(緣起論)과 같은 사문의 이야기이면 논하여야 한다. 이렇게 논한 뒤 마음 속에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또 아난아, 즐거워할 만하고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며 애욕과 서로 걸맞는 5욕(欲)의 공덕[功德 : 오욕공덕(五欲功德)은 5욕을 구성하는 요소(要素), 혹은 5욕을 일으키는 힘을 가진 요소 또는 원인을 뜻한다.]이 있다. 그것은 눈으로 빛깔을 지각하고 귀로 소리를 지각하며, 코로 냄새를 지각하고 혀로 맛을 지각하며, 몸으로 촉감을 지각하는 것이다. 만일 비구의 마음이 거기에 이르면 그는 '이 5욕의 공덕은 욕의 공덕에 따라 내 마음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하고 관찰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이 5욕의 공덕은 앞도 없고 뒤도 없이 그 욕의 공덕을 따라 마음에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이 5욕의 공덕은 그 욕의 공덕을 따라 마음에서 활동하는 것임을 안다면, 그 비구는 이런 저런 욕의 공덕을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고 쇠해서 없어지는 것이라 관찰하며, 욕심낼 것이 없다고 관찰하고 끊어 없애야 할 것이라 관찰하며, 끊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고 관찰할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이 5욕의 공덕에 욕심이 생기고 물듦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애버릴 것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이렇게 관찰할 때, 이 5욕의 공덕에 탐욕이 있고 물듦이 있는 줄 알아 그것을 이미 끊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다시 아난아, 5성음(盛陰)이 있으니 색성음(色盛陰)과 각(覺) 상(想) 행(行) 식(識)의 성음(盛陰)이다. 이른바 비구는 '이것은 색(色)이요, 이것은 색의 원인[色集]이요, 이것은 색의 멸[色滅]이다. 각 상 행도 또한 그러하며, 이것은 식(識)이요, 이것은 식의 원인[識集]이요, 이것은 식의 멸[識滅]이다'라고 이와 같이 흥하고 쇠함을 관찰한다. 만일 이 5성음에 아만(我慢)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앤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이와 같이 관찰할 때, 5음(陰)에 아만이 이미 없어진 줄을 알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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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이 법은 한결같이 옳고 한결같이 즐거우며 한결같이 생각해야 할 것으로서, 번뇌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악마도 이르지 못하고 악도 이르지 못하며,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극심한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도 또한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방일하지 않음을 성취한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방일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모든 여래 무소착 등정각은 깨달음을 얻었고, 방일하지 않은 근(根)으로 인하여 한량없는 착한 법이 나고, 혹은 도품(道品)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니, '나도 또한 방일하지 않음을 성취하리라'고 그렇게 배워야 한다. 아난아, 믿음이 있는 제자가 무슨 까닭으로 목숨이 다하도록 세존을 따라 행하고 받들어 섬기느냐?"
존자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나옵니다.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소서. 저희들이 그것을 들으면 그 뜻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다."아난아,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해 자세히 분별해 말하리라."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아난아, 그 정경(正經)과 가영(歌詠)과 기설(記說) 때문에 믿음이 있는 제자가 목숨이 다하도록 세존을 따라 행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이 아니다. 아난아, 그런 법은 다만 저들이 오랫동안 자주 듣고 천 번이나 외워 익히며 마음으로 관찰하고 밝은 지혜로 깊이 통달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만일 그 논(論)이 이치와 상응하는 성인의 논으로서,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며 모든 음개(陰蓋)를 없애는 이른바 시론 계론 정론 혜론 해탈론 해탈지견론 점손론 불회론 소욕론 지족론 무욕론 단론 멸론 연좌론 연기론이면 이것은 바로 사문들이 논해야 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믿음이 있는 제자가 목숨이 다하도록 세존을 따라 행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아난아, 다음과 같이 하면 번잡한 스승이 되고, 번잡한 제자가 되며, 번잡.....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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