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152)-142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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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땅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고, 한량이 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無量識處想]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땅에 대한 생각도 비우고,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땅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고,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無所有處想]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비우고,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무상심정(無想心定)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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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알아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을 비우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무상심정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무상심정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으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상심정(無想心定)을 이미 행하였고, 이미 생각하였다. 이미 행하고 이미 생각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즐기지도 않고 그것을 구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탐욕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有漏]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무명의 번뇌[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아 탐욕의 번뇌를 비우고 생명의 번뇌를 비우고 무명의 번뇌를 비운다. 그러나 오직 생명이 있는 자기 몸의 6처(處)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탐욕의 번뇌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생명의 번뇌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생명이 있는 내 몸의 6처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과거의 모든 여래 무소착 등정각도 모두 이 진실과 공을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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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거꾸로 되지 않았으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다. 아난아, 미래의 모든 여래 무소착 등정각도 모두 이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을 것이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아, 지금 현재의 나 여래 무소착 등정각도 또한 이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나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나도 또한 이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나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너도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대공경(大空經) 제 5 [제 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이 사는 가유라위(迦維羅衛)에 유행하실 적에 니구류(尼拘類) 동산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가유라위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시고 오후가 되어 가라차마석정사[加羅差摩釋精舍 : 팔리본에는 Kalakhemakassa Sakkassa vihara로 되어 있다. 즉 석가족 가라차마(加羅差摩 ; Kalakhemaka)가 건립한 정사 라는 뜻이다.]로 가셨다. 그 때 가라차마석정사에는 많은 평상자리를 펴고 많은 비구들이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가라차마석정사에서 나와 다시 가라석정사[加羅釋精舍 : 팔리본에는 석가족 Ghataya의 정사로 되어 있다.]로 가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가라석정사에 있으면서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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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난은 멀리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마중을 나가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받아 들고 돌아와 자리를 펴고, 물을 길어다 부처님 발을 씻어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발을 씻으시고 가라석정사에서 존자 아난이 펴놓은 자리에 앉아 말씀하셨다."아난아, 가라차마석정사에는 많은 평상자리를 펴고 많은 비구들이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존자 아난이 아뢰었다."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가라차마석정사에는 많은 평상자리를 펴고 많은 비구들이 그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저희들이 지금 가사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비구는 떠들기를 좋아하거나 떠들기를 즐겨하거나 떠드는 자리에 모이지 않아야 하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거나 무리 짓기를 즐겨하거나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아야 하며, 무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거나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며 떠들기를 즐겨하고 떠드는 자리에 모이며, 무리 짓기를 좋아하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며, 무리를 떠나려 하지 않고 멀리 떠나 혼자 지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이른바 생명의 즐거움 거룩한 즐거움 욕심이 없는 즐거움 떠난 즐거움 쉬는 즐거움 바르게 깨닫는 즐거움 먹음이 없는 즐거움 나고 죽지 않는 즐거움 등 이러한 즐거움을 쉽게 얻으려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떠들기를 즐겨하지 않고 떠드는 자리에 모이지 않으며,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고, 무리를 떠나기를 좋아하고 항상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한다고 하자. 그는 이른바 생명의 즐거움 거룩한 즐거움 욕심이 없는 즐거움 떠나는 즐거움 쉬는 즐거움 바르게 깨닫는 즐거움 먹음이 없는 즐거움 나고 죽지 않는 즐거움 등 이러한 즐거움을 쉽게 얻으려면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아난아, 비구는 떠들기를 좋아하거나 떠들기를 즐겨하거나 떠드는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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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지 않아야 하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거나 무리 짓기를 즐겨하거나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아야 하며, 무리를 떠나기를 좋아하고,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고 떠들기를 즐겨하며 떠드는 자리에 모이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며, 무리를 떠나려 하지 않고 멀리 떠나 혼자 지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잠깐 동안의 즐거운 마음의 해탈이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해탈을 얻으려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지 않고 떠들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떠드는 자리에 모이지 않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으며, 무리 떠나기를 좋아하고 항상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한다고 하자. 그는 잠깐 동안의 즐거운 마음의 해탈이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해탈을 얻으려 하면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왜냐 하면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어떠한 색(色)도 보지 못하였다. 그 색은 무너지고 변하여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슬픔 울음 근심 괴로움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나는 이 곳이나 다른 곳에 머무르면서 바르게 깨닫고 모두 깨달았나니, 이른바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넘어서서 바깥의 허공을 관찰하였다.
아난아, 나는 그 곳에 머무른 뒤에 기쁨이 생겼다. 나는 이 기쁨을 모두 몸으로 깨닫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서 기쁨이 생기고 고요함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고 선정[定]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 선정을 전부 몸으로 깨닫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되었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이 함께 나를 찾아 오면, 나는 곧 그들을 위하여 멀리 떠나 욕심이 없음을 즐기는 이런 마음을 쓰고, 다시 그들에게 이 법을 설명하여 그들에게 권하고 그들을 돕는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공(空)을 많이 행하려 한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하여야 한다. 그는 마음을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한 뒤에 반드시 마음의 공을 생각하여야 한다. 아난아, .....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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