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

1338-52-화엄-156

근와(槿瓦) 2016. 2. 19. 01:32

1338-52-화엄-15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대방광불화엄경 제52권

우전국삼장 실차난타한역

이운허 번역

 

37. 여래출현품 [3]

5) 출현하는 경계와 행과 보리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 응공 · 정등각의 경계를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지혜로 모든 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며, 모든 삼세 경계와 모든 세계의 경계와 모든 법의 경계와 모든 중생의 경계와 진여의 차별 없는 경계와 법계의 걸림없는 경계와 실제의 그지없는 경계와 허공의 분량 없는 경계와 경계 없는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여, 모든 세간의 경계가 한량없듯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이 없으며, 모든 삼세 경계가 한량없듯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이 없으며, 내지 경계 없는 경계가 한량없듯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이 없고, 경계 없는 경계가 온갖 곳에 있는 것 아니듯이, 여래의 경계도 그와 같아서 온갖 곳에 있는 것 아닙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마음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며, 마음의 경계가 한량없고 그지없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것 같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없고 그지없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분별함으로써 이러이러하게 한량없이 나타나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마치 큰 용왕이 마음대로 비를 내리지마는, 그 비는 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듯이, 여래의 경계도 그와 같아서 이렇게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서 이렇게 한량없이 시방에 나타나지마는,

 

                                                                                                                   [1330 / 2062] 쪽

비롯하여 오는 데가 없습니다.

 

불자여, 마치 바닷물이 다 용왕의 마음으로 생기듯이, 부처님 여래의 온갖 지혜의 바다도 그와 같아서 다 여래의 과거의 큰 서원으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불자여, 온갖 지혜의 바다는 한량없고 그지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지마는, 내 이제 간략히 비유를 말하리니 그대들은 자세히 들으십시오.

 

불자여, 이 염부제에는 2천 5백 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고, 서구야니(西拘耶尼)에는 5천 강이 흘러 바다에 들어가고, 동불바제(東弗婆提)에는 7천 5백 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고, 북울단월(北鬱單越)에는 일만 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갑니다. 불자여, 이 사천하에서 이러한 2만 5천 강이 계속하여 끊이지 않고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물이 많겠습니까?”

 

대답하되 “매우 많겠나이다” 하였다.

 

“불자여, 다시 열 광명용왕이 바다에 내리는 물은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백 광명용왕이 바다에 내리는 물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대장엄용왕과 마나사용왕과 뇌진(雷震)용왕과 난다 · 발난다용왕과 무량광명용왕과 연주부단(連霔不斷)용왕과 대승(大勝)용왕과 대분신(大奮迅)용왕 등의 80억 용왕들이 바다에 내리는 비는 차례차례 앞의 것보다 또 배가 되며, 사갈라용왕의 태자 염부당(閻淨幢)이 바다에 내리는 물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됩니다.

 

불자여, 열 광명용왕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백 광명용왕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대장엄용왕과 마나사용왕과 뇌진용왕과 난다 · 발난다용왕과 무량광명용왕과 연주부단용왕과 대승용왕과 대분신용왕 등의 80억 용왕의 궁전이 각각 다르며, 그 가운데 있는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차례차례 앞의 것보다 또 배가 되며, 사갈라용왕의 태자 염부당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됩니다. 불자여, 사갈라용왕의 계속하여 바다에 내리는 물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사갈라용왕의 궁전에 물이 솟아 올라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다시 앞

 

                                                                                                                   [1331 / 2062] 쪽

의 것보다 배가 되며, 그 솟아 오르는 물은 아청 유리[紺琉離]빛으로서 솟는 때가 있으므로 바다에 조수가 때를 어기지 않습니다.

 

불자여, 이렇게 큰 바다에는 물이 한량이 없고 보배도 중생도 한량이 없고 의지한 땅덩이도 한량이 없습니다.

 

불자여, 그대의 뜻은 어떻습니까. 저 큰 바다는 한량이 없겠습니까?”

“실로 한량이 없으며 비유할 수가 없겠나이다.”

 

“불자여, 이 바다의 한량없는 것으로, 저 한량이 없는 여래의 지혜 바다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우파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다만 중생의 마음대로 비유를 하지마는, 부처의 경계는 비유도 할 수가 없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의 지혜가 한량없음을 알지니, 처음 마음낼 적부터 모든 보살의 행을 닦아 끊이지 않는 연고입니다. 마땅히 보배덩이가 한량없음을 알지니, 모든 보리분법이 세 가지 보배가 끊이지 않는 연고입니다. 마땅히 머물 바 중생이 한량없음을 알지니, 모든 배우고[學] 배울 것 없는[無學] 성문과 독각이 얻어서 사용하는[所受用] 연고입니다. 마땅히 머무는 자리가 한량없음을 알지니, 처음 환희지로부터 내지 끝까지 장애가 없는 자리[無障礙地]에 이른 보살들이 사는 데인 연고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지혜에 들어가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여래 · 응공 · 정등각의 경계를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그 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마음의 경계들이 한량없듯이

부처님의 경계도 그와 같나니

마음 경계 뜻으로부터 났듯이

부처 경계 이렇게 관찰하시오.

용왕이 본처(本處)를 떠나지 않고

마음의 위력으로 큰비 내리니

빗물이 오고 가는 곳이 없어도

 

                                                                                                                    [1332 / 2062] 쪽

용왕의 마음 따라 흡족히 젖어.

열 가지 힘 무니도 그와 같아서

오는 데도 없으며 간 데 없으나

깨끗한 맘 있으면 몸을 나투어

법계처럼 큰 것이 털구멍에 들고.

바다의 진기함이 한량없거든

중생과 땅덩이도 그와 같으며

물의 성품 평등하여 차별 없으나

그 속에 나는 것은 이익이 각각.

여래의 지혜 바다 그와 같아서

갖가지 있는 것이 한량이 없어

학(學)과 무학(無學)과 지위[地] 있는 이

그 가운데 있어서 이익 얻는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여래 · 응공 · 정등각의 행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걸림없는 행이 여래의 행임을 알아야 하며, 진여의 행이 여래의 행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여. 진여는 앞 짬[前際]에서 나지도 아니하고 뒤 짬에서 동하지도 아니하고 현재에 일어나지도 않듯이 여래의 행도 그러하여 나지도 않고 동하지 않고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불자여, 마치 법계가 한량 있는 것도 아니고 한량없는 것도 아니니, 형상이 없는 연고입니다. 여래의 행도 그와 같아서 한량 있는 것도 아니고 한량없는 것도 아니니, 형상이 없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마치 새가 허공에 날면서 백 년을 지난다 하여도 이미 지나간 곳이나 지나지 못한 곳이나 모두 측량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허공

 

                                                                                                                    [1333 / 2062] 쪽

계가 끝이 없는 연고입니다.

 

여래의 행도 그와 같아서 어떤 사람이 백천억 나유타 겁을 지내면서 분별하여 연설하였다 하여도 이미 말하였거나 말하지 못한 것을 측량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여래의 행은 끝이 없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여래 · 응공 · 정등각이 걸림없는 행에 머물러서는 머물 곳이 없지마는 일체 중생을 두루 위하여 행할 일을 보이어서 그들이 보고는 온갖 장애 되는 길을 벗어나게 합니다.

 

불자여, 마치 금시조왕(金翅鳥王)이 허공에 떠서 돌아다니면서 청정한 눈으로 바닷속 용왕들의 궁전을 살펴보고 용맹한 힘으로 좌우의 날개를 뽐내며 바닷물을 쳐서 두 쪽으로 헤치고 암용과 수용의 목숨이 다한 것을 골라서 움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래 · 응공 · 정등각인 금시조왕도 그와 같아서 걸림없는 행에 머물러 있으면서 청정한 부처 눈으로 법계 궁전 안에 있는 모든 중생을 살펴보고 만일 일찍이 선근을 심어 성숙하였거든, 여래께서 용맹한 십력을 떨치어 지(止)와 관(觀)의 두 날개로 나고 죽는 애착의 바닷물을 쳐서 두 쪽으로 헤치고 들어다가 불법 가운데 두어 온갖 허망한 생각과 희롱의 말을 끊어버리고 여래의 분별 없고 걸림없는 행에 머물게 합니다.

 

불자여, 마치 해와 달이 짝이 없이 홀로 허공에 돌면서 중생을 이익하면서도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나니, 부처님 여래도 그와 같아서 성품이 본래 고요하고 분별이 없이 모든 법계에 다니면서 중생들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불사를 쉬지 않고 지으면서도 그렇게 희롱거리로 분별하여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향하여 간다'는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한량없는 방편과 한량없는 성품과 형상으로써 여래 · 응공 · 정등각의 행하시는 행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보현보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진여는 멸하지도 나지도 않고

있는 곳도 없으며 볼 이 없으나

 

                                                                                                                    [1334 / 2062] 쪽

크게 이익하는 이의 행이 이러해

삼세를 지나가서 요량 못하고

법계는 계(界) 아니고 비계(非界)도 아니며

유량(有量)도 아니면서 무량 아니니

큰 공덕 있는 이의 행도 그러해

유량 · 무량 아님은 몸이 없는 탓.

나는 새가 억천 년 날아다녀도

허공은 예와 오늘 차별 없나니

많은 겁에 여래의 행 연설하여도

말하고 아니한 것 요량 못하네.

금시조왕 허공에서 큰 바다 보고

물 헤치고 수용 암용 움켜 가듯이

십력으로 선근 중생 가려 내어서

생사 바다 벗어나 의혹 없애며

해와 달이 허공에 떠서 다니며

모든 것 비추지만 분별 없듯이

세존도 온 법계에 두루 다니며

중생들 교화하되 동하지 않네.

 

“불자여, 보살마하살들이 어떻게 여래 · 응공 · 정등각의 바른 깨달음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룸이 온갖 이치에 관찰함이 없고, 법에 평등하여 의혹이 없으며, 둘이 없고 모양이 없으며 행도 없고 그침도 없으며, 한량이 없고 짬이 없으며, 양 쪽을 떠나서 중도(中道)에 머물며, 모든 글자와 말을 넘어설 줄을 알아야 합니다.

 

                                                                                                                   [1335 / 2062] 쪽

모든 중생의 마음에 행하는 바와 근성과 욕망과 번뇌와 습기를 알아야 하나니, 중요한 것을 말한다면 한 생각에 삼세 모든 법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여, 비유컨대 큰 바다에서는 사천하에 있는 모든 중생의 몸과 형상을 두루 나타내므로 다 같이 바다라 말하듯이, 부처님의 보리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의 마음과 근성과 욕망을 두루 나타내면서도 나타내는 것이 없으므로 부처님들의 보리라 이름합니다.

 

불자여, 부처님의 보리는 모든 글자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모든 음성으로도 미칠 수 없으며, 모든 말로도 말할 수 없건마는, 다만 마땅함을 따라서 방편으로 열어 보입니다.

 

불자여, 여래 · 응공 · 정등각이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에 모든 중생의 분량과 같은 몸[量等身]을 얻으며, 모든 법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국토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삼세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부처님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말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진여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법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허공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걸림없는 경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서원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행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적멸한 열반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나니, 불자여, 얻은 바 몸과 같이 말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이렇게 한량없고 수없는 청정한 세 바퀴[三輪]를 얻습니다.

 

불자여,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에 그 몸에서 모든 중생이 바른 깨달음 이루는 것을 두루 보며, 내지 모든 중생이 열반에 드는 것을 두루 보는 데, 모두 같은 성품으로 이른바 성품이 없음이니' 무슨 성품이 없는가. 이른바 모양의 성품이 있고, 다하는 성품이 없고, 나는 성품이 없고, 멸하는 성품이 없고, 나라는 성품이 없고, 나가 아닌 성품이 없고, 중생의 성품이 없고, 중생 아닌 성품이 없고, 보리의 성품이 없고, 법계의 성품이 없고, 허공의 성품이 없으며,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성품도 없나니, 모든 법이 다 성품이 없음을 아는 연고로 온갖 지혜를 얻고 크게 가엾이 여김이 서로 계속하여 중생을 제도합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허공은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거나 무너지거나 간에 늘

 

                                                                                                                    [1336 / 2062] 쪽

고 줄음이 없나니, 왜냐 하면, 허공은 나는 일이 없는 연고입니다. 부처님의 보리도 그와 같아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거나 간에 늘고 줄음이 없나니, 왜냐 하면 보리는 모양도 없고 모양 아님도 없으며 하나도 없고 여러 가지도 없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항하의 모래와 같은 마음을 변화하여 만들고, 낱낱 마음마다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를 변화하여 만들되, 다 빛도 없고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이와 같이 항하의 모래 같은 겁이 다하도록 쉬는 일이 없다면,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사람이 마음을 변화하여 만들고 부처를 변화하여 만든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래성기묘덕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알기에는 당신이 말씀하신 뜻이 변화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삽거늘 어찌하여 '얼마나 되겠는가' 물으십니까?”

 

보현보살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불자여, 그대의 말과 같아서 가령 모든 중생이 잠깐 동안에 모두 바른 깨달음을 이루더라도 바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것과 평등하고 다르지 않으리니, 왜냐 하면 보리는 모양이 없는 연고입니다. 만일 모양이 없으면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을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렇게 정등각을 이루는 것이 보리와 같아서 한모양이며, 모양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에 한 모양 방편으로 잘 깨닫는 지혜의 삼매에 들고, 들어가서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한 광대한 몸에 온갖 중생 수와 같은 몸을 나타내어 몸 가운데 머물며, 바른 깨달음을 이룬 한 광대한 몸과 같이, 모든 바른 깨달음을 이룬 한 광대한 몸도 그와 같습니다.

 

불자여, 여래는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문이 있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지니 여래께서 나투는 몸은 한량이 없으며, 한량이 없음으로써 여래의 몸을 말하여 한량없는 경계[界]며 중생계와 같다고 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의 몸의 한 털구멍 속에 일체 중생 수효와 같은 부처의 몸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여래의 바른 깨달음을 이룬 몸은 끝까지 나고 멸함이 없는 연고입니다.

 

                                                                                                                    [1337 / 2062] 쪽

한 털구멍이 법계에 두루하듯이 모든 털구멍도 그러하니, 마땅히 조그마한 허공에도 부처의 몸이 없는 데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이르지 않은 데가 없는 연고입니다.

 

그 능함을 따르고 그 세력을 따라서 도량의 보리수 아래 사자좌 위에서 갖가지 몸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자기의 마음에 생각생각마다 항상 부처가 있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부처님 여래들이 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연고며, 자기의 마음과 같이 모든 중생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다 여래가 있어 바른 깨달음을 이룹니다. 넓고 크고 두루하여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여의지 아니하고 끊이지 아니하여 헤아릴 수 없는 방편 법문에 들어갑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깨달은 이 모든 법 분명히 아니

둘 없고 둘 여의어 모두 평등해

제 성품 청정하기 허공과 같아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별치 않네.

바다에 중생의 몸 나타나듯이

그러므로 큰 바다라 말을 하나니

보리에 마음과 행 모두 나타나

그리하여 이름을 바른 깨달음.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지어도

허공은 더하거나 덜하지 않아

모든 부처 세간에 출현하시나

보리는 한모양이고 모양 없음이니

 

                                                                                                                    [1338 / 2062] 쪽

사람의 마음 화해 부처 지으나

화하고 화하잖고 성품 안 달라

모든 중생 보리를 이루거니와

이루고 안 이루고 증감이 없네.

부처의 삼매 이름 좋게 깨달음

보리 나무 아래서 이 선정 들고

한량없는 중생 수 광명을 놓아

여러 중생 깨우치기 연꽃이 피듯

삼세 여러 겁의 세계와 중생

그들의 생각이나 근성과 욕망

이렇게 많은 수효 몸을 나툴새

바르게 깨달음을 한량없다 해.

 

6) 법륜 · 열반 · 이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 응공 · 정등각의 법륜 굴리심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여래는 마음의 자유자재한 힘으로써 일어남도 없고 굴림도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항상 일어남이 없음을 아는 연고입니다. 세 가지 굴림으로써 끊을 것을 끊고서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치우친 소견[邊見]을 여읨을 아는 연고입니다. 욕심의 짬[欲際]과 짬 아닌 것[非際]을 여의고서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의 공한 짬에 들어간 연고며, 말이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말할 수 없음을 아는 연고며, 끝까지 적멸하게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열반의 성품임을 아는 연고입니다.

 

온갖 글자와 온갖 말로써 법륜을 굴리나니 여래의 음성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연고며, 소리가 메아리임을 알고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아는 연고며, 한 음성 속에서 모든 음성을 내어서 법륜을 굴리나니.....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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