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좌선삼매경(20)-4

근와(槿瓦) 2016. 2. 10. 01:59

좌선삼매경(20)-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6 / 10002] 쪽

...깔이 윤택해지고 정결하며 빛이 넘치고 온화하고 기쁨에 들뜨니, 이것을 열락(悅樂)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전의 백골관(白骨觀)은 백골의 모습 속에 광명이 두루 비치는데 맑고 하얀색이다. 세 번째, 마음이 한 곳에 머물면 이것을 정관(淨觀)이라고 하니, 살을 제거하고 뼈를 관하기 때문에 정관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상(相)은 모두 스스로 아는 것이지 다른 이는 보지 못한다. 이상 3품 중에 초습행은 아직 마음을 발하지 않았고, 이습행은 세 번 내지 네 번 몸을 닦았으며, 구습행은 백 년 동안 몸으로 배웠다.

 

2. 성냄을 다스리는 법문

만일 성냄이 치우치게 많으면 마땅히 세 가지 자심(慈心)의 법문을 배워야 하니, 초습행(初習行)과 이습행(已習行)과 구습행(久習行)이 있다. 만일 초습행자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인자함으로 친애(親愛)에 미치니, 어떻게 친애함으로 서원(誓願)에 미쳐서 더불어 친애하고 즐거워하는가? 수행자가 만일 갖가지 몸과 마음의 쾌락을 얻어서, 추울 때는 옷을 얻고 뜨거울 때 시원함을 얻으며, 배고프고 목마를 때 음식을 얻고, 빈천할 때 부귀를 얻으며, 수행이 지극할 때 지식(止息)을 얻는 등 이와 같은 온갖 즐거움이 친애를 원한다면, 마음을 묶어서 인자함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달리 모든 연(緣)을 생각한다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인자함으로 적당한 사람에게 미치니, 어떻게 적당한 사람에게 미쳐서 함께 즐거워하는가? 수행자가 만일 갖가지 몸과 마음의 쾌락을 얻는다면 사람에게 적당하기를 원해서 마음을 묶어 인자함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여러 가지 연에 대하여 달리 생각하면 마음을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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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구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인자함으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에까지 미치니, 어떻게 그것에 미쳐서 그것과 함께 즐거워하는가? 수행자가 만일 갖가지 몸과 마음의 쾌락을 얻는다면 원망하고 미워하는 이를 얻기를 친애하는 이와 함께함을 얻기를 원하는 것과 같아서, 함께 한마음을 얻으면 마음이 크게 청정해진다. 친애하는 가운데 원망하는 이도 똑같이 친애하여 널리 세계에 미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모두 즐거움을 얻게 하며,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동등하지 않음이 없어서 크게 마음이 청정해진다. 시방의 중생을 바라보되 모두 자신을 보듯이 하고, 마음으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분명하게 보아서 쾌락을 얻으면, 이때 바로 자심삼매(慈心三昧)를 얻는다”라고 해야 한다.

 

[문] 친애하는 가운데 사람이 즐거움을 얻게 하기를 원하니, 원망하고 미워하며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불쌍히 여겨 다시 즐거움을 주기를 원하는가?

[답] 마땅히 그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은 다시 여러 가지 좋고 청정한 법의 씨앗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니, 내가 이제 어찌 하나의 원망 때문에 그 착함을 다 없앨 것인가?

 

다시 생각하기를,‘이 사람은 지나간 세상에서 아마도 나와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지금의 성냄 때문에 다시 원망과 미움을 내겠는가? 내 마땅히 그에게 참아야 하니, 이것이 나의 좋은 이익이다. 또한 수행법을 생각하면 인덕(仁德)의 수용력이 크고 인자함의 힘이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을 잃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생각하여 말하기를, “만일 원망과 미움이 없다면 무엇을 인하여 참을 수 있겠는가? 인욕은 원망으로 말미암으니, 원망이 곧 나의 좋은 친구이다. 또한 성냄의 과보는 가장 무거우며, 여러 가지 악 가운데 으뜸으로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중생에게 성을 내면 그 해독은 제어하기 어렵다. 비록 그를 태우고자 하나 사실 이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밖으로 진리의 옷[法服]을 걸치고 안으로 인욕행을 익히면, 이것을 사문이라고 말한다. 어찌 나쁜 소리로 제멋대로 얼굴빛을 변하고 마음이 성급해질 수 있는가? 또한 5수음(受陰)이란 것은 뭇 고통의 수풀이며 악을 받아들이는 과녁이니, 고뇌와 미움이 다가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가시로 몸을 찌르는 것과 같이 고통의 가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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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으니, 뭇 원망이 너무 많으면 제거할 수 없으므로 마땅히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여 인내의 가죽신을 신어야만 한다”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아래에 말씀하신 것과 같다. 성냄으로 성냄에 보답하면 성냄에 도리어 집착하게 되니 성냄으로 보답하지 않으면 대군(大軍)을 깨뜨릴 수 있다. 능히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대인(大人)의 법이니소인은 성을 내어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산과 같다. 성냄은 무거운 독이니 해치고 해롭게 하는 것이 많다. 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를 해롭게 하여 멸망시킨다. 성냄은 큰 어둠이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성냄은 티끌과 먼지이니 청정한 마음을 오염시킨다. 이와 같아서 성냄은 마땅히 서둘러 제거해야 하나니 독사가 방안에 있는데 제거하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는 것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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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여러 가지 성냄의 독은 헤아릴 수 없으니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닦아 성냄을 없애야 하네. 이것이 자심삼매의 문이다.

 

3.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법문

만일 어리석음이 치우치게 많으면 마땅히 세 가지 생각하는 법문을 배워야 하니, 초습행ㆍ이습행ㆍ구습행이 있다. 만일 초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태어남을 연(緣)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고 무명(無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으니, 이와 같이 사유하여 바깥으로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하라.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으며, 명색을 연하여 6입(入)이 있고, 6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으며,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을 연하여 애(愛)가 있으며, 애을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을 연하여 유(有)가 있으니, 이와 같이 사유하여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한다.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구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으며, 명색을 연하여 6입이 있고, 6입을 연하여 촉이 있으며, 촉을 연하여 수가 있고, 수을 연하여 애가 있으며, 애을 연하여 취가 있고, 취을 연하여 유가 있으며,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老死)가 있으니,[이것을 12연기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고찰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에 의해 성립되어 있는 상호의존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상ㆍ고ㆍ무아’라고 보는 것과 범부인 인간의 질곡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유전문)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소멸하고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가(환멸문) 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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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을 벗어나지 않게 한다.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문] 일체의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밝음[明]을 지니지만,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밝음이 없다[無明]. 여기에서 무엇을 무명이라 하는가?

 

[답] 무명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지칭한다. 이 중에서 무명은 후세의 존재[有]를 만들 수 있으니, 존재는 없고 무명[無]은 있다. 모든 선을 버리고 모든 악을 취하며, 실상을 파괴하고 허망함에 집착한다. 「무명상품(無明相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 밝고 유익한 법을 밝히지 않고 도덕의 업을 몰라서 결사(結使:번뇌)의 원인을 만드니 불이 나무를 비벼 생기는 것과 같다. 악법이지만 마음으로 집착하고 선법을 멀리 버리니 중생의 밝음을 빼앗는 도적은 가고 옴의 밝음도 빼앗는다.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생각을 5음(陰)속에서 헤아리니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와 같은 뜻이다.] 의 법도 또한 다시 알 수 없네. 갖가지 번뇌의 험난한 길을 맹인이 들어가서 걸어가니......

 

 

출처 : 불교학술원(동국대학교)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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