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114)-1140

근와(槿瓦) 2016. 2. 5. 02:00

대집경(114)-114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131 / 1773] 쪽

.....이 즐기고자 하여 마음이 모양을 취하려 한다면, 이 뼛가루[骨?]는 마음이 화합해서 생긴 것임을 관찰하리라’고 하고, 그가 인연을 생각[念]하여 이 최초의 마음[初心]을 일으켜 차례로 사유한다면, 반드시 열반의 도를 얻고 그 과(果)를 증득함도 어렵지 않으며, 또 이 몸이 즐거움의 인연을 얻는 것이 물러나지 않기 때문임을 보리라.

 

다시 수행하는 자가 생각하기를, ‘무슨 인연으로 마음이 화합하여 생기느냐’라고 생각하여 저 인연 때문에 즐거이 방편을 말할 줄 안다면, 이것을 제2의 훌륭한 마음[勝心]이라 할 것이며, 법의 즐거움을 보고는 안정된 마음에 머물러 퇴전(退轉)하지 않으리라.

 

다시 수행하는 자가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마음이 얼마마한 인연이 화합해서 곳곳마다 각과 관이 취사(取捨)를 반연(攀緣)하여 함께 일어나는가. 이러한 몸과 마음은 즐거움을 느낌이 있기 때문에 혹은 망상(妄想)이 머묾이니, 나는 저 몸과 마음에 적멸(寂滅)함을 즐겨하리라’ 하고, 또 생각하기를, ‘만약 나의 몸이 인연의 화합 때문에 생겼다면, 뼛가루를 인연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안락하고 나서 도로 멸함이라’고 이렇게 생각하고서 저 수행하는 사람이 눈의 식별[眼識]을 비롯하여 내지 뜻의 식별[意識]을 낸다면, 나고 머물고 멸하는 방편과 인연도 다 적멸하리니, 이것을 제3의 훌륭한 마음이라 하며, 현전에 법의 즐거움을 보고는 물러나지 않고 열반의 도를 얻는 동시에 이 인연으로서 4과(果)를 얻는 것까지도 곧 어렵지 않으리라.

 

다시 수행하는 자가 생각하기를, ‘만약 나의 몸이 모든 법계에서 방편을 통달하고 체성(軆性)을 청정히 한다면, 내 체성은 적멸한 방편에 머묾이 아니리라’ 하여, 또 생각하기를 ‘나의 모든 마음 모양[心相]은 적멸한 방편에 머물고, 또 모든 마음 모양은 각과 관의 모양이 사라짐으로써 적정(寂靜)한 마음의 머묾이리라’고 한다면 이것을 제4의 훌륭한 마음이라 할 것이며, 현전에 법의 즐거움을 보고서 결정코 열반의 도를 얻을 것이니, 그러므로 몸소 증득하지 못하였더라도 증득하려고 한다면 어렵지 않으리라.

 

교진여야, 이 같은 네 가지 가장 훌륭한 마음이 화합하여 나타날 때에 곧 84백천의 삼마제문(三摩提門)을 분명히 보게 되리니, 이 문을 보고 나면,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고 내지 아라한과를 얻게 될 것이며, 그때 또 큰 세력

 

                                                                             [1132 / 1773] 쪽

을 지님과 큰 신통을 갖추는 두 가지 해탈을 얻어서 모든 하늘과 사람에게 예배와 공양을 받으리라.

 

교진여야, 모든 중생들은 실상 한 가지 승(乘)과 한 가지 행(行)과 한 가지 탐욕과 한 가지 생각과 한 가지 욕심과 한 가지 앎[解]과 한 가지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여래는 갖가지 글귀·게송·명자(名字)과 갖가지 법문을 연설하나니, 그런 까닭에 여래는 열 가지 신력(神力)을 원만히 갖추느니라.

 

교진여야, 모든 중생들은 갖가지 뒤바뀐 생각을 갖추었으므로, 여래는 이 중생들의 뒤바뀐 생각을 바로잡기 위하여 덧없다[無常]는 생각과 괴로움을 즐긴다는 생각과 나 없다[無我]는 생각과 죽음을 즐긴다는 생각을 말하여 주고, 또 사람의 몸은 시체가 되어 부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고름이 흐르거나 푸른색으로 변하거나 갖은 벌레들이 빨아 먹고 더러운 냄새가 나고 마침내 해골이 흩어지는, 이런 것을 모르고 애욕에 탐착한다는 생각을 말하여 주느니라.”

 

그때 교진여가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세간이 즐길 만하지 않다는 생각이란 어떤 것이며, 또 세간의 음식이 청정하지 않다는 생각이란 어떤 것이나이까?”

 

“교진여야, 너는 이제 그러한 일을 묻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이 국토[刹]에서는 별다른 방편으로 열반의 도와 4과(果)의 법을 얻게 하였는데, 저 국토의 중생은 근성(根性)이 같지 않고 신심이 다르므로 방편의 힘을 달리하여 열반의 도를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나라의 경계가 이미 다르면 그 모양과 이름도 다르니라.

 

교진여야, 만약에 내가 그러한 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무생인(無生忍)을 얻은 보살마하살이 이것을 믿어 받는[信受] 것을 제외하고서 그 나머지 중생이 들으면 곧 미혹하게 되리라.”

 

이때 교진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믿고 이해[信解]할 수 있는 여러 보살을 가엾이 여기시어 분별하여 말씀하옵소서.

 

세존이시여, 이 보살들이 만약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세간이 즐길 만하지 않다는 생각과 음식이 청정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이러한 두

 

                                                                              [1133 / 1773] 쪽

가지 모양을 들음으로써 능히 갖가지의 훌륭하고 미묘한 선근을 자라게 하고, 무명(無明)의 갖가지 장애를 파괴할 것입니다.

 

모든 중생들은 애욕과 감관에 화합하고 어리석은 소견에 얽매임이 마치 게두라(揭頭羅)와 같아서 헤매는 동안에 태어나는 곳마다 행(行)을 조작하며, 또 과거의 모든 헤매어 온 일을 알지 못함으로써 이 인연으로 생사를 즐깁니다.

 

그러기에 나고 죽음의 처음과 끝이 없나니, 왜냐하면 모든 중생들은 헤매는 동안에 이러한 음식을 즐겨서는 안 되는 생각을 듣지 못하였고 이 음식의 인연으로 탐욕은 더욱 자라내며, 또 이 법문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다섯 갈래[五處]에 이리저리 태어나면서 갖은 곤란과 괴로움[困苦]을 받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세존께서는 항상 한량없는 세간의 중생을 생각하시니, 원컨대 가엾이 여기시어 이 원만히 갖춘 무원에 수순하는[無願順] 다라니를 말씀하여 주소서.”

 

                                                                              [1134 / 1773] 쪽

대방등대집경 제39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14. 일장분 ⑥

5) 악업집품(惡業集品)

 

그때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저 지덕봉왕(知德峯王)여래께서 이 세계의 5탁(濁) 중생과 하늘·사람을 가엾이 여겨 염덕장(炎德臧)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이 욕법[欲]을 보내오셨으니, 이는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니라.”

 

이때 교진여가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원컨대 여래께서 모든 세간이 즐길 만하지 않다는 생각과 음식이 청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널리 분별하여 연설하옵소서. 만약 부처님께서 이 즐길 만하지 않다는 생각과 음식에 대한 깨끗하지 못한 생각을 연설하신다면 듣는 중생이 능히 애욕과 탐심을 버리어 세간의 모든 맛[味]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이 모든 탐욕과 음식에 겁내고 두려워한다면, 이 두 가지 일을 다 싫어 여의고서 절실히 꾸짖고 마땅히 청정함을 닦으리니, 이 사람은 유전(流轉)의 강물을 건너 빨리 저 언덕[彼岸]에 이르러서 능히 모든 존재[有]의 얽매임을 해탈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진여야, 네가 말한 것처럼 세간이 즐길 만하지 않다는 생각과 음식이 청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모든 하늘 사람과 그 밖의 대중에 대하여 저 지덕

 

                                                                             [1135 / 1773] 쪽

봉왕여래께서 염덕장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보내온 원 없는 수순[無願順]의 다라니가 바로 그러한 것이니, 너는 지금 받을지니라.”

 

교진여가 대답하였다.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자세히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진여야, 어떤 것이 모든 세간이 즐길 만하지 않다는 생각인가 하면, 두 종류의 세간이 있으니 중생세간[衆生間]과 기세간(器世間)이 그것이니라.

 

중생세간이라 함은 이른바 하늘, 사람과 아귀(餓鬼)·축생(畜生)·지옥(地獄), 이 다섯 갈래의 중생세간을 일컬음이요, 그릇 세간이라 함은 욕계(欲界)중의 20처소와 색계(色界)의 16처소와 무색계(無色界)의 4처소로 이것을 합한 40처소를 그릇 세간의 중생 머무는 곳이라 하느니라.

 

욕계 중의 20처소는, 첫째 여덟 큰 지옥을 말함이니, 그 낱낱 지옥의 사방에 각각 16의 격자(隔子)를 두어 권속을 삼아 둘러싸고는, 저 지옥 중에서 즐겁지 않다는 생각 내는 것을 관찰하느니라. 그리고 8대지옥(大地獄)으로 말하자면, 첫째는 한 번 죽고 한 번 살아나는 지옥, 둘째는 검은 줄[黑繩]의 지옥, 셋째는 뭇 괴로움을 합한 지옥, 넷째는 부르짖는 지옥, 다섯째는 크게 부르짖는 지옥, 여섯째는 뜨거운 지옥, 일곱째는 크게 뜨거운 지옥, 여덟째는 아비(阿鼻)지옥이니라.

 

만약 과거세·미래세·현재세의 어떤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모든 나쁜 업을 지었기 때문에 한량없는 겁수를 거쳐 갖가지 백천의 큰 고통을 받는다면, 저 지옥에서 설사 미묘한 색을 보더라도 마음이 초조하여 즐거운 생각을 내지 못하고 보는 인연이 즐겁지 않기 때문에 다시 큰 괴로움을 일으켜 이렇게 한 지옥에서 또 한 지옥으로 이리저리 굴려 다니면서 괴로움 중에도 견딜 수 없고 설할 수 없는 지독한 괴로움을 받을 것이며, 귀에는 소리, 코에는 냄새, 입에는 맛, 몸에는 촉감, 그 어느 것에나 마음으로 인연한 모든 법이 다 그러함으로써 사랑하거나 즐기거나 기뻐할 수 없고 모든 것이 좋지 않고 한 가지도 뜻 둘 것이 없으며 몸에는 항상 불이 타고 뜨거운 철환(鐵丸)을 먹고 끓는 구리물[融銅]을 마시고 모든 닿는 곳은 다 불이 붙어 참아 견딜 수 없는 큰 괴로움을 받으며, 그러면서도 저 중생은 아직 그 나쁜 업이 다 되지 않으

 

                                                                             [1136 / 1773] 쪽

므로 모든 과보(果報)를 다 받지 않을 때까지는 죽지 않고 저 지옥 속에 살다가 다음에는 또 사람으로 태어나되 몸과 입과 뜻의 나쁜 업을 짓기 때문에 다시 저 지옥의 몸을 받느니라.

 

교진여야, 저 지옥 속을 누가 들어가기를 즐거워하겠는가. 세간의 중생은 애욕의 즐거움을 많이 즐기고 괴로움 견디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므로 지옥에 떨어지나니, 이것을 일러 맨 처음 나쁜 업을 지은 지옥 중생들의 머무는 곳이라 하느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이 제2의 축생들이 태어나 사는 곳인가 하면 그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할 수 없느니라.

 

교진여야, 축생 중에는 그 몸의 차별이 많아서 어떤 중생은 몸의 크기가 겨우 한 털[毛]을 백분으로 나눈 1분 정도의 헤아릴 수 없는 미세(微細)한 몸이 있고, 어떤 중생의 몸은 마치 창(窓) 사이에 움직이는 티끌[遊塵] 같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어떤 중생의 몸은 십천 유순(由旬)이 되며, 또 수명(壽命)을 말하자면, 어떤 중생은 한 시간 정도 어떤 중생은 일곱 시간, 어떤 중생은 한 겁(劫) 내지 백 겁, 천만억 겁의 차별이 있는데, 이 중생들은 나쁜 업을 지었기 때문에 저 축생 중에 태어나서 착한 법을 닦지 않고 선근을 심지 않으며, 법행(法行)이 없고 지혜도 없고 부끄러움이 없고 자비심이 없어서 항상 고뇌를 받아 매우 겁내면서도 각각 서로 해치는 마음이 있어 모든 착한 법을 멀리 여의며, 언제나 무명(無明)의 어둡고 험악한 길을 다니면서 지옥의 업을 짓고 미워함과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복덕을 즐겨 쌓지 않으며, 마침내 이 업보가 성숙할 때에는 악취[惡道]중에서도 최하의 몸과 마음을 받아 이런 곳에 태어나서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과 추위 더위를 겪고, 채찍으로 얻어맞기도 하고 사람을 태우[騎]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싣기도 하여 몸이 곤핍(困乏)하며, 어깨가 뚫리고 등살이 무너져서 온갖 모기와 독한 벌레가 서로 빨아 먹는 이러한 한량없고 그지없는 고뇌를 받나니, 어찌 슬기로운 사람으로서 저곳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이런 축생을 관찰하고는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이것을 일러 제2의 나쁜 업을 지은 중생이 축생으로 태어나 머무는 곳이라 하느니라.

 

                                                                             [1137 / 1773] 쪽

교진여야, 어떤 것이 제3의 아귀들이 태어나 사는 곳이냐 하면, 그곳도 관찰하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교진여야, 아귀들 중에는 그 몸의 차별이 많아서 어떤 아귀는 몸의 길이가 한 자[尺]이고, 어떤 중생은 몸의 중량이 사람과 같고, 어떤 중생의 몸은 천 유순이 되고, 어떤 중생의 몸은 설산(雪山) 같기도 하며, 또 어떤 중생은 옷이 없어 벌거숭이로 있거나 머리털을 풀어 헤치고는 스스로 몸을 얽어서 검고 파리하게 껍질만이 남아 뼈를 싸고, 도무지 피와 살이 없어서 몸의 거칠기가 마치 마른 나무 같으며,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치어 음식을 생각하여도 얻지 못하고, 입 안에는 불이 타서 불꽃이 바깥으로 나오고, 마음은 항상 미워하거나 성을 내어 자비가 없고, 아무리 뜨겁고 번민하고 당황하여 서늘함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느니라. 또 굶주림과 목마름에 견디지 못하여 불에 녹인 구리물[銅汁]을 마시고 불에 구은 철환(鐵丸)과 나쁜 냄새 나는 고름 피와 뜨거운 똥·오줌 초(麨)·장물과 그 밖의 뜨거운 바람·비를 먹고, 모든 풀·나무·강·바다·못과 과일·잎·꽃 따위의 먹을 것까지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얻을 수 없으며 설사 얻을지라도 천 년 혹은 1천1백 년을 지나면서 항상 고뇌를 받아 어두운 무명(無明)에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게 되나니, 어찌 슬기로운 사람으로서 저런 것을 즐거워하겠는가.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이 아귀의 일을 관찰하고는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이것을 일러 제3의 나쁜 업을 지은 중생이 아귀로 태어나 사는 곳이라 하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이 제4의 인간에 태어나 사는 곳인가 하면, 저 인간 사는 곳을 관찰함에 있어서도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교진여야, 슬기로운 사람은 인간의 모든 갖가지 괴로움을 차례로 관찰하나니, 그 괴로움이란 이른바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괴로움과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과, 원수를 만나는 괴로움과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과 5성음(盛陰)의 괴로움과, 굶주리고 목마른 괴로움과 탐하고 성내고 질투하는 괴로움과 허망한 말·꾸미는 말·거짓 말 나쁜 말·꾸짖는 말·비방하는 말 따위의 괴로움과, 혹독한 추위·더위의 괴로움과 사나운 바람·비의 괴로움과, 전염되는 벌레·모진 짐승들이 침해하는 괴로움과, 나쁜 세상·임금·감옥[獄]의 괴로움과 가난하고 천하고 명 짧은 따위의 괴로움이

 

                                                                             [1138 / 1773] 쪽

그것이니라. 이미 이 괴로움을 생각함으로써 거듭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이 괴로움을 낳아 그 괴로움의 연(緣)으로 도로 괴로움의 인(因)을 조작하여 미래의 몸까지 다시 괴로움의 과보[報]를 받으며,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한량없고 그지없고 다함없는 이러한 모든 모진 고통[辛苦]을 받나니, 어찌 슬기로운 사람으로서 저 인간을 즐거워하겠는가. 이것을 제4의 중생이 인간에 사는 곳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이 인간의 일을 관찰하고 나서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이 제5의 욕계인 하늘[欲天]에 태어나 사는 곳인가 하면, 저곳을 관찰함에 있어서도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교진여야, 슬기로운 사람은 처음 욕계에 여섯 하늘이 있음을 관찰하나니, 이 여섯 하늘의 중생은 항상 탐욕을 즐거워하여 그 탐욕의 애착에 얽매임으로서 과보의 차별로 괴로움을 받음이 평등하지 않느니라. 혹은 과보의 좋고 나쁨이 다르고 상등·하등이 있어서 하등의 과보가 상등의 과보를 보고는 부끄러워서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과거에 복덕을 닦은 인연으로 현재 이곳에 태어났으나 장차 과보가 끝나고 복덕이 다될 것입니다’하고 생각하므로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갖가지 하는 일에 지치고 몹시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친애하던 사람을 이별하고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려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모든 복덕과 과보가 모두 끝나서 좋은 곳을 보고 마음으로 애락(愛樂)하여도 이미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에 큰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며, 또 자기의 업행(業行)으로 빨리 축생·아귀·지옥의 악취에 떨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몇 백의 괴로움을 느끼게 되어 이러한 갖가지 한량없는 괴로움을 내나니, 어찌 슬기로운 사람으로서 저곳을 즐거워하겠는가. 이것을 제5의 욕계의 여섯 하늘의 과보를 받는 곳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이런 일을 관찰하고 나서 저 욕계의 하늘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다시 교진여야, 어떤 것이 색계의 하늘[色界天] 가운데서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는 것인가 하면, 슬기로운 사람이 저 색계의 열여섯 하늘을 관찰하건대, 세간의 선(禪)을 닦아 저곳에 태어나므로 이미 함이 있음[有爲]을 인연한 누가 있는[有漏] 법이니라. 괴로움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적

 

                                                                             [1139 / 1773] 쪽

멸(寂滅)한 마음의 쾌락과 그 밖의 갖가지 훌륭한 즐거움을 얻지 못하여 괴로움을 느끼고, 또 즐거운 피안(彼岸)에 이르지 못함으로써 괴로움의 유전(流轉) 속에 빠져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하나니, 이런 이유로서 마침내 3악도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받느니라. 어찌 슬기로운 사람으로서 저곳을 즐거워하겠는가. 이것을 제6의 누(漏)가 있는 색계천[色天]이라 하니,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저 색계천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다시 교진여야, 슬기로운 사람이 저 색계의 중생을 관찰하건대, 누(漏) 없는 선(禪)을 닦기 때문에 저 하늘에 머물 수는 있지만, 아직 8정도(正道)를 원만히 갖추지 못함으로써 괴로움을 느끼고 8정도를 원만히 갖추려고 그 방편을 생각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기 때문에 또 괴로움을 느끼며, 모든 무학(無學)의 삼마발제[三摩跋]를 아직 마음으로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고, 저 벽지불의 여러 다라니를 자재롭게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고 여래의 경계에 자재롭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나니, 그러므로 모든 중생의 경계는 모두 괴로움이니라. 이러한 중생은 색계에서 아무리 반열반에 들고자 하여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갖가지 괴로움을 갖추느니라. 어찌 슬기로운 사람으로서 저곳을 즐거워하겠는가. 이것을 제7의 누(漏) 없는 색계라 하니, 슬기로운 사람은 이런 일을 관찰하고 나서 색계천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다시 교진여야, 어떤 것이 무색계[無色]의 하늘을 관찰함에 있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는 것인가 하면, 슬기로운 사람이 무색계 하늘의 네 가지 곳을 관찰하건대, 누(漏)가 있는 삼매를 닦음으로써 저 온갖 누 속에 태어나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내고, 모든 배울 이의 자리[學地]와 배울 것 없는 이의 자리[無學地]에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내고, 온갖 애욕을 끝까지 끊지 못하여 유전하는 가운데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내고, 저곳에서 목숨이 끝나도록 훌륭한 길을 얻지 못하고 삿된 소견을 내기 때문에 큰 괴로움을 일으키며, 온갖 3악도와 번뇌의 업을 영원히 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내고, 또 그 3악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괴로움을 일으키느니라. 어찌 슬기로운 사람

 

                                                                             [1140 / 1773] 쪽

으로서 저곳을 즐거워하겠는가. 이것을 무색계의 네 하늘이라 하느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런 일을 관찰하고 나서 무색계의 하늘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나니, 그러므로 모든 존재[有]의 옥(獄)을 벗어나고 또 그 존재 속에 삶을 여의게 되며, 이 같은 여덟 가지를 화합하여 관찰할 때에 슬기로운 사람은 능히 그 이치를 얻어 일부러 마음을 내지 않아도 항상 8정도를 닦게 되느니라.

 

교진여야, 이것을 일러 모든 세간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교진여야, 세간이라 함은 바로 행(行)을 말하느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세간의 행에 대하여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내나니, 그 행에는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행이 있느니라.

 

몸의 행이라 함은 숨[氣息]의 드나듦을 말함이요, 입의 행이라 함은 각(覺)과 관(觀)에 따라 말하는 것을 말함이요, 뜻의 행이라 함은 허망한 생각의 느낌을 말함이니, 이것이 세 가지 행이니라.

 

그런데 이 세 가지 행의 모양[相]은 이와 같으나 모든 중생들은 한 가지 심상(心想)이거늘, 슬기로운 자가 어떻게 분별하여 알고서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즐겁지 않게 생각하느냐 하면, 슬기로운 자는 몸의 드나드는 숨을 관찰하되, 99의 수(數)를 가질 때에 숨의 서늘함과 따뜻함이 화합되는 방편과 몸 전체에 드나드는 숨을 깊이 관찰하나니, 말하자면 저 입과 코로부터 드나드는 모든 몸의 숨과 내지 털구멍에서 드나드는 숨이 그것이니라. 이 사람은 숨을 관찰하여서 이 숨이 본래 나는[生] 것도 없고 멸함도 없음을 자세히 아느니라.

 

만약 본래부터 없는 것이 이제 비로소 있는 것이라면, 이는 덧없는[無常] 모양이어서 결정된 모양 없는 것이 마치 물 위의 거품과 허공 속의 번개 같으니라. 이렇게 관찰할 때에 모든 행에 대하여 몸의 행하는 모양을 얻고 이러한 모양이 어떤 인연에 따르는가를 관찰하여서 곧 이 모양은 각과 관에 인연하고 각과 관의 성품은 본래 없는 것이 이제 있음을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이는 덧없는 것이니라. 끊을 수 있는 법이고 해탈할 수 있는 법이며, 또 이 각과 관은 허망한 마음으로 인하여 낳기 때문에 이 마음 성품도 본래 없.....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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