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대강좌(34)-第三 大乘正宗分(대승불교의 진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科解]
대승정종분 제삼(大乘正宗分第三)이라 함은 대승의 골수를 말하는 제3장이란 뜻입니다. 대승불교(大乘佛敎), 소승불교(小乘佛敎)하는데 소승불교는 자기 하나만 열반(涅槃)을 얻어 가지고 이 세상에 근심 ∙ 걱정 없이 나 홀로 편안하게 지내는 불교를 말합니다.
「열반의 대해탈(大解脫)을 증득(證得)했으므로 지구(地球)가 깨지거나 우리 민족 다 죽거나 정치 거꾸로 하거나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이 육신(肉身) 잡아다 마음대로 해라. 나는 그런 것 때문에 신경 쓸 것 하나도 없다. 말도 잘 안 듣는 중생들한테 타이르고 가르쳐 줘 봐야 말 안 들으면 욕하고 야단하고 똑같이 해야 되니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중생들 시비에 나까지 말려 들어서 번뇌망상(煩惱妄想)이 다시 일어나고 말겠다」고 하여, 자기 본위(本位)로만 생각하고 중생들 구제(救濟)할 생각을 안하는 것이 소승불교(小乘佛敎)의 태도이고 나한(羅漢)님들의 용심(用心)입니다.
그러니 이런 열반은 옳은 열반이 아니고 옳은 깨달음이 되지 못하므로 소승불교라 이름했고,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하나의 염세주의(厭世主義)라고 지탄합니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은 자비심을 일으켜서 고약한 중생에게 이런 법을 얘기해 주고 그들을 괴로움으로부터 건져주는 일에 헌신하는 구세주의(救世主義)입니다. 내 옳은 것을 남에게 옳다고 인식시키는 설교 시간이 나에게 가장 철저(徹底)하는 시간입니다.
나 혼자 독경(讀經)을 일년내 또는 평생 하는 것보다도 금강경을 한 번 읽고 단 반시간만이라도 남을 위해 해설하는 그 공덕(功德)이 참으로 비유도 안 되는 정도로 더 크다는 것입니다. 남이 알도록 설법하는 그 시간이 정말 불법이 자기 뼈 속에 골수 속에 박혀 자리잡는 시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에게 법문해 주는 공덕이 가장 크다고 한 것입니다.
대승불교는「나쁜 중생 이것이 나를 부처로 만드는 좋은 부처로구나, 도가 되는구나.」하고 부처와 중생과 마음을 하나로 봅니다. 그러니 가령 신부나 목사나 유교의 선비나 누구나간에 몇 달 며칠이 걸리든지 그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는 걸 봐야 안심하고 가만히 있지 그전에는 밥을 얻어 먹어 가면서 매일 자꾸 얘기만 합니다.「내 얘기 안 들으면 못가겠다, 죽여도 좋다, 죽이려면 죽여라, 죽은 귀신이라도 당신에게 설교하고 말겠다.」이렇게까지 적극적이고 중생과 나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대원력(大願力)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여 마침내 성불하려는 것이 대승불교입니다.
이와 같은 대승(大乘)의 참 불교가 여기서부터 나오게 된다는 뜻으로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이라 한 것이며, 또한 이것이 금강경의 요긴(要緊)한 대의를 밝힌 대문(大文)이라 할 것입니다. 금강경의 정종분(正宗分)은 서분(序分)과 맨 끝의 끝 부분인 유통분(流通分)을 뺀 전부이지만 그러나 금강경의 정종분(正宗分)을 다시 三十一分으로 나누어서 볼 때에도 정종분 중의 정종분이 된다는 뜻으로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이라고 한 것입니다.
출전 : 금강경대강좌(청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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