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경대강좌(30)-발심한 이의 마음가짐

근와(槿瓦) 2016. 1. 24. 00:43

금강경대강좌(30)-발심한 이의 마음가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발심을 한 사람은 누가 죽여도 죽지 않고 매를 때려도 가만히 맞고 있을 뿐 대항이 없지만 안 죽습니다. 일본에 백은선사(白隱禪師)라는 거룩한 스님이 있는데 지금 한국에도 그보다 더 거룩한 노장이 살아 계십니다.

 

지리산(智異山)에 법계토굴(法界土窟)이 있는데 거기 올라가 보면 전주시내 불이 환하게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본래 이곳에는 선방(禪房)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백년 전에 공부하는 두 스님들이 이 절에 와서 있게 됐습니다. 두 스님들이 동냥을 해서 양식을 준비해 가지고는 절에 일찍 올라가서 다음해 삼월까지 땔 나무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노장(老丈) 두 분이 지리산 꼭대기에서 공부를 하는데 동지섣달 한참 추운 어떤 날 오후 힘센 장정 네 명이 와 가지고「너희들이 며칠 전에 돈 오백냥 가져온 일이 있지」하고 위협을 합니다. 그래서 한 스님이 나가서 대답했습니다.「그런 일이 없습니다.」「다 알고 왔다. 내 눈으로 봤는데 무슨 잔소리냐. 돈을 지고 이리 들어오는 것을 봤다. 생명이 아깝거든 돈을 내놔라.」「돈 그까짓껏 있다가 없어지는 것인데 있으면 내놓지 사실 없으니까 못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노장을 끌고 나가 타작하는 식으로 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스님은 사실은 장사입니다. 힘으로 따지면 이 네 사람 아니라 열 네 사람이라도 쓰러뜨릴 힘이 있지만 잠자코 얻어맞기만 합니다. 맞다가 맞다 하도 맞아서 나중에는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노장이 가만히 생각하니 살아나서 공부를 해야 할 것인데 이 도둑놈한테 맞아 죽게 생겼으니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우리는 인과(因果)를 믿고 있다. 모든 것이 다 인과로 오는 것이니 목숨을 바쳐 그 빚을 갚자, 세상이 좋아한다고 환영하지 말고 어떤 역경(逆境)에 처하더라도 거기 반발(反撥)하지 말자, 누가 어떤 곤란한 죽음을 준다 해도 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 내자, 우리가 아득한 전생을 돌이켜 보면 부모도 잡아 먹고 자식도 잡아 먹고 죄란 죄는 다 지었을 것이니 그 죄로 말하면 몇 천만겁 곤란한 <죽음>을 당해도 마땅할 것이다. 누가 어떠한 어려움을 준다 해도 하나도 대항 말자.」하는 약속이었습니다.

 

다른 한 노장이 때려 주지 못하게 거들어 주면 되고 그 노장 혼자라도 안맞으려면 안맞을 수 있지만 한 노장은 방에 가만히 앉아서 자기 공부만 하고 있습니다. 한 노장이 맞다 맞다 원체 다급하니,「이 사람 이것을 어찌할까.」히고 묻습니다. 방에 앉아 공부만 하던 그 노장이 하는 말이,「이 사람아 인과를 믿게, 공부하는 마음 움직이지 말아, 정각(正覺)에서 움직이지 말아, 네가 그 사람 죽여 놓으면 그 사람한테 천번 만번 죽음을 당해, 그러니 아무 소리 말고 달게 맞아 죽게나.」그럽니다. 그래서 이 노장님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맞아 죽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돈이 없는 것을 달라고 그랬음을 알게 된 도둑들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방에서 혼자 공부하던 노장님은 소변을 보러 나갔다가 쓰러져 있는 노장을 일으켜 안고 방에 들어가서 참선하는 것같이 가부좌를 틀어 앉혀 놓고는「이 사람아 금생에 인연은 그것뿐이야. 자네는 빚을 다 갚고 갔네. 나는 빚을 못 갚았으니 자네보다도 나는 더한 업을 지었는지 아나, 아무것 괘념하지 말고 화두(話頭 : 참선하는 공부)나 잘하게.」

하면서 윗목에 앉혀 놓고 자기는 아랫목에 앉아 공부를 합니다.

 

아무리 겨울이라도 송장을 들여 놓으니 썩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자 썩는 소리가 꿀꿀 납니다. 그러니 하는 말이「아 그 사람, 참선이나 하지, 그까짓 일 가지고 뭘 마음이 상해 그러나.」이렇게 나무라고는 돌아 앉아서 또 공부만 합니다. 이렇게 자꾸 경고를 하면서 공부를 하다가 나중에는 화장하고 혼자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맞는 사람은 맞아 죽을 각오(覺悟)를 하고 죽었지만 그것을 보고도 친구의 참된 공부를 위해 조금도 마음이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은 본래의 발심(發心)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발심한 사람의 수행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이의 마음가짐입니다. 육체생활(肉體生活) 때문에 한 생각이라도 까딱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과를 믿고 불법을 믿는다면, 저녁에 남자가 집에 안 들어온다고 남편 못살게 굴면 안됩니다. 내가 전생에 나쁜 일을 많이 해서 남편이 저러는 것이니 머리 깎고 중된 요량만 하고 꿀꺽 참고서 남편에게 전보다 더 잘해 줘야 합니다. 마누라가 또 잘못 되어 남편이 벌어준 돈 갖고 하룻밤 안 들어와도 왜 어디 갔었느냐고 야단만 하지 말고 잘 보살펴 주고 받아 주어야 이것이 참 불교식입니다.

 

이 세상 일을 불평하고 원망하다 보면 탐진치(貪瞋痴)만 늘 뿐이지 일 초도 편할 도리가 없습니다. 원망하기로 말하면 원망이 허공에 꽉 찰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야 무슨 염불이나 참선이 되고 복닦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원망하는 마음뿐인데 무슨 복이 됩니까, 백일기도 천일기도 만일기도 해도 죄가 사하여지지 않습니다. 남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천지가 꽉 차서 아무 것도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잠깐 생각하는 것이라도 전 세계로 퍼지고 우주에 가득찹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라디오, 텔레비전의 원리와 같아서 지금 말하는 이것도 전 우주에 가득찹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는 것이 죄거나 복이거나 선악 차이 없이 우주 전체에 영향을 주고 인과를 가져옵니다.

 

가령 짐승이라도 몽둥이로 매질을 하든지, 다리를 분질러 놓든지, 또는 바위나 나무 같은 무정물(無情物)이라도 함부로 하면 나중에 어느 때엔가 어느 곳에서 나무나 돌멩이에 다리를 다치거나 합니다. 이렇게 인과라는 것은 필연적(必然的)인 것입니다. 그러니 무정물을 천대하면 무정이 오고, 유정을 해치면 유정의 인과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 내 그림자이기 때문이고 내 환각(幻覺)으로 있는 바윗돌이기 때문입니다. 사물(事物)과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일거일동은 이것이 그대로 원인이 되어 고스란히 그 결과인 보(報)를 다 당해야 하고 빚을 다 갚아서 저쪽 원수들 완전히 풀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빚 갚을 생각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작정하면 이 사람은 그 날부터 아주 행복해지고 마음이 편해져서 잠도 잘 오고 소화도 잘 됩니다.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마음가짐입니다.

 

 

출전 : 금강경대강좌(청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