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대반열반경(62)-620

근와(槿瓦) 2016. 1. 3. 00:38

대반열반경(62)-6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611 / 909] 쪽

선남자여, 과이고 인이 아닌 것은 대반열반이니, 무슨 까닭으로 과라 하는가. 으뜸가는 과[上果]인 까닭이며, 사문의 과며 바라문의 과며 생사를 끊었으며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과라 하며, 모든 번뇌의 꾸짖음이 되므로 열반을 과라 이름하고, 번뇌를 허물의 허물[過過]이라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열반은 인이 없으나 그 자체는 과이니, 왜냐 하면 났다 없어졌다 함이 없는 연고며, 지음이 없는 연고며 함이 있음이 아닌 연고며 함이 없는 법인 연고며 항상 변하지 않는 연고며 처소가 없는 연고며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만일 열반이 인이 있다면 열반이라 하지 못하리라. 반(槃)은 인(因)이란 말이요 반열(般涅)은 없다[無]는 말이니, 인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열반이 인이 없다 하시나,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만일 없다고 한다면 여섯 가지 뜻에 맞아야 하리이다. 첫째는 끝까지 없으므로 없다고 이름하나니, 온갖 법이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음과 같음이요, 둘째는 어떤 때에 없으므로 없다고 하나니,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못이나 내에 물이 없다거나, 해와 달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음이요, 셋째는 적으므로 없다고 하나니, 세상 사람들이 음식에 간이 적은 것을 간이 안 됐다 하고, 설탕물에 설탕이 적은 것을 달지 않다고 하는 것과 같음이요, 넷째는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없다고 함이니, 전다라가 바라문 법을 받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바라문이 없다는 것과 같음이요, 다섯째는 나쁜 법을 받았으므로 없다고 함이니, 세상 사람들이 나쁜 법을 받은 자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고 함과 같음이요, 여섯째는 상대가 되지 아니하므로 없다고 하나니, 마치 희지 아니한 것을 검다고, 밝음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 함과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열반도 그와 같아서 어떤 때에 인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이름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말하는 여섯 가지 뜻은, 어찌하여 끝까지 없는 것을 가져다가 열반에 비유하지 아니하고, 어떤 때에 없는 것을 취하였는가?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끝까지 인이 없음이, 마치 내가 없고 내 것이 없음

 

                                                                                [612 / 909] 쪽

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세상 법과 열반과는 마침내 상대가 되지 아니하므로, 여섯 가지 일은 비유가 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은 모두 내가 없지만, 이 열반은 진실로 내가 있나니, 그런 뜻으로 열반은 인이 없지만 그 자체는 과라는 것이니라. 인이요 과가 아닌 것을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인으로 생긴 것이 아니므로 인이요 과가 아니라 하며, 사문의 과가 아니므로 과가 아니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으로 인이라 하는가. 아는 인[了因]인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는 인[生因]이요 하나는 아는 인이다. 능히 법을 내는 것을 내는 인이라 이름하고, 등불이 물건을 비치듯 함을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번뇌의 결박은 내는 인이라 하고, 중생·부모는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곡식의 씨는 내는 인이라 하고, 땅과 물과 거름은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또 내는 인이 있으니, 6바라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이요, 또 아는 인이 있으니, 불성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이니라. 또 아는 인이 있으니, 6바라밀 불성이요, 또 내는 인이 있으니 수릉엄삼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또 아는 인이 있으니 8정도(正道)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또 내는 인이 있으니 믿는 마음의 6바라밀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여래와 불성을 본다는 것은 뜻이 어떠하오니까?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은 형상이 없사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있는 곳이 없어 삼계에 있지 아니하며, 함이 있는 모양이 아니며 안식(眼識)으로 볼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보겠나이까? 불성도 그러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부처의 몸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항상하고 둘은 무상하니라. 무상한 것은 모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요, 항상한 것은 여래 세존의 해탈한 몸이니, 눈으로 본다고도 하고 들어서 본다고도 하느니라. 불성도 두 가지니, 하나는 볼 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볼 수 있는 것은 10주 보살과 부처님 세존이요, 볼 수 없는 것은 모든 중생이니라. 눈으로 본다 함은 10주 보

 

                                                                                 [613 / 909] 쪽

살이나 부처님 여래가 중생에게 있는 불성을 눈으로 보는 것이요, 들어서 본다는 것은 온갖 중생이나 9주 보살이 불성이 있음을 듣는 것이니라.

 

여래의 몸이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빛[色]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非色]. 빛이라 함은 여래의 해탈이요, 빛이 아니라 함은 여래가 모든 빛 모양을 영원히 끊은 까닭이니라. 불성도 두 가지니, 하나는 빛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 빛이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빛이 아니라 함은 범부나 내지 10주 보살이니, 10주 보살이 보기를 분명히 하지 못하므로 빛이 아니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불성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빛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 빛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을 말함이요, 빛이 아니라 함은 모든 중생이니라. 빛인 것은 눈으로 본다 하고, 빛이 아닌 것은 들어서 본다 이름하니라.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비록 안도 바깥도 아니나 잃어지거나 부서지는 것도 아니므로,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 것은, 젖 속에 타락이 있는 것이나 금강역사와 같고, 부처님들의 불성은 청정한 제호와 같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도 젖 속에 타락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타락이 젖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타락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생기는 법은 제각기 시절이 있나이다."

"선남자여, 젖 상태일 때에는 타락이 없고 생소(生酥)와 숙소(熟酥)와, 제호도 없느니라. 모든 중생도 젖이라 할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젖 속에 타락이 없다 한 것이니라. 만일에 있다면 어찌하여 두 가지 이름을 얻지 못하여, 두 가지 기능이 있는 사람을 은장이·대장장이라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타락 상태일 때에는 젖과 생소와 숙소와 제호가 없나니, 중생도 타락이라 하면, 젖도 아니고 생소나 숙소나 제호도 아니며, 내지 제호일 때에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정인(正因)과 연인(緣因)이다. 정인이라 함은 젖에서 타락이 생기는 것과 같고, 연인이라

 

                                                                                [614 / 909] 쪽

함은 효모[酵]나 따뜻함 등이니 젖에서 생기므로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젖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각(角) 가운데도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각 가운데서는 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각에서도 타락이 나느니라. 왜냐 하면 내가 말하기를 연인에 두 가지가 있다 하였으니, 하나는 효모요 다른 하나는 따뜻함이다. 각의 성품이 따뜻하므로 역시 타락을 내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각이 타락을 낸다면 타락을 구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젖만 구하고 각은 찾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그러기에 내가 말하기를 정인과 연인이 있다 하였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여쭈었다.

"만일 젖 속에 본래는 타락이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생긴다면, 젖 속에 본래 암마라나무가 없었으니, 어찌하여 암마라나무는 나지 않나이까? 두 가지가 모두 없었던 까닭이옵니다."

 

"선남자여, 젖에서도 암마라나무가 나나니, 만일 젖을 부어 주면 하룻밤 동안에 다섯 자쯤 자라느니라. 그런 뜻으로 내가 두 가지 인을 말하였나니,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한 가지 인으로만 난다면, 젖 속에서 어찌하여 암마라나무는 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4대가 온갖 색법(色法)의 인연이 되거니와, 빛이 제각기 달라서 같지 않나니 그런 이치로 젖 속에서 암마라나무가 나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정인과 연인의 두 가지 인이 있다 하오면, 중생의 불성은 무슨 인이라 하오리까?"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도 두 가지 인이니, 하나는 정인이요 하나는 연인이니라. 정인은 모든 중생을 말함이요 연인은 6바라밀을 말함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음을 아나이다. 왜냐 하면 세상에서 타락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젖만 찾고 물은 찾지 않는 것을 보나니

 

                                                                                [615 / 909] 쪽

이것으로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선남자여, 그대가 물은 것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마치 사람들이 얼굴을 보려고 칼을 드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뜻으로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나이다. 칼에 만일 얼굴 모양이 없으면 무슨 까닭으로 칼을 들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칼 가운데 얼굴 모양이 있다면, 어찌하여 뒤바뀌겠느냐? 칼을 세우면 얼굴이 길게 보고 뉘면 얼굴이 넓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만일 자기의 얼굴이라면 어째서 길게 보이며, 만일 다른 이의 얼굴이라면 어찌하여 자기의 얼굴 그림자라 하느냐? 만일 자기의 얼굴로 인하여 다른 이의 얼굴을 본다면, 어찌하여 나귀나 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느냐?"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얼굴이 길게 보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눈의 광명이 실제로 저기 이르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먼 데와 가까운 데를 일시에 다 보는 까닭이며 중간에 있는 물건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본다면 모든 중생이 모두 불을 볼 적에 어찌하여 타지 않느냐? 사람이 멀리 있는 흰 물건을 볼 적에 따오기인지 깃발인지 사람인지 나무인지 의심하지 아니하리라. 광명이 이르러 간다면 어떻게 수정 속에 있는 물건이나, 물 속에 있는 고기와 돌을 보게 되느냐? 만일 이르지 않고서 본다면 어찌하여 수정 속의 물건을 보면서, 담 바깥 물건은 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길게 본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젖에 타락이 있다면, 젖을 파는 사람이 어째서 젖 값만 받고 타락 값은 받지 않으며, 피마[騲馬]를 파는 사람이 말 값만 받고 망아지 값은 달라 하지 않느냐.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아들이 없는 까닭으로 아내를 맞았는데, 아내가 만일 아기를 배면 처녀라 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이 여자에게 아기를 낳을 성품[兒性]이 있었기에 맞았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아기를 낳을 성품이 있다면 손자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손

 

                                                                              [616 / 909] 쪽

자를 낳는다면, 이는 곧 형제이니, 왜냐 하면 한배에서 나온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여자에게 아기의 성품이 없다 하느니라.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어찌하여 한꺼번에 다섯 가지 맛이 보이지 아니하는가. 만일 나무의 씨 속에 니구타의 다섯 길 되는 성질이 있다면 어찌하여 한꺼번에 움과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과실의 다른 모양을 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잎과 꽃과 과실의 다른 모양을 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젖빛이 때를 따라 다르고, 맛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며, 내지 제호도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 하겠느냐.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내일 생소를 먹을 터인데, 오늘 벌써 냄새를 걱정하는 것과 같나니,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붓과 종이와 먹으로써 글자를 이루거니와, 이 종이에는 본래 글자가 없었느니라. 본래는 없었으므로 연을 반연하여 글자를 이루는 것이니 만일 본래부터 있었다면 어찌하여 여러 가지 연을 반연하겠느냐. 마치 푸르고 누른 것이 화합하여 초록빛을 이루는 것 같아서 이 두 가지 빛에는 본래 초록빛 성품이 없는 것이니, 만일 본래 있었다면 어찌하여 화합하여서야 이루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중생들이 먹음을 인하여 목숨을 얻거니와 음식 속에는 실로 목숨이 없나니, 만일 본래 있었다면 먹기 전에는 음식이 목숨일 것이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들이 본래 성품이 없는 것이니, 그런 뜻으로 내가 이런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으며

본래는 있으나 지금은 없으니

이 세상 앞세상 지나간 세상에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곳 없나니.

 

선남자여,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들 속에 불성이 있다면, 모든 중생은 지금의 나와 같이 부처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니라. 중생의 불성은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끄달리지 않고 붙잡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속박되지 아니하여

 

                                                                                [617 / 909] 쪽

중생 가운데 허공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에게 다 허공이 있건만, 장애되지 아니하므로 제각기 허공 있음을 보지 못하거니와, 만일 중생에게 허공이 없다면, 가고 오고 다니고 서고 앉고 누움이 없을 것이며, 나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못할 것이니라.

 

이런 뜻으로 나의 경 가운데 말하기를, 모든 중생에게 허공계가 있다 하였으니 허공계를 이름하여 허공이라 한다.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아 10주 보살이라야 그것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으니, 마치 금강주(金剛珠)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부처님의 경계요, 성문·연각으로는 알 바가 아니니라. 모든 중생들은 불성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항상 번뇌에 얽매여서 생사에 헤매는 것이며, 불성을 보는 연고로 모든 번뇌가 속박하지 못하여 생사에서 해탈하여 대열반을 얻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에게 불성의 성질이 있는 것이, 마치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는 것과 같나이다. 만일 젖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이요 하나는 연인인데, 연인이라 함은 효모와 따뜻함이니, 허공은 성품이 없으므로 연인이 없다' 하셨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어찌하여 연인(緣因)을 필요로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성품이 있는 연고로 연인을 구하나니, 왜냐 하면 분명하게 보려 함입니다. 연인은 곧 아는 인이오니, 세존이시여, 마치 어둠 속에 먼저 물건이 있었기에 물건을 보려고 등불로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본래 없었으면 무엇을 등불로 비치오리까. 마치 진흙 속에 병이 있으므로, 사람과 물과 물레와 노끈과 작대기 따위로 아는 인을 삼는 것이며, 니구타의 씨가 땅과 물과 거름을 추구하여, 아는 인을 짓는 것과 같나니, 젖 속에 있는 효모와 따뜻함도 이와 같아서, 아는 인을 짓나이다. 그러므로 비록 먼저부터 성품이 있어도 아는 인을 빌려서야 보게 되나니, 젖 속에 먼저 타락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아나이다."

 

                                                                                [618 / 909] 쪽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이것이 곧 아는 인일 것이요, 만일 아는 인이라면 어찌하여 다시 알려 하겠는가. 선남자여, 만일 이 아는 인의 성품이 아는 것이라면, 항상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요, 만일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것을 알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아는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 아는 것이요, 하나는 다른 것을 아는 것이라 하면 그 뜻이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아는 인은 한 법인데 어떻게 둘이 있겠는가. 만일 둘이 있다면 젖도 마땅히 둘일 것이며, 만일 젖 속에 두 가지 모양이 없다면, 어찌하여 아는 인에만 둘이 있다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까지 모두 여덟 사람이다' 하는 것과 같이, 아는 인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도 알고 다른 이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아는 인이 만일 그렇다면 아는 인이 아니니, 왜냐 하면 세는 이는 제 몸[自色]과 다른 몸을 셀 수 있으므로, 여덟 사람이라 말하거니와, 이 몸의 성품은 스스로 아는 상[了相]이 없으며, 아는 상이 없으므로 지혜의 성품을 의지하여야 저와 다른 것을 셀 수 있나니, 그러므로 아는 인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다른 것도 알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불성 있는 이가 무슨 까닭으로 한량없는 공덕을 닦는가. 만일 닦는 것이 아는 인이라 한다면, 이미 타락이 없어짐[壞]과 같으니라. 만일 인 가운데 결정코 과가 있다면,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증장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없다가 스승에게서 받고 나서는 점점 증장하니, 만일 스승의 가르치는 것이 아는 인이라 한다면 스승이 가르칠 때에는 받는 사람에게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있지 않았을 것이니라. 만일 이것이 아는 인이라면 아는 것이 있지 않았을 터이니, 어떻게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알아서 증장케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는 인이 없다면, 어떻게 젖이 있는 것이 타락이 있다고 이름하오리까?"

 

"선남자여, 세상에서 물음을 대답하는 데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츰차

 

                                                                                [619 / 909] 쪽

츰 대답함[轉]이니, 앞에서 말함과 같이 무슨 인연으로 금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가. 뉘우치지 아니하기 위함이니라. 내지 대반열반을 얻기 위함이니라 하는 따위요, 둘은 잠자코[默然] 대답함이니, 범지가 나에게 와서 묻기를, 내가 항상합니까 하기에, 내가 잠자코 있음과 같은 것이요, 셋은 반문하는[疑] 대답이니, 이 경에서 말한 것처럼 '만일 아는 인이 둘이 있다면, 젖 속에는 어찌하여 두 가지가 있지 않은가' 하는 등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지금 차츰차츰 대답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젖이 있으면 타락이 있다고 하는 것은, 결정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젖이 있는 것을 타락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느니라.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있으면 불성이 있는 것이니, 마땅히 볼 수 있는 연고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과거는 이미 없어졌고, 미래는 오지 아니하였사온데, 어떻게 있다 하오리까. 만일 마땅히 있으리라 하여서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나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현재에 아들이 없으면, 아들이 없노라 말하는 것이온데,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는 것을 어떻게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지나간 것을 있다고 함은, 가령 귤을 심어서 싹이 나고 씨가 없어졌으나, 싹도 달고 풋과일 맛도 달다가, 익고 나면 이에 시어지느니라. 선남자여, 이 신맛이 씨나 싹이나 풋과일 때에는 없었다가 익을 때의 빛과 모양을 따라서 생기는 것이니, 이 신맛은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 있는 것이다.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에 있지만 근본을 인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본래의 씨가 비록 지나갔으나 있었다고 이름할 것이니, 이런 이치로 지나간 것을 있었다고 이름하니라.

 

또 어찌하여 미래를 있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참깨를 심을 적에, 누가 묻기를 무엇하려고 심는가 하면, 기름이 있기에 심노라 하는 것 같나니, 실로 기름이 있는 것 아니지만 참깨가 여문 뒤에 깨를 받아서 찌고 누르면 기름이 생길 터이므로, 이 사람의 말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뜻으로 미래를 있다고 하느니라.

 

                                                                                [620 / 909] 쪽

또 어찌하여 과거를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외딴 데서 임금을 욕하였더니, 여러 해 뒤에 임금이 듣고 불러 묻기를 '어찌하여 나를 욕하였느냐' 하기에, 대답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욕하지 않았나이다. 왜냐 하면 욕한 일은 이미 없어진 까닭입니다' 하였다.

 

임금은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욕을 한 너와 내가 모두 있는데, 어찌하여 없어졌다 하느냐?' 이리하여 목숨을 잃었느니라.

 

선남자여, 이 둘이 실로 없지만 결과는 없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을 말하여 지나간 것이 있다 하느니라.

 

또 어찌하여 미래를 있다 하느냐. 어떤 사람이 옹기장이에게 가서 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옹기장이는 있다고 대답하였다. 옹기장이에게 실상은 병이 없었지만 진흙이 있으므로 병이 있다고 한 것이니, 이 사람의 말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젖 속에 타락이 있다는 것이나,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불성을 보고자 하면 마땅히 시절과 인연을 관찰할 것이니,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나이까. 정인이 있는 까닭입니다. 무엇이 정인인가 하오면, 불성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니구타 씨에 니구타나무가 없다면 어찌하여 니구타 성씨라 하고, 가타라(佉陀羅) 씨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구담 씨를 아지야(阿坻耶) 성씨라 일컫지 못하고, 아지야도 구담이라고 일컬을 수 없는 것처럼, 니구타 씨도 그와 같아서 가타라 씨라 일컫지 못하고, 가타라 씨도 니구타 씨라고 일컬을 수 없나이다. 마치 세존이 구담 성씨를 버릴 수 없듯이,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사오니, 이런 뜻으로 중생에게 모든 불성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씨 속에 니구타가 있다고 말하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만일에 있다면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가. 선남자여, 세간의 물건들은 인연이 있어서 보이지 않나니,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멀어서 보이지 않는......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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