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61)-61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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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는 비구의 의복을 위하는 탐욕을 고치고, 걸식함으로는 음식을 위한 탐욕을 깨뜨리고, 나무 밑에 앉음으로는 와구를 위한 탐욕을 깨뜨리고, 몸과 마음이 고요함으로는 비구들의 유의 탐욕을 깨뜨린다.
이 네 가지 약으로 네 가지 병을 치료하는 것을 성인의 행이라 하며, 이런 성인의 행을 이름하여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고요함은 네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하나는 출가한 즐거움이요 둘은 고요한 즐거움이요 셋은 영원히 멸하는 즐거움이요 넷은 끝까지 즐거움이라. 이 네 즐거움을 얻었으므로 고요하다 이름하느니라.
4정진을 갖추었으므로 정진이라 하고, 4념처(念處)를 갖추었으므로 바른 생각이라 하고, 4선정을 갖추었으므로 바른 정이라 하고, 네 가지 진실한 이치[四聖實]를 갖추었으므로 바른 지혜라 하고, 모든 번뇌의 결박을 영원히 여의었으므로 해탈이라 하고 모든 번뇌의 허물을 꾸짖으므로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머물러 구족하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경을 듣고 친근하고 닦아서 모든 세상일을 멀리 여의면 욕심이 적다 하고, 출가한 뒤에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면 만족함을 안다 하고, 고요한 곳을 가까이하고 시끄러운 데를 멀리 여의면 고요하다 하느니라.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이는 고요한 데를 좋아하지 못하거니와, 만족함을 아는 이는 고요한 데를 좋아하고, 고요한 데서 항상 생각하기를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말하여 사문의 도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얻지 못하였거늘, 어찌 사람을 속이리요' 이렇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사문의 도과를 닦는 것을 정진이라 하고,
대반열반을 친근하여 익힘을 바른 생각이라 하고,
하늘의 행을 따라 익힘을 바른 정이라 하고,
이 정에 편안하게 머물러 옳게 보고 옳게 아는 것을 바른 지혜라 하고,
옳게 보고 옳게 아는 이가 번뇌의 결박을 멀리 여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10주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열반을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편 안히 머물러 구족하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욕심이 적다는 것은 비구가 고요한 데 있어서 단정하게 앉아 눕지 않거나, 나무 밑에 있거나 무덤 곁에 있거나 한데에 있거나 풀밭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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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앉았으며, 걸식하여 먹으면서 얻는 대로 만족하고, 혹은 한 자리에서 먹으면서 한 때만 먹고, 세 가지 가사와 누더기옷과 취의(毳衣)만을 가지면, 이것을 욕심이 적다 하고,
이런 일을 행하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면 만족함을 안다 하고,
공삼매(空三昧)를 닦는 것을 고요하다고 하고,
4과를 얻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마음을 쉬지 아니함을 정진이라 하고,
여래는 항상하여 변함이 없다고 마음을 두어 생각함을 바른 생각이라 하고,
8해탈을 닦음을 바른 정이라 하고,
4무애를 얻는 것을 바른 지혜라 하고,
일곱 가지 누(漏)를 여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열반에는 열 가지 모양이 없다고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나니,
열 가지 모양은 낳는 것 · 늙는 것 · 병나는 것 · 죽는 것 · 빛 · 소리 · 향기 · 맛 · 닿임 · 무상이라, 이 열 가지를 여의는 것을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머물러 구족하면, 불성을 보면서도 분명하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탐욕이 많아서 국왕 · 대신 · 장자 · 찰제리 · 바라문 · 비사 · 수타를 친근하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수다원과나, 내지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하여 이양을 위하며, 가고 서고 앉고 눕거나 내지 대소변을 하다가도 단월을 만나면 공경을 행하거나 상대하여 말을 하여 나쁜 욕심을 파하는 이는 욕심이 적다고 이름하며, 모든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였더라도, 여래의 행하는 곳과 같이 하면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은 바른 생각과 바른 정에 가까워지는 인연이며, 스승이나 함께 공부하는 이의 칭찬을 받으며, 나도 항상 여러 경전에서 이 두 가지 법을 찬탄하였으니, 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는 이는 대반열반과 다섯 가지 낙에 가까워지리니 이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계행을 굳게 지니는 이를 정진이라 하고, 부끄러움이 있는 이를 바른 생각이라 하고, 마음의 모양을 보지 않는 것을 바른 정이라 하고, 모양이 없어져서 번뇌가 끊어짐을 해탈이라 하고, 이러한 대반열반을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편안히 머문다 하나니,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10주 보살은 무슨 눈이길래,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고, 부처님 세존은 무슨 눈이길래 불성 보기를 분명히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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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나니,
선남자여, 혜안(慧眼)으로 보는 까닭으로 분명하지 못하고,
불안(佛眼)으로 보는 까닭으로 분명한 것이며,
보리행을 하는 까닭으로 분명하지 못하고, 행함이 없으므로 분명한 것이며,
10주에 머물렀으므로 보는데도 분명하지 못하고, 머물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므로 분명한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지혜의 인이므로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인과를 끊었으므로 분명하게 보느니라.
온갖 것을 깨달은 것을 불성이라 하거니와, 10주 보살은 온갖 것을 깨달았다 이름할 수 없으므로, 비록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선남자여, 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눈으로 보는 것이요 둘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부처님 세존은 눈으로 불성을 보시므로, 손바닥에 있는 아마륵 열매를 보듯 하고, 10주 보살은 불성을 들어서 보므로 분명치 못하니라.
10주 보살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을 스스로는 알지만,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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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②
"선남자여, 또 눈으로 보는[眼見] 일이 있으니, 부처님 여래와 10주 보살은 불성을 눈으로 보느니라.
또 들어서 보는[聞見] 일이 있으니 모든 중생과 9지 보살들은 불성을 들어서 보느니라.
보살이 만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함을 듣고, 마음에 믿음을 내지 아니하면, 들어서 본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를 보고자 하거든 마땅히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할지니라."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오니, 어떻게 관찰하여야 알게 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진실로 여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거니와, 만일 관찰하여 알고자 하면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하나는 눈으로 보는 것이요 둘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의 몸으로 하는 업을 본다면, 이것이 곧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눈으로 본다 하느니라.
만일 여래의 입으로 하는 업을 본다면, 이것이 곧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들어서 본다 하느니라. 만일 얼굴빛이 모든 중생으로는 같을 수 없는 줄을 본다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음성이 미묘하고 훌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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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의 음성과 같지 않음을 들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의 짓는 신통이 중생을 위함인가 이양을 위함인가 하여, 중생을 위함이요 이양을 위함이 아닌 줄을 보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가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로 중생을 관찰할 때에, 이양을 위하여 말함인가 중생을 위하여 말함인가 하여, 중생을 위함이요 이양을 위함이 아닌 줄을 보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여래가 어떻게 이 몸을 받았으며 무슨 까닭으로 몸을 받았으며 누구를 위하여 몸을 받았는가 하면,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요, 만일 여래가 어떻게 법을 말하며 무슨 까닭으로 법을 말하며 누구를 위하여 법을 말하는가 관찰하면,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몸으로 짓는 나쁜 업으로 나에게 더하여도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입으로 짓는 나쁜 업으로 내게 더하여도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보살이 처음 태어날 적에 시방으로 일곱 걸음씩 다녔고, 마니발타(摩尼跋陀) · 부나발타(富那跋陀) 신장들이 깃발과 일산을 들고 한량없는 세계를 진동하매 금빛이 찬란하게 허공에 가득하였으며, 난타(難陀)용왕과 발난타(跋難陀)용왕이 신통의 힘으로 보살의 몸을 목욕시켰고, 모든 하늘의 형상들이 영접하여 예배하였으며, 아사타(阿私陀) 선인이 합장하여 공경하였고, 청년시절에는 욕락을 버리기를 침뱉듯 하여 세상 향락에 미혹하지 아니하였으며, 출가하여 수도하면서 고요한 데를 좋아하였고, 삿된 소견을 깨뜨리기 위하여 6년 동안 고행하였으며, 여러 중생에게 평등하여 둘이 없었고, 마음은 항상 선정에 있어 애초부터 산란치 아니하였으며, 얼굴과 몸매가 단정하고 그 몸을 장엄하였고, 다니는 곳마다 언덕이나 구렁이 평탄하였으며, 옷은 몸에서 네 치쯤 떨어져 있어도 흘러내리지 아니하고, 다닐 적에는 앞만 보고 좌우로 살피지 아니하며, 음식은 항상 갖춰져 있어 거르는 일이 없고, 앉고 일어나는 곳에는 풀이 요동하거나 어지럽지 아니하며,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일부러 가서 법을 말하되 마음에 교만이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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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보살이 일곱 걸음을 다니면서 말하기를, 이번에 나의 몸은 마지막 몸이라 하였고, 아사타 선인도 합장하고 말하기를 '대왕은 아십시오. 실달 태자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요, 집에 있으면서 전륜왕이 되지 아니하리니, 왜냐 하면 32상과 80종호(種好)가 분명한 까닭입니다.
전륜왕은 상호가 분명치 못하지만 태자의 상호는 매우 분명하시니,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입니다' 하였으며, 늙고 병들고 죽은 것을 보고는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은 참으로 가련하다. 이렇게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므로 함께 따라다니면서도 보지 못하고 항상 괴로움만 행하니 내가 마땅히 끊으리라' 하였고, 아라라(阿羅邏) 5통 선인에게서 무상정(無想定)을 받아 성취하고는 옳지 못함을 말하고, 울다(鬱陀) 선인에게서는 생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정[非有想非無想定]을 받아 성취하고는 열반이 아니고 생사하는 법이라 말하였으며, 6년 동안 고행하고서도 얻은 바가 없어 말하기를 '고행을 하는 일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만일 실지가 있다면 내가 마땅히 얻었을 터인데, 허망한 연고로 얻은 바가 없으니 그것은 삿된 술법이요, 바른 도가 아니라' 하였으며,
성도한 뒤에 범천이 권청하기를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여 감로의 문을 열어 위없는 법을 말씀하소서' 하니, 여래가 말하기를 '범왕이여, 모든 중생들이 번뇌에 가리워져서 내가 말하는 바른 법을 듣지 못하리라' 하였는데,
범천은 다시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 은 세 가지가 있으니, 영리한 근성과 중품 근성과 둔한 근성입니다. 영리한 근성은 받을 수 있사오니 말씀하시옵소서' 하였다.
여래는 말하기를 '범왕이여, 자세히 들으라. 내가 지금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감로문을 열리라' 하고, 바라나국에 나아가 바른 법륜을 운전하여 중도를 말하였느니라. 모든 중생이 여러 가지 결박을 깨뜨리지 아니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한 것이 아니니, 깨뜨린 것도 아니요 깨뜨리지 못한 것도 아니므로 중도라 하느니라.
중생을 제도하지 아니하였으나 제도하지 못한 것이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온갖 것을 이룬 것도 아니요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무릇 말한 것이 있으나 스스로 스승이라 말하지도 않고 제자라 말하지도 아니하므로 중도라 이름하느니라.
말하는 것이 이양을 위함이 아니나 과를 얻지 못함도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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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바른 말이요 진실한 말이요 때에 맞는 말이요 참된 말이며, 말을 헛되이 내지 아니하여 미묘하기가 제일이니, 이런 법을 들어서 본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마음은 실로 볼 수 없거니와,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를 보고자 할진댄 마땅히 이 두 가지 인연을 의지할 것이니라."
이 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앞서 말씀하신 암라 열매는 네 가지 사람에 비유한 것이오니, 어떤 사람은 행은 세밀하나 마음이 정당[正實]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은 세밀하나 행이 정당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도 세밀하고 행도 정당하며, 어떤 사람은 마음이 세밀하지도 못하고 행이 정당하지도 못하나이다. 이 처음의 두 가지를 어떻게 아오리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이 두 인연에 의지하여도 알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암라의 열매를 두 가지 사람에게 비유한 것은 진실로 알기 어려우니라. 알기 어려우므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함께 있어도 모르겠거든 오래 있어야 하며, 오래 있어도 모르겠거든 지혜를 써야 하며, 지혜로도 모르겠거든 깊이 관찰하여야 하나니, 관찰하는 까닭으로 계행을 가짐과 파함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함께 있고 오래 있고 지혜를 쓰고 깊이 관찰하는 네 가지를 구족한 후에야, 계행을 가지고 계행을 파함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계행에 두 가지가 있고 가지는 것도 두 가지니, 하나는 끝까지의 계행이요 다른 하나는 끝까지 아닌 계행이니라.
어떤 사람이 인연이 있어서 계율을 받아 가지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면 이 사람이 가지는 계행이 이양을 위함인지 끝까지 가짐인지를 관찰할지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계율은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끝까지의 계율[究竟戒]이라 이름하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은 비록 나쁜 중생들의 상해함을 받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필경까지 가지는 계행과 끝까지 가지는 계행을 성취하였다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에 한 번은 사리불과 5백 제자들과 함께 마가다국의 첨파(瞻婆)성에 있었다. 그 때에 사냥꾼이 비둘기 한 마리를 따라오는데, 그 비둘기가 무서워서 사리불의 그림자 속에 들어와서도 파초나무처럼 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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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나의 그림자 속에 와서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무서운 마음이 없어졌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끝까지 가지는 계행이어서 그림자까지도 이런 힘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끝까지 아닌 계행으로는 성문이나 연각도 얻지 못하거든,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는가.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이양을 위함이요 하나는 정법(正法)을 위함이니라. 이양을 위하여서 계율을 받아 가지는 것은 그 계행으로는 불성이나 여래를 보지 못할 줄을 알지니, 비록 불성과 여래의 이름을 듣는다 하더라도 들어서 본다고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만일 정법을 위하여 계율을 받아 가지면, 이 계는 불성과 여래를 볼 수 있는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며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려운 것이요, 하나는 뿌리가 얕아서 흔들리기 쉬운 것이니라. 만일 공하고 모양 없고[無相] 원이 없음[無願]을 닦아 익히면, 이를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렵다 하고, 이 3삼매를 닦지 아니하면, 비록 25유(有)를 닦더라도 이는 뿌리가 얕아 흔들리기 쉽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제 몸을 위함이요 둘은 중생을 위함이니라. 중생을 위하는 이는 불성과 여래를 보느니라.
계행을 가지는 사람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제 성품으로 가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함이라. 만일 계를 받은 뒤에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도 잃어버리지 않거나, 나쁜 나라에 나거나 나쁜 친구와 나쁜 때와 나쁜 세상을 만나거나 나쁜 법을 듣거나 나쁜 소견 가진 이와 함께 있을 적에, 계를 받는 법이 없더라도 본래와 같이 계율을 가지고 범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 성품으로 가진다 하느니라.
만일 계사(戒師)를 만나서 네 번 아뢰어 갈마[白四羯磨]한 뒤에 계를 얻는 것은, 비록 계를 얻은 뒤에라도 모름지기 화상이나 승가나 함께 공부하는 동무들의 가르침을 의지하여야 행동할 줄을 알며, 법을 듣고 법을 말하는 데 모든 위의를 갖추나니, 이것은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제 성품으로 가지는 이는 불성과 여래를 눈으로 보는 것이며 또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계율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의 계요 둘은 보살의 계니라.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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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마음을 낼 적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까지를 보살의 계라 하고, 백골을 관하거나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까지를 성문의 계라 하나니,
성문의 계를 받아 지니면, 이 사람은 불성과 여래를 보지 못하는 줄을 알아야 하고,
보살의 계를 받아 지니면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불성과 여래와 열반을 볼 것임을 알지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금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마음으로 뉘우치지 아니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뉘우치지 아니하는가. 낙을 받으려 함이니라. 어찌하여 낙을 받는가. 멀리 여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멀리 여의는가. 편안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편안한가. 선정을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선정에 드는가. 진실하게 알고 보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진실하게 알고 보는가. 생사의 모든 근심을 보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생사의 근심을 보려 하는가. 마음이 탐착하지 않으려 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마음이 탐착하지 않는가. 해탈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해탈을 얻으려 하는가. 위없는 대반열반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대반열반을 얻으려 하는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을 얻으려 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으려 하는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법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얻으려 하는가. 불성을 보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제 성품으로 끝까지 깨끗한 계율을 가지느니라.
선남자여, 계율을 지니는 비구는, 비록 원을 세우고 후회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구하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저절로 얻나니,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그러한 까닭이니라.
비록 낙과 멀리 여읨과 편안함과 진실하게 알고 보는 것과 생사의 근심을 보는 것과 마음이 탐착하지 않음과 해탈과 열반과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과 불성을 보려 함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얻나니,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그러한 까닭이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세존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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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계행을 가짐으로 인하여 후회하지 않는 과를 얻고, 해탈로 인하여 열반의 과를 얻는다면 계행은 인이 없고 열반은 과가 없겠나이다. 계행이 만일 인이 없다면 항상하다 이름할 것이요, 열반이 인이 있으면 이는 무상함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열반은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은 있는 것이니 본래 없던 것이 지금은 있다면 이는 무상한 것입니다.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을 것이며, 열반이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고 즐겁고 깨끗하다 하 오리까?"
"선남자여, 참으로 훌륭하다. 그대는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으므로 여래에게 이러한 깊은 이치를 묻는구나. 선남자여, 본래의 생각을 잃지 않고 이렇게 물음이로다.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겁 전에, 바라나성에 부처님이 나셨으니 이름이 선득(善得)이었다. 그 때에 그 부처님이 3억 년 동안에 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었고, 나는 그대와 더불어 저 부처님 회상에 있으면서 내가 이런 일을 그 부처님께 물었느니라.
그 때에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여서 삼매에 드시고 이 뜻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대사가 능히 이러한 지난 생의 일을 기억하나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에게 말하리라. 계행에도 인이 있으니 바른 법을 들은 것이다. 바른 법을 듣는 것도 인이 있으니 선지식을 가까이 함이다. 선지식을 가까이 함에도 인이 있으니 믿는 마음이 있음이다.
믿는 마음이 있음도 인이 있는데,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법을 들음[聽法]이요 둘은 뜻을 생각함[思性義]이니라.
선남자여, 믿는 마음은 법문 들음을 인하고 법문 들음은 믿는 마음을 인함이니, 이 두 법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니건외도(尼乾外道)들이 틀[拒]을 세워 병(甁)을 드는 것이 인과가 되어 서로 여의지 못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무명의 연(緣)으로 행이 있고 행의 연으로 무명이 있음과 같아서, 무명과 행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내지 생(生)은 능히 법을 내지만 스스로 나지는 못하나니, 스스로 나지 못하므로 생생(生生)을 말미암아 나는 것이며, 생생도 스스로 나지 못하고 생을 의지하여 나느니라. 그러므로 두 생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선남자여, 믿는 마음과 법문을 들음도 그와 같으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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