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이 도다(임제록강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道流야 諸方說有道可修하며 有法可證하나니 儞說證何法修何道오 儞今用處欠少什麽物이며 修補何處오 後生小阿師不會하야 便卽信這般野狐精魅하야 許他說事하야 繫縛他人言道호대 理行相應하고 護惜三業하야사 始得成佛이라하니 如此說者는 如春細雨로다
해석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제방의 선지식들이 말하기를 도를 닦을 것이 있고 법을 깨칠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대들은 무슨 법을 깨치며 무슨 도를 닦는다고 말하는가?
그대들이 지금 쓰고 있는 것에서 무슨 모자람이 있으며, 어떤 점을 닦고 보완한다는 것인가? 못난 후학들이 잘 모르고 이들 여우와 도깨비들을 믿어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까지 얽어매어 말하기를 ‘이치와 행이 서로 부합하고 삼업(三業)을 잘 보호하고 지켜야만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자들은 봄날의 가랑비처럼 많다.”
강설
천 번 만 번 말하지만 제방의 선지식들은 모두들 닦을 것이 있고 증득할 것이 있다고 한다. 요즘 불교를 말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세상이 이처럼 발달하고 불교도 이제 알 만큼 알건만 그래도 한결같이 닦을 것이 있고 증득할 것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곳곳에서 닦는다고들 야단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닦아서 얻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본래로 완전한 것을 다시 닦은들 무엇이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부처가 무슨 조각 작품도 아니고 한 점 한 점 그려가는 그림도 아니다. 과거의 수많은 부처님과 조사들을 살펴보라. 무엇이 달라진 것이 있는가. 본래 그 사람이다.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존재다. 그것은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갖춘 것이고 개개인이 완전무결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끼고 잘 아는 이것 외에 또 무엇이 있는가.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신통묘용이고 무량대복인 것을. 방거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통묘용이 물을 길어오고 땔나무를 해오는 일이라고. 이치와 행이 잘 부합하고 삼업을 잘 보호하여야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저 봄날의 가랑비처럼 많다. 이치와 행이 잘 부합하고 삼업을 잘 보호하여 불에 타지 않던가. 물에 빠지지 않던가. 그것을 부처라고 하는가. 천 번 만 번 외쳐도 더 외쳐야 할 말이다. 그래서 임제 스님은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이금용처 흠소십마(儞今用處 欠少什麽). 너무 좋은 말이다. 길어서 어려우면 ‘흠소십마’만 외우라.
출전 : 임제록강설(著 : 임제스님, 講說 : 무비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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