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52)-5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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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빠지면 부끄러움이 없느니라. 강에 빠지는 사람은 바닥까지 이르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듯이, 번뇌의 강에 빠진 이도 그와 같아서, 밑바닥까지 이르지도 못하고 25유에 두루 돌아다니며 헤매느니라. 밑바닥이라 함은 공한 모양을 말함이니, 만일 공한 모양을 닦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25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모든 중생들도 공하여 모양이 없는 것을 잘 닦지 못하므로, 번뇌의 강에 항상 빠져 있느니라. 강물은 몸만 빠지는 것이요, 모든 선한 법은 빠뜨리지 못하거니와 번뇌의 강은 그렇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의 모든 선한 법을 파괴하느니라.
빨리 흐르는 강물은 욕계의 사람만을 표류케 하지만, 번뇌의 강물은 삼계의 세간 사람, 천상 사람들까지 표류케 하느니라. 세간의 강에서는 손과 발을 움직이면 저 언덕에 이를 수 있지만 번뇌의 강에서는 보살만이 6바라밀을 말미암아서야 건너가는 것이니라.
저 강물을 건나가기 어렵듯이, 번뇌의 강물도 그러하여 건너가기 어려우니, 어찌하여 건너기 어렵다 하는가. 10주(住)에 오른 대보살들도 끝까지 건너가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필경까지 건너가는 것이므로 어렵다는 것이니라. 사람이 강에 빠져서는 조그만 선한 법도 닦을 수 없나니 중생도 그러하여 번뇌의 강에 빠져서는 선한 법을 닦을 수 없느니라. 마치 사람이 강에 빠져서 물에 떠내려가는 것은, 기운 센 사람이면 건져낼 수도 있지만, 번뇌의 강에 빠져서 일천제가 된 사람은 성문 · 연각이나 부처님까지도 건져내지 못하느니라.
이 세상의 강물은 겁이 끝날 때에 일곱 태양이 한꺼번에 뜨면 마르기도 하지만 번뇌의 강물은 그렇지 아니하여, 성문이나 연각이 7각지(覺支)를 닦더라도 말리울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번뇌 보기를 물살 급한 강과 같이 하느니라.
저 사람이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전다라와 친한 척하는 한 사람과 여섯 도둑이 무서워서 빈 마을을 버리고 빨리 가다가, 강가에 이르러서는 초목을 모아 떼를 만들 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4대의 독사와 5음의 전다라와 친한 척하는 탐애와 6입의 빈 마을과 6진의 도둑이 무서워서 번뇌 강에 이르러서는, 계 · 정 · 혜 · 해탈 · 해탈지견과 6바라밀과 37도품(道品)을 닦아서 떼를 만들고, 이 떼를 의지하여 번뇌의 강을 건너서,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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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로서 대반열반을 닦는 이는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이러한 몸과 마음의 고통을 참지 못하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의 강을 건너게 하지 못하리라' 하며, 이렇게 생각하였으므로 비록 몸과 마음의 고통이 있더라도 잠자코 참으며, 참고 견디므로 누(漏)를 내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도 이렇게 모든 누가 없거든, 하물며 부처님께서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부처님들은 누가 있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무루가 아니라 하는가.
여래는 항상 유루 중에 있는 연고며, 유루는 곧 25유니 그러므로 성문이나 범부들은 부처님이 유루라고 말하거니와, 부처님 여래는 참으로 무루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 여래는 결정한 모양[定相]이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4중금(重禁)을 범하거나, 방등경을 비방하거나, 일천제들은 모두 결정된 것이 아니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아뢰었다.
"그러하나이다. 거룩하신 말씀과 같사와 온갖 법은 모두 결정되지 않았으며,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여래께서도 필경의 열반에 들지 아니하심을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닦아서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 가운데는 열반이 있고 대열반이 있다 하셨사온데,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오며, 어떤 것을 대열반이라 하나이까?"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을 찬탄하시었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어떤 보살이든지 생각하는 총지[念摠持]를 얻어서야 그대가 묻는 바와 같이 물으리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바다가 있고 큰 바다가 있으며, 강과 큰 강이 있으며, 산과 큰 산과, 땅과 사람과 대인과 하늘과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과 도(道)와 큰 도가 있다 하나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열반도 있고 대열반도 있느니라.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조금만 먹어도 안락하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병이 나으면 안락하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어떤 사람이 공포를 느끼다가 의지할 데를 얻으면 안락을 얻었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가난하던 사람이 7보를 얻으면 안락을 얻었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사람이 뼈를 보고 탐욕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락을 얻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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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와, 이러한 열반들은 대열반이라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기갈하던 까닭이며 병 있던 까닭이며 공포하던 까닭이며 가난하던 까닭이며 탐욕을 내던 까닭이니, 열반이라 할지언정 대열반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범부나 성문들이 혹 세속을 인하거나 혹 성인의 도를 인하여 욕계의 속박을 끊으면 안락함을 얻나니, 이런 안락은 열반이라 이름할지언정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초선의 속박을 끊거나 내지 비상비비상처의 속박을 끊으면 안락함을 얻나니, 이런 안락은 열반이라 이름할지언정 대열반이라 이름하지는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도로 번뇌를 내거나, 습기(習氣)가 있는 까닭이니라. 어떤 것을 번뇌의 습기라 하는가.
성문이나 연각은 번뇌의 습기가 있나니, 이른바 나의 몸이라, 나의 옷이라, 내가 간다, 내가 온다, 내가 말한다, 내가 듣는다, 여래는 열반에 들었다, 열반의 성품은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다만 항상하고 깨끗함만 있다고 하는 등 이것을 번뇌의 습기라 이름하느니라.
부처와 교법과 스님들은 차별한 모양이 있고, 여래는 필경의 열반에 드시며, 성문이나 연각이나 부처님의 얻는 열반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하나니, 이런 뜻으로 2승의 얻는 열반은 대열반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는 까닭이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야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곳에서 여러 강물을 받아들이는 데가 있으면 큰 바다라고 이름하듯이,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이나 부처님 여래의 들어가시는 데를 대열반이라 이름하나니, 4선정 · 3삼매 · 8배사(背捨) · 8승처(勝處) · 10일체처(一切處) 따위의 한량없는 선한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강이 있는데 첫째가는 향상(香象)으로도 바닥에 닿지 못한다면 큰 강이라 이름하듯이 성문 · 연각이나 10주 보살까지가 불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열반이라 할지언정 대열반은 아닌데, 만일 불성을 분명하게 본다면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대열반은 큰 코끼리왕이라야 바닥을 밟을 수 있나니, 큰 코끼리왕은 부처님을 말함이니라. 선남자여, 마하나가(摩訶那伽)나 발건타(鉢犍陁) 대역사들이 오랜 세월을 걸어도 올라갈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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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큰 산이라 하듯이, 성문 · 연각이나 보살인 마하나가나 대역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라야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소왕(小王)이 있는 데는 작은 성이라 하고, 전륜왕이 있는 데는 큰 성이라 하듯이, 성문이나 연각이 8만 · 6만 · 4만 · 2만 · 1만 겁 동안 머무는 데는 열반이라 하고, 위없는 법주(法主)인 성왕(聖王)의 머무는 데라야 대반열반이라 이름할 수 있나니, 그러므로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네 가지 군대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큰 중생이라 이름하리니, 만일 어떤 중생이 3악도의 번뇌와 나쁜 업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면 이 사람은 대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를 공양하며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경하고 선한 법을 닦으며 말이 진실하여 속이지 아니하며, 나쁜 것을 참고 가난한 이를 도와주면 대장부라 이름하리니, 보살도 그러하여 대자비가 있어 모든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여러 중생을 부모같이 여기며, 생사하는 바다에서 중생들을 건지고, 중생들에게 한결같은 실상의 도를 보여 준다면 그런 이는 대반열반이라 이름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크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음[不可思議]을 말함이니, 만일 헤아릴 수 없어서 중생들이 믿을 수 없으면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며, 부처님이나 보살들만이 보는 것이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대(大)라 하는가. 한량없는 인연으로써 얻을 수 있으므로 대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은 것을 대라 하나니, 열반도 그러하여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는 것이므로 대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다시 대열반이라 이름하는가.
큰 나[大我]가 있으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열반에는 내가 없지만 크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크게 자재하다 하는가. 여덟 가지 자재가 있으므로 나라 하나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한 몸으로 여러 몸을 나타내는데, 몸의 크기가 티끌과 같아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하며, 여래의 몸은 티끌이 아니지만, 자재하므로 티끌 같은 몸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둘째는 한 티끌 같은 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나니, 여래의 몸은 실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것 아니지만 걸림이 없는 까닭이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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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함으로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는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셋째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몸으로 훨훨 날아서 20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세계를 지나가도 장애가 없느니라. 여래의 몸은 가볍고 무거움이 없건만 자재한 연고로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넷째는 자재한 연고로 자재하게 되나니 어떻게 자재한가. 여래는 한 마음이 편안히 머물러 동하지 않지만 변화하여 나타내는 한량없는 종류들로 하여금 제각기 마음이 있게 하며, 여래는 어떤 때에 한 가지 일을 짓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마련하게 하며, 여래의 몸은 언제나 한 세계에 있지만, 다른 세계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나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다섯째는 근(根)이 자재한 까닭이니, 어떤 것을 근이 자재하다 하는가. 여래는 하나의 근으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임을 지각하고 법진(法塵)을 알기도 하거니와, 여래의 여섯 가지 근은 보지도 않고, 듣지도 맡지도 맛보지도 닿임을 지각하지도 법진을 알지 아니하기도 하느니라. 이렇게 자재하는 까닭으로 근으로 하여금 자재케 하나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여섯째는 자재한 까닭으로 온갖 법을 얻거니와, 여래의 마음에는 얻었다는 생각이 없나니, 왜냐 하면 얻은 바가 없는 연고니라. 만일 있는 것이라면 얻었다 이름하려니와 실제로 있는 바와 없는데, 무엇을 얻었다 하겠는가. 만일 여래께서 얻었다는 생각이 있다면, 부처님들이 열반을 얻는다 할 수가 없지만, 얻음이 없으므로 열반을 얻었다 하느니라. 자재함으로써 온갖 법을 얻고, 모든 법을 얻었으므로 큰 나라 이름하느니라.
일곱째는 말씀이 자재하므로, 여래가 한 게송의 뜻을 연설할 때에 한량없는 겁을 지내어도 그 뜻을 다하지 못하나니, 계행이거나 선정이거나 보시거나 지혜 따위니라. 그러나 여래는 조금도 내가 연설하고 저가 듣는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한 게송이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이 네 글귀를 한 게송이라 하므로, 세상을 따라서 게송이라 말하는 것이며, 모든 법의 성품을 말할 곳이 없지만, 자재함으로써 여래가 연설하는 것이며, 연설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여덟째는 여래가 모든 곳에 두루함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허공의 성품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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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는 것처럼 여래도 볼 수 없건만, 자재함으로써 모든 이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자재한 것을 큰 나라 하는 것이요, 이렇게 큰 나를 대열반이라 이름하며, 이런 이치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보배 광에 신기한 보배가 많으며, 온갖 것이 구족한 것을 큰 광이라 하나니, 부처님의 깊은 법장도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기특한 것을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으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끝이 없는 물건을 크다 하나니, 열반이 끝이 없으므로 대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크게 즐거움이 있으므로 대열반이라 하나니, 열반은 즐거움이 없건만 네 가지가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낙이 끊어진 까닭이니, 낙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괴롭다 이름하며, 괴롬이 있으면 큰 즐거움이라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즐거움이 없어졌으므로 괴롬이 없으며, 괴롬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을 큰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열반의 성품은 괴롬도 없고 즐거움도 없나니, 그러므로 열반을 크게 즐거움이라 하는 것이며, 이런 뜻으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낙에 두 가지가 있으니, 범부의 낙과 부처님의 낙이니라. 범부의 낙은 무상하여 파괴되나니, 그러므로 낙이 없고, 부처님께서는 항상 즐거워 변동이 없으므로 크게 즐겁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세 가지 받아들임[受]이 있으니, 괴로움[苦受]과 즐거움[樂受]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受]이니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괴로움이라 하건댄 열반은 비록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과 같지만, 그래도 크게 즐거움이라 하며, 크게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둘째는 크게 고요하므로[大寂靜] 크게 즐겁다 이름하나니, 열반의 성품은 크게 고요하니라. 왜냐 하면 온갖 시끄러움을 멀리 여읜 까닭에 크게 고요하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셋째는 온갖 것을 아는 까닭으로 크게 즐겁다 하나니, 온갖 것을 아는 것이 아니면 크게 즐겁다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께서는 온갖 것을 아시므로 크게 즐겁다 하고, 크게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넷째는 몸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크게 즐겁다 하나니, 몸이 무너진다면 즐겁다 할 수 없거니와, 여래의 몸은 금강과 같아서 무너지지 아니하며, 번뇌의 몸이 아니고 무상한 몸이 아니므로 크게 즐겁다 하며, 크게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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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세간의 이름은 인연이 있기도 하고 인연이 없기도 하니라. 인연이 있다는 것은 저 사리불은 어머니의 이름이 사리니, 어머니로 인하여 이름을 지었으므로 사리불이라 하느니라. 마투라(摩鍮羅) 도인은 마투라국에 났으니 나라로 인하여 이름을 지었으므로 마투라 도인이라 하느니라. 목건련 존자는 목건련이 성이니, 성으로 인하여 이름을 지었으므로 목건련이라 하느니라. 나는 구담(瞿曇)의 문중에 났으니, 성으로 인하여 이름하였으므로 구담이라 하느니라. 비사가(毗舍佉) 도인은 비사가는 별 이름이니, 별로 인하여 이름하였으므로 비사가라 하느니라. 육손이라 함은 손가락이 여섯이므로 육손이라 이름하며, 불노(佛奴) · 천노(天奴)라 함은 부처님을 인하고 하늘을 인하였으므로 불노 · 천노라 하며, 습기를 인하여 났으므로 습생이라 하며, 소리로 인하여서 가가라(迦迦羅) · 구구라(究究羅) · 달달라(呾呾羅)라 이름하였으니, 이런 이름들은 인연이 있는 것이니라.
인연이 없는 이름은 연화 · 땅 · 물 · 불 · 바람·허공 따위니라. 저 만다파(曼陀婆)는 한 이름에 두 가지 실물이 있으니, 전당(殿堂)과 물을 마심이라, 전당도 아니고 물을 마시지도 않았지만, 만다파라 이름지었고, 살바차다(薩婆車多)는 사개(蛇蓋)라 하거니와, 실로는 사개가 아니니 이런 것은 인연이 없이 억지로 이름지은 것이니라. 지라바이(坻羅婆夷)는 기름을 먹는다는 것이니, 실제로 기름을 먹지 않았지만, 억지로 이름을 지어 기름먹이라 하였으니, 이런 이름들은 인연이 없이 억지로 지은 이름들이니라. 선남자여, 대열반도 그와 같아서, 인연이 없는 것을 억지로 이름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을 작은 허공을 인하여 큰 허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열반도 그러하여 작은 것을 인한 것이 아니지만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법을 칭량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을 크다고 하는 것처럼, 열반도 그러하여 칭량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므로 대반열반이라 이름하였느니라. 순전하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하나니, 어떤 것을 순전하게 깨끗하다 하는가. 깨끗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25유는 부정하다 하고 능히 끊은 것을 깨끗하다 하며, 깨끗한 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열반을 유(有)라고도 하나니, 열반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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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지만, 부처님이 세속을 따라서 열반을 유라고 말하였느니라. 마치 세상 사람이 아비가 아닌 이를 아비라 하고 어미가 아닌 이를 어미라 말하여, 실로는 부모가 아니지만 부모라 말하는 것이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세속을 따르므로 부처님에게 대열반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둘은, 업이 청정한 까닭이니, 모든 범부는 업이 청정하지 못하므로 열반이 없거니와, 부처님들은 업이 청정하므로 크게 깨끗하다 하고, 크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셋은 몸이 청정한 까닭이니, 몸이 무상하면 부정하다 하거니와, 여래의 몸은 항상하므로 크게 깨끗하다 하고, 크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넷은 마음이 청정한 까닭이니, 마음에 누(漏)가 있으면 부정하다 하거니와, 부처님 마음은 누가 없으므로 크게 깨끗하다 하고, 크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선남자 선여인이 이렇게 대반열반경을 수행하여 첫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하였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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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2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④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수행하여 둘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하였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서,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얻으며, 예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며,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들으며,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에 이르며, 예전에 알지 못한 것을 아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지금 얻었다 하는가. 그것은 신통이니라. 신통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엣 신통이요, 다른 하나는 바깥 신통이니라.
바깥 신통은 외도와 함께하는 것이요, 안엣 신통은 또 두 가지니, 2승의 신통과 보살의 신통이니라. 보살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여 얻은 신통은 성문이나 벽지불과 함께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성문 · 벽지불과 함께하지 않는다 하는가. 2승이 얻은 신통 변화는 한 마음으로 하나만 짓고 여러 가지를 짓지 못하거니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한 마음에서 다섯 갈래의 몸을 구족하게 나타내느니라. 왜냐 하면 이러한 대반열반경의 세력을 얻은 까닭이니, 이것을 말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을 말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지금 얻었다 하는가. 몸도 자재하고 마음도 자재함이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범부는 몸과 마음이 자재하지 못하여, 혹은 마음이 몸을 따르고, 혹은 몸이 마음을 따르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마음이 몸을 따른다 하는가. 마치 술취한 사람이 술이 몸 안에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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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몸이 동하면 마음도 따라 동하고, 몸이 나태하면 마음도 나태하나니, 이것은 마음이 몸을 따른다 하느니라. 또 어린아이는 몸이 작으므로 마음도 작고, 어른은 몸이 크므로 마음도 큰 것과 같으니라. 또 어떤 사람이 몸이 껄끄러우면 마음으로 항상 기름 따위를 얻어서 부드럽게 하려고 생각하나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몸을 따른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몸이 마음을 따른다 하는가. 가고 오고 앉고 누울 때에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을 수행하는 것이니, 근심하는 사람은 몸이 여위고, 기뻐하는 사람은 몸이 살찌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몸이 떨리고, 전심으로 법을 들으면 몸이 화평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눈물이 흐르나니, 이런 것은 몸이 마음을 따른다 하느니라.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몸이나 마음에 모두 자재하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지금 얻었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나타내는 몸은 티끌과 같나니, 이 티끌 같은 몸으로 한량없고 가없이 항하의 모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세계에 이르러도 조금도 장애되지 않지만, 마음은 항상 일정하여서 변동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또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에 지금 이른다 하나니, 어찌하여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를 지금 이른다 하는가.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들로는 이를 수 없는 데에 보살이 능히 이르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에 지금 이른다 하느니라.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비록 신통이 있더라도 티끌과 같이 몸을 변화하여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세계에 두루 이르지 못하며, 성문이나 연각은 몸이 동할 때에는 마음도 따라 동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마음은 동하지 않더라도 몸이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으므로, 보살은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은 몸을 변화하여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하며, 그렇게 큰 몸으로 한 티끌에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따라서 작아지지 아니하거니와, 성문이나 연각은 비록 몸을 변화하여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하더라도 그렇게 큰 몸으로 티끌 같은 몸에 들어가지 못하나니, 이런 일에도 자재하지 못하거든, 따라서 동하지 않게 하겠는가.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은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 하느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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