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56)-56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551 / 1773] 쪽
니, 능히 이러한 행에 바르게 머무는 것을 선근 · 자량 · 지혜 · 방편의 출요를 성취한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선근이란 것은 이른바 선지식을 즐겁게 하는 것이며, 자량이란 것은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공경히 공양하고 존중하고 이익 되게 하는 것이며, 방편이란 것은 선지식에게 세존의 생각[想]을 내는 것이며, 지혜란 것은 때와 때 아님을 알고서 법을 묻는 것이니, 능히 이러한 행에 바르게 머무는 것을 출요라 하느니라.
다시 선근이라 함은 잘 수순하여 법을 듣는 것이며, 자량이라 함은 받아 지니어 중지하거나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며, 방편이라 함은 들음에 따라 관찰하는 것이며, 지혜라 함은 들은 대로 행하는 것이니, 바르게 이러한 행에 머무는 것을 출요라 하느니라.
다시 선근은 부처님을 만나 즐겨하는 것이며, 자량은 모든 바라밀과 섭법(攝法)과 조도(助道)의 법을 옹호하는 것이며, 방편은 한 자리[一地]로부터 한 자리에 이르는 것이며, 지혜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니, 보살이 능히 이러한 행에 바르게 머문다면, 이것을 선근 · 자량 · 방편 · 지혜의 출요를 성취함이라 하느니라.”
그때 광명장엄 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이 네 글귀의 이치로써 온갖 보살의 행을 총괄하여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온갖 불법을 이 가운데에서 구해야 하겠나이다.”
그때 허공장보살이 범천에게 말하였다.
“한 글귀로도 온갖 불법을 다 포섭하나니, 한 글귀란 것은 이른바 욕심을 여의는 글귀입니다. 왜냐하면 온갖 불법은 욕심을 여읨이니 불법과 같이 일체 법도 또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범천이여, 이것을 한 글귀로써 온갖 불법을 다 거두는 것이라 합니다.
다시 범천이여, 한 공[一空]의 글귀는 온갖 불법을 다 거두고 온갖 불법은 공(空)과 같기 때문에 불법처럼 일체 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범천이여, 이것은 한 글귀로써 온갖 불법을 다 거둠이라 하나니, 이른바 모양[相] 없는 글자, 원(願) 없는 글귀, 조작[作] 없는 글귀, 남[生] 없는 글귀, 일으킴[起] 없는 글
[552 / 1773] 쪽
귀, 진리다운[如] 글귀, 법성(法性)의 글귀, 참다운 짬[眞際]의 글귀, 여의는[離] 글귀, 멸하는[滅] 글귀, 다하는[盡] 글귀, 열반의 글귀도 온갖 불법을 다 거두며 온갖 불법은 열반과 같음이니, 불법처럼 일체 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범천이여, 이것을 한 글귀로써 온갖 불법을 다 거둠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이러한 따위의 글귀는 다 글귀가 아닌 까닭에 온갖 불법도 글귀가 아니면서 가정하여 글귀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범천이여, 욕심은 욕심을 여의는 글귀니, 왜냐하면 욕심을 여의는 성품이 바로 이 욕심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으며, 성냄과 미워함은 이 성냄과 미워함을 여의는 글귀니, 왜냐하면 성냄과 미워함을 여의는 성품이 바로 성내고 미워함인 까닭이며, 어리석음은 이 어리석음을 여의는 글귀니, 왜냐하면 어리석음을 여의는 성품이 바로 어리석음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습니다.
신견(身見)은 이 궁극의 짬[實際]의 글귀니 궁극의 짬의 성품이 바로 신견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으며, 무명은 이 밝은 글귀니 밝은 성품이 바로 무명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으며, 내지 고뇌(苦惱)는 이 고뇌를 여의는 글귀니 고뇌를 여의는 성품이 바로 고뇌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습니다.
색(色)은 이 허공의 글귀니 허공의 성품이 바로 물질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으며, 수 · 상 · 행 · 식은 이 조작 없는 글귀니, 왜냐하면 조작 없는 성품이 바로 식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습니다.
지대(地大)는 이 허공의 글귀니 허공이 바로 이 지대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으며, 수대(水大) · 화대(火大) · 풍대(風大)는 이 법계의 글귀니 법계의 성품이 바로 바람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습니다.
눈은 이 열반의 글귀니 열반의 성품이 바로 눈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으며, 귀 · 코 · 혀 · 몸 · 뜻도 이 열반의 글귀니 열반의 성품이 바로 뜻이기 때문에 온갖 불법도 또한 이 성품과 같습니다.
범천이여, 이것을 한 글귀로써 온갖 불법을 다 거둔다 하나니, 보살은 이러
[553 / 1773] 쪽
한 낱낱의 법문에 들어 온갖 불법을 한 글귀에서 다 압니다.
범천이여, 마치 큰 바다가 뭇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낱낱 글귀 속에 온갖 불법을 거둠도 그와 같으며, 마치 허공이 온갖 색과 모양을 포옹하는 것처럼 낱낱 글귀 속에 온갖 불법을 거둠도 그러합니다. 이러한 온갖 불법은 거두거나 거두지 않거나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간에 끝내 모양[相]을 여의는 까닭에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범천이여, 마치 계리사[算師]가 수를 계산할 적에 숫대를 수판[算籌] 위에 늘어놓지만, 수판 속에는 숫대가 없고 숫대 속에는 수판이 없는 것과 같나니, 왜냐하면 끝내 서로 응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여의게 되는 까닭입니다.
범천이여, 불법이 명수(名數)인 것처럼 일체 법도 곧 명수이니, 왜냐하면 일체 법은 바로 불법으로서, 이 법은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니, 자성(自性)이 공하기 때문에, 자성을 여의기 때문에, 자성은 끝내 성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품 없음은 바로 허공이며, 허공의 성품은 일체의 법성(法性)과 같나니, 이 법성은 나는 모양[生相]도 아니고 멸하는 모양[滅相]도 아니며, 머무는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무는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일체 법을 모양이 없고 모양 아닌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이 같은 한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저 범천 무리[梵衆] 가운데 1만 2천의 범천이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또 옛날 공덕의 뿌리를 심은 5천의 범천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때 모임 가운데에서 보수(寶手)라고 부르는 한 보살이 있다가 허공장보살에게 물었다.
“희유합니다, 선남자야. 일체 법과 여래의 법은 아주 깊어서 측량하기 어렵고 불가사의합니다. 선남자여, 어떤 것을 온갖 불법(佛法)을 편히 하는 근본이라고 합니까?”
허공장보살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보리의 마음이야말로 온갖 불법을 편히 하는 근본이라 하리니, 일체 법은 보리의 마음에 머무는 까닭에 더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수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리의 마음이란 어떤 법에 거두어져, 잃어버리지 않고서 빨리
[554 / 1773] 쪽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이릅니까?”
허공장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리의 마음은 두 가지 법이 거둠이 되어서 잃어버리지 않고 빨리 불퇴전지에 이르는데, 그 두 가지 법은 이른바 순지(淳至)와 필경(畢竟), 이 두 가지 법의 거둠이 되어 잃어버리지 않아서 빨리 불퇴전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보수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두 가지는 몇 가지 법의 거둠이 되는 것입니까?”
허공장이 말하였다.
“이 두 법은 네 가지 법의 거둠이 되나니,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순지라는 것은 속이지[虛詐] 않고 아첨[諂曲]하지 않고 거두는 것이고, 필경이라는 것은 나 없음[無我]과 상진(上進)하여 거두는 것이니, 이것을 두 법이 네 가지 법의 거둠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수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네 법은 또 몇 가지 법의 거둠이 됩니까?”
허공장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네 법은 여덟 가지 법의 거둠이 되나니, 그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속이지 않는 것은 유예(猶豫)하지 않는 것과 바탕[體]이 진정(眞淨)한 것의 거둠이 되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정직함과 바르게 머무는 것[正住]의 거둠이 되고, 나 없음은 물러나지[退沒] 않는 것과 정진하는 것의 거둠이 되고, 상진은 공덕 자량(資糧)과 지혜 자량의 거둠이 되나니, 이것을 네 법이 여덟 가지 법의 거둠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수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여덟 법은 다시 법의 거둠이 됩니까?”
허공장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여덟 법은 다시 열여섯 가지 법의 거둠이 됩니다. 그 열여섯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유예하지 않는 것은 대자대비의 거둠이 되고, 바탕이 진정한 것은 몸 조복[身調]과 마음 조복[心調]의 거둠이 되고, 정직한 것은 인욕(忍辱)과 유화(柔和)의 거둠이 되고, 바르게 머무는 것은 교만 없음
[555 / 1773] 쪽
[無橋慢]과 막히거나 걸림 없음[無滯礙]의 거둠이 되고, 물러나지 않는 것은 견고(堅固)와 힘[力]의 거둠이 되고, 상진하는 것은 하는 일[所作]과 바른 행[正行]의 거둠이 되고, 공덕의 자량은 처음 출발[始發]과 마지막 버리지 않음[究竟不捨]의 거둠이 되고, 지혜의 자량은 많이 듣기를 구함[求多聞]과 들은 것을 사유하는 것[思惟所聞]의 거둠이 되나니, 이것을 열여섯 가지 법의 거둠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보수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열여섯 법은 다시 몇 가지 법의 거둠이 됩니까?”
허공장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열여섯 법은 서른두 가지 법의 거둠이 되는데, 그 서른두 가지란, 이른바 대자는 걸림 없는 마음[無礙心]과 온갖 중생들 마음[一切眾生等心]의 거둠이 되고, 큰 슬픔은 싫어하거나 지침이 없음[無厭惓]과 온갖 중생을 급족시키는 것[給足]의 거둠이 되고, 몸의 조복은 부딪치거나 흔들지 않음[不觸撓]과 가해하지 않는 것[不加害]의 거둠이 되고, 마음의 조복은 선정[定]과 고요함[寂靜]의 거둠이 되고, 인욕은 바른 가르침을 받음[受正教]과 순행(順行)의 거둠이 되고, 유화는 제부끄러움[慚]과 남부끄러움[愧]의 거둠이 되고, 교만이 없음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謙卑]과 예경(禮敬)의 거둠이 되고, 막힘과 걸림이 없음은 더러움이 없음[無垢穢]과 강량하지 않는 것[不强良]의 거둠이 되고, 견고함은 소행을 범하지 않음[不犯所行]과 본원을 성취하는 것[成就本願]의 거둠이 되고, 힘은 바른 뜻에 머묾[住正意]과 흔들리지 않는 것[不掉動]의 거둠이 되고, 하는 일은 말과 같음[如說]과 능행(能行)하는 것의 거둠이 되고, 바른 행은 바르게 발심함[正發]과 바르게 정진하는 것[正進]의 거둠이 되고, 처음 출발은 반드시 이길 것[必勝]과 물러나지 않는 것[不退]의 거둠이 되고, 버리지 않음은 뛰어나기를 즐김[樂勝]과 위로 구하는 것[上求]의 거둠이 되고, 많이 듣기를 구함은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親近善知識]과 선지식을 기쁘게 하는 것[悅可善知識]의 거둠이 되고, 들은 것을 사유하는 것은 지혜[慧]와 잘 관찰하는 것[善觀]의 거둠이 되나니, 선남자여, 이것을 열여섯 법이 서른두 가지 법의 거둠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556 / 1773] 쪽
보수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서른두 가지 법은 또 몇 가지 법의 거둠이 됩니까?”
허공장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이 서른두 법은 예순네 가지 법의 거둠이 되나니, 그 예순네 가지란, 이른바 걸림 없는 마음은 자기를 옹호하는 것[護我]과 저를 옹호하는 것[護彼]의 거둠이 되고, 온갖 중생에게 마음을 평등히 함은 차별 없음[無別異]과 한 맛[一味]의 거둠이 되고, 싫어하거나 지침이 없음은 꿈의 관찰[夢觀] 같음과 생사를 허깨비 같다고 아는 것[生死如幻]의 거둠이 되고, 부지런히 온갖 중생을 급족시킴은 모든 신통(神通)과 방편(方便)의 거둠이 되고, 부딪치거나 흔들리지 않음은 부끄러움[羞恥]과 업보(業報)를 믿는 것의 거둠이 되고, 가해(加害)하지 않는 것은 욕심을 적게 함[少欲]과 만족을 아는 것[知足]의 거둠이 되고, 선정은 번뇌를 내지 않음[無發惱]과 산실하지 않는 것[無散失]의 거둠이 되고, 고요함은 나를 버리는 것[捨吾我]과 내 것을 여의는 것[離我所]의 거둠이 되는 것이오.
바른 가르침을 받음은 법을 구함[求法]과 법을 하고자 하는 것[欲法]의 거둠이 되고, 순행은 공경 존중함[敬重]과 평등하여 피로하거나 지침이 없는 것[平等無疲惓]의 거둠이 되고, 부끄러움은 내심으로 끊는 것[內心斷除]과 바깥으로 행하지 않는 것[外不行]의 거둠이 되고, 제부끄러움은 부처님 지혜를 믿어 즐겨함[信樂佛智]과 가려진 곳에 있어도 나쁜 일을 행하지 않는 것[在屏處不行惡]의 거둠이 되고,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謙卑]은 오만하지 않음[不傲慢]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것[知自下]의 거둠이 되고, 예경은 몸 단정함[身端]과 마음 정직한 것[心直]의 거둠이 되고, 때와 더러움이 없음은 선정을 고요히 함[具靜定]과 지혜를 닦는 것[修智慧]의 거둠이 되고, 강량(强良)하지 않음은 거칠지 않음[不麤獷]과 두 말을 하지 않는 것[不兩舌]의 거둠이 되고, 소행을 범하지 않음은 보리심을 버리지 않음[不捨菩提心]과 도량을 염하는 것[念道場]의 거둠이 되는 것이오.
[557 / 1773] 쪽
보원을 성취함은 마되는 일을 버림[捨魔事]과 부처님 신력을 가지는 것[佛神力持]의 거둠이 되고, 바른 뜻에 머묾은 경솔하고 조급하지 않음[不輕躁]과 어지럽지 않은 것[不掉亂]의 거둠이 되고, 움직이지 않음은 돌산 같음[如石山]과 이전할 수 없는 것[不可移轉]의 거둠이 되고, 말과 같이 함은 착한 업을 지음[所作善業]과 뜨거운 번뇌가 없는 것[無熱惱]의 거둠이 되고, 능행함은 헛되고 속임이 없음[無虛誑]과 귀취를 버리지 않는 것[不捨歸趣]의 거둠이 되는 것이오.
바르게 발심함은 변견을 여읨[離邊見]과 아주 깊은 인연을 순하게 관하는 것[順觀甚深因緣]의 거둠이 되고, 바르게 정진함은 선교(善巧)와 방편(方便)의 거둠이 되고, 반드시 이김은 게으르지 않음[不懈慢]과 용맹(勇猛)의 거둠이 되고, 물러나지 않음은 큰 욕심[大欲]과 증진(增進)의 거둠이 되고, 뛰어나기를 즐겨함은 여래를 보는 것[見如來]과 법을 듣는 것[聞法]의 거둠이 되고, 위로 구함은 모든 자리의 허물과 근심을 버림[捨諸地過患]과 모든 자리의 공덕을 얻는 것[得諸地功德]의 거둠이 되고, 선지식에 친근함은 미워하거나 질투함이 없음[無憎嫉]과 믿고 즐겨하는 것[信樂]의 거둠이 되고, 선지식을 즐겁게 함은 공경하고 수순함[敬順]과 가르침을 거역하지 않는 것[不逆教敕]의 거둠이 되고, 지혜는 덧없는 관[無常觀]과 나 없는 관[無我觀]의 거둠이 되고, 잘 관찰함은 무상을 닦음[修無相]과 열반을 믿지 않는 것[不怙涅槃]의 거둠이 되나니, 선남자여, 이것을 서른두 법이 예순네 가지 법의 거둠이 되는 것이라 하오.”
보수가 다시 물었다.
“이 예순네 법은 또 몇 가지 법의 거둠이 됩니까?”
허공장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이 예순네 법은 백스물여덟 가지 법의 거둠이 되는데, 그 백스물여덟 가지 법이란, 이른바 자기를 옹호함은 온갖 나쁨을 끊음[斷一切惡]과 온갖 선근을 성취하는 것[成就一切善根]의 거둠이 되고, 남을 옹호함은 인욕(忍辱)과 유화(柔和)의 거둠이 되고, 분별이 없음은 마치 물 같은 마음[如水心]과 바람 같은 마음[如風心]의 거둠이 되고, 한 맛은 법계의 관찰[法界觀]과 참다운 진리 관찰[如如觀]의 거둠이 되고, 꿈 관찰과 같음은 이전(移轉)
[558 / 1773] 쪽
없는 관찰[無移轉觀]과 진실 없는 관찰[無真實觀]의 거둠이 됩니다.
허깨비 같음은 적성의 나타내 보임[適性示現]과 자성 없는 관찰[無自性觀]의 거둠이 되고, 모든 신통은 분명한 이치[了義]와 분명한 지혜[了智]의 거둠이 되고, 방편은 큰 슬픔[大悲]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거둠이 되고, 부끄러움은 범죄를 덮어 숨기지 않음[不覆藏所犯]과 허물을 뉘우치는 것[悔過]의 거둠이 되고, 업보 있음을 믿음은 방일하지 않음[不放逸]과 나쁜 길을 두려워하는 것[畏惡趣]의 거둠이 되고, 욕심을 적게 함은 청정한 곳의 제한이 있음[淨處有齊限]과 오래된 더러움을 여의는 것[離宿穢]의 거둠이 되는 것입니다.
만족을 앎은 이칭(易稱)과 이끗[利養]의 거둠이 되고, 번뇌를 내는 것이 없음은 마지막[究竟]과 마지막 짬[究竟邊際]의 거둠이 되고, 산실(散失)함이 없음은 지혜를 얻음[得忍]과 물러나지 않는 자리[不退轉地]의 거둠이 되고, 나를 버림은 나[我身]와 수명(壽命)을 헤아리지 않는 것의 거둠이 되고, 내 것을 여읨은 탐욕이 없음[無貪及]과 어리석음이 없는 것[無愚癡]의 거둠이 되고, 법을 구함은 지혜[智]와 끊음[斷]의 거둠이 되고, 법을 하고자 함은 5욕에 집착하지 않음[不著五欲]과 번뇌를 여의는 것[離煩惱]의 거둠이 되고, 공경 존중함은 세존의 생각[世尊想]과 요구하는 생각[療救想]을 일으키는 것의 거둠이 됩니다.
피로하거나 지침이 없음은 몸이 경쾌함[身輕]과 부지런히 살펴보는 것[翹勤省眼]의 거둠이 되고, 내심(內心)을 끊어버림은 심념처(身念處)와 수념처(受念處)의 거둠이 되고, 바깥을 행하지 않음은 심념처(心念處)와 법념처(法念處)의 거둠이 되고, 부처님 지혜를 믿어 즐겨함은 깊이 공경 존중함[深敬重]과 청정하게 믿는 것[淨信]의 거둠이 되고, 가려진 곳에 있어도 나쁜 것을 행하지 않음은 자신이 증지함[自證知]과 모든 신천(神天)이 증지하는 것[諸神天證知]의 거둠이 되고, 오만하지 않음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음[不自歎譽]과 다른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 것[不譏彼人]의 거둠이 됩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앎은 헛되이 칭찬하지 않음[不自歎]과 자기 공덕을 나타내지 않는 것[譽不譏彼人]의 거둠이 되고, 몸이 단정함은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업을 행하지 않음[不行三不善業]과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不犯禁戒]의 거둠
[559 / 1773] 쪽
이 되고, 마음이 정직함은 항상 자기 허물을 반성함[常省己過]과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것[不說彼短]의 거둠이 되고, 고요한 선정을 갖춤은 마음을 고요히 함[寂靜心]과 번뇌를 없애는 것[滅煩惱]의 거둠이 되고, 지혜를 닦음은 모든 법을 선택함[選擇諸法]과 무아를 아는 것[知無我]의 거둠이 되고, 거칠지 않음은 항상 유익한 일을 행함[常行益事]과 순인하는 것[順忍]의 거둠이 되고, 두 말을 하지 않음은 스스로 권속을 만족히 함[自足眷屬]과 분리되는 자를 화합하게 하는 것[和合別離者]의 거둠이 되고, 보리심을 버리지 않음은 중생을 위함[為眾生]과 부처님 지혜를 위하는 것[為佛智]의 거둠이 됩니다.
도량을 염함은 악마 무리(魔衆)를 파괴함[欲壞於魔眾]과 바른 깨달음(正覺)을 성취하는 것[成正覺]의 거둠이 되고, 마(魔)되는 일을 버림은 바르게 관찰함[正觀]과 보리의 뜻을 버리지 않는 것[不捨菩提志]의 거둠이 되고, 부처님 신력을 가짐은 견고한 행[堅固行]과 착한 순지[善淳至]의 거둠이 되고, 경솔하거나 조급하지 않음은 모든 뿌리를 굳게 옹호함[堅護諸根]과 경계를 버리지 않는 것[不捨境界]의 거둠이 되고, 어지럽지 않음은 괴로움을 관함[觀苦]과 공을 관하는 것[觀空]의 거둠이 됩니다.
돌산과 같음은 높지도 않고[不高] 낮지도 않는 것[不下]의 거둠이 되고, 이전할 수 없음은 애욕을 끊음[斷愛]과 미움을 제거하는 것[除恚]의 거둠이 되고, 착한 업을 지음은 지혜로써 짓는 업[智所作業]과 마되는 일을 버리는 것[捨魔事]의 거둠이 되고, 뜨거운 번뇌가 없음은 깨끗한 계율[淨戒]과 깨끗한 선정[淨定]의 거둠이 되고, 헛되이 속임이 없음은 성실한 말[誠實語]과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不望果報]의 거둠이 됩니다.
귀취(歸趣)를 버리지 않음은 현사(賢士)의 업을 성취함[成就賢士業]과 겁약함을 행하지 않는 것[不行怯弱]의 거둠이 되고, 변견(邊見)을 여읨은 생사 없음을 관함[觀無生]과 패괴하지 않는 관[不敗壞觀]의 거둠이 되고, 아주 깊은 인연을 순관(順觀)함은 인을 관함[觀因]과 연을 관하는 것[觀緣]의 거둠이 되고, 선교(善巧)함은 가장 다툼이 없음[第一無諍競]과 오만하지 않는 것[不驁慢]의 거둠이 되고, 방편은 여의는 방편[離方便]과 생사 없는 방편의 거둠[無生方便]이 되고, 게으르지 않음은 몸의 힘[身力]과 마음의 힘[心力]의 거둠이 되고, 용맹스러움은 뛰어나게 정진하는 마음[勝進心]과 원수와 적을 해
[560 / 1773] 쪽
치지 않는 것[害怨敵]의 거둠이 됩니다. 큰 욕심은 이끗을 구하지 않음[不求利養]과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不愛身命]의 거둠이 되고, 더 나아감은 어리석고 어둠이 없음[愚冥]과 물러나지 않는 것[不退還]의 거둠이 되고, 여래를 봄은 염불을 닦음[修念佛]과 믿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清淨信]의 거둠이 되고, 법을 들음은 강당에 가기를 즐겨함[樂至講所]과 청문하기를 즐겨하는 것[樂請問]의 거둠이 되고, 모든 자리의 허물과 근심을 버림은 산란한 행동을 하지 않음[不散亂行]과 악지식을 멀리하는 것[捨離惡知識]의 거둠이 되고, 모든 자리의 공덕을 얻음은 방편으로 회향함[方便迴向]과 본행을 버리지 않는 것[不捨本行]의 거둠이 되고, 미워하거나 질투함이 없음은 온갖 것을 보시함[能施一切]과 뜻에 맞추어 버리는 것[稱意而捨]의 거둠이 됩니다.
믿어 즐겨함은 행을 더럽힘이 없음[無垢行]과 마음을 흐리지 않게 하는 것[不濁心]의 거둠이 되고, 경순(敬順)함은 세간의 편의를 아는 것[知世宜]과 행을 수순하는 것[隨順行]의 거둠이 되고, 가르침을 거역하지 않음은 깨끗하지 않음을 버림[捨除不淨]과 바른 행을 깨끗이 하는 것[淨正行]의 거둠이 되고, 덧없는 관은 동전하는 관[動轉觀]과 패괴하는 관[敗壞觀]의 거둠이 되고, 나 없는 관은 지음 없음[不得作]과 받는 이 없는 것[不得受者]의 거둠이 됩니다.
무상(無相)을 닦음은 경계를 인연하지 않음[不緣境界]과 깨달아 말할 것을 제거하는 것[除覺所說]의 거둠이 되고, 열반을 믿지 않음은 무명을 제거함[除去無明]과 애착을 끊는 것[斷愛著]의 거둠이 되나니, 선남자여, 이것을 예순네 법이 백스물여덟 가지 법의 거둠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그때 보수보살이 허공장보살로부터 이러한 법문의 분별함을 듣고는 기뻐 뛰며 전에 없던 일을 얻게 되어서 곧 허공장보살에게 말하였다.
“희유합니다, 대사여. 그대는 능히 이같이 빠른 변재와 교묘하게 분별하는 변재를 성취하여 일마다 물음에 따라 다 풀이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그대가 말하는 이치와 문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이러한 방편으로 한 겁이나 또 한 겁이 모자라는 동안에 다할 수 없음을 말하여도 그 변재는 또한 끊임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보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방등대집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집경(58)-580 (0) | 2015.12.10 |
---|---|
대집경(57)-570 (0) | 2015.12.09 |
대집경(55)-550 (0) | 2015.12.07 |
대집경(54)-540 (0) | 2015.12.06 |
대집경(53)-530 (0) | 2015.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