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상함을 알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道流야 儞莫認著箇夢幻伴子하라 遲晩中間에 便歸無常하나니 儞向此世界中하야 覓箇什麽物作解脫고 覓取一口飯喫하고 補毳過時하야 且要訪尋知識이요 莫因循逐樂하라 光陰可惜이니 念念無常하야 麤則被地水火風이요 細則被生住異滅四相所逼이니라 道流야 今時에 且要識取四種無相境하야 免被境擺撲이어다.
해석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은 이 꿈 같고 허깨비 같은 몸뚱이를 잘못 알지 말라. 머지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곧 덧없음(無常, 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은 이 세계 속에서 무엇을 찾아 해탈을 하겠느냐? 그저 밥 한술 찾아먹고 누더기를 꿰매며 시간을 보내는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지식을 찾아 참문(攙問)하는 일이다. 그럭저럭 즐거운 일이나 쫓아 지내지 말라. 시간을 아껴라. 순간순간 덧없이 흘러가서 크게 보면 지 · 수 · 화 · 풍이 흩어지는 것이고, 미세하게는 생 · 주 · 이 · 멸(生住異滅)의 네 가지 변화에 쫓기고 있다.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지수화풍과 생주이멸의 형상 없는 경계를 잘 알아서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강설
삶의 주체는 무엇인가. 이 육신이다. 육신을 근거로 해서 우리들의 삶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육신이란 꿈 같고 허깨비 같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이 육신이다.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병이 나서 사경을 헤매는 경우가 있다. 또는 순식간에 저승의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무상의 문제를 불교처럼 철저하게 말한 종교도 없을 것이다. 불교의 출발이 세존께서 인생무상을 깨닫고 출가하고 고행하고 깨달음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불교가 이 문제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불교적 수행을 하려는 모든 일은 인생무상을 느끼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인생무상을 모르고 세속적 가치에 연연하면서 불교 수행을 한다는 것은 토끼의 뿔을 구하려는 일과 같고 거북의 털을 찾는 일과 같다. 그래서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은 최초일구자(最初一句字)나 향상사(向上事)를 거론하시면서도 인생무상을 자주 강조하신다. 불생불멸을 주로 거량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제행무상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수행자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지식을 찾아가서 불교를 믿고 인생을 묻는 일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새싹이 돋는 것을 보고 봄인가 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가을바람이 스산하다. 앞산에는 물이 들고 나뭇잎도 흩날린다. 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어느새 겨울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 한시 바삐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인생을 묻고 깨달아야 한다. 실로 선지식이란 나의 스승이다. 나에게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선지식이란 나의 안목이다. 나에게 부처님의 허공과 같음을 보여 준다. 선지식이란 항구다. 나에게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연못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선지식이란 어디 있는가.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는 것을 이야기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선지식이 없다. 석가 달마도 없다. 오조 육조도 없다. 황벽 임제도 없다. 원오 대혜도 없다. 그러면 그런 선지식을 어디서 만날 것인가?
3천년 전의 부처님을 우리는 어디서 만나는가. 그가 남긴 가르침에서 만난다. 달마 대사도 그가 남긴 가르침에서 만난다. 오조스님, 육조스님, 황벽스님, 임제스님, 원오스님, 대혜스님도 모두 그들이 남긴 가르침에서 만난다. 그 분들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 계신다. 부처님은 열반을 앞두고 “내가 더 이상 살아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나의 가르침 속에 다 있다. 나의 가르침은 곧 나다. 가르침을 의지하는 것이 곧 나를 의지하는 것이다. 더 이상 나에게서 바라지 말라.”고 하셨다.
출전 : 임제록(著 : 임제스님, 講說 : 무비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임제록 강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행이란 업을 짓는 일이다 (0) | 2015.12.19 |
---|---|
문자에 속지 말라 (0) | 2015.12.12 |
옷 입은 것에 속지 말라 (0) | 2013.12.04 |
무위진인(無位眞人) (0) | 2013.11.10 |
마음은 형상이 없다 (0) | 2013.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