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대반열반경(33)-330

근와(槿瓦) 2015. 12. 5. 19:17

대반열반경(33)-33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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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4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梵行品]①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행[梵行]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무르면 일곱 가지 착한 법에 머물러야 범행을 구족하나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법을 알고, 둘째는 뜻을 알고, 셋째는 때를 알고, 넷째는 만족함을 알고, 다섯째는 스스로 알고, 여섯째는 대중을 알고, 일곱째는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을 아는 것이라 하느냐.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12부경을 알아야 하나니, 수다라[契經] · 기야[重頌] · 수기(授記) · 가타[孤起頌] · 우타나[自說] · 니다나[因綠] · 아바다나[譬喩] · 이제목다가[本事] · 사다가[本生] · 비불략[方廣] · 아부타달마[未曾有] · 우파제사[論議]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수다라경이라 이름하는가. '이렇게 내가 들었다(如是我聞)'에서 '기쁘게 받들어 행하니라(歡喜奉行)'까지의 모든 것을 수다라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기야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나와 너희들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4진제(眞諦)를 실상 그대로 보지 못하고서, 오래도록 생사에 헤매면서 고통 바다에 빠졌으니, 네 가지 이치는 괴로움과 집(集)과 열반과 도이니라. 부처님이 예전에 비구들에게 수다라경을 말하여 마치었는데, 다시 자격이 훌륭한 중생이, 법문을 들으려고 나중에 부처님께신 데 와서 다른 이에게 묻기를 '여래께서 요전에 어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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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였는가'하기에, 부처님이 그 일을 알고 근본경을 의지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멀고 먼 옛적에는 나나 너희나 네 가지 참 이치를 보지 못하고 났다가는 죽고 하는 고통 바다에 오래오래 헤매면서 지내었으니, 네 가지 참 이치를 보았더라면 나고 죽는 뿌리를 끊어 버리어 나는 일이 다하여 없어지고는 다시는 모든 세상 받지 않으리. 이런 것을 기야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수기경이라 이름하는가. 마치 어떤 경이나 계율에서 부처님이 법을 말하다가 천상 사람이나 세간 사람에게 부처님의 수기를 주면서 '너 아일다여, 오는 세상에 양가(蠰佉)라는 왕이 있으리니, 바로 그 세상에서 부처의 도를 이룩하고 이름을 미륵이라 하리라' 하는 것을 수기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가타경이라 이름하는가. 수다라나 계율을 제외하고, 그 밖에 네 글귀 게송을 가리키는 것이니라. 여러 가지 나쁜 짓 짓지도 말고 여러 가지 착한 일 모두 행하라. 자기 마음 스스로 깨끗이 하면 이를 일러 부처님 교라 하느니라. 이런 것을 가타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우다나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께서 저녁나절에 선정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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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하늘 대중들에게 법문을 연설하였는데, 그 때에 비구들이 생각하기를, 여래가 지금은 무엇을 하시는가 하였다. 여래께서는 다음날 아침에 선정에서 일어나 물은 사람이 없지만, 타심통으로 알고 스스로 말씀하기를 '비구들은 알아라. 모든 천인들은 수명이 엄청나게 긴데, 너희 비구들은 남을 위하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탐욕이 없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고요하게 지내는 것이 잘하는 일이니라' 하셨다. 이런 경들은 묻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우다나'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니다나경이라 하는가. 어떤 경이나 게송에서 원인이 되는 근본을 다른 이에게 연설하는 것이니라. 사위성(舍衛城)에 어떤 장부가 그물로 새를 잡아서 새장에 넣어두고 모이와 물을 주다가 도로 놓아주었는데, 세존께서 그 근본과 나중의 인연을 알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작은 악을 업신여겨 죄가 없다 하지 말라. 물방울이 작지만 큰 그릇에 차느니라. 이런 것을 니다나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아바다나경이라 이름하는가. 계율 가운데서 말한 비유와 같은 것을 아바다나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제목다가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라. 내가 세상에 났을 때에 말한 것은 계경(契經)이라 하고, 구루진불(鳩留秦佛)이었을 때에는 감로 북[甘露鼓]이라 하였고,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때에는 법 거울[法鏡]이라 하였고, 가섭불(迦葉佛) 때에는 분별공(分別公)이라 하였느니라' 하는 이런 것을 이제목다가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사다가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이 본래 보살로서 고행을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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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일이니,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라. 내가 지난 세상에서 사슴이 되고 곰이 되고 노루가 되고 토끼가 되고 좁쌀이 흩어진 것처럼 많은 임금이 되고 전륜왕이 되고 용이 되고 금시조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것은 보살의 도를 닦을 적에 받던 몸이다'라고 한다면 이런 것을 사다가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비불략경이라 이름하는가. 대승의 방등경전을 말함이니, 뜻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음이라, 이런 것을 비불략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미증유경이라 이름하는가. 저 보살이 처음 났을 적에 붙들어 주는 이가 없었지만 일곱 걸음을 걸었고, 큰 광명을 놓으며 시방을 두루 보았다느니, 원숭이가 손으로 꿀 그릇을 받들어 여래께 드렸다느니, 목이 흰 강아지가 부처님 곁에서 법을 들었다느니, 마왕 파순이 푸른 소로 변하여 옹기 발우 사이로 다니면서 발우가 서로 부딪치게 하여도 깨어지지 않았다느니, 부처님이 아기 때에 천신의 사당에 들어가매 천신의 동상이 일어나서 예배하던 일 따위를 미증유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우바제사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이 말씀한 경전에서 논란하고 분별하여, 그 모양을 말하는 것을 우바제사경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12부경을 분명히 알면 이것을 법을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뜻을 아는 것이라 하느냐. 보살마하살이 온갖 글자와 말에 대하여 그 뜻을 널리 알면 그것을 뜻을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때를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이 이런 때에는 고요함을 닦을 만하고 이런 때에는 정진을 닦을 만하고 이런 때에는 버리는 선정을 닦을 만하며, 이런 때에는 부처님께 공양할 만하고 이런 때에는 스님께 공양할 만하며, 이런 때에는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을 닦아서 반야바라밀을 구족할 만한 줄을 잘 아는 것을 뜻을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만족함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족함을 안다 함은 음식 · 의복 · 약과, 다니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자고 깨고 말하고 잠잠하는 따위니, 이것을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아는 것이라 하는가. 이 보살이 내게 이런 믿음 · 이런 계행 · 이런 기억 · 이런 버림 · 이런 지혜 · 이런 거래 · 이런 바른 생각 · 이런 선행 · 이런 물음 · 이런 대답이 있음을 아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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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중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이 이러한 이는 찰리(刹利) 대중이며 바라문 대중이며 거사 대중이며 사문 대중들이니, 이 대중에게는 이렇게 가고 오고, 이렇게 앉고 일어나고, 이렇게 법을 연설하고, 이렇게 묻고 대답하여야 할 줄을 하는 것을 대중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사람의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사람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믿는 이요, 다른 하나는 믿지 않는 이니라. 믿는 이는 착하고 믿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아니함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믿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절에 가는 이와 가지 않는 이니라. 가는 이는 착하고 가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절에 가는 이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예배하는 이와 예배하지 않는 이니라. 예배하는 이는 착하고 예배하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예배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으니, 법을 듣는 이와 듣지 않는 이니라. 법을 듣는 이는 착하고 듣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아니한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법을 듣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지성으로 듣는 이와 지성이 없는 이니라. 지성으로 듣는 이는 착하고 지성이 없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지성으로 법을 듣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뜻을 생각하는 이와 생각하지 않는 이니라. 뜻을 생각하는 이는 착하고 뜻을 생각하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뜻을 생각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으니, 말한 대로 행하는 이와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이니라. 말한 대로 행하는 이는 착하고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아니한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말한 대로 행하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을 구하고 모든 괴로움 받는 중생을 이익하여 편안케 하지 못하는 이요, 둘은 위없는 대승으로 회향하여 여러 사람을 이익하고 안락케 하는 이니, 여러 사람을 이익케 하여 안락을 얻게 하는 이가 가장 높고 가장 선한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보배 가운데는 여의주가 가장 훌륭하고, 여러 가지 음식 중에는 감로가 제일이니, 이런 보살은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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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서 비유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일곱 가지 선한 법에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일곱 가지 선한 법에 머물면, 청정한 행을 구족하느니라.또 선남자야, 또 청정한 행이 있으니, 사랑하고[慈] 가엾이 여기고[悲] 기뻐하고[喜] 버리는[捨]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사랑함을 닦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아도 성내는 마음을 끊사옵거늘, 어찌하여 4무량심이라 합니까. 이치로 미루어보면 세 가지가 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랑함에 세 가지 반연함이 있으니, 중생을 반연하는 것과 법을 반연하는 것과 반연함이 없는 것이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 · 기뻐하는 마음 · 버리는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이런 뜻을 따른다면 셋만이 있겠고 넷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중생의 반연은 5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 중생의 반연이요, 법의 반연은 중생들이 필요하는 물건을 보시하여 주는 것이 법의 반연이요, 반연함이 없다 함은 여래를 반연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반연이 없다고 하나이다. 사랑이라 함은 흔히 가난한 중생을 반연하는 것인데, 여래께서는 가난을 영원히 여의고 첫째가는 기쁨을 받으시니, 만일 중생을 반연한다면 부처님께서는 반연하지 않으며, 법도 그러하니, 이런 이치로 여래를 반연하는 것을 반연이 없다고 이름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랑으로 반연하는 모든 중생은 부모 · 처자 · 권속을 반연하는 따위니, 이런 뜻으로 중생의 반연이라 이름하고, 법을 반연함은 부모 · 처자 · 권속을 보지 않고,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는 것이니, 이것을 법의 반연이라 이름하고, 반연이 없다 함은 법의 모습과 중생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이름하오며,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일도 이와 같으니, 셋이 마땅하고 넷은 있을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잘못 보는 행[見行]과 애욕의 행[愛行]이외다. 잘못 보는 행을 하는 사람은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을 많이 닦고, 애욕의 행을 하는 사람은, 기뻐함과 버림을 많이 닦사오니, 그러므로 둘이 마땅하고 넷은 있을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다[無量]함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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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없다는 것이니, 가를 짐작할 수 없으므로 한량없다 하오니, 만일 한량이 없으면 하나라 함이 마땅하고, 넷이라 할 수는 없나이다. 만일 넷이라 하면 어찌 한량이 없으리요. 그러므로 하나가 마땅하고 넷이 있을 수는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부처님 여래가 중생들에게 말씀하는 법은 그 말씀이 비밀하여 분명하게 알기가 어려우니라. 혹은 중생을 위하여 한 인연을 말하나니, 무엇이 한 인연인가. 온갖 함이 있는 법이라 함이니라. 선남자야, 혹은 두 가지를 말하나니, 인과 과이니라. 혹은 셋을 말하나니 번뇌와 업과 괴로움이니라. 혹은 넷을 말하니 무명과 행과 나는 것과 늙어 죽는 것이니라. 혹은 다섯을 말하니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이니라. 혹은 여섯을 말하니 삼세의 인과 과보니라. 혹은 일곱을 말하니 식(識), 명색(名色) · 6입(入) · 촉(觸) · 수(受) · 애(愛) · 취(取)니라. 혹은 여덟을 말하니 12인연에서 무명 · 행 · 생 ·노사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이니라. 혹은 아홉을 말하니 성(城)을 지나던 중에 무명과 행과 식을 빼고 설한 나머지 아홉 가지와 같으니라. 혹은 열한 가지니 살차니건자를 위하여 말할 적에 생(生) 한 법만 빼고 설한 나머지 열한 가지와 같으니라. 혹은 12인연을 구족하게 말하니 왕사성에서 가섭 등을 위하여 열두 가지를 구족하게 말한 것으로 무명으로부터 생 · 노사까지니라. 선남자야, 한 가지 인연에서도 중생들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분별하나니, 한량없는 마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여래의 깊고 비밀한 일에 의심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큰 방편이 있어서 무상을 항상하다 말하고, 항상함을 무상하다 말하며, 즐거움을 괴롭다 말하고, 괴로움을 즐겁다 말하며, 부정함을 깨끗하다 말하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말하며, 나[我]를 내가 없다[無我] 말하고, 내가 없는데 나라 말하며, 중생 아닌데 중생이라 말하고 참말 중생에겐 중생 아니라 말하며, 물건 아닌데 물건이라 말하고, 물건을 물건 아니라 말하며, 진실이 아닌데 진실하다 말하고, 진실한데 진실이 아니라 말하며, 경계가 아닌데 경계라 말하고, 경계를 경계 아니라 말하며, 생(生)이 아닌데 생이라 말하고, 생을 생이 아니라 말하며, 내지 무명을 명(明)이라 말하고,

 

                                                                                                                     [328 / 10007] 쪽

명을 무명이라 말하며, 색을 색 아니라 말하고, 색 아닌 것을 색이라 말하며, 도가 아닌 것을 도라 말하고, 도를 도가 아니라 말하나니, 선남자야, 여래가 이러한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조복함을 어찌 허망하다 하겠는가.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재물을 탐하거든,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몸을 변화하여 전륜왕이 되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가지로 이바지한 뒤에 그를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5욕락을 탐하거든 한량없는 세월에 미묘한 5욕락으로 그 뜻을 만족케 한 뒤에, 그를 권유하고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영화와 귀함을 누리려 하거든,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 사람의 하인이 되어 심부름하고 모시면서 그의 마음에 들게 한 뒤에, 권유하고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성질이 사나워서 다른 이의 간함을 필요하게 되면, 내가 백천 년 동안에 그를 타이르고 달래어서 마음이 조복된 뒤에 다시 권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이와 같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는 것을 어찌 허망하다 하겠느냐. 부처님 여래는 가지가지 나쁜 것 가운데 있더라도 물들지 아니함이 연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렇게 4무량심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한량없는 마음의 성품이 넷이 있으니, 이것을 닦아 행하면 대범천에 태어나느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한량없는 마음의 짝이 네 가지가 있으므로 넷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내는 일을 끊고, 기뻐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즐겁지 아니함을 끊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내고 성내는 중생을 끊나니,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넷이라 이름하고, 하나나 둘이나 셋이라고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사랑으로 성내는 일을 끊고, 가엾이 여김도 그렇다 하여, 셋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이제부터 그런 문난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하나는 채찍질하는 것이니라. 사랑을 닦으면 생명 빼앗는

 

                                                                                                                    [329 / 10007] 쪽

일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으면 채찍질하는 일을 끊나니, 선남자야, 그런 이치로 보면 넷이 아니겠느냐.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을 성내는 것과 중생 아닌 것을 성내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에게 성내는 일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 아닌 것에 성내는 일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인연이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인연이 없는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 있는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 없는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난 세상에서 오래부터 익힌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지금 세상에서 금방 익힌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나간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금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인을 성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범부를 성내는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인을 성내는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범부를 성내는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상품이요, 다른 하나는 중품인데, 사랑을 닦으면 상품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으면 중품을 끊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넷이라 이름하거늘, 어찌하여 셋이 마땅하고 넷이 아니라고 힐난하겠느냐. 그러므로 가섭이여, 이 한량없는 마음을 짝으로 상대하여 분별하면 넷이 되고, 또 근기로 말하여도 넷이 되나니, 근기에 사랑함이 있으면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은 있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넷이 마땅하고 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행으로 분별하여도 넷이 있어야 하나니, 만일 사랑을 행할 때에는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이 없으므로 넷이 있느니라. 선남자야, 한량이 없는 것으로도 넷이라 이름하느니라. 한량없는 마음에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은 있으나 자재함이 아니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자재는 하나 반연이 아니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도 있으며 자재도 하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도 아니며 자재도 아니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은 있으나 자재가 아니라 하는가.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을 반연하면서도 자재한 삼매를 얻지 못하거나, 얻더라도 확고하지 못하여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

 

                                                                                                                     [330 / 10007] 쪽

을 자재는 하지만 반연이 아니라 하는가. 부모 · 형제 · 자매를 반연하여 안락을 얻게 하려는 것들은 한량없는 마음의 반연이 아니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도 있고 자재도 하다고 하는가. 부처님과 보살들을 말하는 것이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도 아니고 자재도 아니라 하는가. 성문과 연각은 한량없는 중생을 반연하지도 못하고 자재도 아니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4무량심은 성문이나 연각들의 알 것이 아니고, 부처님 여래의 경계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네 가지는 성문이나 연각은 한량없다고 이름하지만 너무 적어서 말할 것이 못되는 것이요 부처님과 보살만은 한량없고 갓이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나이다. 참으로 거룩한 말씀과 같아서, 여래의 가지신 경계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것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사랑하는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얻더라도 큰 사랑과 큰 가엾이 여김이 아닐 수 있겠나이까?" "있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일 중생들 가운데 3품으로 분별하면 첫째는 친한 이, 둘째는 원수, 셋째는 중간 사람이다. 친한 이를 또 3품으로 나누면 상품 · 중품 · 하품이며 원수도 그러하니라. 이 보살마하살이 상품의 친한 이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고, 중품 · 하품의 친한 이에게도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상품의 원수에게는 조그만 낙을 주고, 중품의 원수에게는 중품 낙을 주고, 하품의 원수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며, 보살이 이렇게 점점 더 닦아서 상품의 원수에게 중품 낙을 주고, 중품 · 하품의 원수에게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더 점점 닦아서 상품 · 중품 · 하품에게 평등하게 상품 낙을 주나니, 만일 상품의 원수에게 상품 낙을 주면, 그 때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그 때에는 부모와 상품의 원수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어 차별이 없으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얻었다 하거니와, 큰 사랑하는 마음은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이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얻은 것을, 오히려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야, 성취하기 어려우므로 큰 사랑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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