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47)-470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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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이 깨끗하므로 보리도 깨끗하고
도(道)가 깨끗하므로 온갖 것이 깨끗하네.
나[我]와 내 것[我所]이란 생각 없고
애욕과 모든 소견을 여의고
저[彼]와 나[我]의 모양을 버리어
보시하는 마음 허공과 같으며,
모든 생각을 여의어 보시하되
갚음을 바라는 마음 없고
질투심의 맺힘을 버려서
보시하는 마음 허공과 같네.
허공은 색(色)이 아니어서 의지함도 없고
수(受)와 상(想)의 분별이 없고
행(行)과 식(識)도 없어서
보시할 때의 마음도 그러하며,
허공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고
처음이고 끝이고 다함없는 것처럼
법 보시의 다함이 없음을 알아서
온갖 중생을 이익하게 하며,
허깨비가 서로 보시하되
보시의 갚음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슬기로운 자의 보시도 그러하여
끝까지 갚음을 바라지 않으며
지혜로써 번뇌의 습기를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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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으로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서
번뇌와 중생을 보지 않나니
이러한 보시는 허공과 같네.
몸은 거울 속 모습 같다 알고
음성은 메아리와 같다고 알고
마음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법 성품은 허공 같다고 알아서,
훌륭한 보리를 버리지 않아
2승(乘)을 구하지 않고
과거의 여러 부처님께
항상 공경하여 계율을 옹호하며,
본원(本願)을 버리지 않으므로
나아가는 모든 것에 있어서
본원을 잘 성취하여
뜻을 거두고 청정한 계율을 옹호하네.
허공은 아무 바람이 없고
뜨거운 고뇌와 높고 낮음이 없고
흐림도 없고 변함도 없는 것처럼
계율을 깨끗이 하는 자도 그러하며,
허공은 온갖 것을 용납하고
물 속의 달은 계율을 지니지 않는 것처럼
계율을 옹호하는 자도 그러하므로
청정한 계율은 허공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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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구타와 성냄 따위를
인욕의 힘으로 미워하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의 소견 없음은
두 가지 생각을 여의기 때문이며,
안[內]이 순수하고 지극히 청정하므로
바깥의 행도 청정하며
순수하고 지극한 까닭에 미움이 없어서
참된 법에 따라 참으며,
모든 소견을 여의어 인욕을 닦고
깨달음을 버리고서 생각을 여의고
원도 없고 바람도 없이
모든 행의 취함을 버리며,
애욕 없음 허공과 같아
희론하지 않고 원한 품지 않고
희론 없고 갚음을 구하지 않으며
번뇌 없는 참음도 그러하네.
인욕 없고 욕설하는 자도 없어
사람들의 음성 메아리와 같아서
이 덧없음[無常]이 아니라고 하는
이것은 희론이 없으며,
남[彼]은 어리석고 나는 슬기롭다거나
생김[生] 없는 데 생김 보이나니
비록 이와 같이 분별은 하지만
오히려 무생인(無生忍)을 닦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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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사라(娑羅)나무 가지를 잘라도
다른 가지는 분별하지 않는 것처럼
몸뚱이를 잘라도 분별이 없나니
이 같은 참음의 청정 허공과 같으며,
부지런히 닦아도 의지하는 곳 없고
부처님을 공양하여도 부처님의 생각 없고
법을 지녀도 문자에 집착 않고
중생을 제도하여도 중생의 모습 없으며,
몸이 깨끗하므로 법신(法身)이 깨끗하고
입이 깨끗하므로 말함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므로 의행(意行)이 없어서
모든 바라밀을 원만히 갖추며,
조보리법(助菩提法)을 갖추어
허공처럼 국토를 깨끗이 하고
변재[辯] 다라니를 성취하여
이러한 부처님 법을 구하네.
허공이 게으름 없음을 받아들이고
능히 총림(叢林)을 낳으며
두루 이르러도 모습이나 색이 없는 것처럼
그의 정진도 허공과 같으며,
언제나 청정하기 허공과 같아서
처음도 없고 끝도 없나니
사람의 정진 또한 그러하므로
처음도 없고 마지막 성취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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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기관이 장치된 나무 인형이
하는 일에 분별없는 것처럼
본원을 행하는 자 두 가지 생각 없나니
그의 정진 허공과 같네.
그칠 줄 알고 안 마음[內心]에 머물러
바깥 경계의 마음을 거두고
내 마음·남의 마음 다 평등하므로
마음 없는[無心] 선정에 의지하며,
일체 법 성품 언제나 공하므로
번뇌 없는 지혜로 그것을 알고
음(陰)·계(界)·입(入)에 의지하지 않고
또 삼계(三界)에 의지하지 않으며,
3세(世)에도 의지하지 않고
도과(道果)에도 의지하지 않아도
허공처럼 항상 의지함이 없으매
선정을 닦는 자 또한 그러하네.
허공은 애욕·소견·교만이 없으므로
선정을 닦는 자 또한 그와 같고
허공은 물러나고 파괴하고 변함이 없으므로
선정을 닦는 자 또한 그와 같네.
평등과 고요와 해탈
지혜로운 자는 경계를 반연하지 않고
번뇌 없고 선정도 없나니
그러므로 선정은 허공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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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끗하므로 중생 깨끗하고
지혜가 깨끗하므로 식별도 깨끗하고
이치가 깨끗하므로 문자 깨끗하고
법이 깨끗하므로 경계도 깨끗하네.
착하지 않음과 습기 끊고
모든 착함을 닦는 보살[大士]은
연생법[緣生] 있음을 아니니
생겨남 없으므로 멸함에 집착하지 않네.
온갖 문자를 잘 분별하고
덧없고 괴로운 법을 말하며
업보 받음을 나타내 보이고
더러운 법과 깨끗한 법을 말하네.
법 성품이 항상 깨끗함을 알아
3세의 법까지 헤아리고
허공은 행과 행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지혜의 행 없음도 그러하며,
허공은 파괴할 수 없어서
나[我]·남[人]·수명[壽]이란 것 없고
물질도 아니고 물질 아닌 것도 아닌 것처럼
두 변[二邊]의 소견을 끊어버리며,
거짓 글귀에 물들지 않음을 아나니
변하지 않는 글귀·진실한 글귀
만족한 글귀·통달한 글귀
이치와 지혜를 깨닫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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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글귀·흔들리지 않는 글귀·굳은 글귀
금강 글귀·제도하는 글귀·청정한 글귀
밝은 글귀·다하는 글귀·다함이 없는 글귀
함이 없는 글귀·허공 같은 글귀,
머묾 없는 글귀·소굴이 없는 글귀·식별 없는 글귀
항복 없는 글귀·형체 없는 글귀·슬기로운 글귀
끊음[斷]과 원인[集]과 멸함[滅]과 길[道]의 글귀
법(法)과 깨달음[覺]과 지혜의 글귀니라.
메아리가 소리 따라 응하는 것처럼
다함이 없는 변재 또한 그러하여
설법하여도 의지하는 곳 없으므로
이 지혜 청정하기 허공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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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등대집경 제15권
북량 천축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8. 허공장보살품 ②
부처님께서 다시 허공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공덕 행하기를 허공의 평등함처럼 한다 하는가. 보살은 한량없는 부처님법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음을 들었기 때문에 살바야(薩婆若:一切智)의 마음을 내어서 생각하느니라.
‘살바야가 한량없는 것처럼 부처님도 한량없고 자재로이 깨달음도 한량없으며, 이러한 한량없음 속에서 한량없는 욕망으로 정진하여 방일하지 않는 행을 내고, 불도를 위하는 까닭에 마땅히 한량없는 보살의 행할 법을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 부처님이 한량없는 공덕으로써 몸을 장엄하였기 때문에 나도 그와 같이 몸을 장엄하기 위하여 마땅히 한량없는 착한 근기를 성취할 것이며, 여러 부처님이 한량없는 공덕으로써 입을 장엄하고 뜻을 장엄하고 도량을 장엄하고 불토를 장엄하였기 때문에, 나도 마땅히 입·뜻과 도량·불토를 장엄하도록 한량없는 착한 근기를 성취할 것이며, 내가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야 함은 착한 근기를 성취하기 때문이니, 착한 근기를 성취하려는 때문에 싫어하거나 게으르지 않을 것이며, 여러 부처님 세존은 한량없는 국토와 한량없는 지혜와 한량없는 신통을 지니셨는데 저 중생들은 한량없는 행과 한량없는 마음과 한량없는 근기의 차별이 있어서, 나고 죽음 속에 한량없는 고뇌(苦惱)를 받고 여러 번뇌를 일으키니 내가 한량없는 부처님 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량없는 중생들의 행과 근기와 나고 죽음 따위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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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버리려는 때문에 한량없는 착한 근기를 성취하리라.’
보살은 이렇게 바르게 관찰하는 마음으로써 공덕을 지으므로 그 공덕이 여러 바라밀과 서로 응하고 4섭법(攝法)과도 응하며, 4무량심(無量心)과 서로 응하고 37조보리(助菩提)의 법과도 응하여, 중생으로서 바른 법을 받아 지니게 하고 여러 부처님 세존을 공손히 공양하고 또 보살의 행과 서로 응하는 법을 청정하게 성취하느니라.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이 허공과 같으며, 중생의 성품 한량없고 부처님 지혜 한량없고 법계가 한량없기 때문에, 그 닦음이 한량없기도 허공과 같으니라.
중생의 성품과 부처님 지혜와 법계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서 온갖 중생이 다 이익을 받게 되므로, 보살이 짓는 공덕도 이와 같아서 이르는 곳마다 중생을 이익하게 하나니, 그것은 의지하거나 집착함이 없고 서원과 방편의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보살이 능히 이러한 공덕을 행하므로 허공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행하는 지혜가 허공 같다 하는가. 보살은 선지식(善知識)을 따라서 법을 듣고는 잘 따라서 생각하며, 온갖 하는 일이 끝내 방일하지 않아서 조그마한 경계의 생각[想]을 닦아 한량없는 생각을 받고 한량없는 생각을 닦아 이러한 지혜의 밝음을 얻으며, 이 지혜의 밝음을 얻고는 5음(陰)의 방편지혜·열여덟 가지 경계의 방편지혜·6입(入)의 방편지혜·4제(諦)의 방편지혜·12인연의 방편지혜를 얻으며, 중생의 때(垢)를 알고 때의 성품도 알며, 중생의 청정함을 알고 청정한 성품도 아느니라.
이른바 중생은 물론 마음을 알고 여실히 물든 마음 있고 물든 마음 없음을 알며, 여실히 물든 마음 없고 성내는 마음 있음을 알며, 여실히 성내는 마음 있고 성내는 마음 없음을 알며, 여실히 성내는 마음 없고 어리석은 마음 있음을 알며, 여실히 어리석은 마음 있고 어리석은 마음 없음을 알며, 여실히 어리석은 마음 없고 온갖 번뇌의 마음 있음을 알며, 여실히 온갖 번뇌의 마음 있고 온갖 번뇌의 마음 없음을 알며, 여실히 온갖 번뇌의 마음 없음을 아느니라. 저 보살은 더러운[垢] 마음 있는 것을 비열하다[卑] 하고 더러운 마음 없는 것을 훌륭하다고 보지 않나니, 왜냐하면 보살은 두 가지 아닌 성품인 청정한 법문의 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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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성품처럼 나의 성품도 그러하고, 내 성품처럼 나 없음[無我]의 성품도 그러하고, 무아의 성품처럼 모든 법도 그러함은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일체 법의 성품이 청정에 들어간다면 느끼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 더럽고 깨끗함을 구하지 않고 또 문자와 모상을 보지 않으며, 또 모든 법을 장애하는 덮개·둘레나 장애하지 않는 덮개·둘레를 보지 않나니, 보살은 한량없는 경계를 생각하여 마음과 식별의 두 법을 여의므로 이것을 지혜라 하고 식별이라 하지 않느니라. 마치 허공이 마음·뜻·식별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마음과 뜻과 식별을 여의어서 모든 법의 성품이 허공 같음을 아나니, 지혜의 행이 걸림 없어서 모든 걸림을 벗어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이 행하는 지혜가 허공 같다고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진리[如]를 여의지 않아서 여래가 허락하는 불을 염하는 것[念佛]을 성취한다 하는가. 보살이 아란야처(阿練若處)에 있거나 나무 아래에 있거나 넓은 벌판에 있거나 한데에 있거나 선정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능히 마음을 거두어 여러 인연에 집착하지 않으며, 마음을 산란케 하지 않음으로써 염하는 것을 잘 거두고 행(行)과 모습[相]으로써 여래의 32상․80종호 성취함을 관하여 그 몸을 장엄하매 낱낱 상모를 취하고, 자기 몸을 성취하기 위하여 마음을 온갖 지혜의 경지[一切智地]에 두어 여래의 몸에서 목걸이 그물[鬘網]의 광명 놓는 것을 억념(憶念)하느니라.
보살은 해탈을 얻음으로써 여래의 몸이 1유순 2·3·4·5·백 유순, 또는 백 유순을 지나기까지 가득함을 보며, 해탈을 얻었기에 도량에 앉았음을 보고 법바퀴 굴림을 보고 갖가지 위의를 나타내 설법하여서 중생을 조복함을 보며, 또는 한 부처님 세계에서 불사를 베풀거나, 다섯 부처님 세계, 혹은 열·스물·서른·마흔·쉰·백 부처님 세계에서 불사를 베풀거나, 내지 백 천 한량없는 세계에서 불사 베푸는 것을 보며, 해탈을 얻어 스스로 보기를 뜻대로 하고, 법을 듣거나 여러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고 시종하거나 다른 거동을 뜻에 따라 자재롭게 보느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여래의 육신[色身]을 보고 나서 부처님 공덕을 억념하고 계율[戒]을 관하기도 하고 선정[定]이나 지혜[慧]를 관하기도 하며, 해탈(解.........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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