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

523-17-화엄-62

근와(槿瓦) 2015. 11. 18. 13:37

523-17-화엄-62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대방광불화엄경 제17권

우전국 삼장 살차난타 한역

이운허 번역

 

16. 범행품(梵行品)

 

이 때 정념천자(正念天子)가 법혜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시여, 온 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물든 옷을 입고 출가하였으면, 어떻게 하여야 범행(梵行)이 청정하게 되오며, 보살의 지위로부터 위없는 보리의 도에 이르리이까?”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범행을 닦을 때에는 마땅히 열 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고 뜻을 내어 관찰하여야 하나니, 이른바 몸과 몸의 업과 말과 말의 업과 뜻과 뜻의 업과 부처님과 교법과 승단과 계율이니라. 마땅히 관찰하기를 몸이 범행인가, 내지 계율이 범행인가 할 것이니라.

 

만일 몸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선하지 않은 것이며 법답지 않은 것이며 흐린 것이며 냄새 나는 것이며 부정한 것이며 싫은 것이며 어기는 것이며 잡되고 물든 것이며 송장이며 벌레 무더기인 줄을 알 것이니라.

 

만일 몸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가는 것 · 머무는 것 · 앉는 것 · 눕는 것 · 왼쪽으로 돌아보는 것 · 오른쪽으로 돌아보는 것 · 구부리는 것 · 펴는 것 · 숙이는 것 · 우러르는 것이니라.

 

만일 말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음성 · 숨 · 가슴 · 혀 · 목구멍 · 입술 · 뱉고 삼킴 · 들고 놓음 · 고저(高低) ·청탁(淸濁)일 것이니라.

 

                                                                                                                                                               [515 / 2062] 쪽

만일 말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안부를 묻거나 대강 말하고 자세히 말하고 비유로 말하고 직설(直說)하고 칭찬하고 헐뜯고 방편으로 말하고[安立說] 세속을 따라 말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리라.

 

만일 뜻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깨달음[覺]이며 관찰이며 분별이며 가지가지 분별이며 기억함이며 가지가지 기억함이며 생각함이며 가지가지 생각함이며 요술이며 꿈이리라.

 

만일 뜻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생각함[思]이며 생각[想]이며 추위며 더위이며 주림이며 목마름이며 괴로움이며 즐거움이며 근심이며 기쁨이리라.

 

만일 부처님이 범행이라면, 색온(色蘊)이 부처인가 수온(受蘊)이 부처인가 상온(想蘊)이 부처인가 행온(行蘊)이 부처인가 식온(識蘊)이 부처인가 상(相)이 부처인가 호(好)가 부처인가 신통이 부처인가 업행(業行)이 부처인가 과보가 부처인가.

 

만일 교법이 범행이라면, 적멸(寂滅)이 법인가 순종치 않음이 법인가 얻을 바 없음이 법인가 열반이 법인가 나지 않음이 법인가 일어나지 않음이 법인가 말할 수 없음이 법인가 분별 없음이 법인가 행할 바 없음이 법인가 모이지 않음이 법인가.

 

순종치 않음이 법인가 얻을 바 없음이 법인가 열반이 법인가 나지 않음이 법인가 일어나지 않음이 법인가 말할 수 없음이 법인가 분별 없음이 법인가 행할 바 없음이 법인가 모이지 않음이 법인가.

 

만일 승가가 범행이라면, 예류향(豫流向)이 승가인가 예류과가 승가인가 일래향(一來向)이 승가인가 일래과가 승가인가 불환향(不還向)이 승가인가 불환과가 승가인가 아라한향(阿羅漢向)이 승가인가 아라한과가 승가인가 삼명(三明)이 승가인가 육신통[六通]이 승가인가.

 

만일 계율이 범행이라면, 계단[壇場]이 계율인가 청정한가 묻는 것이 계율인가 위의를 가르침이 계율인가 갈마를 세 번 말함이 계율인가 화상이 계율인가 아사리가 계율인가 머리 깎는 것이 계율인가 가사 입는 것이 계율인가 걸식함이 계율인가 정명(正命)이 계율인가.

 

이렇게 관찰하면, 몸에 취할 것이 없고 닦는 데 집착할 것이 없고 법에

 

                                                                                                                                                                [516 / 2062] 쪽

머물 것이 없으며, 과거는 이미 멸하였고 미래는 이르지 못하였고 현재는 고요하며,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을 이도 없으며, 이 세상은 이동하지 않고 저 세상은 바뀌지 아니하느니라.

 

이 가운데 어느 법이 범행인가, 범행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의 소유며 자체는 무엇이며 누구로 말미암아 지었는가. 이것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색인가 색이 아닌가, 수인가 수가 아닌가, 상인가 상이 아닌가, 행인가 행이 아닌가, 식인가 식이 아닌가.

 

이렇게 관찰하면, 범행이란 법은 얻을 수 없는 연고며, 삼세의 법이 다 공적한 연고며, 뜻에 집착이 없는 연고며, 마음에 장애가 없는 연고며, 행할 것이 둘이 없는 연고며, 방편이 자재한 연고며, 모양 없는 법을 받아들이는 연고며, 모양 없는 법을 관찰하는 연고며, 부처님 법이 평등함을 아는 연고며, 온갖 부처님 법을 갖춘 연고로 이렇게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느니라.

 

다시 열 가지 법을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는 지혜, 지난 세상 · 지금 세상 · 오는 세상의 업과 과보를 아는 지혜, 모든 선정 해탈 삼매를 아는 지혜, 모든 근성의 승(勝)하고 열(劣)함을 아는 지혜, 가지가지 이해를 아는 지혜, 가지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 온갖 곳에 이르는 길을 아는 지혜, 천안통이 걸림없는 지혜, 숙명통이 걸림없는 지혜, 습기(習氣)를 영원히 끊는 지혜니, 여래의 십력을 낱낱이 관찰하며, 낱낱 힘에 한량없는 뜻이 있는 것을 마땅히 물어야 하느니라.

 

둘은 뒤에는 크게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나니, 중생을 관찰하여 버리지 아니하며, 모든 법을 생각하여 쉬지 아니하며, 위없는 업을 행하고도 과보를 구하지 말며, 경계가 요술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변화와 같음을 분명히 알지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렇게 관행(觀行)함으로 더불어 서로 응하면, 모든 법에 두 가지 이해를 내지 아니하여 온갖 부처님 법이 빨리 앞에 나타날 것이며, 처음 발심할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온갖 법이 곧 마음의 성품임을 알 것이며,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다른 이를 말미암아 깨닫지 아니하리라.”

 

                                                                                                                                                                 [517 / 2062] 쪽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그 때 제석천왕이 법혜보살에게 여쭈었다.

“불자시여,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나이까?”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이 이치가 깊고 깊어서 말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고 믿고 이해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통달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그대에게 말하리라.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모든 즐길거리로써 동방의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한 겁 동안 공양하고 그런 뒤에 가르쳐서 오계(五戒)를 깨끗이 갖게 하며,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또 이와 같이 하였다면,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제석천왕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것이옵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측량할 이가 없겠나이다.”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견주어 보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렇게 억분의 일, 백억분의 일, 천억분 · 백천억분 · 나유타 억분 · 백 나유타 억분 · 천 나유타 억분 · 백천 나유타 억분 · 수분(數分) · 가라분(歌羅分) · 산분(算分) · 유분(諭分) · 우파니사타분(優波尼沙陀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차치하고, 가령 어떤 사람이 온갖 즐길거리로써 시방의 열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백 겁 동안 공양하고, 그런 뒤에 가르쳐서 십선도(十善道)를 닦게 하고, 이렇게 천 겁 동안 공양한 뒤에 사선(四

 

                                                                                                                                                                 [518 / 2062] 쪽

禪)에 머물게 하고, 백천 겁을 지낸 뒤에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머물게 하고, 억 겁을 지낸 뒤에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머물게 하고, 백억 겁을 지낸 뒤에 수다원과(須陀洹果)에 머물게 하고, 천억 겁을 지낸 뒤에 사다함과(斯陀含果)에 머물게 하고, 백천억 겁을 지낸 뒤에 아나함과(阿那含果)에 머물게 하고, 나유타억 겁을 지낸 뒤에 아라한과(阿羅漢果)에 머물게 하고, 백천 나유타억 겁을 지낸 뒤에 가르쳐서 벽지불도(辟支佛道)에 머물게 하였다면,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제석천왕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우파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할 때에 다만 온갖 즐길거리로써 시방의 열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기를, 백 겁 동안이나 내지 백천 나유타억 겁 동안을 지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가르쳐서 오계와 십선업도를 닦게 하거나, 사선 · 사무량심 · 사무색정에 머물게 하거나, 수다원과 · 사다함과 · 아나함과 · 아라한과 · 벽지불도를 얻게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고, 여래의 종성(種姓)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이룸과 무너짐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의 때 묻고 깨끗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성품이 청정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 나는 것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의 근성과 방편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의 마음과 행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의 삼세의 지혜를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부처님의 경계가 평등함을 알기 위한 연고로 위없는 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으로 아승기 세계를 능히 지나가는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519 / 2062] 쪽

끝나도록 하였다면, 이 여러 세계는 그 끝간데를 찾을 수 없느니라.

 

또 둘째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지나간 세계를 능히 지나가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또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고, 차례차례로 더하고 더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으며,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불자여, 이 시방 가운데 모두 백 사람이 있어서 낱낱이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세계를 지나갔다면, 이 모든 세계는 오히려 끝간데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서 얻은 선근은 그 끝간데를 알 사람이 없으리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 지나간 것만을 알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기로 제한한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를 분명히 알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니, 이른바 묘(妙)한 세계가 곧 추(麤)한 세계요 추한 세계가 곧 묘한 세계며, 잦힌[仰] 세계가 곧 엎은[覆] 세계요, 엎은 세계가 곧 잦힌 세계며, 작은 세계가 곧 큰 세계요 큰 세계가 곧 작은 세계며, 넓은 세계가 곧 좁은 세계요 좁은 세계가 곧 넓은 세계며, 한 세계가 곧 말할 수 없는 세계요 말할 수 없는 세계가 곧 한 세계며, 말할 수 없는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가고 한 세계가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며, 더러운 세계가 곧 깨끗한 세계요 깨끗한 세계가 곧 더러운 세계임을 알고자 하며, 한 터럭 끝 가운데가 일체 세계의 차별한 성품이요 일체 세계 가운데가 한 터럭 끝의 한 성품임을 알고자 하며, 한 세계 가운데서 일체 세계를 내는 것을 알고자 하며, 일체 세계가 자체의 성품이 없음을 알고자 하며, 잠깐 동안 마음으로 모든 광대한 세계를 다 알아서 장애가 없고자 하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에 있는 아승기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를 능히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한다면, 이 모든 겁의 수효를 끝 간 데까지 능히 알 수가 없으리라. 또 둘째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의 아승기 겁 동안에 안 겁의 수효를 능히 알며, 이와 같이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고,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또한 이와 같았

 

                                                                                                                                                                [520 / 2062] 쪽

느니라.

 

불자여, 이러한 시방의 아승기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는 그 끝간데까지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 낸 공덕과 선근은 끝간데까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의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만을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로 제한한 것이 아니고, 일체 세계의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을 모두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이른바 긴 겁이 짧은 겁과 평등하고 짧은 겁이 긴 겁과 평등하며, 한 겁이 무수한 겁과 평등하고 무수한 겁이 한 겁과 평등하며, 부처님 있는 겁이 부처님 없는 겁과 평등하고, 부처님 없는 겁이 부처님 있는 겁과 평등하며, 한 부처님 겁 가운데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이 있고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겁 가운데 한 부처님이 있으며, 한량 있는 겁이 한량없는 겁과 평등하고 한량없는 겁이 한량 있는 겁과 평등하며, 다함 있는 겁이 다함 없는 겁과 평등하고 다함 없는 겁이 다함 있는 겁과 평등하며, 말할 수 없는 겁이 한 찰나와 평등하고 한 찰나가 말할 수 없는 겁과 평등하며, 일체 겁이 겁 아닌 데 들어가고 겁 아닌 것이 일체 겁에 들어가는 것을 알기 위함이며, 잠깐 동안에 앞 세상 뒤 세상과 지금 세상의 일체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을 죄다 알고자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처음 발심하고 큰 서원으로 장엄하여 일체의 겁을 분명히 아는 신통한 지혜라 하느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차별한 이해를 능히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고, 또 둘째 사람은 한 생각 동안에 앞의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아는 중생들의 여러 가지 차별한 이해를 능히 알아서, 이와 같이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으며, 이렇게 차례차례로 그렇게 하여 열째 사람에 이르렀고,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역시 그러하였다면, 불자여, 이 시방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지혜를 끝까지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공덕과 선근은 그 끝간데까지를 알 수 없느니라.

 

                                                                                                                                                                [521 / 2062] 쪽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은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이해를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고,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이해를 모두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이른바 일체 차별한 이해의 그지없음을 알려는 연고며, 한 중생의 이해가 무수한 중생의 이해와 평등함을 알려는 연고며, 말할 수 없이 차별한 이해를 아는 방편 지혜 광명을 얻으려는 연고며, 중생들의 제각기 차별한 이해를 죄다 알아서 남음이 없으려는 연고며, 과거 · 현재 · 미래의 선하고 선하지 못한 가지가지 한량없는 이해를 죄다 알려는 연고며, 비슷한 이해와 비슷하지 아니한 이해를 모두 알려는 연고며, 일체 이해가 곧 한 이해요 한 이해가 곧 일체 이해임을 모두 알려는 연고며, 여래의 이해하는 힘을 얻으려는 연고니라.

 

또 위가 있는 이해와 위가 없는 이해와 남음이 있는 이해와 남음이 없는 이해와 평등한 이해와 평등치 아니한 이해의 차별함을 모두 알려는 연고며, 또 의지 있는 이해와 의지 없는 이해와 함께하는 이해와 함께하지 않는 이해와 끝 있는 이해와 끝없는 이해와 차별 있는 이해와 차별 없는 이해와 선한 이해와 선하지 못한 이해와 세간의 이해와 출세간의 이해가 차별한 것을 죄다 알려는 연고며, 또 일체의 묘한 이해 · 큰 이해 · 한량없는 이해 · 정위(正位)의 이해 가운데서 여래 해탈의 걸림없는 지혜를 얻으려는 연고며, 또 한량없는 방편으로 시방의 일체 중생계에 있는 낱낱 중생의 깨끗한 이해 · 물든 이해 · 자세한 이해 · 간략한 이해 · 세밀한 이해 · 거친 이해를 죄다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또 깊고 비밀한 이해 · 방편의 이해 · 분별한 이해 · 자연의 이해 · 인(因)을 따라 일어나는 이해 · 연(緣)을 따라 일어나는 이해를 죄다 알아서 일체 이해의 그물을 끝까지 다하여 남음이 없게 하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의 근성이 차별함을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러하여 아승기 겁을 지내었고, 또 둘째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생각생각마다 아는 모든 근성의 차별함을 알며, 이렇게 하여

 

                                                                                                                                                              [522 / 2062] 쪽

내지 열째 사람에 이르렀고,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불자여, 이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근성이 차별함을 끝까지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공덕과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 사람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 중생들의 근성을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일체 세계 가운데 있는 일체 중생의 근성이 가지가지로 차별한 것을 모두 알기 위한 것이며, 더 말하면 내지 일체 근성의 그물을 죄다 알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욕망을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고, 차례로 이렇게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으며,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이 시방 중생들이 가진 욕망은 그 끝간데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공덕과 선근은 그 끝간데를 능히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욕망을 알기 위한 것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니,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욕망을 죄다 알려는 연고며, 자세히 말하면 일체의 욕망 그물을 모두 알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방편을 알며, 이렇게 모두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고,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이 시방 중생들의 가지가지 방편을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공덕과 선근은 그 끝간데를 알 사람이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523 / 2062] 쪽

가지가지 방편을 모두 알기 위한 것이며, 자세히 말하면 내지 일체의 방편 그물을 죄다 알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마음을 능히 알며, 널리 말하여 내지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마음은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공덕과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온 법계 허공계의 끝없는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을 모두 알기 위하며, 내지 일체의 마음 그물을 죄다 알기 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업을 능히 알며, 자세히 말하여 내지 시방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업은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업을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삼세 일체 중생들의 업을 모두 알기 위하여, 내지 일체 업의 그물을 죄다 알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번뇌를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한다면, 이 모든 번뇌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것을 그 끝까지 능히 알 사람이 없고, 둘째 사람은 한 생각 동안에 앞엣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아는 바 중생의 번뇌가 차별한 것을 능히 알고, 이와 같이 하여 다시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며, 차례차례로 이와 같이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되, 남방 · 서방 ·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 하방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불자여, 이 시방 중생의 번뇌가 차별한 것은 그 끝간데를 안다 하더라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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