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측(圓測)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613~696) 신라 승려. 이름은 文雅, 원측은 字, 신라의 왕족. 어려서 출가하여 당나라에 가서 법을 배우다. 성품이 총명하여 수천만의 말이라도 한 번 들으면 잊지 아니하였다. 한문 · 범어의 음과 뜻에 능통. 당나라 태종 때에 元法寺에서 毘曇論 · 成實論 · 俱舍論 등을 읽었고, 고금의 章疏를 모르는 것이 없었음.
현장스님이 규기를 위하여 유식론을 강할 적에 몸을 숨기고 몰래 듣고, 현장이 강의를 마칠 무렵에 스님은 벌써 서명사에서 유식을 강의하였다. 현장이 규기에게 유가론을 강할 때에도 또 그와 같이하여 서명사의 대덕이 되다. 唯識論疏를 지어 규기의 唯識述記를 반박, 당 고종 말에 인도의 地婆訶羅가 당나라 서울에 와서 密嚴經을 번역할 때 대덕 5명중 수석으로 참여하다.
또 대승현식경 등을 번역할 적에는 證義가 되다. 당나라의 佛授記寺에서 나이 84세에 입적하다. 문도들이 스님의 사리를 모아 종남산 풍덕사에 탑을 세우다. 스님은 항상 당나라에 있었고 본국에 돌아오지 아니한 듯하나, 삼국유사의 효소왕조에는「원측법사가 해동의 고덕이지만 모량리 사람인 탓으로 승적을 주지 않았다」고 하다. 혹시 본국에 왔다 갔는지 또 다른 사람인지 미상이다. 중국 협서성 서안부 함령현 반천의 북원 흥교사에 스님의 탑이 있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