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3-입능가경-9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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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와 끈과 인공(人功)과 손과 나무와 방편의 힘에 의하여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대혜여, 여래 세존도 또한 그와 같이 저 법이 나라고 함이 없고, 모든 분별하는 모양이 없는데서 지혜와 교묘한 방편으로 여래장(如來藏)이라 말하며, 혹은 무아(無我)를 말하기도 하며, 혹은 실제와 열반 등의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를 말하여 알려 주는 것이 그 질그릇을 만드는 이가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그러므로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장은 외도가 말한 내가 있다는 것과 같지 않은 것이다.
대혜여, 내가 여래장을 말한 것은 외도의 나라고 함에 집착함을 위한 것이니, 그들을 포섭하기 위하여 여래장을 말하여 저 외도들로 하여금 신아(神我)가 있다고 하는 허망한 견해와 마음에 집착한 곳을 벗어나고, 삼해탈(三解脫)의 문에 들게 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부처님 · 여래 · 응공 · 정변지는 여래장을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한 여래장이 있다는 것은 외도의 신아(神我)가 있다고 집착한 것과 다르다. 그러므로 대혜여, 모든 외도의 삿된 견해를 버리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여래의 나라고 함이 없는 법을 닦아 배울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과 나, 그리고 5음(陰)과
뭇 인연과 또한 작은 티끌과
자성(自性)이 스스로 지은 것으로
오직 마음의 허망한 분별일세.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은 미래의 모든 중생을 관찰하고서 또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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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을 위하여 진실한 수행법[如實修行法]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 여러 보살들이 진실한 수행법(修行法)을 듣는다면 곧 참다운 수행자가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 가지 법이 있어야만 큰 참다운 수행자라 할 것이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제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요, 둘째는 생각이 발생하며 머물고 멸하는 것을 멀리 떠나는 것이요, 셋째는 바깥 법의 있음과 없음을 잘 아는 것이요, 넷째는 속 몸으로 증득한 지혜를 좋아하여 닦는 것이니 대혜여, 보살이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참다운 큰 수행자라 할 것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알아 관찰함인가? 삼계(三界)가 다만 한 마음[一心]으로 지은 것이며, 나와 내 것을 떠난 것이며, 움직임도 없고 지각(知覺)함도 없으며, 취하고 버리는 것을 떠났으며, 끝없는 예로부터 삼계의 훈습함과 희론의 마음에 허망하게 잡착한 것이며, 여러 가지 색(色)과 행(行)에 항상 묶인 것이며,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 가운데 6도(道)가 허망하게 나타난 것들을 관찰함이니 대혜여, 이를 보살마하살이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
대혜여, 어떤 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생각이 발생하고 머물며 멸하는 것을 멀리 떠난다고 하는가? 모든 법이 환상과 같고 꿈 같은 것이며, 모든 법의 자타(自他) 두 가지가 없는 것이며, 생하지 않지만 자기 마음에서 나타나는 지견(知見)을 따르는 것이며, 바깥 법이 없는 것이며, 여러 식(識)이 일어나지 않고 모든 인연의 모임이 없는 것을 관(觀)하는 것이며, 삼계가 인연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이며, 안과 바깥의 모든 법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음은 실체가 없기 때문인 것이며, 모든 법이 있다고 하는 바르지 못한 견해를 멀리 떠난 것이다. 모든 법이 환(幻)의 모양과 같은 데에 들어가는 것이니, 보살이 그 때 초지(初地)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것이고, 심(心) · 의(意) · 식(識)과 5법의 체상(體相)을 멀리 떠나며, 두 가지 무아(無我)와 뜻과 같은 몸[如意身]을 얻고, 제8 부동지(不動地)의 뜻과 같은 몸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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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뜻에 따라 빨리 갈 수 있으며 생각하는 대로 곧 이르고, 걸리는 것이 없으므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한다. 대혜여, 뜻과 같다고 말한 것은 석벽(石壁)과 산에 막히기를 한량없는 백천만억 유순(由旬)이라도 본래 보았던 여러 가지 경계를 생각만 한다면 자기 마음속에서 장애물에 구애될 것 없이 자재(自在)롭게 갈 수 있는 것이다.
대혜여, 뜻과 같은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환(如幻)삼매의 자재한 신통력을 얻어 그 몸을 장엄하고 모든 거룩한 지혜의 종류에 나아가는 몸이기 때문에 걸림 없이 뜻을 따라 가지만, 본원력(本願力)의 경계를 생각하므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교화하니, 대혜여, 이를 보살마하살이 발생하며 머물고 멸하는 모양을 멀리 떠난 것이라 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바깥 법의 있음과 없음의 모양을 잘 아는 것인가? 보살은 모든 법이 아지랑이 같고 꿈 같고 털 바퀴 같으며, 끝없이 오면서 여러 가지 희론 분별과 망상 훈습에 집착된 것이며, 일체법이 체상(體相)이 없는 것임을 보고서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증득함을 구하여 수행한다.
대혜여, 이를 보살의 바깥 법의 있음과 없음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 이가 곧 큰 여실수행(如實修行)을 성취한 자이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이와 같이 닦고 배워야 한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일체법 인연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와 여러 보살들이 모든 법 인연의 모양을 잘 안다면 있음과 없음의 바르지 못한 견해와 망상으로 모든 법을 분별하여 차례로 생긴 허물과 일시에 생긴 허물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법이 두 가지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 있으니, 이른바 안[內]과 바깥[外]이다.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은 이른바 진흙덩이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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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바퀴와 줄과 사람의 공력과 방편의 인연으로 병(甁)이 생긴 것이다.
대혜여, 진흙덩이 등의 인연으로서 병이 생기는 것과 같이 실[絲]로 짠 것과 초석(草席)과 짜는 틀을 끼움과 젖의 즙과 인공(人功)으로 타락[酪]이 생기고, 타락이 생기고는 수(酥 : 연유)가 생기고, 수가 생기고는 제호(醍醐)를 얻는 것이다.
대혜여, 이를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함이니, 밑에서부터 위에 이르러도 그러한 것을 응당 알 것이다.
대혜여, 무엇이 안의 법 인연으로 모인 모양인가? 대혜여, 이른바 무명(無明)과 업(業)과 애착[愛]의 이러한 법들을 안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하니 대혜여, 무명 등과 음(陰) · 계(界) · 입(入) 등으로 인한 것임을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이름함이니, 여러 범부들은 그를 허망하게 분별하여 여러 가지 다른 모양[別相]으로 본다.
대혜여, 인연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인가? 첫째는 당인(當因 :자체인 원인을 말함)이요, 둘째는 상속인(相續因)이요, 셋째는 상인(相因 : 자체에서 움직이는 모양인 원인)이요, 넷째는 작인(作因)이요, 다섯째는 요인(了因)이요, 여섯째는 상대인(相對因)이다.
대혜여, 당인이란 것은 인연을 지으면 능히 안과 바깥 법을 만드는 것이다. 대혜여, 상속인은 안과 바깥의 법과 음(陰)의 종자 등을 능히 반연하는 것이다. 대혜여, 상인은 능히 상속(相續)을 내고 차례로 일을 지으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대혜여, 작인은 능히 증상(增上)하는 인(因)을 짓는 것이 전륜왕(轉輪王)과 같은 것이다. 대혜여, 요인은 일이 생기는 것을 허망하게 생각하고서 능히 나타내 보이는 것이 등불이 색상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혜여, 상대인은 그 없어질 때엔 허망하게 생긴 법이 보이지 않고 상속(相續)하는 일이 끊어지는 것이다.
대혜여, 이러한 모든 법은 범부들이 자심(自心)에서 허망하게 분별함이다.
대혜여, 이 모든 법은 차례로 생긴 것이 아니요, 일시에 생긴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만약 일체법이 일시에 생긴 것이라면 원인과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니, 인과의 자기 모양을 볼 수 없을 것이요, 만약 차례로 생긴 것이라면 자기 모양을 얻을 수 없음에 차례로 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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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는데 아버지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자기 마음에서 차제(次第)와 상속(相續)이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여 말하기를, '인연(因緣)과 차제연(次第緣)과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들이 능히 모든 법을 낸다'라고 하니 대혜여, 이러한 차제로서는 모든 법이 생기지 않는다.
대혜여, 이는 허망한 분별로서 법체상(法體相)을 취한 것이니, 일시와 차례로도 모두 생겨진 것이 아니다.
대혜여, 이는 자심(自心)에서 몸과 살림살이가 나타나 보인 까닭이다.
대혜여,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과 바깥 법은 없는 법이니, 그러므로 차례와 일시에 생겨진 것이 아니다.
대혜여, 다만 허망한 식(識)이 자심의 견해를 낸 것이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인연으로 생겨진 일들이 차제와 일시에 생긴 법이라고 하여 올바르지 못하게 보는 것을 떠나야 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인연법도 없어 생하지 않나니
생하지 않으므로 멸하지 않고,
생멸(生滅)과 인연이 모두 허망하여
생도 아니며 멸도 아니네.
모든 인연을 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이가 허망하게 취(取)하기 때문이며,
있고 없는 연(緣)은 생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함이 아니다.
그는 삼계(三界)에서 훈습한
미혹의 마음 때문이니,
인연이란 본래 없으며
생도 멸도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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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유위법(有爲法)을
석녀(石女)와 허공 꽃으로 보아
능취(能取) · 소취(所取)를 떠나면
허망한 견해는 나지 않으리라.
나타나는 것은 본래부터
모두 생(生)함이 아니며,
인연인 연기법(緣起法)도
본래부터 있는 것 아니니,
이러한 모든 법들은
자체(自體)가 공(空)한 것이며
또한 머무를 곳도 없건만
세간에서 있다고 말함이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언어상(言語相)을 분별함이라고 말하는 심법문(心法門)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와 여러 보살들이 언어상을 분별함이라 말하는 심법문을 얻어 잘 알게 되면, 곧 말과 뜻의 두 가지 법에 통달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을 것이며, 보리(菩提)를 얻고는 말과 뜻으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한 알음을 얻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할 것이다."
대혜보살은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 가지 허망한 모양인 언어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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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언설(相言說)이요, 둘째는 몽언설(夢言說)이요, 셋째는 망집언설(妄執言說)이요, 넷째는 무시언설(無始言說)이다.
대혜여, 상언설이란 것은 이른바 색(色) 등의 모든 모양에 집착하므로 생기는 것이다.
대혜여, 몽언설이란 것은 본래 수용(受用)하던 허망한 경계를 기억하고서 경계에 의거하여 꿈을 꾼다. 꿈을 깨고는 허망한 경계에 의거하여 진실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대혜여, 집착언설이란 것은 본래 듣는 것과 짓는 업을 생각하여 생긴 것이다.
대혜여, 무시언설이란 것은 끝없는 예로부터 희론번뇌와 종자훈습에 집착하여 생긴 것이다.
대혜여, 내가 말하던 네 가지 말인 허망한 집착을 이미 모두 말하였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은 또 다시 이 뜻을 부처님께 청하여 여쭈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네 가지 허망하게 언어(言語)의 상(相)에 집착하는 것을 거듭 말씀해 주십시오. 중생의 언어는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이며, 어떻게 출현하며, 무슨 원인으로 나오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머리와 가슴과 목구멍과 코와 입술과 혀와 어금니와 이로부터 구르기 때문에, 화합하여 소리가 나는 것이다."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입 속의 언어가 허망한 법상(法相)과 다른 것입니까? 다르지 않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언어는 허망한 법상과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아니한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저 허망한 법상으로 인하여 언어가 나는 까닭이다.
대혜여, 만약 언어가 그와 다르다면 마땅히 원인이 없이 생겨야 한다.
대혜여, 만약 그와 다르지 않다면 언어는 능히 눈앞에 나타나는 경계를 말로 표현할 수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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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그러나 저 언어는 눈앞에 나타나는 경계를 능히 표현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혜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입니까? 언어로서 설명하는 것이 제일의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언어가 바로 제일의가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제일의로 하여금 언어를 수순(隨順)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가게 함이니, 그러므로 언어로서 제일의를 설명함이 있을 뿐이요,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는 아니다.
대혜여, 제일의는 거룩한 지혜로 깊이 증득할 바요, 언어의 법은 아닌 것이다. 이는 지혜의 경계이니, 언어로서는 그 경계를 알릴 뿐이다.
대혜여, 제일의를 설명하는 언어도 생멸(生滅)의 법이니,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않고 인연으로 화합하여 언어가 생긴 것이다.
대혜여, 인연으로 화합한 그것은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자기 모양[自相]과 다른 모양[他相]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언어로는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한다.
대혜여, 자심에서 바깥의 있고 없는 법들을 보고 분별함을 따르기에 제일의를 능히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여러 가지 언어로 허망하게 분별하는 상을 떠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허망하여
진실한 자체가 없으니,
그러므로 여러 가지 말로서
있다 없다 말하지 못하리라.
공함과 또한 공함이 아님을
범부는 잘 알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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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은 자체상이 없으며
중생이라 말함도 또한 그러하네.
있다 없다 분별하는 법은
마치 꿈과 환상 같으니,
일체법을 관찰하여 열반에도
세간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리.
왕과 장자(長者)들이
여러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진흙으로 만든 짐승들을 먼저 주고
진실한 것을 다음에 주듯이
나도 여러 불자를 기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법과 자체 법이며
거울 모양과 같은 것들을 말하고서
뒤에 실제(實際)를 설명하노라.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세존께서 여러 보살과 저를 위하여 있는 것과 없는 것, 같음과 다름, 갖춤[俱]과 갖추지 않은 것[不俱], 있음과 없음, 있음이 아니고 없음이 아닌 것[非有非無], 항상됨[常]과 항상됨이 없는 것[無常]을 떠난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은 모든 외도가 행하지 못할 바이며, 거룩한 지혜로서 스스로 증득한 깨달음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며,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을 떠난 것이며, 제일의(第一義)의 참다운 법성(法性)에 드는 것이며, 모든 지위가 차례대로 최상으로 청정하게 되는 것이며,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며,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하여 여의주(如意珠)와 같이 한량없는 경계와 수행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며, 일체법에서 자심(自心)으로 차별상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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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저와 일체 보살들은 이와 같이 망상으로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고, 일체 중생에게 편안함과 좋은 것들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만족하게 할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대혜여, 그대는 모든 천인(天人)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안락과 이익이 많게 하려고 능히 나에게 이러한 뜻을 묻는구나.
훌륭하고 훌륭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겠노라."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는 오직 이 마음으로 보여진 것을 능히 깨닫지 못하고 밖으로 여러 가지 법상(法相)에 집착하여 참으로 있는 것으로 여기니, 그러므로 허망하게 같음과 다름, 갖춤과 갖추지 않은 것, 있음과 없음, 있음이 아니고 없음이 아닌 것, 항상됨과 항상됨이 없는 것들을 분별하니, 그는 자심의 훈습으로 인한 것이며,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에 의지한 것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뭇 짐승들이 목마름에 시달려 아지랑이를 보고 마음이 착란하여 그를 물이라 생각하고 동서로 헤매면서 물이 아님을 알지 못함과 같다.
대혜여, 이와 같이 범부들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생(生) · 주(住) · 멸(滅)의 법을 보고 잘 분별하지 못한 것은 끝없는 예로부터 허망하게 희론(戱論)에 훈습되고,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집착하여 미혹한 마음으로 시달려서 여러 가지 모든 색경계(色境界)를 좋아하여 구함이니, 그러므로 범부들이 같음과 다름, 갖춤과 갖추지 않은 것, 있음과 없음, 있음이 아니고 없음이 아닌 것, 항상됨과 항상됨이 없는 것들에 떨어진다.
대혜여, 비유컨대 범부가 건달바(乾達婆)의 성(城)을 보고 진짜 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끝없는 예로부터 허망하게 성이라고 분별하는 생각의 종자와 훈습으로 인하여 보는 것과 같으니 대혜여, 저 성은 성이 아니며, 성 아닌 것도 아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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