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禪은 善인가 選인가

근와(槿瓦) 2015. 10. 7. 00:50

禪은 善인가 選인가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일본 경제부흥의 교훈-

 

얼마 전에 유리-겔라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눈으로 스푼을 구부리고,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는 등 초능력을 보여 이른바 유리-겔라의 선풍을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영주에 있는 어느 중학생 역시 스푼을 구부린다든가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다든가 콩의 싹을 티우는 초능력을 발휘하여 신문사 · TV · 라디오에서 크게 보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바로 그것이 선의 하나의 표출(表出)된 형태라 하겠습니다. 선의 표출방법은 이렇게 물질적으로만 나타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도 나타납니다. 수백 수천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 것이 禪입니다.

 

앞에서 내가 유리-겔라의 초능력을 가리키며 표출된 하나의 형태라고 했는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의 목적이란 뭐니뭐니 해도 자아(自我)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정반왕의 태자였던 고타마 싯달타가 부처님이셨던 것을 바로 선을 통하여 자아를 깨달아서 각자(覺者)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선은 궁극의 목적인 자아를 깨닫지 못한다 해도 아주 훌륭한 것이며 풍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TV나 라디오 신문 등을 통하여 유수한 일본의 기업들이 사원의 훈련방법으로써 참선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참선을 통하여 일본은 가장 일본적이고 세계적인 제품을 생산하여 부존자원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세계적인 경제대국을 만들어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禪이 행해졌을 때, 우리는 지금도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세계적인 불교문화재를 창출해 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선불교(禪佛敎)가 쇠퇴하는 것에 따라 훌륭한 스님의 배출도 없었으며 이렇다할 문화재도 남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일본은 격심한 경쟁 속에서 이겨 살아나는 길을 우리 선인들이 이룩한 禪에서 찾고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세계적인 칼이라는 일본도(日本刀)를 만드는 어느 장인의 글을 읽은 가운데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쇠라고 다른 나라의 쇠하고 다를 것이 없으며, 담금질하는 일본의 물이라고 세계의 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솟아나는 물에라도 담금질을 통하여 일본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은 그 칼에 집어넣어야 할 한 가지를 집어넣지 못하니 그것은 우리 일본사람 만이 집어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칼을 만들 때에 선을 통하여 불어넣는 일본혼입니다. 일본 칼에는 이와 같이 세계사람이 흉내내거나 만들 수 없는 일본혼이라는 것이 배어 있어 비로서 일본칼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는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습니다. 30대의 젊은시절, 일본의 임제대학에서 승려의 몸으로 불교학을 전공했던 나는 일본의 가내수공업 공장을 들러본 경험이 있어 그들이 일본 제일의, 나아가서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무섭게 정신수양 즉 참선을 하는가를 내 눈으로 목격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전 : 무심유심(서경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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