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한번 해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6 · 25사변 전, 문경 봉암사에 좀 살았는데 지금은 죽은 향곡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산 신도들이 신심이 많은데 법문 한 번 해줘.”
“내 말 들을까?”
“듣든 안듣든 법문이나 한 번 해줘. 내가 사람들을 모을 테니.”
가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공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불공이란 남을 도와주는 것이지 절에서 목탁 두드리는 것이 불공 아니라고. 결국 절이란 불공하는 곳이 아니고 불공 가르치는 곳이라고. 불공은 밖에 나가서 해야 되는 것이라고. 남을 돕는 것이 불공이니까. 그리고 행원품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듣고 상당히 기뻐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봉암사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에 부산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각 도마다 종무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경남 종무원에서 긴급 회의를 했다는 것입니다.
“성철인가 뭔가 저놈이 절에서 하는 것은 불공이 아니고, 절은 불공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불공이란 남을 돕는 것이다 라고 말하니 이것은 절대 돈갖다 주지 말라는 것이 되는데, 그러면 우리 중들은 모두 굶어 죽게 될 터이니 저놈을 없애든, 죽이든, 미국으로 쫓아버리든 해야 된다 하며 야단들이 났으니 앞으로 다시는 그런 소리하지 마시오.” 하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니 서울에서도 누가 내려왔습니다. 서울의 종무원에서도 회의를 했다고 하며 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소리한 것이 영향이 좀 있다고 보았던가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말할까? 당신들 뜻대로 하자면 부처님 영험하고 도력있으니 누구든지 돈 많이 갖다 놓으면 많이 갖다 놓을수록 복이 많이 온다고, 절에 돈벌이 많이 되도록 그렇게 자꾸 선전할까? 그러면 나를 금방석에 올려 앉혀 줄 것인가?”
대꾸를 못하더군요.
“당신은 천 년 만 년 살 것 같애? 언제 죽어도 죽는 건 똑같애. 한 번 생각해 보라구. 세상 사람들은 탁주 한 잔 먹고도 싸움하여 죽는 사례가 흔하지 않은가? 부처님 말씀 전하다 설사 맞아 죽는다고 한들 원통할 게 뭐가 있는가? 그런 영광이 어디 있어! 천하의 어떤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해도 나는 부처님 말씀 그대로 전하지 절대로 부처님 말씀을 어기고 단 소리를 할 수 없으니 그런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나 잘 하시오!”
우리 대중 가운데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더러 없습니까?
“방장스님은 법문해 달라고 했더니 결국 우리 먹고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절에 불공 안하면 우리는 뭘 먹고 살라는 말인가?”
걱정 좀 되지요?
암자 승려들이 더 걱정될 것입니다. 큰 절이야 매표소 수입도 있고 추수 받는 것도 있어서 걱정없지만, 큰 절이야 땅 짚고 헤엄치기지만, 암자에서는 순전히 불공에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도 걱정이 조금 됩니다. 백련암에 불지르러 올까 싶어서.....이것은 우스개로 하는 소리고. 물론 우리 해인사 대중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생각들 할 사람이 없겠습니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를 믿든지 예수교를 믿든지 자기의 신념대로 하는데, 예수교를 믿으려면 예수를 믿어야지, 신부, 목사를 믿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 믿다가는 천당이 무엇입니까, 지옥 갑니다. 지옥.
그러면 불교는?
불교를 믿는다면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지 승려따라 가다가는 거꾸로 간다는 말입니다. 극락이 무엇입니까, 지옥이지요!
아무쪼록 예수교를 믿으면 예수 말씀이 표준이 되어야 하고, 불교를 믿으면 부처님 말씀이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중간에서 소개하는 것이지 내 말이라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달을 가리키면 그 달을 보아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대중도 알겠지만, 승려란 부처님 법을 배워 불공을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절은 불공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불공 대상은 절밖에 있습니다. 불공 대상은 부처님이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불공대상입니다. 이것이 불공방향이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 불교는 초비상시 아닙니까. 앞으로 우리가 구태를 벗어버리고 참다운 중흥의 길, 사는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절에 사는 우리 승려들이 목탁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명복 빌어 주는 이것이 불공 아니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이것을 참으로 실천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 불교의 새싹이 트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전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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