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삼천 배(성철스님 법어)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내가 6.25사변 뒤 통영 안정사 토굴에서 살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진주에서 신도들 30여 명이 와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한 신도가 30여년 동안 자기 영감하고 말을 안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금방 알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름은 들먹이지 않겠습니다. 내가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불교 믿는 부처님 제자라고 하면서 딴 사람도 아니고 아들 딸 낳고 함께 사는 영감하고 30년이나 말을 안하고 산다니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랬더니 그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들 딸 몇 낳고 난 후에 남편이 작은 마누라를 얻어 나가고 자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라는 겁니다. 살림이고 뭣이고 싹 쓸어가 버려서 자식들 데리고 먹고 살며 공부시키는데 그 고생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평생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분이 복받쳐서 말도 하기 싫다는 거였습니다. 다 듣고 난 다음에 내가 물었습니다.
"나에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시키는대로 하겠습니까?"
"예, 하겠습니다."
"그러면 법당에 올라가서 부처님께 삼천배 절을 하되 스님께서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원을 세우고 절을 하시오." 했더니 밤을 세워서 삼천배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길,
"지금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작은 부인을 얻어서 나를 이렇게 만들고 괄시를 했다 하는 원한이 맺혀서, 30년 동안 말도 안하고 원수같이 지냈는데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영감도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착한 사람이니까, 오늘 돌아가는 길로 당신 집으로 가지 말고, 가게에 가서 술하고 좋은 안주 사가지고 작은 부인 집으로 찾아 가십시오. 부엌에 가서 손수 상을 차려서 영감님께 올리고 큰 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길 '영감님, 제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영감님이 참으로 부처님 같다고 했는데, 내가 그것을 모르고 이제껏 말도 안하고 지냈습니다. 그 허물이 너무나 큽니다마는 아무쪼록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하면 당신이 참으로 부처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했더니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영감이 보니 마누라가 미쳤단 말입니다. 아무리 얘기를 하려고 해도 막무가내던 사람이 술 받고 안주 만들어 와서 절하며 잘못했다고 하니 하도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당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토굴에서 공부하시는 스님께 가서 영감 이야기를 하고 법문을 들었는데, 영감같이 착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영감이 부처님과 똑같은 어른이라고 하십디다. 그래서 제가 지금 영감을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영감이,
"! 불교가 그런 것인가."
하고는 그만 크게 발심(發心)을 했습니다. 그 후로는 철저한 불교신도가 되어서, 부인이 새벽으로 기도하러 갈 때도 꼭꼭 같이 다니고 나중에는 진주에서 신도회 회장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은 상대방을 보되, 겉모습만 보지 말고 본래 성품을 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기 때문입니다.
보살계(菩薩戒) 서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넓게 비치는 진로업혹문이 모두 보현보살의 진법계다.(普照塵勞業惑門憲是普賢眞法界)"
진로업혹문이란 중생의 나쁜 짓을 총망라한 말인데, 아무리 중생이 나쁜 짓을 했다 할지라도 겉보기만 그럴 뿐 실제는 전부 보현보살 진법계다 이 말씀입니다.
겉모양은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성품만 보고 살면, 자성(自性)은 본래 청정하여 부처님이나 지옥중생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옷은 보지 않고 사람만 보고 살면, 자연히 원수라도 부모같이 안 섬길래야 안 섬길 수 없습니다. 원수도 원수가 아니고 부처님이니까 말입니다.
아무리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를 부모와 같이 부처님과 같이 섬겨야 된다 이 말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와같은 사상을 잘 알아서 실천해야겠습니다.
예전 인도에서는 조석(朝夕)으로 예불시간에 꼭 지송(持誦)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지르제타>라는 스님이 지은 150찬불송(一百五十讚佛頌)이 그것입니다.
의정(義淨)법사의 남해기귀전(南海奇歸傳)에도 보면, 의정법사가 인도에 갔을 때 전국 각 사찰에서 150찬불송을 조석으로 외우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은심과부재 배덕기심원 존관원극경 유여극중은
베푼 은혜 천지보다 깊어도
그걸 배반하고 깊은 원수 맺는다
부처님은 그 원수를
가장 큰 은혜로 본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상대를 부모보다 부처님보다 더 섬기고 받들고 하는데, 그는 나를 가장 큰 원수로 삼고 자꾸 해롭게 한단 말입니다. 이럴 때 상대가 나를 해롭게 하면 할수록 그만큼 상대를 더 섬긴다는 말입니다.
원어존전해 존어원전친 피항구불과 불이피위온
원수는 부처님을 해롭게 해도
부처님은 원수를 섬기기만 한다
상대는 부처님 허물만 보는데
부처님은 그를 은혜로 갚는다.
존어원전친(尊於怨轉親)! 부처님은 원수를 섬기기만 한다!
근본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에게 잘해 주는데 상대방은 내게 잘해 주는 것은 하나도 없이 다 내버리고 자꾸 나를 해롭게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섬기기만 하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상대가 나를 해롭게 할수록 저쪽을 더 받들고 섬긴다는 말입니다.
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나를 가장 해치는 이를 가장 받든다!
이것이 부처님 근본사상이고 불교의 근본입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교 믿는 사람 몇이 삼천배 절하러 왔길래,
"절을 할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제일 반대하고 예수님 제일 욕하는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천당에 가도록 그렇게 기원하면서 절하시오."
이렇게 말했더니 참 좋다고 하면서 절 삼천배 다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부처님 제일 욕하고 스님네 제일 공격하는 그 사람이 극락 세계에 제일 먼저 가도록 축원하고 절합시다." 이제는 우리 불자들에게도 이런 소리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당에 가고 안 믿으면 모두 지옥간다."
이렇게 되면 참 곤란합니다.
우리 불교는 부처님은 안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착하게 살면 다 좋은 데 간다. 부처님 믿고 안 믿고 할 것 없습니다. 착한 일을 하기만 하면 좋은 데 간다고 하지 우리 부처님 믿어야만 극락세계 간다는 소리는 안한다 말입니다. 그건 신사가 아닙니다. 우리 스님네들이 부처님 제일 욕하고 스님네 제일 욕하는 사람이, 극락세계 제일 먼저 가도록 축원하고 기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사실에 있어서 "저 원수를 보되 부모같이 섬겨라" 이말인 것입니다.
원수를 부모같이 섬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또 자꾸 그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어 버립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게 되면 일체 번뇌망상과 일체 중생의 병은 다 없어진다고.
중생의 모든 병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이 부처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불을 목표로 하고 사느니 부처님 말씀을 표준삼아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그때 자기 감정에 치우쳐 살려고 하면 참 곤란합니다.
한편으로는 또 이런 의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 큰일났네. 예수교에서는 치고 들어오는데 자꾸 절만 하고 있으면 불교는 어떻게 되느냐 말야. 상대가 한 번 소리지르면 우리는 열 번 소리질러야 겁이 나서 도망갈 텐데 가만히 있다가는 불교는 씨도 안 남겠다. 자! 일어나자."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럴수록 자꾸 절하고 그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원하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그런 사상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실천해 보십시오. 불교는 바닷물 밀리듯 온천하를 덮을 것입니다. 상대가 주먹질한다고 맞주먹질하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저쪽이 주먹질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부모와 같이, 부처님같이 섬기고 그렇게 생활할 것 같으면, 그만 모든 사람이 그것에 다 감동이 되고 감복이 되고 해서, "불교가 그런 것인가!" 하고 불교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따라, 부처님 가장 욕하고 스님네 가장 공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사람이 가장 먼저 극락세계에 가도록 그렇게 발원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면 불교는 실제 온천하를 다 덮을 것입니다.
그럼 장애는 어느 곳에 있는가? 저쪽에서 소리지른다고 이쪽에서 같이 소리지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주먹 내놓는다고 이쪽에서도 같이 주먹 내놓기 때문에 안 됩니다. 저쪽에서 불지른다고 같이 불을 가지고 달려드니까 함께 타버리고 말 것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저쪽에서 아무리 큰 불을 가져오더라도 이쪽에서 자꾸 물을 들어붓는단 말입니다. 어찌 당하겠습니까? 결국 불은 물을 못 이기는 것입니다. 나중의 성불(成佛)은 그만 두고 전술(戰術), 이기는 전술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불에는 물로써 달려들어야지 불로써 달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첩실(妾室)을 아주 미워하는 사람보고 첩실을 섬기라는 말보다는 "첩실 떼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 할 때, 이것은 전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 전술대로 하면 결국 첩살이는 도망가 버립니다. 이것도 일종의 방편인데, 흔히 전술로써 이렇게 말해주기도 합니다.
근본은 어디 있느냐 하면,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자! 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법문의 총결산을 하겠습니다.
실상무구상청정(實相無垢常淸淨)
귀천노유사여불(貴賤老幼事如佛)
극중죄인극존경(極重罪人極尊敬)
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모든 일체만법의 참 모습은 때가 없어 항상 청정합니다. 유정(有情) · 무정(無情)할 것 없이 전체가 본래성불(本來成佛)이란 말입니다. 옷은 아무리 떨어졌어도 사람은 성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늙은이나 어린이나 전부 다 부처님같이 섬기고, 극히 중한 죄를 지은 죄인까지도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동시에 나를 가장 해롭게 하는 사람을 부모같이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나를 가장 해치는 이를 가장 받든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근본자세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근본지침으로 삼고 표준으로 삼아서 생활하고 행동해야만,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있고 법당에 들어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은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자는 여기에 있느니만큼 우리 서로 노력합시다.
출전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