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아사세(阿闍世)의 번민과 뉘우침(135)

근와(槿瓦) 2015. 9. 20. 00:45

아사세(阿闍世)의 번민과 뉘우침(135)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한편 제바는 아사세왕에게 청하여 64명의 군사를 뽑아 힘이 세고 칼을 잘 쓰는 2명을 보내어 세존을 죽이고 다른 길로 돌아오라 이르고, 다시 힘이 세고 칼을 잘 쓰는 4명을 보내어 그 2명이 돌아오는 길을 지키다가 죽이고 다음 또 8명을 보내어 앞서의 4명을 죽이고 차례로 그 수를 갑절로 하여 64명으로 하여 앞서의 32명을 죽이고, 이와 같이 하여 어떤 자가 세존을 원망하여 죽였는지를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을 꾀하였다.

 

이때 세존은 영취산의 동굴에서 나오시어 거닐고 있었다. 2명의 군사는 갑옷을 걸치고 칼을 잡고 세존께 접근하려 했지만 위엄에 짓눌려 나아가지를 못하고 놀라서 존안을 우러러보더니 고요하신 품위는 길들인 큰 코끼리와 같고 뜻은 맑고 물과 같으셨다. 두 사람은 그만 수희(隨喜)의 염에 감동되어 칼을 버리고 세존 앞으로 나아가 엎드렸으며, 갖가지로 가르침을 받아 법안이 열리고 도리어 삼보에 귀의하는 몸이 되었다. 이윽고 다른 길로 제바에게 나아가 세존의 위신력을 고하면서 감히 해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제바의 기도(企圖)는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화를 내며 스스로 영취산에 올라가 큰 돌을 들어 산꼭대기에서 동굴가를 걸으시는 세존을 향해 던졌다. 갑자기 굴러 떨어지는 깨진 돌조각이 세존의 다리에 맞아 살과 가죽이 찢어지고 피가 땅에 흘렀다. 그러나 세존은 천천히 동굴로 들어가시고 대의(大衣)를 네 겹으로 접어 그 위에 우협을 옆으로 하고 누우셨으며, 일심으로 고통을 참으셨다. 그리고 놀라 떠드는 많은 제자들을 위해 동굴 밖으로 나오시어,

 

“너희들은 어부처럼 고함을 질러서는 안 된다. 저마다 자기의 처소에 돌아가 일의 전심(一意專心)으로 도를 닦아야 한다. 모든 부처는 온갖 원한을 극복하고 있다. 저 전륜왕이 어떠한 적에게도 해를 입는 일이 없는 것처럼 어떠한 원수라도 부처에 대하여 그 악함을 가할 수는 없다.”

 

그뒤 세존의 상처가 깊어 쉽게 낫지 않으므로, 기바는 상처를 째고 나쁜 피를 뽑아내고 치료를 해 드렸다.

 

제바는 다시 아사세왕에게 청하여 큰 코끼리를 풀어 놓아 세존을 해치고자 꾀했다. 제바가 코끼리 사육사에게 말하기를,

“내일 교답마가 오는 길에 코끼리를 취하게 하여 풀어 놓아라. 그는 만심(慢心)을 갖고 있으므로 피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밟혀 죽을 것이 틀림없다.”

 

이튿날 아침 세존은 의복을 입고 바리때를 들고 성으로 들어가 탁발을 하고 계셨는데, 코끼리 사육사는 멀리서 이것을 보고 취한 코끼리를 풀어 놓았다. 사람들은 세존께 다른 길로 가시라고 권했지만, 세존은 천천히 그 길로 가셨다. 취한 코끼리는 멀리서 세존을 보자 귀를 세우고 코를 울리며 달려왔다. 그러하건만 세존은 자비의 마음에 젖어 노래하셨다.

 

그대 대용(大龍)을 해치지 말라. 대용이 세상에 출현함이란 어렵다.

만일 대용을 해치면 내세에 악도에 떨어지리라.

 

큰 자비의 힘에 감동되어 코끼리는 무릎을 꿇고 세존의 발을 안았으며, 물러서서 돌아갔다. 보는 자, 모두가 찬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빈바사라왕은 부인이 감금되고 나서부터 식사를 끊고 겨우 창문을 통하여 푸른 영취산을 우러러보며 그것을 마음의 위안으로 삼고 있었지만, 아사세는 이 말을 듣고서 그 창문을 막아 버리고 발바닥을 깎아 서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무렵 아사세의 아들 우타야(優陀邪)가 손가락 끝에 종기를 앓아 괴로워하고 있었으므로, 왕은 품에 안고서 그 고름을 빨아 주었다. 때마침 그때 곁에 있던 위제희 부인은 이를 보고서 추억에 못이겨 말했다.

 

“왕이여, 당신이 어렸을 때 이와 똑같은 종기를 앓아 아버지인 대왕이 지금의 당신처럼 당신을 껴안고 그 고름을 빨아준 일이 있었습니다.”

 

아사세는 이 말을 듣고서 부왕에 대한 노여움이 별안간 애모의 느낌으로 바뀌어 신하들에게 고했다.

 

“만일 부왕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알리는 자가 있다면 이 나라의 반을 주리라.”

 

사람들은 다투어 부왕에게로 달려갔지만, 왕은 멀리서 소란스런 발소리를 듣고 ‘그들은 나에게 무거운 형을 가하리라’고 놀라 두려워하고 고민하여 쓰러져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세간의 즐거움에 마음이 현혹되어 죄도 없는 부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사세는, 이제 뉘우침으로 마음은 아프고 몸은 열이 나고 온몸에 종기가 나 고름이 흘러, 악취로 가까이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되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지옥의 보를 받고 있다. 이윽고 진짜 지옥의 보가 찾아오리라’고 했다. 어머니인 위제희는 슬퍼하고 갖은 약을 발라 주었지만 조금도 낫지를 않았다. 왕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종기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서 몸에서 나온 것은 아니요,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선 고칠 수가 없습니다.”

 

아사세의 병을 듣고 대신들이 번갈아가며 왕의 병석을 찾았다. 월칭(月稱)대신이 말했다.

“대왕은 무엇 때문에 안색이 수척하고 근심에 싸여 있습니까, 몸의 아픔이신지 혹은 마음의 아픔이신지?”

 

왕이 대답하였다.

“애처롭게도 죄 없는 부왕을 해친 나의 몸이나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을 수가 있으랴. 전에 지혜 있는 사람에게 들은 일이 있다. 세상에 부모를 죽이는 등 다섯 가지의 역죄를 범한 자는 지옥을 모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지금 한없는 죄를 짓고 있다. 세상에 나의 몸과 마음을 고쳐 줄 그런 의사는 없다.”

 

대신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근심하고 괴로워하면 수심은 더욱 증장합니다. 잠이 많은 것, 색을 탐하고 술을 즐김도 마찬가지니라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오역죄를 범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만, 누가 지옥을 보고서 그와 같이 말했겠습니까. 무릇 지옥이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왕은 세상에 좋은 의사가 없다고 하십니다만 부란나 가섭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뛰어난 지혜와 선정을 가졌으며 청정한 행을 닦아 수없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도를 설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에 악업도 없거니와 악업의 보도 없다. 선업도 없거니와 선업의 보도 없다. 상업(上業)도 하업(下業)도 없다고 설하고 계십니다. 대왕이시여, 이 스승은 지금 왕사성에 계십니다. 부디 이 스승을 불러 몸과 마음의 아픔을 고치도록 하십시오.”

 

“만일 그와 같이 나의 죄를 고쳐 준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귀의하리라.”

 

다시 덕장(德藏)대신이 왕을 찾아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어찌된 까닭으로 볼은 핼쑥하고 입술은 메마르고 목소리도 쉬어 마치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같고, 아니면 원수에게 피습된 사람처럼 보기 흉한 안색을 하고 계십니까?”

 

“내 어찌 지금,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나는 어리석게도 마음이 어두워서 악인 제바의 말에 속아 바른 왕을 해치고 말았다. 나는 일찍이 들은 일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좋지 못한 마음으로써 악한 업을 행하면 무간(無間) 지옥을 면치 못할지니. 나의 마음은 지옥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대신이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실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는 출가의 법과 왕의 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왕의 법으로 말하면 아버지를 해치고 나라의 왕이 되더라도 죄는 되지 않습니다. 가라라충(迦羅羅虫)은 어머니의 배를 찢고 태어났지만, 그것은 법칙이므로 어머니의 배를 찢더라도 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 이와 마찬가지로 설사 아버지나 형을 죽이더라도 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捨梨子)라는 스승이 있어 일체지를 갖추고 중생들을 내 자식처럼 가엾이 여기고 중생들의 심뇌(心惱)를 잘 뽑아 버립니다. 이 스승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의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고(苦), 낙(樂), 명(命)의 일곱 가지로 나뉘어지고 이 일곱 가지는 변천되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사가초(伊師迦草)처럼 훼손할 수도 없고 수미산처럼 움직이는 일도 없습니다. 유락(乳酪)처럼 버려지지 않고 또 일곱 가지는 각각 다투는 일도 없습니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선도 악도 또는 칼날의 힘도 상처를 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곱 가지는 허공처럼 장애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숨도 또한 해를 받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해치는 자도, 해를 받는 자도 만드는 자도, 받는 자도, 설하는 자도, 듣는 자도, 염하는 자도, 가르침을 지니는 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그 스승은 언제나 이와 같이 법을 설하여 중생들의 갖가지 무거운 죄를 제거해 줍니다. 대왕이 만일 이 스승한테 가신다면 모든 죄는 절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왕은 처음 대신에게 대답한 것처럼 대답하여 그 스승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실덕(實德) 대신이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무엇 때문에 영락을 벗어 머리를 어지럽게 흩뜨리고 바람에 불리는 꽃나무마냥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계십니까?”

 

왕은 또 전과 같이 대답하자, 대신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만일 부왕이 출가하셨다면 해치는 것은 죄가 되겠습니다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해친 것이므로 죄가 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부디 유의하여 들어 주십시오. 모든 중생은 여업(餘業)에 의해서 생사를 받습니다. 즉 선왕은 스스로의 여업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서 대왕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지금 산사야비라지자(刪捨耶毘羅砥子)라는 스승이 바다와 같은 지혜로써 중생들의 의문을 끊고 계십니다. 그 스승의 설하는 바에 의하면 ‘온갖 생유(生類)중에서 국왕은 뜻대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상관없다, 여하한 악을 행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마치 불이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가리지 않고 태우듯이 또 대지가 깨끗한 것에도 더러운 것에도 기쁨도 노여움도 갖지 않는 것처럼, 국왕의 소행은 오로지 이와 같다. 또 가을에 베어낸 나무가 다시 봄이 오면 싹이 터, 이 베어낸 것이 죄가 성립될 리가 없다. 사람의 목숨도 이와 같이 이곳에 태어나고 저곳에 태어난다. 다시 태어나는 것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사람의 화복은 이 세상의 업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만 과거의 업을 현세에 받을 뿐이다. 현세에는 인(因)이 없고 또 미래에는 보(報)가 없다’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원컨대 이 스승에게 나아가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도록 하십시오.”

 

다시 실지의(悉知義)대신이 아뢰기를,

“대왕이시여, 무엇 때문에 그렇듯 한심스런 모습이 되셨습니까, 몸이 아프십니까, 또는 마음이 아프십니까?”

 

왕이 또 전처럼 대답하자 대신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수심을 버리십시오. 옛날 라마왕(羅摩王)은 아버지를 해치고서 왕위를 이었고 또 발제(拔提)대왕, 비루진왕(毘樓眞王)등 많은 왕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위를 이었지만, 한 사람도 지옥에 빠진 자는 없습니다. 또 지금의 비유리왕(毘瑠璃王), 우다야왕(優陀耶王) 등도 그 아버지를 해치고 즉위했지만 한 사람도 괴로워하는 자는 없습니다. 무릇 지옥이다, 천계다 하지만 아무도 보고 온 자가 없습니다. 다만 있는 것은 인간과 축생의 이도(二道)입니다. 더구나 이 두 가지도 인연에 의해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인연이 없는데 어찌 선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라고 하는 스승이 있는데 최상지(最上智)를 얻어 금과 토(土)를 다같이 보고 칼로 오른쪽 팔꿈치를 베는 사람에게도, 전단을 왼쪽에 바르는 사람에게도 같은 친근한 마음을 베풉니다. 이 스승이야말로 세상의 양의입니다. 일어나고 앉고 눕는데도 선정에 들어 있으며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스스로 짓고 남에게 짓게 함도 아무런 죄가 안 된다. 항하의 남쪽에서 큰 보시를 하고 항하의 북쪽에서 중생들의 목숨을 뺏더라도 복도 오지 않거니와 죄를 초래하는 일도 없다’고 합니다. 이 스승은 지금 왕사성에 계십니다. 부디 이 스승에게 나아가셔서 가르침을 받도록 하십시오.”

 

또 길덕(吉德) 대신이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어째서 얼굴에 윤택이 없고 나라를 잃은 임금같이 하고 계십니까? 바야흐로 나라의 사경(四境)에는 적침의 근심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수심에 잠겨 있습니까? 많은 왕자들은 언제 왕위에 올라 자재한 힘을 휘두를 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건만 대왕은 지금 그 원이 이루어져 이 큰 마갈타국을 다스리고, 게다가 선왕이 남기신 보물은 곳집에 가득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마음껏 즐거움에 잠겨 계시면 됩니다. 무엇이 싫다고 괴롭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왕의 대답을 듣고 대신들이 말하기를,

“누군가 지옥에 관한 말을 하여 대왕을 속였겠지요. 물은 습윤하고 돌은 단단하고 바람은 움직이고 불은 뜨겁습니다. 만물은 모두가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죽는 것으로써 누가 짓는 바도 아닙니다. 지옥이란 약삭빠른 사람이 만든 말로써 지(地)는 땅, 옥(獄)은 부수는 것, 즉 지옥을 부수면 죄의 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지는 인(人), 옥은 신(神)으로서 생류를 해치고 천계에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파수 선인(婆藪先人)은 양을 죽여 신들의 즐거움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또 지는 명(命), 옥은 긴 것, 생류의 목숨을 뺏으면 긴 수명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고로 지옥이란 것은 실제로는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보리씨에 의해 보리를 얻고 볍씨에 의해 벼를 얻고 지옥을 죽이면 지옥, 사람을 죽이면 사람을 얻게 되지 않습니까? 대왕이시여, 저는 지금 죽인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만일 사람에게 아(我)가 있다고 한다면 아는 항상 변하는 일이 없는 것이므로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고 계박되지 않고 성내지 않고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죽인다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만일 아가 없다고 한다면 만물은 모두가 무상이며 일념마다 멸망하고 있는 것이므로 피살된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서로간에 누가 죄를 질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시여, 타는 불에도 죄가 없고 나무를 베는 도끼에도 풀을 베는 낫에도 사람을 죽이는 칼에도 모두 죄가 없다고 한다면 어찌 사람에게만 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시여, 지금 가라구다가전연(迦羅鳩馱迦栴延)이라는 스승이 왕사성에 계십니다. 일체지를 얻어 삼세(三世)를 관하고 항하의 물과 같이 온갖 중생의 죄를 맑게 씻어 줍니다. 지금 이 스승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을 죽이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허공이 탁수를 받지 않듯이 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다만 부끄러움이 있으면 물이 대지에 흐르듯이 지옥에 들어가리라. 온갖 생류는 자재천(自在天)이 만든 바로써 자재천이 기뻐하면 생류는 평안하고, 자재천이 노하면 그들이 고뇌하는 것이다. 그 죄도 복도 자재천이 지은 바라고 한다면, 어찌 중생에게 죄와 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공장(工匠)이 만든 인형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단 한 마디의 말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생류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조화(造化)에 누가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부디 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십시오.”

 

다시 무소외(無所畏) 대신이 아뢰기를,

“대왕이시여, 세상에 어떤 어리석은 자가 있어 하루에 백 번 기뻐하고 백 번 근심하고 백 번 잠자고 백 번 깨고 백 번 놀라고 백 번 운다 하더라도 어진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없습니다. 대왕은 무엇 때문에 벗을 잃은 나그네처럼, 안내자가 없는 길 잃은 사람처럼 고뇌하고 계십니까? 대왕이시여, 부디 수심의 독(毒)을 낳지 마십시오. 애당초 왕자로서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하더라도 결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선왕은 출가자를 공경하지만 바라문을 섬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은 평등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등을 잃은 자는 남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대왕이 모든 바라문을 공양하기 위해 선왕을 죽이더라도,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또 대왕이시여, 세상에 죽인다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원래 죽인다고 함은 목숨을 해치는 일입니다만 목숨은 풍기(風氣)로써 풍기의 성(性)은 해치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목숨은 죽일 수가 없사온대 어찌 죄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왕사성에 니건타야제자(尼乾陀若提子)라는 스승이 있어 중생들의 기근(機根)을 잘 알고 온갖 방편에 도달하여 세간의 성쇠에 번거로움을 당하는 일도 없습니다. 청정한 행을 닦아 제자들에게 설하기를 ‘세상에 보시도 없고 선도 없고 현세도 없고 내세도 없고 부모도 없고 성자도 없고 도도 없고 닦는다는 일도 없다, 다른 사람은 8만 겁을 지나면 생사가 절로 그치고 죄 있는 자도 죄 없는 자도 절로 한결같이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마치 네 개의 큰 강이 흐르고 흘러서 절로 큰 바다에 들어가 한 조수가 되듯, 중생들 역시 해탈의 경(境)에 들면 갖가지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다’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원컨대 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때 기바라는 대의(大醫)가 있었다. 이 사람도 역시 왕의 병석에 찾아와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편히 잠잘 수가 있습니까?”

 

“기바여, 나는 지금 중병에 걸려 있다. 정법을 지키신 부왕에게 사악한 역죄(逆罪)를 범했다. 그리하여 생긴 중병으로 이 병은 어떠한 대의나 주법(呪法)으로도 또 신묘한 간호로도 낫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왕은 법과 같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조금도 죄가 없건만 나는 사악한 역죄를 범했다. 마치 물 속의 물고기를 뭍으로 끌어올린 것과 같은 짓이다. 나는 일찍이 지자로부터 신(身), 구(口), 의(意)의 삼업이 청정치 못한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나는 지금 바로 그와 같은 상태에 있다. 어찌 편안히 잠잘 수가 있으랴. 나에게는 지금 법의 약을 설하여 이 병의 고통을 고쳐 줄 영험한 의사를 찾고 있는데 그런 의사가 없다.”

 

기바는 이에 대답하여 아뢰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대왕은 죄를 지으셨지만 지금 무겁게 뉘우쳐 큰 참괴(慚愧)의 마음을 품고 계십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부처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두 개의 좋은 법이 있어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참(慚)이요, 둘째는 괴(愧)라고 합니다. 참이란 스스로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마음이요, 괴란 남으로 하여금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또 참은 스스로 내심(內心)을 살펴 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요, 괴는 그 마음이 밖으로 나타나 남에게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참이란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괴란 신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참괴입니다. 이 참괴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축생입니다. 참괴의 마음이 있음으로써 부모,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도 생기고 형제 자매의 질서가 서는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대왕은 지금 이 참괴를 일으키신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나의 중병을 고쳐줄 의사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잘 생각해 주십시오. 대성이신 세존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해야 할 분입니다. 장애를 능히 파괴하는데 금강과 같은 지혜를 가지셨고 중생들의 모든 죄과를 멸해 주십니다. 이 부처님이야말로 대왕의 중병을 고쳐 주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어떤 소리가 났다.

“대왕이여, 한 가지 역죄를 지으면 그것에 상응한 죄를 받는다. 세 가지 역죄를 지으면 세 곱이 되고 다섯 가지 역죄를 지으면 다섯 갑절이 된다. 대왕의 지금까지의 죄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한시라도 빨리 세존을 찾아뵈어라. 세존을 제하고서는 그대를 구해 주실 분이 결코 없다.”

 

아사세는 그 공중의 소리를 듣고 크게 두려워하며 마치 파초의 잎사귀처럼 몸을 떨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말하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공중에서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대의 아버지 빈바사라이다. 기바의 권유를 따라 빨리 세존을 찾아뵈어라. 꿈일지라도 사견을 갖는 여섯 대신의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듣자 아사세는 까무러쳐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온몸의 종기가 일시에 더하여 그 고약한 냄새가 전보다 배나 나고 냉약(冷藥)을 발라 치료를 하여도 종기는 꽃이 핀 것처럼 갈라져 더욱더 독한 열을 뿜고 조금도 가벼워지는 일이 없었다.

 

세존은 멀리서 이 광경을 보시고 곁에 있던 가섭 존자에게 고하셨다.

“선남자여, 나는 아사세왕을 위해 목숨을 연장하고 멸도(滅道)에 들지 않으리라. 가섭이여, 이 깊은 뜻을 아직 모르리라. 왜냐하면 내가「위해서」라고 하는 것은 일체 범부(凡夫)를 위해서라는 것으로서 아사세왕은 오역죄를 지은 모든 중생의 대표자로 내세웠을 뿐이다. 나는 증득한 중생들을 위해 이 세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사세란 널리 온갖 번뇌를 갖추고 있는 범부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위해서」라고 함은 아직껏 불성을 보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서이다. 불성을 본 자를 위해 내가 이 세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불성을 본 자는 이미 방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사세란 아직도 위가 없는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은 모든 중생을 널리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위해서」라고 함은 불성을 말한다. 아사세는 미생원(未生怨)이라는 의미로써 불성의 싹이 트기 전부터 하루 종일 갖가지 번뇌의 원한을 낳는 것을 말한다. 번뇌의 원한이 생기는 까닭에 불성을 볼 수 없다. 만일 번뇌를 일으키지 않게 되면 본유(本有)한 불성을 볼 수가 있고 따라서 대반 열반(大般涅槃)의 깨달음에 주(住)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미생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사세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또「아사」란 미생이라는 것, 미생이란 태어나지 않고 멸하지 않는 열반을 말한다. 또「세」란 세간의 팔법인 이(利), 쇠(衰), 훼(毁), 예(譽)등을 말한다. 또「위해서」란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칭찬하거나 헐뜯거나 하는 세간의 팔법에 더럽혀지지 않고 한없는 영겁간의 멸도에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는 아사세를 위해 한없는 시간을 세간에 주겠다는 것이다. 선남자여, 부처의 밀어는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다. 불법승의 삼보 역시 생각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리하여 세존은 아사세를 위해 월애 삼매(月愛三昧)에 들어가 대광명을 발하시자 이 광명은 청량하여 멀리서 아사세의 몸을 비추게 되어 온몸의 종기는 일시에 자취도 없이 나았다.

 

아사세왕이 말했다.

“기바여, 저 세존은 신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신이다. 어떠한 이유로 이 광명을 발하시는 것일까?”

 

기바가 대답한다.

“대왕이시여, 지금 이 광명의 서상(瑞相)은 왕을 위해 발하시는 것이겠지요. 왕이 앞서 나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세존께서 먼저 이 광명을 발하여 왕의 신병을 고쳐 주시고 다음으로 마음의 병을 고치시겠지요.”

“기바여, 세존께서도 나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실까?”

 

기바가 대답한다.

“비유하면 일곱 명의 자식은 모두 다름없이 귀엽지만, 그 중의 하나가 앓으면 어버이의 마음은 특히 앓는 자식에게 이끌리는 것입니다. 부처 또한 일체의 중생들을 외아들처럼 평등하게 사랑하시지만 그 중에서도 죄가 무거운 자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부처는 방일한 자에 대해서 자비롭고 도리어 도에 면려하는 자에게는 마음을 늦추십니다. 면려하는 자란 높은 위(位)의 보살을 가리킵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부처는 중생들의 문벌이나 관향이나 가난함과 부유한 자의 차별이나 그 태어난 일월 성수(日月星宿) 또는 그들의 교묘한 재주 등을 보시지 않고, 다만 신심이 있는 자에게 애련의 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은 서상은 세존이 월애 삼매에 들어가서 발하시는 것입니다.”

 

왕이 묻는다.

“월애 삼매란 무엇을 말하는가?”

 

기바가 대답한다.

“비유하면 달빛에는 모든 청련화(靑蓮華)를 선명하게 피게 하는 활동이 있듯이, 이 삼매에는 중생들에게 선심을 일으키게 하는 활동이 있으므로 월애 삼매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또 비유해서 말하면, 달빛은 모든 길가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듯이 이 삼매도 열반의 도를 닦는 자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월애 삼매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또 이 삼매는 온갖 선(善) 중의 왕으로서 감로의 맛이 있고 모든 중생들이 기뻐하며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월애 삼매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그때 세존은 회좌의 대중에게 고하기를,

“일체의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데 가장 가까운 인연이 되는 것은 좋은 벗이다. 왜냐하면 아사세왕이 기바의 권유를 따르지 않았다면 왕은 영구히 구제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는 가까운 인연은 좋은 벗이다.”

 

아사세는 또 세존께 나아가는 도중, 기바로부터 구가리(瞿迦離)비구가 산 채로 대지가 갈라져 무간 지옥에 떨어진 일과 수나카다(須那佉多)가 갖가지 악사(惡事)를 쌓았지만 세존한테로 달려가서 모든 죄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서, 기바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 두 가지의 사항을 들었지만,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기바여, 그대와 함께 같은 코끼리 등에 타고 싶다. 그러면 비록 내가 무간 지옥에 떨어지려 해도 그대가 붙잡아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왜냐하면 나는 일찍이 도를 얻은 성자는 결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듣고 있기 때문이다.”

 

때는 십오야(夜) 달 밝은 밤, 수백 대의 코끼리 수레는 횃불을 선두로 하여 조용조용히 숲으로 향했다. 이윽고 숲에 들어가자 아사세왕은 별안간 공포를 느껴 전율하면서 기바에게 말하였다.

 

“기바여, 그대는 아마 나를 배신하여 적에게 넘겨 주려는 것은 아닌지. 얼마나 으스스한 기분 나쁜 정적이냐. 천 수백 명의 제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재채기 소리도 없거니와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잖는가. 무엇인가 꾸미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기바가 말한다.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시고 나아가십시오. 저 숲 정자에 불빛이 켜져 있는데 저곳에 세존이 계십니다.”

 

왕은 기바의 말에 격려되어 코끼리에서 내려 숲속으로 들어가, 세존께 다가가서 예를 올리고 가르침을 청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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