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음이 이치에 들어간 문을 보임

근와(槿瓦) 2015. 9. 11. 01:28

관음이 이치에 들어간 문을 보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진리에 들어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으나 그대에게 하나의 문을 가르쳐 주어 그대로 하여금 근원에 돌아가게 하리라. 그대는 까마귀의 우는 소리나 까치의 울음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어보라. 거기에도 여러 가지 소리가 있는가? ‘거기에 들어가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소’ 기특하다. 이것이 관음보살이 이치에 들어간 문이다.

 

나는 다시 그대에게 물으리라. 그대는 그 속에 들어가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미 얻을 수 없다면 그런 때에는 그것은 허공이 아닌가? ‘원래 공한 것이 아니라, 밝고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것의 본체인가? ‘모양이 없으므로 말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모든 부처와 조사의 명맥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이미 모양이 없는데 또 크고 작음이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또 한계가 있겠는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안팎이 없고, 안팎이 없기 때문에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멀고 가까움이 없기 때문에 저것과 이것이 없다. 저것과 이것이 없으므로 가고 옴이 없으며, 가고 옴이 없으므로 나고 죽음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므로 과거와 현재가 없으며, 과거와 현재가 없으므로 미혹과 깨침이 없고, 미혹과 깨침이 없으므로 범부와 성인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으므로 더럽고 깨끗함이 없고, 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므로 옳고 그름이 없으며,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모든 이름과 말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없어지되, 모든 감관과 대상과 일체의 망념과, 나아가서는 갖가지 모양과 갖가지 이름과 말이 다 있을 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본래부터 비고 고요하며,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신령스러이 앎이 어둡지 않아, 무정(無情)물과는 달리 성품 스스로가 신령스러이 아나니, 이것이 바로 그대의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러이 아는(空寂靈知) 청정한 마음의 본체이니라.”

 

“이 청정하고 비고 고요한 마음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의 대단히 청정하고 밝음 마음이며 중생들의 근원인 깨닫는 성품이니, 이것을 깨치어 지키는 이는, 진여는 앉아 움직이지 않고 해탈할 것이요, 이것을 모르고 등지는 이는 여섯 길(六趣)로 나아가 오랜 생을 헤맬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한 마음을 미혹해서 육취로 나아가는 것은 흔들림이며 자신을 떠남이다. 그러나 법계를 깨달아서 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고요함이며 자신을 찾아 돌아옴이다’한 것이다. 미혹과 깨달음은 다르나 그 근원은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법이란 것은 중생의 마음이라’한 것이다. 이 비고 고요한 마음이 성인이라 해서 더 많은 것이 아니요, 범부라 하여 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성인의 지혜에서는 빛나지 않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서도 어둡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성인이라 하여 많지 않고 범부라 하여 적지 않다면 부처와 조사가 보통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다른 까닭은 스스로 그 마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전 :선문촬요(수심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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