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함경-465-9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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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무익한 이야기만 한다. 왕들의 전쟁과 군마에 관한 일, 뭇 대신과 관리들이 수레나 말을 타고 드나들며 동산에서 유희하는 일을 말할 뿐이다. 또 눕고 일어나고 걸어다니는 일, 여자에 관한 일, 의복과 음식과 친척의 일을 이야기하며, 또 바다에 들어가 보물 캐는 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 무수한 방편을 써서 나쁜 직업으로 생활하고 아름다운 말로 아첨하며, 대놓고 서로 헐뜯고 이익으로써 이익을 구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서로 다툼만 일삼는다. 혹은 동산에서, 혹은 욕지(浴池)에서, 혹은 당(堂)에서 서로 시비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률(經律)을 알지만 너는 모른다. 나는 바른 길을 가지만 너는 삿된 길을 가며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인다. 나는 잘 참지만 너는 잘 참지 못한다. 네가 하는 말은 모두 정직하지 않다. 만일 의심되는 것이 있거든 내게 와서 물으라. 내가 모두 답해주리라.)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다시 방편을 써서 스스로 심부름꾼이 되기를 구한다. 혹은 왕이나 왕의 대신ㆍ바라문ㆍ거사(居士)를 위해 심부름꾼이 되어 여기서 저기로 가고 저기서 여기로 오며 이 소식을 가져다 저 사람에게 주고 저 소식을 가져다 이 사람에게 주되 혹은 스스로 하기도 하고 혹은 남을 시켜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다만 전쟁에서 싸우는 일만 익힌다. 혹은 칼이나 몽둥이 활 쏘는 법을 익히고, 혹은 닭ㆍ개ㆍ돼지ㆍ염소ㆍ코끼리ㆍ말ㆍ소ㆍ낙타 따위의 짐승들을 싸움 붙이기도 하며, 혹은 남녀간에 싸움 붙이기도 한다. 피리 소리ㆍ북소리ㆍ노래 소리ㆍ춤 추는 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를 내고, 혹은 깃대에 오르고 거꾸로 떨어지는 재주 등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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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재주부리기를 익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남녀의 길흉과 잘 생기고 못생긴[好醜] 관상을 보고 점치며 또 짐승의 관상까지 보면서 이익을 구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귀신을 부르고 혹은 쫓으며 갖가지 기도와 무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 모으기도 하고 능히 흩어지게도 하며 괴롭게도 하고 즐겁게도 한다. 또 능히 사람을 위해 태(胎)를 편안하게도 하고 태의(胎衣)가 밖으로 나오게도 하며, 또 능히 사람을 저주해 나귀로 만들기도 하고 또 사람을 귀머거리나 장님, 벙어리로 만들기도 한다. 또 여러 가지 기술을 보여주고 손을 모으고 일월(日月)을 향하는 등 온갖 고행을 하는 것으로써 이양을 구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혹은 사람을 위해 병을 치료하는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나쁜 주문을 외우기도 하며, 혹은 선한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의방ㆍ침ㆍ뜸ㆍ약석(藥石)으로써 여러 가지 병을 고쳐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혹은 홍수나 화재를 방지하는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귀신의 주문을 외우기도 하며 혹은 찰리의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코끼리 주문, 지절(支節)의 주문, 집을 편안케 하는 부적과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불에 데이고 쥐에게 물린 독을 풀어주는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죽고 사는 것을 점치는 글을 외우고 꿈풀이 하는 글을 외우며, 손금이나 관상을 보고 천문서를 외우며, 혹은 모든 소리에 대한 글을 외운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천기를 살펴 비가 올지 오지 않을지, 곡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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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할지 천할지, 병이 많을지 적을지, 세상이 혼란스러울지 안온할지를 말해 준다. 혹은 지진ㆍ혜성ㆍ월식ㆍ일식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별이나 일식ㆍ월식[星蝕]에 대해 말하기도 하며, 혹은 불식(不蝕)을 말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다 능히 말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런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혹은 (이 나라가 마땅히 이기고 저 나라는 그렇지 못하리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저 나라가 마땅히 이기고 이 나라는 그렇지 못하리라)고 말하기도 하며, 길흉을 점쳐 그 성쇠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은 계를 가지는 소소한 인연들인데 저 들은 것이 적은 범부들은 이것을 가지고 부처님을 찬탄한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과는 다른 법으로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다. 오직 현성(賢聖)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가지고 여래를 찬탄한다. 어떤 것이 '깊고 미묘한 큰 광명의 법으로서 현성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가지고 여래를 찬탄한다'는 것인가? 모든 사문 바라문들이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本劫本見)과 말겁 말견(末劫末見)은 다 62견에 들어가며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은 다 6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은 어떤 인연으로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에 대해서 갖가지 무수한 나름대로의 주장이 다 이 62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하는가? 모든 사문 바라문이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은 다 18견에 들어가고,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은 다 18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어떤 인연으로 본겁 본견에 대해서 갖가지 무수한 나름대로의 주장이 다 18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있어서 상론(常論)을 일으켜 말한다.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런 주장은 다 4견에 들어간다.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고 말하는 것은 다 4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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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어떤 인연으로 본겁 본견에 대해서 상론(常論)을 일으켜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고 말하고, 모두 4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하는가?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20번의 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2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이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들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4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4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들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여 있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 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그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8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8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들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여 있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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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제3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가 있어 잘 관찰한다. 민첩한 지혜 방편으로 관찰하여 '자세히 밝혔다'고 여기고는 자기 소견과 자기의 말재주로써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제4견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그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이와 같은 일체 견해는 모두 4견에 들어가는 것이고,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는 견해는 이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여래만이 이 견처(見處)와 이러한 가짐[持]과 이러한 고집[執]을 알고 또한 그 보응(報應)을 안다. 여래가 아는 것은 또 이것을 넘어서지만 비록 알아도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적멸(寂滅)을 얻는다. 수(受)의 집(集)ㆍ멸(滅)ㆍ미(味)ㆍ과(過)ㆍ출요(出要)를 알고 평등관으로써 남김 없이 해탈하였기 때문에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혀 다른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요,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하는 것이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어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것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나와 세간은 반은 항상하고 반은 무상하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헤아리는데, 이러한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은 이런 때도 있었다. 이 겁(劫)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때에 어떤 중생이 복(福)이 다하고 목숨[命]이 다하고 행(行)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이 끝나 허공의 범천에 태어났다. 그는 곧 그곳에서 애착심을 내어 다른...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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