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함경-450-9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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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이렇다. 유리와 마니(摩尼)를 티없이 밝고 깨끗하게 다듬어 만일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실로 꿰면 눈이 있는 사람은 손바닥 위에 놓고 보아 구슬과 실은 다르지만 실이 구슬에 의지하여 이 구슬에서 저 구슬에까지 간 것임을 알 것이다. 마납아, 비구가 마음이 이 몸에 의지해 머무르면서 저 변화로 만들어진 몸에까지 이르는 것을 관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은 비구의 두 번째 훌륭한 법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고 생각이 착란하지 않으며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고 익혀 신통지(神通智)를 증득하여 능히 갖가지 조화를 부린다. 한 몸을 변화시켜 무수한 몸이 되고 무수한 몸을 합해 한 몸이 되기도 한다. 석벽도 걸림이 없이 날아다니되 마치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와 같고 땅에서처럼 물 위를 걷는다. 몸에서는 연기와 불꽃을 내뿜는 것이 마치 큰 불더미 같고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고 선 채로 범천에까지 이른다. 비유하면 옹기장이가 진흙을 잘 빚어 마음대로 어떤 그릇이나 만들어 많은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 또 능숙한 목수가 나무를 잘 다듬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많은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 또 상아 세공사[牙師]가 코끼리의 이빨을 능숙히 다루는 것과 같고, 또 금 세공사[金師]가 순금[眞金]을 잘 제련하여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많은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르면서 뜻대로 변화하고 나아가 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지며 서서 범천에까지 이른다. 이것은 비구의 세 번째 훌륭한 법이다.
그는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천이지(天耳智)를 증득한다. 그의 천이(天耳)는 깨끗하고 사람의 귀보다 뛰어나 하늘 소리와 사람 소리, 두 가지 소리를 다 듣는다. 마치 성내에 높고 넓고 환히 드러난 큰 강당이 있을 때 귀 밝은 사람이 그 강당 안에 있으면 그 안에서 나는 소리를 애써 힘들이지 않고도 모두 듣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아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하늘 귀가 청정하여 두 가지 소리를 다 듣는다. 마납아, 이것은 비구의 네 번째 훌륭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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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타심지(他心智)를 증득한다. 그는 남의 마음 속에 욕심이 있는지 없는지와 번뇌가 있는지 없는지, 어리석음이 있는지 없는지와 마음이 넓은지 좁은지, 마음이 큰지 작은지와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어지러운지, 마음이 막혔는지 풀렸는지와 훌륭한 마음과 용렬한 마음, 위없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안다. 마치 사람이 맑은 물에 자신을 비추면 좋고 나쁨을 틀림없이 아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이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능히 남의 마음을 안다. 마납아, 이것은 비구의 다섯 번째 훌륭한 법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일심으로 닦아 익혀서 숙명지(宿命智)를 증득하고 곧 능히 전생의 무수한 갖가지 일들을 기억해 안다. 능히 한 생에서부터 무수한 생에 이르기까지 겁수(劫數)와 겁의 성패와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과 성명ㆍ종족ㆍ음식의 좋고 나쁨ㆍ수명의 길고 짧음ㆍ고락의 경험ㆍ형상과 모습을 모두 기억해 안다. 비유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나라로 가 거기서 다니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말도 하고 잠자코 지내기도 하다가 다시 그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갔다. 이렇게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다시 본토에 돌아온 그는 애써 마음을 쏟지 않고도 돌아다닌 모든 나라와 여기서 저기로 가고 저기서 여기로 오며 걷고 머물고 말하고 침묵했던 것을 모두 기억한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능히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래서 숙명지로써 능히 전생의 무수한 겁에 있었던 일들을 다 기억한다. 이것은 비구가 첫 번째 승(勝)[제2명(明)ㆍ제3명을 거론하며 비구가 3명(明)을 얻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승(勝)'은 '명(明)'이 되어야 내용상 옳을 듯하다.]을 얻은 것이다. 무명(無明)이 영원히 소멸되고 큰 지혜[大明]의 법이 생겨나며 어둠이 소멸되고 광요(光耀)의 법이 생겨난다. 이것이 비구의 숙명지의 밝음[明]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고 생각에 착란이 없으며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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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생사를 아는 지혜[見生死智]를 증득한다. 그는 깨끗한 천안(天眼)으로 모든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에 나는 것을 본다. 형색의 아름답고 추함과 선과 악의 모든 과보와 존귀하고 비천한 것과 짓는 업에 따른 보응(報應)의 인연을 모두 안다. '이 사람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으로 악을 말하고 뜻으로 악을 생각하며 현성을 비방하고 삿되고 거꾸로 된 소견을 믿었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세 갈래 악도(惡道)에 떨어진다. 이 사람은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으로 선을 말하고 뜻으로 선을 생각하며 현성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을 믿고 행하였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난다.' 이렇게 깨끗한 천안으로써 모든 중생이 업연(業緣)에 따라 5도(道)로 오가는 것을 본다. 비유하면 성 안의 높고 넓은 평지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높은 누각을 지어 놓고 눈 밝은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 모든 행인을 살핀다면 그들이 동ㆍ서ㆍ남ㆍ북으로 가는 것과 그들의 거동과 하는 짓을 모두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정심이 청정하여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르고 생사를 보는 지혜를 증득한다. 그는 깨끗한 천안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그가 지은 선악의 업에 따라 생(生)을 받아 다섯 갈래 세계에 오가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다 안다. 이것은 비구가 두 번째 명(明)을 얻은 것이다. 무명을 끊고 혜명(慧明)을 내며 어둠을 버리고 지혜의 광명을 낸다. 이것이 중생의 생사를 보는 지혜의 밝음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여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무루지(無漏智)를 증득한다. 그는 여실히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알고 유루(有漏)가 모이는 것을 알며 여실히 유루(有漏)가 없어지는 것을 알고 여실히 누진(漏盡)으로 나아가는 길을 안다. 그는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를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그 마음이 해탈을 얻고 해탈의 지혜를 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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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며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뒷세상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 비유하면 맑은 물 속에 나무와 돌과 고기와 자라 따위의 물 속에 사는 족속[水性]들이 동서로 돌아다닐 때 눈이 있는 사람은 '이것은 나무와 돌이요, 이것은 고기와 자라다'라고 분명히 보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이와 같아 정심이 청정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물러 무루지를 증득하고 나아가 뒷 목숨을 받지 않게 된다. 이것은 비구가 세 번째 명(明)을 얻은 것이다. 무명을 끊고 혜명을 내며 어둠을 버리고 큰 지혜의 광명을 낸다. 이것을 번뇌가 없는 지혜의 밝음이라고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여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살므로 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明行)의 구족'이라 한다.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러한 명행을 옳다고 하겠느냐, 그르다고 하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의 구족을 얻지 못해 네 가지 방편(方便)을 행한다.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마납아, 어떤 사람은 위없는 구족을 얻지 못해 도끼를 들고 광주리를 지고 산에 들어가 약을 구하고 나무뿌리를 먹는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쓰는 첫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 어떠냐? 마납아, 이것이 첫 번째 방편인데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천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실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卑微]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釋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마납아, 또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손에 물병을 들고 지팡이를 가지고 산림 속으로 들어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주워 먹는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쓰는 두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 어떠냐? 마납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천하느냐?”그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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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마납아, 또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이전에 캔 약과 떨어진 과일을 버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의지해 살면서 초막 암자를 세우고 풀과 나무의 잎을 먹는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서 쓰는 세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 어떠냐? 마납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천하느냐?”
그는 대답했다.“실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을 세 번째 방편이라 한다.['이것을 세 번째 방편이라 한다[是爲第三方便]'는 생략하고 읽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으로 보아도 옳지 않고 반복되고 있는 문장 구조상에도 빠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납아, 또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약초도 먹지 않고 떨어진 과일도 먹지 않으며 풀잎도 먹지 않고 마을이나 성에다 큰 집을 짓고 살면 동ㆍ서ㆍ남ㆍ북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이 힘닿는대로 공급한다.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서 쓰는 네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 어떠냐? 마납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행하느냐?” 그는 대답했다.“실행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어떠냐? 마납아, 옛날의 여러 바라문과 선인(仙人)들은 모두들 재주가 많아 본래 외우고 익힌 것에 대해 찬탄하고 칭설(稱說)하였는데, 그것이 지금은 너...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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