ᄉ~ㅇ(시옷~이응)

상응단(相應斷)

근와(槿瓦) 2018. 8. 20. 00:16

상응단(相應斷)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四斷의 하나. 有漏八識五遍行心所 등은 그 성품은 비록 染汚되지 않았으나 번뇌와 더불어 相應하여 染汚의 성질이 되었기 때문에 그 상응하는 번뇌를 끊으면 이것들도 염오의 속박을 벗어나게 되는 것을 相應斷이라 이름 함.

 

참고

사단(四斷) : 三斷相應斷을 더한 것. .....삼단(三斷)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는데 있어 3단계의 階位. 見所斷·修所斷·非所斷이 그것.

(1) 見所斷. 見道에서 끊는 것으로, 小乘에서는 88使睡眠煩惱와 이 에 따라 또는 이 으로부터 일어나는 有漏法이고, 大乘에서는 邪師·邪敎·邪思惟로 일어나는 후천적인 煩惱障所知障을 말한다.

(2) 修所斷. 修道에서 끊는 것으로, 小乘에서는 81종의 번뇌와 이 에 따라, 또한 이 에 의하여 일어나는 有累法이고, 大乘에서는 본능적으로 자연히 일어나는 煩惱障所知障을 말한다.

(3) 非所斷. 見道修道에서 모두 끊기지 않은 有爲無爲에 통한 無漏法을 말한다.

끊는 성질에 대하여 自性斷·緣縛斷·不生斷의 셋으로 나눈 것.

(1) 自性斷. 無漏眞知가 일어날 때에 번뇌의 自性을 끊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2) 緣縛斷.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55등 그 밖의 다른 無記法를 끊는 것이 아니고, 覺者55은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함.

(3) 不生斷. 하는 을 끊어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라 한다. 앞의 2으로 얻는 無爲法擇滅無爲라 하고, 뒤의 一斷으로 얻는 無爲法非擇滅無爲라 한다.

 

유루(有漏) : 漏泄의 의미로 번뇌를 말함. 번뇌가 있는 것을 有漏라 하고, 없는 것을 無漏라 한다. 有漏는 또 有染 · 有染汚 · 有諍이라고도 한다. 染汚도 번뇌를 말함. 또 잘못된 견해를 내는 依處이기 때문에 見處라고도 한다. 有部에서는 번뇌를 隨增하는 것(곧 번뇌에 隨順하여, 번뇌를 增長한다)有漏法이라 하고, 그렇지 않는 것을 無漏法이라고 한다. 四諦중에서 苦集二諦諸法有漏法이고, 滅道二諦諸法無漏法이다. 有漏의 육체를 有漏身, 有漏境界(의 경계)有漏路라 하고, 無漏淸淨佛身無漏身, 無漏淸淨境界(의 세계)無漏路라고 한다. 많은 世俗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지혜를 有漏智라 하고, 四諦證見하는 見道이후의 聖者의 지혜를 無漏智라 한다. 見道에 이르기까지의 범부가 일으키는 有漏善이라 하고, 見道에 들어가서의 聖者가 일으키는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無漏善이라 한다. 有漏智를 가지고 행하는 세속의 행위를 有漏行, 有漏智를 가지고 닦는 六行觀有漏道라 하고, 無漏智를 가지고 닦는 四諦觀行 등을 無漏行, 無漏道라 한다. 有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有漏斷, 無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無漏斷이라고 한다. 有漏行人間 · 天上등의 五趣有漏果(有漏의 번뇌나 으로 해서 생긴 有漏果報. 人間 · 天上 35의 몸과 국토를 말한다)를 초래하기 때문에 有漏因이라 하고, 無漏行은 열반의 깨달음인 無漏果를 얻기 때문에 無漏因이라 한다. 凡夫六行觀을 닦아서 하는 四禪 · 四無色定 · 四無量心定 등의 禪定有漏定 · 有漏禪이라 하고, 聖者無漏智發得하는 禪定無漏定 · 無漏禪이라 한다. 無漏定無漏九地(未至定 · 中間定 · 四根本定 · 下三無色定)에 있어서 일어난다. 法相宗에서는 佛果淨識無漏識이라 하고, 佛果에 이르기 이전의 有漏識이라고 한다. 第六識 · 第七識初地入見道에서 1轉識得智하여 無漏識이 되고, 前五識第八識佛果에 이르러서 비로소 無漏識이 된다고 한다. 無漏의 깨달음의 본래 寂然無漏無爲라 하고, 그것이 작용하여 起動하는 無漏有爲라 한다.

 

팔식(八識) : 唯識說에서 주장하는 여덟 가지 .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5과 제6意識과 제7末那識과 제8阿賴耶識.

 

오변행(五遍行) : 心所(마음의 작용)의 하나. 온갖 마음의 현상에 반드시 따라 일어나는 다섯 종류의 心理作用. 作意····. .....작의(作意)범어 manaskara의 번역으로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俱舍論 大地法의 하나. 唯識論 五遍行의 하나. 깜짝 놀라서 한 방향으로 마음을 이끌어 주의를 주는 것(驚覺). 俱舍論卷七에서는 이것을 3作意로 나눈다. (1) 自相作意. 에는 變礙이 있는 것처럼 그 자체에 獨自的(自相)하는 경우의 作意. (2) 共相作意. 四諦十六行相諸法에 공통한 이므로 이것을 하는 경우의 作意. (3) 勝解作意. 不淨觀 등 종종의 觀想을 하는 경우의 作意. 瑜伽論卷三十三에는 7종의 作意를 세운다. 了相·勝解·遠離·攝樂·觀察·加行究竟·加行究竟果의 각각의 作意를 말한다.

 

염오(染汚) : 染汚라 함은 번뇌의 흐림에 물들어 더러워져 있다는 뜻. 雜染, 이라고도 한다. 有漏法, 깨달음에의 길을 방해하는 것. 不善有覆無記染汚라고 하고, 無覆無記不染汚라고 한다(俱舍論 卷七). 그렇더라도 成唯識論述記 卷二 末에는, 雜染이라고 하는 경우는, 染法(不善有覆無記)뿐만이 아니라, 有漏法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大乘莊嚴經論 卷三에는 染汚(雜染), 煩惱染汚(煩惱를 말함) · 業染汚(번뇌에 의해서 일으키는 을 말함) · 生染汚(그 결과로서의 生存을 말한다)3종의 染汚(三雜染)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순차로 · · 三道에 해당한다. 起信論에는, 心體는 본래 淸淨한데 不覺에 의해서 無明을 일으키어 번뇌에 더럽혀지기 때문에, 染心이 된다고 말하고, 染心6(六染心)이 있다고 한다. 執相應染(我執을 말함) · 不斷相應染(分別起法執을 말함) · 分別智相應染(俱生起法執을 말함) · 現色不相應染(所取의 경계를 나타내는 妄心) · 能見心不相應染(能取妄心) · 根本業不相應心(迷妄染汚心의 자체)으로, 이것들은 수행에 의해서 차례로 끊어진다고 한다.

 

번뇌(煩惱) : 범어 klesa의 번역. 吉隷捨로 음역하고, 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 그 성질은 不善 有覆無記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를 받아 미혹의 세계(生死)에 매어 있게 된다. 이것을 惑業苦三道라 한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번뇌는 그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隨眠·(이치에 어둡고 現象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結使·····暴流····使··株杌·燒害··稠林(번뇌의 수가 많은 것을 무성한 삼림에 비유한 것塵勞·塵垢·客塵·諍根(다툼의 근본)이라고도 하고, 또 번뇌의 그것을 正使(다만 使라고도 한다), 를 멸해도 역시 남아있는 관습의 기운을 習氣라고 한다. 모든 번뇌는 因力(아직 번뇌가 끊기지 않은 것境界力(욕심 등에 순응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것加行力(대상에 대해서 非理·作意를 일으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俱舍論 卷二十혹은 境界力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있다고도 한다.入阿毘達磨論 卷上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번뇌를 근본번뇌와 枝末번뇌의 두 번뇌로 나눈다.

근본번뇌라 함은 번뇌의 그것으로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번뇌로, 本惑·根本惑 혹은 다만 번뇌라고도 부르며, 有部에서는 隨眠이라고도 한다. 經部에서는 隨眠을 번뇌의 종자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서 번뇌의 現行(현재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이라 한다. 유식종에서도 隨眠이란 번뇌의 종자를 가리킨다고 말하며, 근본번뇌에 ·····(惡見)번뇌(六隨眠)가 있는데, 有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五見으로 나누어 등의 다섯과 합해서 번뇌(隨眠, 十使)라고 한다. 이 가운데 등의 다섯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 작용이 느리고 둔하기 때문에 五鈍使(五惑), 五見推察尋求하는 성질이 있고 그 작용이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에 五利使라고 한다. 六隨眠 가운데 欲界의 탐과 上二界(색계·무색계)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欲貪·有貪이라고 하며 합하여 七隨眠(七使)이라 하고, 혹은 十隨眠 중에 을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 欲貪·色貪·無色貪으로 하고 十二隨眠(十二使)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십종의 근본번뇌 가운데 제七識과 상응하여 항상 일어나는 我癡(無我의 이치에 미혹하여 나의 에 어두운 번뇌로 無明을 말함我見(我執을 말하며 有身見의 일부我慢(나를 집착하고 나를 믿고 우쭐하는 거만我愛(나를 집착하여 나에 탐착하는 것)의 넷을 四煩惱(四根本煩惱, 四惑)라고 한다. 또 탐··치는 모든 악을 낳게 하는 근본()이며, 대표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三不善根·三毒·三垢·三縛 등이라고 한다.

지말번뇌라 함은  근본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 隨惑·枝末惑·隨煩惱라고도 한다. 단 수번뇌란 말은心王에 붙어다니는 번뇌란 뜻으로 풀어 근본번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지말번뇌에는, 구사종에서는 放逸·懈怠·不信·惛沈·掉擧·無慚·無愧·忿··········睡眠·惡作十九를 말하며, 유식종에서는 睡眠·惡作을 버리고 失念·散亂·不正知를 더하여 二十으로 하기도 한다.

俱舍宗 등에서는 迷理·迷事二惑을 나누어, 불교의 보편적인 진리 곧 四諦의 이치에 迷惑하고 있는 思想上知的인 번뇌를 迷理이라 하고, 구체적인 개개의 事象에 미혹한 바의, 곧 인간성에 바탕한 情意的인 번뇌를 迷事이라고 한다. 自相·共相二惑을 나누어서, ·등 각자 개개의 특수한 고유의 (自相)해서 각각의 법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번뇌를 自相이라 한다. ·無我 三世의 모든 것에 공통된 (共相)함으로 많은 법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번뇌를 共相이라 한다. 앞의 것에는 ··또는 ····이 있고 뒤의 것에는 五見··無明이 있다고 한다. 唯識宗에서는 煩惱障·所知障二障을 나누어, 我執에 의해 일어나서 중생을 미혹의 세계(生死)流轉시킴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煩惱障이라고 하며, 法執에 의해 일어나서 알아야 할 대상인 진리를 막음으로 보리를 깨닫는 길을 방해하는 所知障이라 한다. 번뇌장은 일체의 번뇌를 로 하고 반드시 所知障을 수반한다. 번뇌장은 所知障依支處로 하기 때문이다. 所知障은 함께 번뇌를 로 하지만, 반드시 번뇌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發業(주로 다음에 말하는 分別起의 혹으로 특히 제六意識相應無明이 그것이다)이라고 하고 이에 대해서 迷界의 중생을 윤택하게 하고 삼계의 중생을 받게 하는 혹을 潤生의 혹(다음에 말하는 俱生起의 번뇌로 특히 제六意識相應로 한다)이라고 한다. 또 어떻게 해서 번뇌가 일어나는가 하는 점에서 나누면, 二障 공히 각기 분별기와 구생기가 있다. 邪師·邪敎·邪思惟 등 밖으로부터의 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분별기의 혹이라고 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일어나는 본능적인 것을 구생기의 혹이라고 한다. 근본번뇌중에서, 의심과 邪見見取見戒禁取見과의 는 분별기뿐이며, 다른 二十隨惑은 양쪽에 모두 공통한다.

번뇌를 끊어야 할 수행단계의 相異에 따라 번뇌를 나누면 見惑修惑(思惑)二惑이 있다. 전자는 見道에 의해서 없애야 할 번뇌(見道所斷)이며 후자는 修道에 의해서 끊어야 될 번뇌(修道所斷)이다. 俱舍宗에서는 迷理見惑, 迷事修惑이라고 하고, 唯識宗에서는 分別起見惑, 俱生起修惑이라 한다. (1) 俱舍宗에서는 三界 四諦의 각각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見惑에 총 八十八이 있다. 欲界苦諦에 관해서는 근본번뇌와 集諦滅諦에 관해서는 身見·邊見·戒禁取見을 뺀 근본번뇌, 道諦에 관해서는 戒禁取見을 더하여 근본번뇌가 있으므로, 합하면 欲界三十二, 色界·無色界에는 이 없기 때문에 四諦의 하나하나에 을 뺀 각 二十八, 計 八十八이 된다. 이것을 見惑八十八使라고 한다. 修惑欲界···, 色界·無色界에 각기 ··의 셋이 있어 합하면 열이 되므로 여기에 見惑八十八을 더하면 九十八隨眠 또는 九十八使라고 한다. 修惑은 성질이 遲鈍애매하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九地의 각 위에 강약의 정도에 따라 九品(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아홉 品階)의 구별을 세워, 九地九品思惑, 修惑 八十一品 등이라고 한다. 九十八使遍行非遍行으로 나눈다. 遍行이라 함은, 三界九地 중에서 自界自地五部(見道에 있어서 四諦觀行과 이것을 거듭하여 닦는 修道)에 널리 작용하여 五部을 더럽히는 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五部 중의 自部에만 작용하는 非遍行이라고 한다. 九十八隨眠 중에서 널리 五部의 모든 有漏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고, 널리 그것들과 隨順하고 그것들에 의해서 더욱 더 增長하고(隨增하고), 이 되어서 널리 五部染法(번뇌 등의 染汚法)을 낳게 하는 힘이 강한 遍行으로 三界의 각각에 있어서 苦諦에 헤매는 五見··無明集諦에 헤매는 邪見·見取見··無明과의 十一이 있다. 이것을 十一遍行이라 한다. 이 중 ·二見은 다만 自界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自界緣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다른 아홉은 自界는 물론 또 다른 上界까지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他界緣이라고 하고, 이 아홉은 上界上地까지도 이 있다고 하는 의미로 九上緣이라고도 한다. 九十八使有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有漏緣無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無漏緣으로 나누면 滅道二諦邪見(邪見·에 상응해서 일어나는 相應無明과 및 독립으로 일어나는 不共無明)六惑無漏緣이며, 그밖의 것은 有漏緣이다. (2) 唯識宗에서는, 見惑에는 欲界四諦 각각에 근본번뇌(欲界四十), 색계·무색계에 성냄()을 뺀 근본번뇌(色界三十六·無色界三十六) 百十二번뇌를 들고, 修惑에는 欲界·邪見·見取見·戒禁取見을 뺀 근본번뇌, 색계·무색계에 각기 다시 을 뺀 각 근본번뇌, 計 十六번뇌를 들므로 見修二惑을 합하여 百二十八번뇌가 된다.

知的五利使見惑 등을 見煩惱라고 하고, 情意的五鈍使修惑 등을 번뇌라 하며, 합하여 見愛()번뇌, 見著二法, 愛見이라고 한다. 虛假(헛소리)이기 때문에, 見假·愛假라고도 한다. 勝鬘經에는 四住地번뇌의 이 있다. 번뇌는 見道에 있어서 한때에 끊겨지기 때문에 見一處住地(一切見住地)이라고 부르고 번뇌는 이것을 三界에 나누어 각기 欲愛住地, 色愛住地·有愛住地이라 부른다. 또 이 넷에 다시 모든 의 근본이 되는 無明(無明住地)을 더하여 五住地번뇌, 五住地惑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五住地번뇌 중 앞의 넷은 煩惱障의 종자이며, 뒤의 하나는 所知障의 종자라고 한다. 天台宗에서는 전자를 界內見思, 후자를 界外이라고 한다. 대개 住地라 함은 다른 모든 이 일어나고 의지처가 되며() 을 일으키는 이 된다는 뜻이다. 智度論 卷七에는, 자신에 집착하는 번뇌를 內著번뇌, 外境에 집착하는 번뇌를 外著번뇌라 하며, 전자는 五見··, 후자는 ·에 속한다고 한다.

天台宗에서는 見思·塵沙·無明三惑(三障·三垢)을 말함. 곧 우선 見惑修惑(思惑)見思이라고 부르며, 다음에 티끌()이나 모래()에도 비유할 만큼의 무수한 사물의 하나하나의 事理劣慧(번뇌의 習氣不染汚無知라고도 한다)로 하고, 다른 것을 化導하는 것을 막는 塵沙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모든 의 근본으로, 中道 第一義諦의 도리를 한 가장 적은 번뇌를 無明이라 부른다. 각각 空觀·假觀·中觀에 의해서 끊긴다고 한다. 三惑을 번뇌장·소지장에 配對하면 見思는 번뇌장, 塵沙·無明은 소지장에 해당한다. 見思三乘에 공통하는 이므로 通惑·塵沙·無明은 특히 보살만이 끊는 이기 때문에 別惑이라고 부르고(通別二惑), 見思三界안에서 일으키는 이므로 界內, 無明三界를 넘은 곳에 있는 이기 때문에 界外, 塵沙는 양쪽 모두 통하므로 界內界外이라고 한다. 見思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사물의 을 집착하여 취하는 번뇌이기 때문에 따로 取相이라고 말하는데, 넓은 뜻으로는 뒤의 二惑도 또한 取相이라고 한다.

번뇌에는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1) 三縛. 貪縛·瞋縛·癡縛. 이상의 차례로 ··三受對境을 향해서 일어난다. (2) 三漏. 欲漏(를 뺀 欲界繫의 근본번뇌 및 十纏有漏(를 뺀 上二界繫의 근본번뇌로 이 경우의 有身의 뜻. 의 존재를 말한다. 無漏에 대한 有漏는 아니다無明漏(三界). (3) 三結. 有身見結·戒禁取結·疑結. 五見 근본번뇌가 이 중에 포함된다. 三結이 다하면 預流果에 이른다라고 한 經說에 따라 三結이 다하면 그 때 見惑의 모든 것이 끊어진다고 한다. (4) 四暴流(四流). 欲暴流·有暴流·見暴流·無明暴流. 三漏의 분류법에서 을 독립시킨 것. (5) 四軛. 四漏. ···無明의 넷으로 惑體四暴流와 같다. (6) 四取. 欲取·見取·戒禁取(戒取我語取. 俱舍宗에서는 欲界五鈍使 十纏欲取, 五利使 중 앞의 넷을 見取, 戒禁取見(), 上二界···我語取라고 한다. 이어라 함은 내신(자기의 몸)을 말한다. 내신에 의해서 나를 설하기 때문이다. 상이계의 번뇌는 대개 내신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아어취라고 부른다. (7) 四身繫(四身縛·四縛·四結이라고도 한다). 貪欲身繫(貪欲身縛·欲愛身縛瞋恚身繫(瞋恚身縛戒禁取身繫(戒禁身縛此實執取身繫(我見身縛). (8) 五蓋. 欲貪蓋·瞋恚蓋·惛眠蓋·掉悔蓋·疑蓋. 가 섞이지 않는 것을 疑蓋無雜이라고 하는 말도 여기에 연유한다. (9) ()下分結. 有身見·戒禁取見··欲貪·瞋恚. 下分이라 함은 欲界란 뜻. (10) ()上分結. 色貪·無色貪·掉擧··無明. 上分이라 함은 上二界란 뜻. (11) 五結. ····. (12) 六垢(六煩惱垢). ·····. 煩惱垢라 함은 근본번뇌에서 흘러나와 그 모습이 더러워지고 거칠다는 뜻. (13) 七流. 見諦所滅流·修道所滅流·遠離所滅流·數事所滅流·捨所滅流·護所滅流·制伏所滅流(華嚴孔目章 卷三 ) (14) 九結. 愛結·恚結·慢結·無明結·見結·取結·疑結·嫉結·慳結. (15) 十纏. 無慚·無愧···惡作·睡眠·掉擧·惛沈·忿·등의 . 忿·을 빼고 八纏이라 하는 경우가 있다. 枝末번뇌 중에 六垢는 가볍고, 十纏은 무겁다. 九十八隨眠十纏을 더해서 百八번뇌가 된다고 하고, 또 모든 번뇌를 다 말하면 八萬四千의 번뇌가 있다고도 한다.

번뇌를 여의는 것을 離垢, 번뇌가 없는 것을 無垢, 번뇌가 다한 것을 漏盡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漏盡比丘, 漏盡하여 마음에 진리를 了解하는 것을 盡漏意解라고 한다.

 

상응(相應) : 범어 samprayukta의 번역. 평등하게 화합한다는 뜻. 이 서로 和合하여 떨어지지 않는 관계에 있는 것. 특히 마음과 心所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수가 많다. 六因 중의 相應因은 이것이며, 俱舍論 卷六五義平等相應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것이다. 雜集論 卷五에는, 서로 떠날 수 없는(不相應), 화합하는(和合), 모이는(聚集), 同時하고, 同時하는(俱有), 목적을 같이 하는(所作), 心所가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한결같이 작용하는(同行) 것의 6相應. 이 중에서 앞의 5종은 주로 色法(물질)에 대해서 말한 것. 이 밖에, 과 뚜껑과 일치하는 것을 函蓋相應, 를 받는 ()가 일치하는 것을 機敎相應이라고 한다.

 

속박(束縛) : 얽어 매어서 자유를 구속함.(국어사전)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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