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四空定)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 空無邊處定. 色의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色의 想을 버리고, 끝없는 虛空觀을 하는 禪定.
(2) 識無邊處定. 더 나아가 內識이 廣大無邊하다고 觀하는 선정.
(3) 無所有處定. 識인 想을 버리고 心無所有라고 觀하는 선정.
(4) 非想非非想處定. 이것은 有想도 버리고 非想도 버리는 선정.
참고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 무변한 허공을 생각해 내어 念하는 정신통일. 空無邊處天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하고 익히는 禪定의 이름. 이것을 根本定으로 하고, 그 加行位를 近分定이라 함.
색(色) : 범어 rupa의 번역.
① 五蘊의 하나로 色蘊이라 하고 五位의 하나로 色法이라고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의 色으로 물질적 존재의 총칭. 變壞하고(변화하고 부서지고) 變礙하는 것(質礙라고도 한다. 일정의 空間을 占有하여 다른 물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眼·耳·鼻·舌·身의 五根과 色·聲·香·味·觸의 五境과 法處所攝色에 이르는 11色으로 나눈다. 法處所攝色은 또 隨法處色·法處色이라고도 한다. 오직 意識만이 對象인 法處에 포함되는 色法을 말한다.
(1) 有部에서는 이 11色 중 觸境의 일부가 地·水·火·風의 四大種이고 나머지는 다 四大所造色이라고 한다. 또 五根·五境은 極微로부터 성립되는 色法인데 法處所攝色은 無表業을 가리킨다. 곧 無表業은 極微로부터 성립되는 色法은 아니나 四大所造의 色法이므로 無表色(無敎色 또는 無作色이라고도 함)이라 한다.
(2) 唯識宗에서 말하는 法處所攝色은 다음 5가지이다.
곧 (가) 極略色(五根·五境의 實色(물질)을 분석하여 물질의 최소단위인 極微
에 이르는 것).
(나) 極逈色(空界·明·暗 등 能礙(장애)의 성질을 갖지 않은 물질의 極微).
(다) 受所引色(無表色).
(라) 遍計所起色(意識에 나타나는 五根·五境 등의 影像).
(마) 定所生色(定果色·自在所生色이라고 한다. 殊勝한 定에 의해서 定중에 나타나는 色·聲 등의 五境).
(3) 色은 또 內色(五根)과 外色(五境), 細色(無表色 또는 色界의 色)과 麁色(極微로부터 이루어진 色 또는 欲界의 色), 定果色(定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色)과 業果色(業에 따라서 이루어진 色) 등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며, 可見有對色(狹義의 色 곧 色境)과 不可見無對色(無表色)과 不可見有對色(聲·香·味·觸·五根)의 3가지 色으로 나눈다. 可見은 有見, 不可見은 無見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有對·無對는 對礙(이 경우에는 障礙)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말한다. 無表色에 대한 表色(表業·作色 또는 有敎色)을 有部에서는 形色(身表業의 體)과 聲(語表業의 體)이라 하지만 다른 종파 學派에서는 異論을 세우기도 한다.
② 狹義의 色은 12處의 하나로 色處라고 하며 十八界의 하나인 色界라고도 하고, 또 五境·六境의 하나라고도 한다. 곧 眼根의 對境으로 볼 수 있는데 여기에 顯色과 形色과의 두 가지가 있으니, 顯色이란 “빛깔”을 말하는 것으로 有部에서는 靑·黃·赤·白·雲·煙·塵·霧·影·光·明·暗의 12종을, 形色이란 “형상”으로 長·短·方·圓·高·下·正·不正의 8종을 일컫는다. 顯色에 다시 空(蒼空色)을 첨가하는 설도 있다. 또 靑·黃·赤·白에 黑을 더하여 五色(五正色·五大色)이라고도 한다.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 心識이 無邊이라고 觀하는 정신통일. 無色界의 제2. 識無邊處天의 禪定을 말함. 4無色定의 하나. 또한 識處定이라고도 함.
내식(內識) : 外境의 對. 心識과 같음.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 아무것도 그것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체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선정. 四空定의 하나.
식(識) : 毘闍那 · 毘若南이라 音譯하며, 外境을 識別 · 了別 · 인식하는 작용. 곧 마음의 작용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며, 外境에 대해 內識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外境을 識別하고 了別하는 것은 識의 外境으로서 顯現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위치에 있는 識을 表識 · 記識이라 한다.
① 大乘 · 小乘이 한결같이 六識을 주장한다. 六識이란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6根을 따라서 色 · 聲 · 香 · 味 · 觸 · 法의 6境에 대해 見 · 聞 · 嗅 · 味 · 觸 · 知의 了別작용을 하는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의 여섯가지 心識을 말한다. 이것을 六窓一猿의 비유로서 六識의 體는 하나이지만 그 작용하는 出入門이 여섯이라고 했다. 생각컨대 六識說은 원시적인 뜻을 전하고 있다고 보며, 六識중에서 제 6의 意識을 제 六識이라고도 하며, 후세에 와서 여기에 六識 · 意識 · 分別事識 · 四住識 · 攀緣識 · 巡舊識 · 波浪識 · 人我識 · 煩惱障識 · 分段死識 등 10가지 이름을 붙여 이것을 六識十名이라고 했다. (宗鏡錄)
② 法相宗에서는 6識에 末那識과 阿梨(賴)耶識을 더하여 8識을 주장한다. 8識중 眼識에서 身識까지의 5識을 일괄하여 前五識, 제 6識까지는 前六識 · 제 7末那識까지를 前7識이라 한다. 前7識은 阿賴耶識을 所依로 하고 각각 境을 緣으로 하여 轉起되었다는 뜻에서 七轉識 또는 轉識이라 한다. 또 前六識은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이 현저한 識이므로 了別境識, 제 7末那識은 思量識, 제 8阿賴耶識은 異熟識이라 한다. 護法의 唯識說에서는, 8식중 제 6意識과 제 7末那識은 대상을 〈我다〉〈法이다〉라고 허망하게 집착하는 遍計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六 · 七能遍計라고 한다. 前五識과 제 8阿賴耶識은 我 · 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五 · 八無執이라 한다. 인도의 無相唯識派에서는 八식의 體性이 동일하다 하여 八識體一을 주장하지만 有相唯識派와 法相宗에서 體性이 각기 다르다고 하여서 八識體別의 說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二識 내지 八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고 동시에 轉起한다고 한다. 이것을 八識俱轉하여 小乘에서는 2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③ 眞諦를 祖로 하는 攝論宗에서는 八識에 다시 제 9阿摩羅識을 세워 9識說을 주장한다. 阿摩羅識은 無垢識 · 眞如識 · 眞識이라고 불리우는 淨識이라 한다. 이 입장에서 볼 때, 제 8阿賴耶識은 妄識 또는 眞妄和合識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地論宗 · 天台宗 가운데서도 이 주장을 취하는 사람이 많다.
무소유(無所有) : 無所得이라고도 함. 空의 다른 이름. 능엄경上에 「安然得無所得」라고 했다.
무소득(無所得) : 無相의 이치를 얻어 마음 속에 집착 분별함이 없음.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 非想非費想處는 無色界의 제4天으로, 形而上的 존재이어서 따로 국토가 있지 않다. 이 하늘의 이름은 그 닦는 禪定인 非想非非想處定에 의지하여 지어진 것이다.
유상(有想) : 無想天의 有情에 대하여 다른 사상의 有情을 가리키는 말. 無想天은 色界에 있고 이곳에 중생이 태어나면 5백大劫의 사이를 無心에 住한다 함.
무상천(無想天) : ① 無想有情天·少廣天·福德天이라고도 한다. 無想定을 수행함으로서 도달하는 경지. 外道는 이것을 최고의 니르바나의 경지로 간주한다. 說一切有部·經量部는 色界 제4禪의 廣目天의 일부로 한다. 먼저 四靜慮를 닦아서 이 경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일체의 마음작용을 끝낸 하늘로서 오랜 시간 뒤에 마음작용을 복귀한다. ② 無想天에 태어난 중생. 無想有情과 같다.
비상(非想) : 非想非非想處의 약어. 三界 중의 最上의 天.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非有想非無想處의 다른 이름으로 無色界의 제4天. 이 하늘은 3界의 가장 높은 곳에 있으므로 有頂天이라고도 한다. 이 하늘에 사는 이는 下地와 같은 거칠은 생각이 없으므로 非想 또는 非有想이다. 그러나 자세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므로 非非想 또는 非無想이라 한다. 非有이므로 外道들은 眞涅槃處라 하고, 非無想이므로 불교에서는 이것도 生死하는 곳이라 한다.
선정(禪定) : 禪은 범어 禪那의 약칭으로, 思惟修라 번역하며, 新譯은 靜慮라 한다. 思惟修는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자세히 思惟하는 수행이란 뜻이다. 靜慮는 고요히 생각하는 것으로, 心體가 적정하여 능히 審慮한다는 뜻이다. 定은 범어 三昧의 번역으로, 마음이 한 경계에 定止하여 흐트러짐을 여읜다는 뜻이다. 곧 한 마음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을 禪이라 하고, 一境이 靜念한 것을 定이라 한다. 그러므로 定의 이름은 寬이며 일체의 息慮凝心으로 이름한 것이며, 禪의 이름은 狹이니 定의 一分이다. 왜냐하면 禪那의 思惟와 審慮는 스스로 定止 · 寂靜의 뜻이 있으므로 定이란 이름을 얻었고, 삼매는 思惟와 審慮의 뜻이 없으므로 禪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러한 두 가지 뜻을 總別合稱하여 禪定이라 한다.
정(定) : ①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專注하여 散亂하지 않게 하는 정신작용. 또는 그런 상태를 定이라고 하며, 이와 반대로 마음이 흩어지고 어지러워(散亂) 움직이는 상태를 散이라 한다. 定散이라 幷稱하기도 한다. 定은 본래 三摩地의 번역으로, 구사종과 유식종에서는 心所(마음의 활동작용)의 하나로 셈하며, 구사종에서는 十大地法의 하나로, 유식종에서는 五別境의 하나로 친다. 또 일반적으로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는 修行, 또는 그것에 의해 이루어진 특수한 寂靜의 정신상태를 총칭해서 定이라 한다.
定 곧 三昧는 戒 · 慧와 더불어 三學의 하나로서 불교실천수행에 있어 網要的인 道이며, 또 八正道의 하나로서 正定을, 五根 · 五力의 하나로서 定根 · 定力을 들게 된다. 그러나 육바라밀의 하나로서의 定바라밀의 定은 禪(靜慮)이다.
② 禪(靜慮), 삼매 등의 낱말 가운데 포함되는 外延의 범위와 定이란 말이 가지는 뜻의 廣狹에 관해서는 종래 종종의 異說이 있어 왔다. 넓게는 禪定이란 말을 써왔는데, 唯識了義燈卷五에는 定의 異名으로 일곱가지를 들고 있다. 곧,
(1) 三摩呬多. 等引이라 번역하며, 이 譯語가 갖는 뜻은, 等이란 마음이 들떴다(掉擧), 가라 앉았다(惛沈)하는 번뇌를 여의고 平衡을 가지므로 身心이 편안해지는 상태를 가리키며, 引은 定力이 이것을 끌어 일으킴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等引은 有心 · 無心의 2定에 통하는데 散心의 位에는 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 三摩地(三昧). 等持라고 번역하며, 心을 平等하게 가진다는 뜻의 말이다. 定 · 散에 통하지만 有心位에만 통하고 無心에는 통하지 않는다. 定의 體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3) 三摩鉢底. 等至라 번역하며 身心의 平等에 이른다는 뜻. 유심 · 무심의 2定에 통하지만 散位에는 통하지 않는다. 定의 自相이라 한다.
(4) 禪那. 靜慮라 번역하며 音略하여 禪이라고도 한다. 思慮를 고요하게 한다는 뜻으로 유심 · 무심에 통하고 유루 · 무루에 다 통하지만 色界의 定에 한하므로 따라서 無色界의 定에는 통하지 않는다.
(5) 質多翳迦阿羯羅多. 心一境性이라 번역한다. 心을 하나의 대상을 향해서 집중시킨다는 뜻으로 定의 自性이라고 한다.
(6) 奢摩他. 止 · 正受라 번역하며 邪亂을 여의고 想念을 그친 心의 定靜이란 뜻으로 有心의 淨定에 한한다.
(7) 도리 수타달마 스카 비하라. 現法樂住라 번역하며 現在世에서 定의 悅樂 가운데 안정됐다는 뜻으로 色界의 四根本定에 한한다.
③ 定에는 색계 · 무색계에 태어남으로 해서 자연히 선천적으로 얻어지는 生得定과 欲界(散地)에서는 定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해서 그 노력에 의해 얻는 후천적인 修得定의 구별이 있다. 色界定의 경우에는 이 둘을 각각 生靜慮 · 定靜慮라 하고 無色定의 경우에는 生無色 · 定無色이라고 한다. 또 定의 내용이나 수행의 階程에 의해서 종종의 定이 있으나 구사종 등에서는 이를 대별하여 有心定과 無心定의 二定으로 함.
有心定에는 4靜慮(四禪 · 四色界定)과 4無色定의 8定(八等至)이 있다. 곧 初靜慮 · 第二靜慮 · 第三靜慮 · 第四靜慮와 空無邊處定 · 識無邊處定 · 無所有處定 · 非想非非想處定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定에는 틀림 없이 각각의 定에 들어간 단계와 그 定에 가까와진 준비적 入門의 전단계가 있어서, 前者를 根本定(根本等止), 後者를 近分定이라고 한다. 다만 初靜慮의 前단계만은 近分定이라 하지 않고 未至定이라 이름하며, 또 初靜慮와 第二處定의 近分定과의 중간단계에 中間定이 있어서 이를 닦으면 大梵天에 난다고 한다. 또 第四靜慮에도 下下品으로부터 上上品까지의 9품이 있는데 그 마지막인 上上品은 色界의 定 가운데 최고가 되므로 邊際定이라고 한다.
이상의 未至 · 中間 · 七近分 · 8根本의 諸定을 尋(尋求推度하는 粗雜한 정신작용)과 伺(伺察思惟하는 深細한 정신작용)의 有無에 따라서 나누면, 未至定과 初靜慮는 有尋有伺三摩地(有覺有觀定), 中間定은 無尋唯伺三摩地(無覺有觀定), 第二靜慮의 近分이상은 無尋無伺三摩地(無覺無觀定)가 되며, 이것을 三定이라고도 , 三三摩地라고도, 三三昧라고도 한다.
또 定의 性質여하에 따라서 味定 · 淨定 · 無漏定의 三定(三等至)으로 나눈다. 味定(味等至)은 貪愛와 相應하여 일어나고 前念(前刹那)의 淨定에 愛樂味着하는 바의 定으로 8根本定과 中間定에 있다. 淨定(淨等至)은 유루의 善心과 相應하여 일어나는 定으로 順退分(自他의 번뇌에 順해서 味定을 일으킴) · 順住分(自他의 淨定에 順한다) · 順勝進分(上地의 淨定에 순응한다) · 順決擇分(無漏地에 순응하여 無漏定을 일으킨다)의 4종으로 나누어지며, 未至定 · 中間定 · 7近分定 · 8根本定의 모두에 있다. 無漏定(無等等至)은 聖者가 그것을 所依로 하여 無漏智를 얻는 定으로서 未至定 · 中間定 · 4根本定(靜慮) · 下三無色定에 있으며 번뇌를 끊는 작용이 강하다. 또 有心定에는 止(奢摩地)와 觀(毘鉢舍那)이 평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未至定과 中間定은 觀하는 쪽이 殊勝하며, 四無色定은 止의 쪽이 뛰어난데, 다만 색계의 4根本定만은 止 · 觀이 均等하므로 靜慮라 이름한다고 한다. 無心定에는 無想定과 滅盡定의 2無心定이 있는데 그 어느 것이든 心 · 心所를 다 滅하는 定이지만 前者는 범부 및 외도가 無想의 상태를 참된 깨달음으로 誤認하여 닦는 것이며, 後者는 聖者가 그 定의 경지를 無餘涅槃界의 寂靜을 닦는 것이다. 四禪(四靜慮) · 四無色 · 滅盡의 9定은 異心을 섞어서 차례를 따라 順次로 修得하는 경우에는 九次第定, 無間禪이라고 일컬어지지만, 定에서 自在力을 얻은 不時解脫의 아라한은 四禪 · 四無色의 8定을 차례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一地를 뛰어서 더욱 높은 단계의 定을 닦을 수 있는데, 이것을 超定(初等至 · 超越三昧) 이라 한다. 有部의 正說에 따르면 欲界는 散地로서 修地 · 離欲地는 아니고 定地는 다만 欲界 · 無色界만이라고 하지만 異師나 大衆部에서는 欲界에도 定이 있다고 한다.
④ 大乘에서는 아주 많은 종류의 定을 說示한다. 곧 유식종이나 眞言宗의 瑜伽의 觀行, 천태종의 四種三昧, 禪宗의 坐禪 등에서처럼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실천 방법으로서 定을 닦고, 佛陀가 說法 전에 定에 든 것처럼 다른 이를 인도하기 위해 定에 드는 수도 있다. 또 유식종에서는 四善根位의 하나하나에 있어서 主觀과 客觀이 假有實無임을 觀하기 위해, 각각 明得定(환位) · 明增定(頂位) · 印順定(忍位) · 無間定(世第一法位)〔이상을 四定이라 함〕에 든다고 한다. 이렇게 定에 드는 것을 入定이라고 하며, 禪宗에서는 入禪 · 放禪이라 하기도 한다. 또 깨달음을 이룬 高德이 죽는 것을 入定이라고 하는 수도 있다.
⑤ 觀無量壽經에는 西方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行으로 定散二善을 說한 것이다. 善導에 의하면 定善은 定心으로 행한 善, 곧 雜念을 쉬고 마음을 집중한 息慮凝心이고, 散善은 散心으로 행한 善 곧 惡을 버리고 善을 닦는 廢惡修善이라고 했으며 이것을 합하여 定散二善이라 하고 이것을 닦는 사람을 定機 · 散機라고 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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