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ㅁ(리을~미음)

믿음과 죽음(마음,청담스님)

근와(槿瓦) 2018. 7. 8. 00:13

믿음과 죽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에 대한 순교의 가치와 순교자의 위치는 그 종교사에 있어서 지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종교가 위기를 당했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고 또는 그 종교의 첫 발생시에 필연코 따르는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분파의 종교와 모든 종교인들은 이러한 선각자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써 진리의 전당에서 교주가 설파하신 진리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불교사에도 이와 같이 피를 흘려야만 했던 순교를 일찍이 불교전수(佛敎傳受) 초기에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즉 신라 법흥왕(法興王) 15년에 있었던 이차돈(異次頓)의 순교가 그것이다. 처음 신라에 불교가 수입 · 전포되어 왕도 이를 대흥코자 할 때 여러 신하들이 승려들은 머리를 깎고 괴상한 옷을 늘입고 있으며 말씨도 야릇하니 상도가 아니외다. 만일 불법(佛法)을 백성들에게 믿게 하면 필연코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하고 절대적인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정세를 주의깊게 관망하던 당시 내사사인(內史舍人) 이차돈은 이 불법의 홍전(弘傳)은 비상한 결심과 실천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왕실에 나아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 불법을 일으킬 뜻과 그 결심을 상주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왕은 불도(佛道)에 어찌 살생(殺生)이 있겠느냐고 거절했으나 대신들의 의논이 백성을 현혹시키는 이차돈을 죽여야 한다고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이차돈은 불법이 신령하오면 나의 이 죽음에 이적(異跡)이 있으리라.예언하고 목에 칼을 받으니 잘라진 목에서 흰 젖빛의 피가 공중에 솟아오르고 천지가 캄캄해지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감히 불법을 훼방하거나 불신하는 이가 없었고 왕도 불법신앙을 백성에게 허락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이 드라마틱한 이차돈 순교의 일화에서 그 사실 여부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담겨진 종교의 순교적 정신과 그 의의를 살펴 보자는 것이다.

특히 불교의 포교를 위하여 순교한 이차돈은 승려가 아니고 일반 신도였다는 데 더욱 주의를 끈다. 다만 그는 법흥왕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고 있던 귀족일 뿐이었다. 그를 처형할 때 그의 잘려진 목에서 나왔다는 유혈(乳血)에는 신라의 사회와 왕실로 하여금 불교에 대한 적대감을 불식시키고 흔연히 신앙할 수 있도록 합리화시키는 요소가 잠재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리하여 신라 불교는 민간 신앙은 물론 귀족과 왕실에까지 파고 들어 이른바 호국 불교라는 명목으로 그 세력을 신장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신라의 정치 · 문화 등 모든 분야가 불교의 영향 아래 발달되어 찬란한 불교국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는 급템포로 변모 진전하고 있다. 더구나 교계(敎界)안에서는 근대화의 소리가 드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우리는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과 자세를 취하여 낡은 껍질을 탈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의 구현은 오직 이차돈의 순교정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의 정법을 호전(護傳)키 위하여 귀중한 자신의 목숨을 선뜻 바친 이차돈의 순교적 정신으로 오늘의 승려는 청정수행을 철저히 하여 승단을 확립하고 삿된 미신 불교를 타파하며 또한 사부대중이 합심하여 불교현대화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교단 자체의 체질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구태의연한 낡은 굴레 속에서 머물러 있는 한, 불교 최고의 목적인 자각이나 중생제도의 실현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자각과 중생제도가 결여된 즉 상구보리(上求菩提)를 하지 못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도 불가능한 종교는 인간과는 무관한 종교가 되고 말 것이요, 또한 이러한 종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종교는 이미 그 생명을 상실한 것이다.

신라의 이차돈은 이러한 종교의 생명과 그 사명을 규지(窺知)하고 순교의 단두대 위에 기꺼이 그 목숨을 올려 놓았던 것이다. 그 피의 대가로 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참다운 길을 찾았고 생명의 빛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이 사회에 필요한 종교, 또한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종교로서 불교의 근대화가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선각자 이차돈의 15백여 년 전에 피 흘린 순교의 정신을 바르게 이해 실천하는 길이다.

 


출전 : 마음(청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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