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락수(非樂修)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劣三修의 하나. 非樂은 苦의 異稱. 小乘의 小僧들은 諸法 가운데 본래 涅槃寂靜의 樂이 갖추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모든 法이 모두 苦라고 觀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열삼수(劣三修) : 삼수(三修)→3가지 法을 觀하는 방법. 여기에 勝劣 2種의 3修가 있다. 劣三修라 함은 無常修(모든 有爲法은 無常이라고 觀한다) · 非樂修(모든 法은 다 苦라고 觀함) · 無我修(五蘊은 空하여 我 및 我의 所有物이 無라고 觀함)의 셋으로, 이것은 聲聞의 觀法이다. 勝三修라 함은 常修(法身은 常住不滅임을 觀하고 모든 것은 無常이라는데 집착하는 聲聞의 잘못을 打破함) · 樂修(涅槃에서는 寂滅樂이 있음을 觀하여 一切皆苦라는데 집착하는 聲聞의 잘못을 打破함) · 我修(無我法중에 眞我의 자유가 있음을 觀하여 모든 것이 無我라는데 집착하는 聲聞의 잘못을 打破함)의 셋으로, 이것은 보살의 觀法이다. (北本涅槃經卷二)
고(苦) : 범어 duhkha의 번역. 豆佉 · 諾佉의 音譯. 身(狹義) 또는 身心(廣義)에 대해 逼迫하고 괴롭히는 (損惱) 상태. 괴로움을 말함. 樂의 반대임. 즉, 마음에 계합하는 대상으로 향할 때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마음에 계합하지 않는 대상으로 향할 때에는 괴로움을 느낀다. 淸淨道論에 의하면, 괴로움에는 嫌惡되고, 常 · 樂 · 我 · 淨이 없는 상태가 苦라고 한다. 苦 · 樂 · 捨(不苦不樂)를 三受라 하는 경우의 苦는 身心으로 느끼는 苦이지만(廣義), 五受 · 二十二根에 配例할 때에는 몸으로 느끼는 苦(狹義)와, 心으로 느끼는 憂로 나눈다. 모든 것은 苦다(一切皆苦)라고 하면 불교의 근본사상의 하나이고, 불교의 네 가지 근본 진리(四法印) 가운데 하나로 꼽게 된다. 苦는 다음과 같이 여러가지로 분류된다.
① 二苦. (1) 內苦는 자기의 心身 안에서 일어나는 苦이며,
(2) 外苦는 밖으로부터 받는 苦이다(盜賊이나 天災 등)
② 三苦. (1) 苦苦는 탐탁하지 않은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苦,
(2) 壞苦는 좋아하는 대상이 변멸하여 없어짐으로 받는 苦,
(3) 行苦는 세상의 일이 바뀌는 것을 보고 느끼는 苦. 이것들을 차례로 苦 · 樂 · 捨(不苦不樂)에 해당시키기도 한다. 數論에서는, 依內苦(內苦에 해당됨) · 依外苦(惡賊 등) · 依天苦(天災 등)를 三苦라고 한다.
③ 四苦. (1) 生苦(태어나는 괴로움)
(2) 老苦 · (3) 病苦 · (4) 死苦의 四. 人間苦를 山에 비유하여 四山이라고 한다.
④ 八苦. (1) 生 (2) 老 (3) 病 (4) 死의 四苦와, (5)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愛別離苦), 좋은 현실을 여의는 苦. (6)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고(怨憎會苦), 또 맞지 않는 환경을 만나는 苦. (7) 구하여도 얻어지지 않는 고(求不得苦). (8) 身心環境 일체를 형성하는 五要素(五蘊 · 五陰)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苦(五盛陰苦 또는 五陰盛苦, 五取蘊苦)로 최후의 것은 앞의 七苦를 총괄하는 苦이다. 八苦중 처음의 四苦를 하나로 하여 五苦라고도 한다.
⑤ 그 밖에 諸經論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苦로 분류 說示하고, 瑜伽論 卷四十四에는 百十苦를 나열하고 있다.
⑥ 老 · 病 · 死를 三種의 身苦, 貪 · 瞋 · 癡를 三種의 心苦라고 하여, 身心의 苦를 대표하기도 한다. 또한, 임종이 다가올 때 百千의 칼로써 몸을 찌르는 듯한 것을 風刀苦라 한다.
소승(小乘) : 범어 hinayana. 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 대승의 對. 이 교법 중에서 敎·理·行·果가 모두 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도 大器利根인 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와는 달리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구하는 것을 소승이라 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있다.
(1) 聲聞乘. 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한다.
(2) 緣覺乘. 12인연을 觀하여 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敎體로 한다. 이것은 모두 몸을 태우고 智를 멸하여 空寂 열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에 上座部와 大衆部로 분열하였고, 이 대중부는 또 다시 9부로, 上座는 11부로 나뉘어져 결국 도합 20부가 되었다. 스승이나 지역 관계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열은 한편으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부의 敎義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며, 거기다가 이상적 질서를 부여한 것은 중국의 敎判으로, 窺基의 八宗判, 法藏의 十宗判 등이다. 이 이름은 대승이 有部의 煩瑣 연구를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한다. 대표적인 부파는 有部·經量部·正量部·大衆部 등이다.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東土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이다.
소승(小僧) : 나이 젊은 승려. 또는 승려가 자기를 말할 때 낮춰서 하는 말.
제법(諸法) : 여러 가지 법. 萬法과 같음. 우주에 있는 有形 無形의 모든 사물. 諸有. 諸行.
열반적정(涅槃寂靜) :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삼법인 가운데의 하나. 불교의 근본 敎義를 세 가지로 나타내는 것 가운데의 하나임. 일체의 중생이 번뇌를 일으켜서, 業을 짓고 三界에 流轉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열반적정의 法을 설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를 여의고 寂滅에 이르도록 하게 하신 것.
삼법인(三法印) : 불교의 근본 敎義를 세 가지로 나타내는 것. 印은 一定不變하는 진리라는 표시.
(1) 諸行無常印. 一切의 物 · 心의 현상은 다 生滅變化하여 고정불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중생들은 恒常하는 존재로 착각하기 때문에, 이 그릇된 생각을 없애기 위하여 無常하다고 말하는 것.
(2) 諸法無我印. 萬有의 諸法은 因緣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참다운 自我인 實體가 없는데도, 중생들은 我에 집착하는 妄執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이것을 없애기 위하여 無我라고 말하는 것.
(3) 涅槃寂靜印. 生死의 바다를 輪廻하는 고통을 벗어난 彼岸인 涅槃寂靜의 세계를 말한 것.
낙(樂) : 범어 sukha로 苦에 대한 말. 身心에 유쾌하게 느끼는 감정. 三受의 하나로서, 樂受라 하며 五受根, 二十二根의 하나로 樂根이라 한다. 身心으로 나누어서 身受를 樂이라 하며 心受를 喜라고 하기도 한다. 모두 善한 業을 따라서 얻어지는 果報는 樂이며, 身心을 攝益하게 하고 身心을 위하는 것이 되는데 이것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곧 天樂(十善을 닦으므로 天界에 나서 받는 樂)·禪樂(禪定의 경지에 들어가서 받는 樂)·涅槃樂(열반의 깨달음을 얻은 樂)의 三樂이 있으며, 外樂(眼 등의 前五識으로부터 생기는 樂)·內樂(初禪·第二禪·第三禪의 意識으로부터 생기는 樂)·法樂樂(無漏의 지혜로부터 생기는 樂. 깨달음의 法悅을 즐기는 樂)의 三樂이 있고, 또 出離樂(出家樂이라고도 한다. 出家해서 道를 얻으므로 苦를 해탈한 樂)·遠離樂(初禪의 樂. 貪欲과 惡·不善의 法을 여의었으므로 얻는 樂)·寂靜樂(第二禪 이상의 樂, 尋·伺가 止息했으므로 얻어지는 樂)·菩提樂(번뇌를 여읜 眞實의 智, 곧 菩提를 얻은 樂)의 4종의 樂(四味·四無罪業이라고도 하며, 世間을 초월한 寂靜의 세계에 있는 4종의 樂味), 또 4종의 樂에 涅槃樂을 더한 五種의 樂 등이 있다.
일체법(一切法) : 一切諸法 · 萬法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 一切의 事物, 모든 現象, 정신적 · 物質的인 것. 일체 現象的 존재를 말함. 원 뜻은「緣起로 된 모든 존재」곧 有爲法을 가리켰으나 뒤에 이와 對立하는 無爲法도 추가되었다. 法에 관하여 여러 가지 분류방법이 있다. 그러나 일체법은 모두 所緣이 된다.
관(觀) : 범어 vipasyana의 번역. 毘鉢舍那, 毘婆舍那, 毘波奢那로 음역하며, 觀察이라고도 한다. 또, 智慧로 객관의 對境을 照見한다는 뜻인데, 觀念과 同義로 쓰일 때도 있다.
① 九想觀이나 日想觀처럼 종종의 想을 마음에 떠올려서 觀하는 初步的인 觀을 觀想이라 한다. 天台宗에서 말하는 觀은 一念三千 一心三觀처럼 자기의 心의 本性을 觀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觀心이라고 한다. 觀은 悟境에 통하는 道이므로 法相宗·華嚴宗에서는 이것을 觀道라고 한다. 觀의 對境을 觀境, 觀하는 智慧를 觀智, 觀하는 방법을 觀門·觀法이라 한다. 또 觀은 止(범어 samatha. 奢摩他 心을 하나의 對境에 집중시켜 생각을 쉬게 하는 것)에 상대되는 말이다. 그러나 中道觀 등의 觀은 止와 觀이 잘 조화된 상태(止觀均行)를 나타내는 捨(범어 upeksa)의 의미와 附合한다. 또 觀에는 禪定(범어 dhyana)의 의미도 있으므로 禪定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出觀·出定이라고 한다.
② 觀의 내용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諸法을 分析하여 空한 것으로 觀하는 小乘 및 成實宗의 觀法을 析空觀(析色入空觀·生滅觀)이라 하며, 이에 대해 大乘의 觀法은 因緣을 따라 일어난 諸法의 當體에 卽一해서 現象界 그대로 空한 것으로 體達하는 觀이므로 이것을 體空觀(體色入空觀)이라고 한다. 요컨대 觀은 心을 하나로 專心하여 智慧로써 佛과 法의 일정한 대상을 觀察하고 念思하여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眞言宗에서는 悉曇五十字母의 첫째 字인 阿字에는 本初의 뜻과 不生의 뜻이 있다고 하며, 이 阿字 위에 우주·인생을 該攝總括시켜 그 本不生의 理를 觀하는 것을 阿字觀이라고 했다. 往生要集에는 佛의 相好光明을 총괄적으로 觀하는 것을 總相觀이라 하고 華座를 비롯해서 白毫 등 佛身의 하나하나의 相好를 별개적으로 觀하는 것을 別相觀이라 했다. 三論宗에서는 八不中道의 觀은 空에도 有에도 집착하지 않는 無所得中道의 正觀이란 뜻으로 無得正觀이라 한다. 眞如의 理를 觀함에 있어 名字의 相, 心念의 相, 곧 名相을 여의어 眞如의 경계에 冥合하는 觀法을 理觀 또는 無相離念이라 하며, 이와 반대로 佛이나 淨土를 觀함에 있어 差別的이고 具體的인 相을 세워서 여기에 마음을 두고 觀想하는 것을 事觀·立相住心이라 한다. 占察經에서는 唯識觀과 實相觀을 二종의 觀法으로 든다. 十二因緣의 理를 觀하는데 淺深의 구별이 있으니, 聲聞의 觀은 가장 低劣한 觀이므로 下智觀, 緣覺의 그것은 中智觀, 菩薩의 그것은 上智觀, 佛의 觀은 가장 殊勝하므로 上上智觀이라 일컬었으며 이것을 四乘의 觀智라고 했다. 懺悔滅罪의 방법으로서 (1) 生死(迷惑의 世界)에 流轉하는 것은 자신의 罪障의 因緣 때문이라고 觀하고 (2) 그 인연에 따라서 生死에 流轉하는 자신의 不淨한 果報를 觀하며, (3) 佛性을 開顯해야 할 자신임을 觀하며, (4) 如來의 몸에 具足하고 있는 利他哀愍의 德을 觀하는 것을 四種觀行이라고 한다.
관찰(觀察) : 觀想 · 觀念 등과 같음. 대상의 事物을 마음에 떠오르게 하여 觀하여 보는 것. 또는 여러 법을 마음 속에 상기하여 분명히 觀想하는 것. 觀과 같은 뜻으로 쓴다. <華嚴經探玄記> 제10에는 관찰에 內心照察과 擧目眄(면)視의 두 뜻이 있고 또 <往生論> 註 卷下에는 「마음에 그 일을 緣함을 觀이라 하고 物心 분명함을 察이라고 한다」라고 해설하였음.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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