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말씀

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의 무게

근와(槿瓦) 2015. 7. 2. 01:38

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의 무게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존자 사리불(舍利弗)은 밤낮으로 세 차례씩 천안(天眼)으로 세상을 살피면서 제도할만한 일이 있으면, 곧 그 자리에 가서 제도하였다.

장사꾼들이 장사하러 다른 나라로 떠나면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갔다. 도중에서 장사꾼들은 피곤하여 잠을 잤다. 이 때 배가 고픈 개는 장사꾼들이 가지고 있던 고기를 훔쳐 먹었다. 한숨 자고 일어난 그들은 고기가 없어진 걸 보고 잔뜩 화를 내어 개를 두들겨 패주었다. 이 바람에 개는 다리가 부러졌고, 그들은 빈 들에 개를 버린채 길을 떠났다.

 

이때 존자 사리불은 그 개가 땅에 쓰러져 굶주리고 괴로워 신음하면서 거의 죽게된 것을 살펴 알았다. 그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밥을 빌었다. 얻은 밥을 가지고 성을 나와 굶주린 개한테 가서 밥을 주었다. 개는 그 밥을 먹고 생기가 돌자 기뻐하고 감사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리불은 이 개를 위해 좋은 법문을 자세히 들려 주었다. 개는 이내 목숨이 다해 사밧티의 한 바라문 집에 태어났다.

사리불은 홀로 다니면서 걸식하였다. 바라문은 그를 보고 물었다. “존자께서는 홀로 다니시는데 시중드는 사미가 없으십니까?” “내게는 사미가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아들이 있다는데 내게 줄 수 없겠습니까?”

“내게 균제라고 하는 한 아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 심부름을 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좀 더 자라면 존자께 출가하도록 하지요.”

 

사리불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 아이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사리불은 다시 바라문에게 가서 그 아들을 청했다. 바라문은 곧 그 아들을 사리불에게 맡겨 출가를 시켰다.

사리불은 그 아이를 제타숲으로 데리고 가서 법문을 차례차례 일러주었다. 그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여섯 가지 신통력이 트이고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이 때 사미 균제(均提)는 처음으로 도를 얻고 나서, 자신의 혜안(慧眼)으로 지나간 세상일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본래 어떤 업을 지어 현재의 몸을 받았으며, 거룩한 스승을 만나 아라한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전생을 살펴보다가, 한 마리 개이던 내가 스승 사리불 존자의 은혜로 이 몸을 받아 도를 얻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환희심이 솟아 안으로 다짐하였다.

‘나는 스승의 고마운 은혜를 입고 축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스승을 잘 모셔드리고 언제까지든지 사미(沙彌)로 있으면서 큰 계(比丘戒)는 받지 않으리라.’

 

이때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균제 사미는 전생에 어떤 나쁜 업을 지었기에 개 몸을 받았으며, 또 어떤 착한 일을 했기에 해탈을 얻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 옛날 카샤파 부처님 시절에 여러 비구들이 한 곳에 모여 살았었다. 어떤 비구는 음성이 맑고 낭랑하여 범패(梵唄)를 잘 불렀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즐겨 들었다. 그러나 한 비구는 나이가 많아 음성이 둔탁하여 범패는 잘 부르지 못했지만, 항상 노래를 불러 혼자서 즐기었다. 그리고 이 늙은 비구는 아라한이 되어 사문의 공덕을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어느날 음성이 고운 젊은 비구는 노비구의 둔탁한 범패 소리를 듣고 조롱하였다.

‘스님의 음성은 마치 개 짖는 소리 같습니다.’

노비구는 그를 불러 물었다.

‘그대는 나를 알고 있는가?’

‘저는 스님을 잘 압니다. 카샤파 부처님의 제자지요.’

노비구는 의연히 말했다.

‘나는 이미 아라한이 되었고, 사문의 위의와 법도를 온전히 갖추었느니라.’

젊은 비구는 이 말을 듣고 두려운 생각이 들며 온몸이 굳어지려고 했다. 그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했다. 노비구는 그 참회를 받아 주었다. 젊은 비구는 덕이 있는 노비구를 깔보고 조롱한 과보로 개 몸을 받았고, 집을 나와 청정한 계행을 가졌기 때문에 해탈을 얻게 되었느니라.

 

「사미율의(沙彌律儀)」를 배우면서 처음 이 고사(故事)를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겁 주느라고 하는 소리거니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 배후의 일이 보다 큰 사실로 느껴져서인지 그 진실성에 믿음이 기운다. 인간끼리는 더 말할 것 없고 모든 생물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탈을 쓰고 개도 못할 짓을 마음대로 저지르는 것을 볼 때 사람인 우리는 다른 생물에 대해서 면목이 안선다. 그의 종착역이 어디냐 하는 것을 따지기 보다도 인간으로서 그 ‘있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끝없는 윤회의 지평(地平)에서 볼 때 내 부모나 형제 아닌 생물이 어디 있겠는가.

무심코 불쑥 뱉은 한 마디 말이 스스로를 윤회의 쇠사슬로 묶게 된다는 앞의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내 몸짓 하나, 말 한 마디, 생각 한번이 새삼스레 두려워진다. 조심하고 조심할 일이다.

 

출전 : 인연이야기<현우경 사미균제품(沙彌均提品)>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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