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결(九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九種의 결박이란 뜻. 중생을 결박하여 생사의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9종의 번뇌로, 즉 愛結(사랑) · 恚結(성냄) · 慢結(자만하는 것) · 無明結(무지) · 見結(그릇된 견해) · 取結(집착) · 疑結(의심) · 嫉結(질투) · 慳結(인색함) 등을 일컫는다.
참고
결(結) : 범어 bandhana. 또는 samyojana의 번역. 중생을 迷惑의 경계에 結縛한다는 뜻이다. 번뇌의 다른 명칭이며 結使라고도 한다.
① 三結. 有身見結 · 戒禁取見結 · 疑結의 三과 五見 및 疑의 六번뇌가 이 가운데 포함된다. 「三結이 다하는 때에 預流果에 이른다」고 하는 經說에 의해 三結이 다하는 때에 見惑의 모두가 단절된다고 한다. 愛 · 恚 · 無明을 三結이라고 한다.
② 四結. 四身結이 그것.
③ 五結. 五下分結과 五上分結이 있다. 전자는 중생을 欲界에 결박시키는 번뇌이다. 곧 有身見 · 戒禁取見 · 疑 · 貪欲 · 瞋恚의 五를, 후자는 色界 · 無色界의 上二界에 결박시키는 번뇌이니, 色貪 · 無色貪 · 掉擧 · 慢 · 無明의 五를 가리킨다. 또 따로 貪 · 瞋 · 慢 · 嫉 · 慳을 五結이라고도 한다.
④ 九結. 愛 · 恚 · 慢 · 無明 · 見 · 取 · 疑 · 嫉 · 慳의 九이니 이는 六根本煩惱(貪·瞋·癡·慢·疑·惡見의 六종 번뇌. 이 가운데 惡見을 다섯으로 나누어 身見·邊見·邪見은 見結이라 하고 見取見과 戒禁取見은 取結이라 한다.)에 嫉과 慳을 더한 것이다. 大毘婆沙論 卷五十에는 九結의 體(自性)을 합하여 百이라고 했다.
사결(四結) : 범어 samyojana. 해와 달의 빛을 장애하는 구름·연기·風塵·아수라 등 네 가지를 四結에 비유한 것. (1) 구름은 欲結. (2) 풍진은 瞋結. (3) 연기는 痴結. (4) 阿須倫은 利養임. 구름 등 四翳(예)는 해와 달의 빛을 가리고, 四結은 사람의 마음을 덮어 開解하지 못하게 한다.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을 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六根(여섯 感官)을 犬 · 鳥 · 蛇 · 狐 · 鰐 · 猿의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의 喩라고 한다.
생사(生死) : 輪廻라고도 번역한다. 業因에 의해서 六道의 迷界에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면서 윤회하는 것으로서, 涅槃(깨달음)의 逆. 生死가 끝이 없는 것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生死海라고 하고, 번뇌의 세계이기 때문에 生死苦海라고도 한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難度海라고도 한다.
① 二種生死. (1) 分段生死. 有漏의 善惡業을 因으로 하고 煩惱障을 緣으로 하여 三界내에 麤한 果報를 받을 때 그 과보는 壽命의 長短이나 육체의 大小 등 일정한 제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分段身이라고 하고, 분단신을 받아 윤회하는 것을 分段生死라고 한다. (2) 變易生死. 不思議變易生死라고도 한다. 아라한·벽지불·大力의 보살은 분단생사를 받는 일은 없으나, 그러나 無漏의 有分別의 業을 因으로 하고 所知障을 緣으로 하여, 界外 곧 三界 밖의 殊勝細妙한 果報의 身, 곧 意生身을 받아 이 몸을 가지고 三界내에 와서 보살의 行을 닦아서 佛果에 이른다. 그 몸은 悲願의 힘에 의해서 수명도 육체도 자유로히 變化改易할 수가 있으므로 일정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變易身이라고 하고, 변역신을 받는 것을 變易生死라고 한다.
② 四種生死. 분단생사를 三界에 배대하여 3으로 구별하고, 여기에 變易生死를 더하여 4로 한다. 또 변역생사를 方便·因緣·有後·無後의 四生死로 나눈다. 또 冥(현세의 卑賤)에서 冥(死後의 惡道)으로 들어가고, 冥에서 明(死後의 善趣)으로 들어가며, 明(현세의 尊貴)에서 冥으로 들어가고, 明에서 明으로 들어가는 4를 4種生死라고 한다.
③ 七種生死. 분단생사를 삼계에 배대하여 나누고, 여기에 변역생사의 4종을 더하여 7로 한다. 단 後世의 해석에서는 이것을 다음의 7종으로 한다. 分段생사·流來생사(眞如의 이치에 迷하여 생사의 迷界에 流來하는 처음을 말한다)·反出생사(發心해서 생사에서 뛰어나는 처음을 말함)·方便생사(見思의 惑을 끊고 삼계의 생사에서 超出하는 入滅의 二乘에 대해서 말함)·因緣생사(無漏業을 因으로 하고 無明을 緣으로 하여 生을 받는 初地이상의 보살에 대해서 말함)·有後생사(有有생사라고도 한다. 최후의 1品의 무명을 남기는 제十地 보살에 대해서 말함)·無後생사(無有생사라고도 한다. 무명을 끊어버려 後身을 받지 않는 等覺 보살에 대해서 말함).
애(愛) : ① 물건을 탐하여 집착하는 것.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여 마지않는 것과 같다. 욕망의 만족을 강력히 구하는 중생의 마음을 渴愛라고도 번역한다. 여기에 欲愛(性欲 · 情欲) · 有愛(生存欲) · 非有愛(無有愛라고도 한다. 生存을 부정하려는 욕망) 의 三愛, 또는 欲愛 · 色愛(물질에 대한 욕망) · 無色愛(물질을 넘어선 욕망) 의 三愛가 있고, 또 六境(色 · 聲 · 香 · 味 · 觸 · 法)에 대한 사랑을 각기 色愛 · 聲愛 등이라고 부르고, 이것들을 합해서 六愛 · 六愛身이라고 한다. 十二緣起의 제 8支의 愛는 이와 같은 사랑이다.
② 大毘婆沙論 권29에 의하면, 더럽혀진 사랑과 더러움 없는 사랑의 2種이 있으며, 앞의 것은 貪이고, 뒤의 것은 信이라고 한다. 또 智度論 권七十二에는 欲愛 · 法愛의 二愛를 설하고 있다. 欲愛라 함은 妻子 등을 愛念하는 貪欲이고, 法愛라 함은 일체중생을 慈愛하는 자비심이다.
에(恚) : 에결(恚結)→9結의 하나. 結은 번뇌의 異名. 번뇌는 곧 사람을 結縛하므로 이렇게 일컬음. 중생이 성내는 마음. 곧 瞋恚 때문에 온갖 不善을 행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미래의 生死의 苦를 부르고 3界에 流轉하여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하므로 이렇게 이름. 곧 恚(성냄)의 惑 때문에 繫縛되어 生死의 苦를 벗어날 수 없게 한다는 뜻으로 恚結이라 한다.
만(慢) :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俱舍宗에서는 不定地法의 하나로 하고, 唯識宗에서는 근본번뇌의 하나라 한다. 自他를 비교해서 他를 경멸하고 스스로를 믿어 마음이 우쭐거리는 것. 凌蔑自負하는 것. 여기에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俱舍論 卷十九에는 7慢을 말하고 있다.
(1) 慢.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대하면 자기가 낫다고 자부하고, 동등한 사람에 대하여는 동등하다고 마음속으로 우쭐거리는 慢.
(2) 過慢. 자기와 동등한 자에 대해서는 자기가 낫다고 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보고는 자신이 그 사람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慢.
(3) 慢過慢.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해 오히려 자기가 낫다고 생각하는 慢.
(4) 我慢. 五蘊假和合의 육신을 집착하여 我라고 하고, 我所라고 하여, 그것을 참 나로 믿음으로서 생기는 慢.
(5) 增上慢.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慢.
(6) 卑慢. 자기보다 월등하게 나은 자에 대하여 자기는 조금 못할 뿐이라고 하는 慢.
(7) 邪慢. 德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德이 있다고 내세우는 慢.
8慢이란 慢 · 大慢 · 慢慢 · 我慢 · 增上慢 · 不如慢 · 邪慢 · 傲慢을 말한다.
九慢이란,
(1) 我勝慢類 · (2) 我等慢類(이 둘은 자기와 동등한 자에 대하여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慢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慢) · (3) 我劣慢類(자기보다 나은 자에 대하여 자기가 못하다고 하는 慢) · (4) 有勝我慢類(자기보다 훌륭한 자에 대하여 그가 자기보다 나은 데가 있다고 하는 慢) · (5) 有等我慢類 · (6) 有劣我慢類(이 둘은 자기와 동등한 자에 대해서 그가 자신과 동등하다고 하는 慢과 자기보다 못한 점이 있다고 하는 慢) · (7) 無勝我慢類 · (8) 無等我慢類(이 둘은 자기와 동등한 자에 대하여 그가 자기보다 훌륭한 점이 없다고 하는 慢과 자기와 동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기보다 못하다고 하는 慢) · (9) 懋劣我慢類(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 것이 없으며 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하다고 하는 慢)
무명(無明) : 범어 avidya의 번역.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不如實智見을 말함. 곧 진리에 어두워서 (迷) 사물에 통달치 못하고 사물과 현상이나 도리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不達不解不了) 정신상태로 愚癡를 그 내용으로 하며, 十二緣起의 第一支가 無明支이다. 또 俱舍宗이나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心所(마음의 작용)의 하나로 하는 癡라 한다.
① 十二緣起의 無明支를 해석하는데 阿含經에서는 佛敎의 진리(四諦)에 대한 無智라 하고 渴愛와 表裏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有部에서는 十二緣起를 三世兩重의 因果로 說한 것으로 보고 無明을 과거의 煩惱의 位에 있어서의 五蘊을 가리킨다고 하며, 모든 煩惱중에 이 無明의 작용이 가장 무겁고 돋보임으로 無明이라고 이름하였다. 唯識宗에서는 二世一重의 因果로 해석하고 無明과 行과 識 등의 五果의 種子를 끌어 들이는 能引支로 보고, 그 가운데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癡로서 善惡의 業을 일으키는 것을 無明이라 한다고 했다.
② 有部나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相應無明과 不共無明의 두 無明으로 나눈다. 前者를 貪 등의 根本煩惱와 相應하여 같이 일어나는 것, 또 後者는 相應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不共無明은 홀로 일어남으로 獨頭無明이라고 하는데, 唯識宗에서는 不共無明을 다시 恒行不共無明과 獨行不共無明으로 나눈다. 前者는 第七 末那識과 相應하는 無明으로 貪 등의 根本煩惱와 相應하여 일어나나 모든 凡夫의 마음속에 늘 쉬지 않고 나타나는 作用이란 점에서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無明과 다르기 때문에 不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後者는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無明으로 다른 근본번뇌와 상응하지 않고 홀로 일어남으로 獨行不共이라고 일컫는다. 이 獨行不共無明은 隨煩惱와 함께 일어나지 않고 홀로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다시 主獨行無明과 無主獨行無明으로 나눈다. 또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種子와 現行으로 나누고 늘 衆生을 따라 다니며 第八阿賴耶識 속에 숨어 잠자고 있는 無明의 種子를 隨眠無明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표면에 나타나 現在意識으로 작용하고 있는 無明의 現行을 衆生에 붙어서 衆生을 얽어 生死(迷의 世界)에 묶어 놓는다는 의미에서 纒無明(전무명)이라 한다. 이 纒無明에는 相應하는 것과 不共이 있어서 隨眠·纒·相應·不共의 四種이 있게 되므로 이것을 四種無明(四無明)이라 부른다. 또 根本과 枝末과 共과 不共과 相應과 不相應, 迷理와 迷事, 獨頭와 俱行, 覆業과 發業과 種子子時와 行業果와 惑의 15種의 無明으로 나눌 때도 있다.
③ 勝鬘經에서는 見惑 및 三界의 修惑인 貪 등과 相應하는 相應無明을 四住地(見一處住地·欲愛住地·色愛住地·有愛住地의 넷으로 처음의 一은 見惑, 뒤의 三은 三界의 修惑을 의미한다)의 惑이라고 부른다. 獨行不共의 無明을 無始無明住地의 惑이라 하고(합하여 五住地의 惑) 이 無明住地는 모두 번뇌가 일어나는 根本이며 오직 如來의 菩提智만이 이것을 끊을 수 있다고 한다.
④ 起信論에서는, 無明을 不覺이라고 하고 이 不覺을 根本無明과 枝末無明의 두 無明으로 나눈다. 根本無明은 根本不覺·無始無明·元品無明·忽然念起無明이라고도 한다. 또 元初一念이라고도 한다. 곧 眞如平等의 眞理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忽然히 차별·대립의 念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그 元初라고 하는 것은 모든 煩惱의 元始이고 迷妄의 시작이므로 다른 煩惱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忽然」이라고 한다. 지극히 微細하므로 心王(마음)과 心所(마음의 作用)를 구별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것은 즉 無始無明住地의 惑이 아닐 수 없다고 보인다. 枝末無明은 枝末不覺이라고도 불리우며 根本無明에 의하여 일어난 末稍的 染汚心으로 三世微麤의 惑業이다.
⑤ 天台宗에서는 空·假·中의 三觀에 의하여 각기 見思·塵沙·無明의 三惑을 끊는다고 한다. 無明과 非有非空의 진리에 迷惑되어 中道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無明을 끊음에 있어서는, 別敎에서는 十廻向位에서 항복하여, 初地이상의 12階位에서 12品의 無明(모두 12품의 무명이 있다고 한다)을 다 끊어 마친다고 한다. 이 경우 十廻向의 最後의 第十廻向에서 처음의 無明을 끊고 初地에 들어가지만 이 처음의 無明을 또 三品으로 나누어 끊으므로 이것을 三品無明이라고도 한다. 圓敎에서는 初地 이상의 42階位에서 42품의 無明(모두 42品의 無明이 있다 한다)을 끊어 마치는데, 이 경우 제51位인 等覺의 最後心에 의해 妙覺智 또는 佛智가 나타나고 이에 의해 끊어지는 最後의 無明을 元品無明·無始無明·最後品無明이라 한다. 다만 이것은 일반적인 說로서 실은 圓敎에서는 三觀에는 순서와 차례를 세우지 않고 一心을 가지고 觀함으로 三惑은 동체로 동시에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견(見) : 눈으로 보는 것. 생각하여 헤아리고, 사물에 대한 견해를 정하는 것. 見解 · 思想 · 主義 · 主張 · 正見 · 邪見 등으로 쓰여지지만 대개의 경우 잘못된 견해를 가리킨다. 번뇌에 五見(五利使라고도 한다)을 넣고 또 二見 · 七見 · 十見 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① 有見과 無見, 또는 斷見과 常見을 二見이라 한다. 이것은 五見중의 邊見에 해당된다.
② 邪見(因果의 이치를 否定) · 我見(내가 있다고 하는 견) · 常見(身心의 常住를 집착하는 것) · 斷見(身心의 斷滅을 집착하는 것) · 戒盜見(戒禁取見을 말하며, 바르지 못한 계율을 바르다고 하여 그것에 집착하는 것) · 果道見(바르지 못한 행위에 의하여 얻은 결과를 바른 것이라 하여 집착하는 것) · 疑見(진리를 의심하는 것)을 七見이라고 하고, 五見에 貪見 · 恚見 · 慢見 · 無明見 · 疑見을 더하여 十見, 또는 十種見이라 한다.
③ 佛敎的이 아닌 잘못된 견해를 四見, 六十二見(梵網經의 설) 등으로 분류한다. 四見이란 소위 四句分別에 의해 모든 外道의 설을 망라한 것으로 예를 들면「세계는 常住」· 「無常」·「常住이면서 無常」· 「常住도 無常도 아니다」라고 하는 네 가지 잘못된 見解와 같은 것을 말한다. 또한 邪因邪果 · 無因有果 · 有因無果 · 無因無果의 네 가지 잘못된 주장을 四見이라고도 한다.
취(取) : 十二因緣의 하나. 愛에 따라 일어나는 집착. 또 愛의 다른 이름. 煩惱의 총칭.
의(疑) : 범어 vicikitsa의 번역.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佛敎의 眞理에 대해서 망설이고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 信에 상대가 된다. 俱舍宗에서는 不定地法의 하나. 唯識宗에선 6根本煩惱의 하나. 또 廣義로는 일반적으로는 번뇌가 아닌 疑도 포함된다. 의심하는 감정이 뒤섞여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網에 비유해서 疑網이라고 한다. 자기를 의심하고 스승을 의심하고 法을 의심하는 것을 三疑라 한다.
질(嫉) : 범어 irsya의 번역으로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俱舍宗에서는 혹 汚染된 마음(不善心을 有覆無記心)에만 일어나는 心所(小煩惱地法의 하나)로 하고, 唯識宗에서는 隨煩惱의 하나로 한다. 他人의 善行이나 榮譽스러운 것을 즐거워하지 않고 이것을 질투하는 것.
간(慳) : 범어 matsarya의 번역.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물건을 아끼는 것. 吝嗇. 俱舍宗에서는 小煩惱地法의 하나. 唯識宗에서는 隨煩惱의 하나. 成實論卷十에는 五慳으로 하여, 住處慳 · 家慳 · 施慳 · 稱讚慳 · 法慳의 다섯을 들지만, 이것은 住處 · 家屋 · 布施 · 稱讚 · 法義 등에 대한 獨占欲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財慳 · 法慳, 곧 財物 · 敎法에 대해 인색한 것을 二慳이라 한다.
번뇌(煩惱) : 범어 klesa의 번역. 吉隷捨로 음역하고, 惑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 그 성질은 不善 및 有覆無記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報를 받아 미혹의 세계(生死)에 매어 있게 된다. 이것을 惑業苦의 三道라 한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번뇌는 그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隨眠·惑(이치에 어둡고 現象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染·漏·結使·結·縛·纒·軛·暴流·取·蓋·繫·使·垢·株杌·燒害·箭·稠林(번뇌의 수가 많은 것을 무성한 삼림에 비유한 것)·塵勞·塵垢·客塵·諍根(다툼의 근본)이라고도 하고, 또 번뇌의 體 그것을 正使(다만 使라고도 한다), 體를 멸해도 역시 남아있는 관습의 기운을 習氣라고 한다. 모든 번뇌는 因力(아직 번뇌가 끊기지 않은 것)·境界力(욕심 등에 순응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것)·加行力(대상에 대해서 非理·作意를 일으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俱舍論 卷二十〕혹은 境界力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있다고도 한다.〔入阿毘達磨論 卷上〕
①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번뇌를 근본번뇌와 枝末번뇌의 두 번뇌로 나눈다.
근본번뇌라 함은 번뇌의 體 그것으로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번뇌로, 本惑·根本惑 혹은 다만 번뇌라고도 부르며, 有部에서는 隨眠이라고도 한다. 단 經部에서는 隨眠을 번뇌의 종자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서 번뇌의 現行(현재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을 纒(전)이라 한다. 유식종에서도 隨眠이란 번뇌의 종자를 가리킨다고 말하며, 근본번뇌에 貪·瞋·癡·慢·疑·見(惡見)의 六번뇌(六隨眠)가 있는데, 見을 有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의 五見으로 나누어 貪 등의 다섯과 합해서 十번뇌(십隨眠, 十使)라고 한다. 이 가운데 貪 등의 다섯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 작용이 느리고 둔하기 때문에 五鈍使(五惑), 五見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이 있고 그 작용이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에 五利使라고 한다. 또 六隨眠 가운데 貪을 欲界의 탐과 上二界(색계·무색계)의 貪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欲貪·有貪이라고 하며 합하여 七隨眠(七使)이라 하고, 혹은 十隨眠 중에 貪을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 欲貪·色貪·無色貪으로 하고 十二隨眠(十二使)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십종의 근본번뇌 가운데 제七識과 상응하여 항상 일어나는 我癡(無我의 이치에 미혹하여 나의 相에 어두운 번뇌로 無明을 말함)·我見(我執을 말하며 有身見의 일부)·我慢(나를 집착하고 나를 믿고 우쭐하는 거만)·我愛(나를 집착하여 나에 탐착하는 것)의 넷을 四煩惱(四根本煩惱, 四惑)라고 한다. 또 탐·진·치는 모든 악을 낳게 하는 근본(즉 因)이며, 대표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三不善根·三毒·三垢·三縛 등이라고 한다.
지말번뇌라 함은 근본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 隨惑·枝末惑·隨煩惱라고도 한다. 단 수번뇌란 말은「心王에 붙어다니는 번뇌」란 뜻으로 풀어 근본번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지말번뇌에는, 구사종에서는 放逸·懈怠·不信·惛沈·掉擧·無慚·無愧·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睡眠·惡作의 十九를 말하며, 유식종에서는 睡眠·惡作을 버리고 失念·散亂·不正知를 더하여 二十으로 하기도 한다.
② 俱舍宗 등에서는 迷理·迷事의 二惑을 나누어, 불교의 보편적인 진리 곧 四諦의 이치에 迷惑하고 있는 思想上의 知的인 번뇌를 迷理의 惑이라 하고, 구체적인 개개의 事象에 미혹한 바의, 곧 인간성에 바탕한 情意的인 번뇌를 迷事의 惑이라고 한다. 또 自相·共相이 二惑을 나누어서, 色·聲 등 각자 개개의 특수한 고유의 相(곧 自相)을 迷해서 각각의 법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번뇌를 自相의 惑이라 한다. 空·無我 등 三世의 모든 것에 공통된 相(곧 共相)을 迷함으로 많은 법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번뇌를 共相의 惑이라 한다. 앞의 것에는 貪·瞋·慢 또는 貪·瞋·慢·嫉·慳이 있고 뒤의 것에는 五見·疑·無明이 있다고 한다. 唯識宗에서는 煩惱障·所知障의 二障을 나누어, 我執에 의해 일어나서 중생을 미혹의 세계(生死)에 流轉시킴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惑을 煩惱障이라고 하며, 法執에 의해 일어나서 알아야 할 대상인 진리를 막음으로 보리를 깨닫는 길을 방해하는 惑을 所知障이라 한다. 번뇌장은 일체의 번뇌를 體로 하고 반드시 所知障을 수반한다. 번뇌장은 所知障을 依支處로 하기 때문이다. 所知障은 함께 번뇌를 體로 하지만, 반드시 번뇌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또 業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惑을 發業의 惑(주로 다음에 말하는 分別起의 혹으로 특히 제六意識相應의 無明이 그것이다)이라고 하고 이에 대해서 迷界의 중생을 윤택하게 하고 삼계의 중생을 받게 하는 혹을 潤生의 혹(다음에 말하는 俱生起의 번뇌로 특히 제六意識相應의 貪을 主로 한다)이라고 한다. 또 어떻게 해서 번뇌가 일어나는가 하는 점에서 나누면, 二障 공히 각기 분별기와 구생기가 있다. 邪師·邪敎·邪思惟 등 밖으로부터의 緣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분별기의 혹이라고 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일어나는 본능적인 것을 구생기의 혹이라고 한다. 十근본번뇌중에서, 의심과 邪見과 見取見과 戒禁取見과의 四는 분별기뿐이며, 다른 六과 二十隨惑은 양쪽에 모두 공통한다.
③ 번뇌를 끊어야 할 수행단계의 相異에 따라 번뇌를 나누면 見惑과 修惑(思惑)의 二惑이 있다. 전자는 見道에 의해서 없애야 할 번뇌(見道所斷의 惑)이며 후자는 修道에 의해서 끊어야 될 번뇌(修道所斷의 惑)이다. 俱舍宗에서는 迷理의 惑을 見惑, 迷事의 惑을 修惑이라고 하고, 唯識宗에서는 分別起의 惑을 見惑, 俱生起의 惑을 修惑이라 한다. (1) 俱舍宗에서는 三界 四諦의 각각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見惑에 총 八十八이 있다. 欲界의 苦諦에 관해서는 貪 등 十근본번뇌와 集諦와 滅諦에 관해서는 身見·邊見·戒禁取見을 뺀 七근본번뇌, 道諦에 관해서는 戒禁取見을 더하여 八근본번뇌가 있으므로, 합하면 欲界의 三十二, 色界·無色界에는 瞋이 없기 때문에 四諦의 하나하나에 瞋을 뺀 각 二十八, 計 八十八이 된다. 이것을 見惑八十八使라고 한다. 修惑은 欲界에 貪·瞋·癡·慢의 四, 色界·無色界에 각기 貪·癡·慢의 셋이 있어 합하면 열이 되므로 여기에 見惑의 八十八을 더하면 九十八隨眠 또는 九十八使라고 한다. 단 修惑은 성질이 遲鈍애매하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九地의 각 위에 강약의 정도에 따라 九品(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아홉 品階)의 구별을 세워, 九地九品의 思惑, 修惑 八十一品 등이라고 한다. 이 九十八使를 遍行과 非遍行으로 나눈다. 遍行의 惑이라 함은, 三界九地 중에서 自界自地의 五部(見道에 있어서 四諦의 觀行과 이것을 거듭하여 닦는 修道)에 널리 작용하여 五部의 法을 더럽히는 惑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五部 중의 自部에만 작용하는 惑을 非遍行의 惑이라고 한다. 곧 九十八隨眠 중에서 널리 五部의 모든 有漏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고, 널리 그것들과 隨順하고 그것들에 의해서 더욱 더 增長하고(곧 隨增하고), 因이 되어서 널리 五部의 染法(번뇌 등의 染汚法)을 낳게 하는 힘이 강한 惑은 遍行의 惑으로 三界의 각각에 있어서 苦諦의 理에 헤매는 五見·疑·無明과 集諦의 理에 헤매는 邪見·見取見·疑·無明과의 十一이 있다. 이것을 十一遍行의 惑이라 한다. 이 중 身·邊의 二見은 다만 自界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自界緣의 惑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다른 아홉은 自界는 물론 또 다른 上界까지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他界緣의 惑이라고 하고, 이 아홉은 上界上地까지도 緣이 있다고 하는 의미로 九上緣의 惑이라고도 한다. 또 九十八使를 有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有漏緣의 惑과 無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無漏緣의 惑으로 나누면 滅道二諦의 理에 迷한 邪見과 疑와 癡(邪見·疑에 상응해서 일어나는 相應無明과 및 독립으로 일어나는 不共無明)의 六惑은 無漏緣이며, 그밖의 것은 有漏緣이다. (2) 唯識宗에서는, 見惑에는 欲界의 四諦 각각에 十근본번뇌(欲界四十), 색계·무색계에 성냄(瞋)을 뺀 九근본번뇌(色界三十六·無色界三十六) 계 百十二번뇌를 들고, 修惑에는 欲界에 疑·邪見·見取見·戒禁取見을 뺀 六근본번뇌, 색계·무색계에 각기 다시 瞋을 뺀 각 五근본번뇌, 計 十六번뇌를 들므로 見修二惑을 합하여 百二十八번뇌가 된다.
④ 知的인 惑 즉 五利使와 見惑 등을 見煩惱라고 하고, 情意的인 惑 곧 五鈍使와 修惑 등을 愛번뇌라 하며, 합하여 見愛(二)번뇌, 見著二法, 愛見이라고 한다. 그 體는 虛假(헛소리)이기 때문에, 또 見假·愛假라고도 한다. 勝鬘經에는 四住地번뇌의 說이 있다. 곧 見번뇌는 見道에 있어서 한때에 끊겨지기 때문에 見一處住地(一切見住地)의 惑이라고 부르고 愛번뇌는 이것을 三界에 나누어 각기 欲愛住地의 惑, 色愛住地의 惑·有愛住地의 惑이라 부른다. 또 이 넷에 다시 모든 惑의 근본이 되는 無明(無明住地의 惑)을 더하여 五住地번뇌, 五住地惑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五住地번뇌 중 앞의 넷은 煩惱障의 종자이며, 뒤의 하나는 所知障의 종자라고 한다. 天台宗에서는 전자를 界內見思의 惑, 후자를 界外의 惑이라고 한다. 대개 住地라 함은 다른 모든 惑이 일어나고 의지처가 되며(住) 잘 惑을 일으키는 因이 된다는 뜻이다. 智度論 卷七에는, 자신에 집착하는 번뇌를 內著번뇌, 外境에 집착하는 번뇌를 外著번뇌라 하며, 전자는 五見·疑·慢 등, 후자는 婬·瞋에 속한다고 한다.
⑤ 天台宗에서는 見思·塵沙·無明의 三惑(三障·三垢)을 말함. 곧 우선 見惑과 修惑(思惑)을 見思의 惑이라고 부르며, 다음에 티끌(塵)이나 모래(沙)에도 비유할 만큼의 무수한 사물의 하나하나의 事理에 迷한 劣慧(번뇌의 習氣로 不染汚無知라고도 한다)를 體로 하고, 다른 것을 化導하는 것을 막는 惑을 塵沙의 惑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모든 惑의 근본으로, 中道 第一義諦의 도리를 迷한 가장 적은 번뇌를 無明의 惑이라 부른다. 각각 空觀·假觀·中觀에 의해서 끊긴다고 한다. 이 三惑을 번뇌장·소지장에 配對하면 見思는 번뇌장, 塵沙·無明은 소지장에 해당한다. 또 見思는 三乘에 공통하는 惑이므로 通惑·塵沙·無明은 특히 보살만이 끊는 惑이기 때문에 別惑이라고 부르고(通別二惑), 見思는 三界안에서 일으키는 惑이므로 界內의 惑, 無明은 三界를 넘은 곳에 있는 惑이기 때문에 界外의 惑, 塵沙는 양쪽 모두 통하므로 界內界外의 惑이라고 한다. 또 見思의 惑은 空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사물의 相을 집착하여 취하는 번뇌이기 때문에 따로 取相의 惑이라고 말하는데, 넓은 뜻으로는 뒤의 二惑도 또한 取相의 惑이라고 한다.
⑥ 번뇌에는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1) 三縛. 貪縛·瞋縛·癡縛. 이상의 차례로 樂·苦·捨의 三受의 對境을 향해서 일어난다. (2) 三漏. 欲漏(癡를 뺀 欲界繫의 근본번뇌 및 十纏)·有漏(癡를 뺀 上二界繫의 근본번뇌로 이 경우의 有는 有身의 뜻. 身의 존재를 말한다. 無漏에 대한 有漏는 아니다)·無明漏(三界의 癡). (3) 三結. 有身見結·戒禁取結·疑結. 五見 및 疑의 六근본번뇌가 이 중에 포함된다. 「三結이 다하면 預流果에 이른다」라고 한 經說에 따라 三結이 다하면 그 때 見惑의 모든 것이 끊어진다고 한다. (4) 四暴流(四流). 欲暴流·有暴流·見暴流·無明暴流. 三漏의 분류법에서 見을 독립시킨 것. (5) 四軛. 四漏. 欲·有·見·無明의 넷으로 惑體는 四暴流와 같다. (6) 四取. 欲取·見取·戒禁取(戒取)·我語取. 俱舍宗에서는 欲界의 五鈍使 및 十纏을 欲取, 五利使 중 앞의 넷을 見取, 戒禁取見을 戒(禁)取, 上二界의 貪·慢·癡·疑를 我語取라고 한다. 이어라 함은 내신(자기의 몸)을 말한다. 내신에 의해서 나를 설하기 때문이다. 상이계의 번뇌는 대개 내신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아어취라고 부른다. (7) 四身繫(四身縛·四縛·四結이라고도 한다). 貪欲身繫(貪欲身縛·欲愛身縛)·瞋恚身繫(瞋恚身縛)·戒禁取身繫(戒禁身縛)·此實執取身繫(我見身縛). (8) 五蓋. 欲貪蓋·瞋恚蓋·惛眠蓋·掉悔蓋·疑蓋. 疑가 섞이지 않는 것을 疑蓋無雜이라고 하는 말도 여기에 연유한다. (9) 五(順)下分結. 有身見·戒禁取見·疑·欲貪·瞋恚. 下分이라 함은 欲界란 뜻. (10) 五(順)上分結. 色貪·無色貪·掉擧·慢·無明. 上分이라 함은 上二界란 뜻. (11) 五結. 貪·瞋·慢·嫉·慳. (12) 六垢(六煩惱垢). 惱·害·恨·諂·誑·憍. 煩惱垢라 함은 근본번뇌에서 흘러나와 그 모습이 더러워지고 거칠다는 뜻. (13) 七流. 見諦所滅流·修道所滅流·遠離所滅流·數事所滅流·捨所滅流·護所滅流·制伏所滅流(華嚴孔目章 卷三 등) (14) 九結. 愛結·恚結·慢結·無明結·見結·取結·疑結·嫉結·慳結. (15) 十纏. 無慚·無愧·嫉·慳·惡作·睡眠·掉擧·惛沈·忿·覆 등의 十. 忿·覆을 빼고 八纏이라 하는 경우가 있다. 枝末번뇌 중에 六垢는 가볍고, 十纏은 무겁다. 九十八隨眠에 十纏을 더해서 百八번뇌가 된다고 하고, 또 모든 번뇌를 다 말하면 八萬四千의 번뇌가 있다고도 한다.
⑦ 번뇌를 여의는 것을 離垢, 번뇌가 없는 것을 無垢, 번뇌가 다한 것을 漏盡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漏盡比丘, 또 漏盡하여 마음에 진리를 了解하는 것을 盡漏意解라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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