ᄉ~ㅇ(시옷~이응)

유온무아심(唯蘊無我心)

근와(槿瓦) 2018. 6. 17. 01:04

유온무아심(唯蘊無我心)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眞言宗에서 세운 敎義十住心의 하나. 곧 종교 意識의 발달과정을 열로 나눈 가운데 제4住心에 해당. 五蘊識만이 實有라 하고 人我實在를 부정하는 住心으로 성문숭에 해당하며, 소승 俱舍宗 등이 이에 攝收. 無我는 알고 있지만 五蘊實在를 고집하는 입장.

 

참고

진언종(眞言宗) : 密宗. 秘密宗이라고 하며 眞言이란 말은 三密語密을 뜻하며 이것에 의해서 宗名이 생겼다. 724(唐開元 12) 善無畏三藏蘇悉地經 大日經 등을 번역하므로 중국의 眞言宗創始되었으며 金剛智·不空三藏 등을 거쳐 계승되다. 우리 나라는 신라의 惠通求法入唐하여 善無畏三藏으로부터 印訣을 받아 와 眞言宗을 연 것으로 전한다(664. 文武王 4). 不可思議不空三藏에게, 明朗에 들어가 眞言神印을 얻어 와 神印宗開宗했으며 密本密宗高僧으로 전한다. 神印宗廣學大緣麗初 開城賢聖寺를 세워 이 의 근본 도량으로 했으며, 李朝에 이르러 廢宗되다.

 

밀종(密宗) : 秘密宗 · 眞言密敎 · 密敎 · 眞言宗 등을 말하는 것. 十住心을 세우고 모든 統攝하므로 曼茶羅를 건립하여 三密 身 · · 相隨하여 어리석음()을 돌려 깨달음()을 성취한다. 이러한 不思議한 힘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므로 因位가 아니면 측량할 수 없으므로 密宗이라 한다.

 

교의(敎義) : 종교에 있어서 공인된 진리로 가르치는 信條. 敎法義理. 란 뜻. 언어문자로써 말한 와 그 안에 포함된 義理를 말함.

 

십주심(十住心) : 10종의 마음의 상태. 眞言宗에서, 중생의 菩提心顯現하는 과정, 宗敎意識의 발달과정을 10종의 형식으로 분류한 것으로서, 여기에 겸하여 顯密의 모든 對配해서 顯敎가 열등하고, 密敎가 수승하다고 하는 뜻을 표시하는 敎判이다. 우리나라 新羅慧超을 듣고 배운 일이 있는 空海十住心論卷一에서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1) 異生羝羊心. 凡夫(異生)羝羊(牧羊)과 같이 식욕과 성욕과의 본능적 생활로 끝까지 변하지 않으므로 오로지 만 행하고 극히 微妙善心조차 없는 것을 말함.

(2) 愚童持齋心. 철 없는 아이들처럼 약간의 인간다운 發心을 겨우하여 서서히 자기를 반성하고 일상의 기거동작을 삼가고자 하는 마음. 인간의 도덕적 생활에 해당.

(3) 嬰童無畏心. 젖먹이(嬰兒)가 엄마품에 안기면 좋아하는 것 같이 死後 하늘에 往生한다는 신앙으로 종교적 安心을 얻는 마음. 天乘에 해당한다. 이상은 世間的 思想이다. 이하는 佛敎內思想이다.

(4) 唯蘊無我心. 모든 사물은 5이 거짓으로 결합되어서 성립하는 것이므로 無我라고 알지만 더구나 5그 자체는 존재한다고 고집할 때 四諦에 따라 阿羅漢果를 구하는 聲聞乘에 해당한다.

(5) 拔業因種心. 人間苦根本과의 種子를 없애고자 할 때 十二因緣을 관하여 惑業을 없애는 緣覺乘에 해당한다.

(6) 他緣大乘心. 他緣無緣은 동의어로 절대 慈悲心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코자 하는 입장. 法相宗이 이에 해당한다.

(7) 覺心不生心. 不生을 깨닫는 입장. 三論宗이 이에 해당한다.

(8) 一道無爲心. 如實一道心이라고도 한다. 있는 그대로의 절대적 眞理를 깨닫는 입장. 天台宗이 이에 해당한다.

(9) 極無自性心. 萬有는 모두 自性이 없고 眞如에 의해 顯現된다고 깨닫는 입장. 華嚴宗이 이에 해당한다.

(10) 秘密莊嚴心. 秘密莊嚴은 모든 것은 先天的으로 마음속으로 갖추고 있는 曼茶羅를 가리킨다. 이는 眞言宗에 해당한다. 그러나 10住心의 해석에는 여러 가지 이 있는데 古來十住心論眞言行者의 마음의 내면적인 展開를 주로 하므로 九顯十密, 秘密寶鑰敎判을 주로 하므로 九顯一密이라 한다. 宥快秘密寶鑰鈔卷上에는 橫竪에 대해서 나눈 24四種十住心한다.

 

오온(五蘊) : 五陰이라고도 한다. 은 범어 skandha의 번역. 塞建陀音譯하며 모인다는 뜻.

가지가지의 종류를 일괄해서 聚說한다는 뜻. 五蘊이라 함은 色蘊(물질) · 受蘊(印象感覺) · 想蘊(知覺 · 表象) · 行蘊(意志 기타의 마음 작용 등) · 識蘊()의 총칭.

· · 은 대체로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에, 五蘊은 물질계와 정신계의 양면에 걸치는 일체의 有爲法(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五蘊有情個體를 형성하는 을 강조한 말로 보면, 五蘊心身環境을 가리킨다.

육신은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事物이 모두 인연(온갖 조건)에 의해서 五蘊이 잠정적으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五蘊假和合이라 하고, 특히 有情의 개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라고 하여 집착할 實體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

有漏五蘊을 또 五取蘊(五受陰)이라고도 한다. ()煩惱異名이다. 또 이와 같은 五蘊은 중생에게 종종의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五妄想이라고도 불리운다. 五分法身[無漏五蘊이라고도 한다. 無學(최고의 깨달음)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 구비해야 할 다섯 가지 功德. 戒蘊(戒身 · 戒品이라고도 부른다) · 定蘊 · 慧蘊 · 解脫蘊 · 解脫知見蘊의 총칭. 解脫解脫知見을 모아서 解知見이라고도 한다. 小乘佛敎해석에 따르면 身業語業無漏淸淨이 되어(), · 無相 · 無願三三昧를 성취하고(), 正見 · 正知() · 盡知 · 無生知 正見과 상응하는 勝解를 얻고(解脫), 盡知 · 無生知를 얻는다(解脫知見)고 되어 있으나 근본은 불교교단에 들어가 육체적 · 정신적 욕망을 억제하고 마음을 寂靜하게 하여 智慧를 닦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그 해방된 마음으로 말미암아 편안함을 스스로 의식하는 開悟境地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無漏五蘊이라고도 한다.

 

실유(實有) : 그 자체로 實在하는 것을 實有라 하고 實在하지 않는 것이 因緣和合으로 에 있는 것을 假有라 한다.

 

인아(人我) : 五蘊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人身에 실재한 것 같이 생각되는 常一主宰를 말함. 이런 견해를 人我見, 또는 我見이라 한다.

 

() : 범어 atman의 번역. 본래는 呼吸의 뜻. 변하여 生命 · 自己 · 身體 · 他者에 대한 自我 · 自我本質 · 일반의 本質自性. 온갖 것의 근원에 내재해서 개체를 지배하고 통일하는 獨立 영원의 主體를 의미한다. 아트만은 인도의 思想界에서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이다. 불교에서는, 영원히 存續하고(), 자주독립하여 존재하며(), 중심적인 소유주로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등의 의미를 갖는 의 존재를 否定하고 無我說을 세웠다.

리그 · 베다 이래, 아트만이란 말이 쓰여졌다. 부라흐만을 인간의 생명활동의 주체인 (氣息)으로 생각했었는데, 다음에 부라나는 개개의 생명현상을 의미하게 되고, 아트만은 일층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샷타바타 · 브라흐만에서는, 言語 · 視力 · 聽力 등의 생명현상은 아트만을 기초로 하여 나타나고, 아트만에 의해서 통괄된다고 하고, 造物主와 완전히 同一하다고도 했다.

우파니샤드의 시대에는 아트만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하고, 혹은 아트만은 個人我(小我)인 동시에 우주의 중심원리(大我)라고도 하고, brahman(宇宙原理)과 아트만이 일체임을 구하거나,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同一하다고 하거나, 또 아트만만이 참된 實在이며 다른 것은 모두 이라고 한다

불교의 阿含에서는 인간 개체의 전체가 ((1) 五蘊我이다)라고 하거나, 혹은 개체 안의 中心生命이 되는 것을 ((2) 五蘊을 가짐)라고 하거나, 혹은 우주원리를 ((3) 중에 五蘊이 있다)라고 하거나, 혹은 존재요소가 각각 固有한 성질(自性)을 가지고 있다((4) 五蘊중에 가 있다)고 하는 有我說否定한다(後世에는 이것을 二十句有身見이라고 했으니, 위의 (1)(2)(3)(4)五蘊의 각각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我見((1)에 해당됨) 我所見((2)(3)(4)에 해당)으로 나눈다. 我所라 함은, 所有, 所屬, 와 떨어져 있지 않는 事物의 뜻). 

部派佛敎에서는 生死流轉하는 윤회의 主體無我說의 관계등과 연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했다. 有部에서는, 人我法我二我를 세워서, 개체의 중심생명으로서의 (人我)否定했는데, 존재의 구성요소의 실체로서 (法我)는 항상한 참된 것으로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人我見法我見二種我見이라고 한다犢子部正量部에서는, 非卽非離蘊라고 하는 가 있다고 하여, 그것은 五蘊에 의해서 잠정적으로 구성된 생명을 갖는 개체 그것(卽蘊)도 아니고, 五蘊 밖에 따로 라고 하는 존재가 있는 것(離蘊)도 아니고, 五蘊不卽不離하게 있다고 했다. 經量部에서는 勝義補特伽羅이 있다. 성유식론 권일에는 불교이외 부파의 에 대한 , 卽蘊我(世間一般) · 離蘊我(數論 · 勝論 · 經量部) · 非卽非離蘊我( 犢子部 · 正量部)3종의 로 분류하여 비판하고 있다.

大乘에서는, 개체로서의 (人我)否定할 뿐만 아니라, 部派에서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法我(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의 실체)까지도 否定하여, 人法二無我하고, 모든 것이 無自性空이라고 한다. 또 부파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無常이고 이고 無我이고 不淨이라고 깨달아서, 번뇌를 滅盡한 경지를 究極的인 열반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大乘에서는 모든 것은 원래 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은 열반의 경지는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로서· · · 을 갖는다고 한다, 凡夫가 생각하는 小我와 구별되어, 大我 · 眞我 등으로 설명된다.

는 또 4종의 로 분류된다.

(1) 범부의 한 마음으로부터 생긴 .

(2) 불교이외의 학파(外道)가 주장하는 神我(丈夫 · · 原人이라고도 번역한다).

(3) 실체가 없는데 잠정적()으로 이름붙인 假我, 예컨대 五蘊으로 구성된 肉身을 거짓으로 라 부르는 경우,

(4) 如來法身을 의미하는 眞我. 그 특성을 八大自在我로서 설명하는 수도 있다

불교이외의 인도의 諸學派(外道)에서 16종으로 분류하여 十六知見, 혹은 十六神我라고 한다. 知見이라 함은 · 의 뜻으로, 에 인식하는 능력과 보는 능력이 있다고 집착하여  있다는 뜻. 16이라 함은  · 衆生 · 壽者 · 命者 · 生者 ·  養育 · 衆數 · () · 作者 · 使作者 · 起者 · 使起者 · 受者 · 使受者 · 知者 · 見者를 말한다.(智度論 卷三十五)

 

주심(住心) : 修行人安住하는 心相을 말함. 三心의 하나. 十地各地에 마다 入心·住心·出心三心이 있는 가운데 住心은 그 에 머물러 있는 동안을 가리킴.

 

성문승(聲聞乘) : 三乘의 하나. 聲聞 지위에 있는 이가 證果에 이르기 위하여 닦는 교법. ···四諦法. 뒤에는 변해져서 성문의 機類도 성문승이라 한다.

 

소승(小乘) : 범어 hinayana. 은 싣고 운반하는 뜻.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 대승의 . 이 교법 중에서 ···가 모두 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도 大器利根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와는 달리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구하는 것을 소승이라 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있다.

(1) 聲聞乘. 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한다.

(2) 緣覺乘. 12인연을 하여 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敎體로 한다. 이것은 모두 몸을 태우고 를 멸하여 空寂 열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에 上座部大衆部로 분열하였고, 이 대중부는 또 다시 9부로, 上座11부로 나뉘어져 결국 도합 20부가 되었다. 스승이나 지역 관계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열은 한편으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부의 敎義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며, 거기다가 이상적 질서를 부여한 것은 중국의 敎判으로, 窺基八宗判, 法藏十宗判 등이다. 이 이름은 대승이 有部煩瑣 연구를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한다. 대표적인 부파는 有部·經量部·正量部·大衆部 등이다.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東土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이다.

 

구사종(俱舍宗) : 世親의 저서 <俱舍論>을 근본 宗旨로 하여 세운 종파. 소승교에 속하는 說一切有部宗의 일파. 佛滅 後 9백년 경 처음 世親毘婆沙論을 연구하고 經量部를 참작하여 구사론을 지었다. 그 뒤 德慧·世友·安慧 등이 주석서를 지어 說一切有部敎義에 획기적인 성행을 이루었다. 나라 天嘉 4(563)년에 眞諦가 구사론을 번역하자, 비로소 중국에 전파되었고, 玄奘이 다시 번역하자 구사론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그 문하에 元瑜·神泰·普光·法寶 등이 <光記>·<寶疏> 등을 지어 구사론 연구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고, 그 뒤 懷素·窺基·圓暉·慧暉·遁麟 등이 소승을 연구하였다. 俱舍宗大意說一切有部宗三世 實有, 法體 恒有宗旨를 설함에 있으나, 안으로는 經部의 현재 有體, 과거 無體에 같은 뜻을 나타내다. 無表色·十四不相應法·三無爲 같은 것도 有部宗에서 實體가 있다고 함에 대하여, 그것은 假定的 존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섭수(攝收) : 섭수(攝受)절복(折伏)의 반대. 받아들임. 마음을 관대히 하여 타인을 받아들이고 반발하지 않는 것. 거두어 받아들이다라는 뜻. 중생의 선을 받아들이고, 거두어 중생을 가르쳐 이끄는 방법을 말함. 이에 대해 중생의 을 먼저 타파하는 逆的折伏門이 있다. .....섭수절복(攝受折伏)攝受는 상대를 받아들여 조용히 설득하는 것. 折伏은 상대를 엄히 책망하여 부수어 미혹을 깨닫게 하는 것.

 

무아(無我) : 非我라 번역하기도 한다. 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自存하며(), 핵심적인 所有, 곧 주인공으로서(), 지배적 능력이 있는 주체()로 생각되는 영혼적 또는 本體的 實體를 의미한다. 모든 物體에는 이런 가 없고 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을 諸法無我라고 하며 無我하는 것을 無我觀이라 한다. 無我는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三法印의 하나인 無我印에 해당된다. 諸法無我印에서의 의 뜻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 뜻과는 구별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고래로 brahman교의 교설에 의해 atman() 사상이 젖어 있었기 때문에 釋尊은 일차적으로는 그런 의미의 의 관념을 부인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석존은 가 될 수 없는 것, 가 있지 않은 것, 라는 집착에서 떨어질 것, 가 아닌 것을 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라는 관념,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배제하는 사고방식, 는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었다. 팔리어 聖典에서의 無我의 원어는 anattan이다. 그 뜻은 가 아니다라는 의미와 내가 있지 않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초기 佛敎에선 결코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은 없었다고 한다. 원래는 에 대한 집착에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Upanisad 철학에서는 實體視하는 것에 비해서 佛敎에서는 이런 見解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客體的, 기능적인 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반대한 것이다. 存在 · 不存在라고 하는 形而上學的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석존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참다운 나의 문제는 존재적 존재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므로 존재 · 非存在의 관념적 · 논리적 차원을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에 석존은 일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석존께서는 다만 곧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원시불교에서는五蘊의 하나하나가 이므로 非我이다라는 敎說, 無常이므로 無我이다라는 敎說(雜阿含經 卷三)이 있다. 이것은 가 아닌 것을 , 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특히 身體를 나의 것, 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라는 觀念排除하고자 했다. 說一切有部에서는 人無我를 말하며 아를 부정하였으나 諸法實有라 하고 法無我는 말하지 않았다. 뒤에 와서 차차 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無我說이 확립되었으며, 이런 입장은 說一切有部, 초기 大乘佛敎에도 계승된다.

이렇게 하여 無我에는 人法二無我이 있게 됐다. 有情(살아 있는 것들 : 衆生) 五取蘊(凡夫의 생존을 이루는 物心의 다섯가지 요소(五蘊))假和合的 존재이므로 이런 五蘊的 假和合體實體的인 생명의 주체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人無我라고 칭한다. 또 모든 것은 因緣(結果를 내는 親因, 結果를 내는데 보조되는 것은 )에 따라 나타난 것(로 성립되는 것)이므로  그것에는 원래 고유한 獨自的 本性(自性)이 없다고 하는 것을 法無我라고 한다

阿含에는 모든 것은 조건에 의존하며, 이에 따라 변천하고 사라져 가는 無常한 것이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므로 無我라고 한다.

有部에서는 我空法有라 하여 人無我하고 있지만,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는 각각 自性이 있다고 보아 法無我를 설하지 않는다.

成實論에서는 五蘊안에 참된 自我가 없다고 보고 人無我하는 것을 空觀, 五蘊이 다  無常이어서 참된 自性이 없다고 보아 法無我하는 것을 無我觀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無我說空觀과 관련되어 無我란 사물에서 나(영원불멸의 本體, 고정적 실체)가 없다. 無自性의 뜻이 있다고 하여(中論 卷二二 · 二三) 無我(人無我法無我 我法二空) 를 설했다. 二種無我相謂人無我及法無我 楞伽經卷一특히 唯識宗에서는 三性說에 따라 三無我를 세우고 또 阿賴耶識과 관련시켜 無我를 고찰하여서 阿賴耶識本性이므로, 諸法阿賴耶識중의 種子顯現에 불과함으로 無我라고 하고 있다. 實我實法情有理無로 참된 이 없으므로 無相無我, 依他起似我似法如幻假有로서 집착된 과는 다르므로 異相無我, 圓成實實性으로 無我의 상태에서 나타난 眞如自相이라고 하므로 自相無我라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ᄉ~ㅇ(시옷~이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심명-12(중도)  (0) 2018.06.17
사성(四聖)  (0) 2018.06.17
십육외론(十六外論)  (0) 2018.06.16
섭대승론(攝大乘論)  (0) 2018.06.16
성소작지(成所作智)  (0) 2018.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