ᄉ~ㅇ(시옷~이응)

섭대승론(攝大乘論)

근와(槿瓦) 2018. 6. 16. 00:53

섭대승론(攝大乘論)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착보살이 저술한 것으로 세 가지 번역이 있음. 佛陀扇多의 번역으로 2. 眞諦의 번역으로 3. 玄奘의 번역으로 3권이 있는데, 앞의 둘을 攝大乘論이라고 하고 뒤의 하나는 攝大乘論本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일종의 불교통일론으로 섭론종의 근본 성전이다진제 번역인 梁論에 대하여 大意를 보면, 모두 十章으로 나눈다. 1應知依止相에서는 萬有의 근본 阿賴耶識을 설명하고, 2應知勝相에서는 三性, 3應知入勝相에서는 만법 唯識의 이치를 말하고, 4入因果勝相에서는 보살행의 6바라밀을, 5入因果修差別勝相에서는 10종의 階位를 설명하고, 6에서 제 8까지는 ··三學, 9에서는 涅槃, 10智差別勝相에서는 佛果三身을 설명했다. 요컨대 萬有는 필경에 唯心으로 돌아간다는 理論과 이에 의한 종교적 실천을 말하여, 大乘의 교리가 小乘의 교리보다 수승하다고 주장함. 그 가운데 一論의 요점은 아뢰야식과 三性을 말함. 그러나 阿梨耶唯識에서는 妄識이라 한 데 대하여, 에서는 眞妄和合識이라 하고, 일면으로는 차별적 迷妄의 세계를 나타내어 그 을 일소하는 곳에 진정한 깨달음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무착(無着) : 범어 Asanga. 불멸 후 1천년경 사람으로 북인도 건타라국 부루사부라성의 바라문 출신이며 아버지는 憍尸迦이고, 아우는 世親 · 師子覺이다. 小乘化地部에 들어가 출가하여 빈두라(賓頭羅,Pindola)를 따라 소승의 空觀을 닦다. 미륵보살이 중인도 아유차국의 강당에서 <瑜伽師地論> 5부의 大論을 설할 때에는, 넉 달 동안 밤마다 쉬지 않고 그의 설법을 들었다. 아유차 · 교상미에서 法相 大乘의 교리를 선양하고, 여러 가지 많은 論疏를 지어 여러 대승경을 해석함. 저서로는 <顯揚聖敎論> 20, <攝大乘論> 3, <大乘阿毘達磨集論> 7, 미륵보살의 말을 적은 것으로 전해진 <유가사지론> 100, <대승장엄론> 13권이 있다. 그의 아우 세친은 본래 소승의 학자였으나, 무착의 권유를 따라 대승에 귀의하여 이름을 크게 날렸다 하며, 西域傳에 의하면 무착은 왕사성에서 75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함. 중국 승려. 당나라 한주 文喜의 호. 출가하여 교학과 계율을 공부하고, 당나라 선종 때에는 오대산으로 문수보살을 예배가려던 길에 어떤 노인을 만나 前三三 後三三이란 말을 들은 것으로 유명하다. 함통 3년에는 홍주 관음원에서 양산 혜적을 만나 心要를 깨닫고, 광화 3(900)80세에 입적하다.

 

불타선다(佛陀扇多) : 범어 Buddhasanta. 佛駄扇多라고도 쓰며, 學定이라 번역한다. 중인도 사람으로 524(양나라 보통 5) 중국에 와서 <십법경> <은색녀경> <섭대승론> 등 수십 부 경론을 번역하였다.

 

진제(眞諦) : (499~569) 인도 승려. 중국 攝論宗開祖. 서인도 우선니국 바라문의 출신. 波羅末陀(Paramartha) 또는 拘那羅陀(Gunarata)라 음역. 양나라 무제가 大同(535~545)때에 사신을 扶南에 보내어 고승과 대승경전을 구하니, 眞諦가 이에 응하여 546(대동 12)년에 많은 ·을 가지고 가다. 마침 전쟁이 일어나자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면서 고생을 겪고, 그러는 동안에 꾸준히 · 의 번역과 강설에 진력하다. 특히 攝大乘論 3권의 번역과 釋論 15권이 발표되니, 연구하는 사람이 쏟아져 나와 드디어 攝論宗이 탄생하다. 馬鳴이 지은 大乘起信論 1권을 번역하여 중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치다. 나라 太建 1(569)년에 71세로 입적하다. ··奇聞·傳記 64278권을 번역함.

 

현장(玄奘) : (600~664) 중국 당나라 때 승려. 인도·西域의 대여행가. 佛典 번역사상 새 시기를 기록한 新譯大家. 중국 法相宗을 전한 사람으로 洛州 출신. 13세에 낙양 정토사에서 출가한 후 약 15년 간 여러 지방의 선지식을 접하여 攝大乘論을 중심으로 열반경·發智論·成實論·俱舍論 등을 공부함. 여러 스승의 異說이 따를만한 것이 없음을 한탄하고 原典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인도 여행을 결심, 육로로 서역을 거쳐 635년 중인도 나란타사에 이르러 戒賢에게 사사하여 瑜伽·顯揚·婆娑·俱舍 護法唯識說을 배우고, 勝軍으로부터 唯識決擇·莊嚴論을 수학했으며, 여러 선직식을 친견하고 佛蹟을 참배했다. 17년 간을 두루다니다가 645년에 梵語 경전 657부를 가지고 長安에 돌아와 태종의 후한 영접을 받았다. 646년 여행 견문기 大唐西域記 12권을 썼다. 귀국 후 홍복사·자은사·옥화궁에서 번역에 전념하여 大般若 600, 解深密經 등 번역한 것이 무려 751,335권에 달한다. 그 자신은 護法系唯識에 따랐는데, 그 제자 窺基成唯識論의 주석을 내어 法相宗開祖가 되었고, 神泰·普光 등에 의하여 俱舍學派가 생겼다. 唐麟德 元2월 대자은사에서 65세에 입적함.

 

섭론종(攝論宗) : 중국 13 하나무착보살이 지은 攝大乘論 근본경전으로 하는 宗旨서인도 眞諦三藏 양나라 대동 12(546) 중국 남해에 오고태정 2(548) 建鄴 가서 역경사업에 종사할 때에 攝大乘論 번역하니이때부터 宗義가널리 퍼져 크게 성하였고당나라 정관 19(645) 천축에 갔던 玄奘 돌아와서 법상종을 병합하다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가서 전해 왔고원효대사도 <세친석론약기> 지었다.

 

근본식(根本識) : 大衆部. 모든 의 근원이 되는 이란 뜻. 唯識宗에서는 이것에 의하여 大衆部에서 이미 阿梨()耶識을 은밀히 설하였다고 하여 阿賴耶識異名으로 삼는다.

 

아뢰야식(阿賴耶識) : 阿賴耶는 범어 alaya音譯. 阿梨耶識이라고도 쓰고, 약하여 賴耶 · 賴耶識이라고도 한다. 八識(······末那·阿賴耶의 각 )의 하나. 九識(八識阿摩羅識을 더함)의 하나. 無沒識 ·藏識이라 번역하고, 8· 本識 · 宅識 등 가지가지의 명칭이 있다. 無沒識이라 함은 諸法執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藏識이라 함은 諸法展開의 의지할 바탕이 되는 근본 마음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八識의 최후에 두기 때문에 제8, 諸法의 근본이기 때문에 本識이라고도 하고 따라서 諸識 중 특히 識主라고도 한다.

成唯識論 卷二에 의하면, 藏識能藏 · 所藏 · 執藏三義가 있다. 이것을 賴耶三藏이라고도 藏三義라고도 한다. 能藏이라 함은 이 諸法展開生起하는 種子(能力·原因)攝持하고 감춘다는 의미이며, 所藏이라 함은 이 諸法生起하는 種子諸法으로 훈습하여 감춘다()는 의미이며, 執藏이라 함은 이 末那 思量의 뜻을 가지고 스스로를 愛著한다는 의미이다. 增一阿含經에 의거해서, 阿賴耶· · · 四義가 있다고 하는(이것을 四阿賴耶라고 한다)것도 , 여기서 말하는 執藏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다.

能藏所藏의 관계는, 阿賴耶識이 그 種子의 작용에 의해서 諸法 곧 우리들의 현실세계를 만들어 가매(이런 경우, 阿賴耶識相分 對境으로서의 객관적 境界는 종자와, ····五根에 의해서 드러나는 육체와, 山河大地 등의 器界이며, 이것을 種根器라고 한다), 만드()는 것에 의해서 으로 諸法에서, 다시 새로이 諸法을 창조하고자 하는 종자를 自己 중에 轉變 · 變異 · 成熟시켜, 감추어() 간다고 하는 相依相待 · 展轉 · 緣起의 관계이고, 執藏은 이와 같은 아뢰야식의 轉變, 諸法에 있어서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아뢰야식 스스로의 愛著 작용을 原動力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執藏은 확실히 아뢰야식의 自相이다. 또 아뢰야식은 과거에 있어서의 ·不善의 결과(異熟·果報)에 의해 끌리므로 이 점은 아뢰야식의 果相이며, 그래서 아뢰야식을 異熟識(果報識)이라 한다. 또 아뢰야식이, 모든 生起하는 種子를 감춘()다는 점에서, 因相으로서의 의미에 의해 아뢰야식은 一切種識(또는 種子識)이라 불리워진다. 이를 自相 · 果相 · 因相賴耶三相이라고 한다. 唯識敎學은 이상과 같은 구조아래 일체를 아뢰야식의 變現으로서 唯心論樹立한다. 이것은 일체를 아뢰야식에서 緣起한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것을 賴耶緣起라고 한다.

아뢰야식의 自相凡夫로부터 보살의 제7까지, 二乘이면 有學聖者位에 있는 자가 갖는다고 하며, 이 자리를 我愛執藏現行位라 한다. 보살의 八地이후 또는 二乘無學我執이 없기 때문에 아뢰야식은 그 自相을 버리는데, 다만 異熟識果相이 남는다고 하며, 이 자리를 善惡業果位라고 한다. 佛果에 이르면 異熟識果相도 떨어지는데, 有情利益을 행하기 위해 일부러 諸法의 종자 및 五根執持하여 버리지 않고 相續케 한다고 하며, 따라서 種子識因相만이 남는다. 이 자리를 相續執持位라고 하다. 이상을 賴耶三位라 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범부로부터 부처가 되는 轉迷開悟가 되는 것으로서, 如實히 그 을 알아야 할 것이고, 그 의지해야 할 곳이기 때문에, 아뢰야식을 所知依라고 한다.

특히 아뢰야식을 轉迷開悟要道論究함에 있어 아뢰야식은 번뇌에 의해 더럽혀진 妄識인가, 自性으로서 淸淨眞識인가가 중국불교 敎學에서 문제가 되어, 唯識宗妄識의 입장을 취하고, 華嚴宗起信論에 의해서 眞妄和合識의 입장을 취했으며, 地論宗眞識의 입장을 취했다.

 

삼성(三性) : 모든 존재의 본성이나 事物의 존재하는 상태(性相)有無·假實이라고 하는 점에서 세 가지로 나눈 것을 三性이라고 하고, 三性이 각각 無自性空이라고 하는 것을 三無性이라고 한다. 解深密經卷二一切法相品등에 근거한 로서, 인도 唯識學派에서 하고, 중국에서는 法相宗의 근본 敎義의 하나로 되고 있으며, 화엄종 등에서도 인용된다. 三性三自性·三性相·三種自性·三相등으로도 말하고, (1) 遍計所執性·(2) 依他起性·(3) 圓成實性의 셋을 말한다. 해서 遍依圓이라고도 하고, 異譯에서는 (1) 虛妄分別相·(2) 因緣相·(3) 第一義相 또는 (1) 分別性·(2) 依他性·(3) 眞實性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三無性三種無自性性·三無自性·三種無性 등이라고도 하고, (1) 相無性·(2) 生無性·(3) 勝義無性의 셋을 말한다.

 법상종의 . 成唯識論卷八

(1) 遍計所執性이라 함은, 가지가지의 으로 생긴, 實體가 없는 존재를 實我實法이라고 하여 집착하는 한 마음(能遍計), 의 대상인 (所遍計), 에 의해서 心外實在한다고 그릇되게 인식하는 존재의 모습(遍計所執)을 말한다고 하고, 그 존재의 모습은 한 마음에 있어서 나타난 이기 때문에 當情現相이며, 진리를 인식하는 참다운 경지에서는 實在하지 않는 情有理無의 것이고, 전연 실체가 없는 體性都無라는 것이다. 遍計所執性에 대해서, 인도의 論師들 사이에 異說이 있는데, 법상종에서는 護法을 취한다. 能遍計安慧有漏8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護法은 제 6·7이라고 하고, 所遍計難陀實我實法으로 誤認하고 있는 當情現相이라 한다. 반면에 護法依他起性으로서의 似我似法이고, 또한 진여는 迷情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점에서는 所遍計라고 할 수 없으나, 依他起的 존재의 本體라고 하는 점에서는 所遍計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遍計所執安慧見相二分(四分)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護法見相二分 위에 迷情에 의해서 나

타난 當情現相이라고 한다.

(2) 依他起性이라 함은곧 갖가지 에 의해서 일어난 것을 말하고, 이 합하면 생기고 여의면 없어지므로 꼭두각시와 같아서, 고정적인 영원불변의 實在는 아니기 때문에 如幻假有·假有實無이니, 진리를 깨달은 지혜에 의해서만 알게 될 뿐 迷情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理有情無이다. 여기에 染分依他起性淨分依他起性이 있는데, 染分有漏의 모든 것, 淨分無漏有爲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淨分依他는 번뇌를 여의고 있다는 점에서 圓成實性에 포함시키며, 染分依他依他起性으로 한다.

(3) 圓成實性이라 함은, 依他起性의 진실한 인 진여를 말하는 것으로, 온갖 것에 원만하게 두루하여 不生不滅하고, 는 거짓이 아니므로(眞實) 圓成實이라고 한다. 진여는 모든 을 여의어 無相이고, 모든 것의 本體로서 진실하기 때문에 진공묘유이며, 진리를 깨닫는 지혜로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理有情無이다.

三性의 관계는 不卽不離이며, 蛇縄麻의 비유에 의해서 해진다. 곧 어리석은 사람(能遍計)이 캄캄한 밤에 새끼줄을 보고 뱀(實我으로서 변계소집성)으로 착각하고 놀라고 두려워 했는데, 覺者(·보살)의 가르침에 의하여, 뱀이 아니고(生空) 뱀과 같은 새끼줄인(의타기성이 假我인 것)것을 알고, 다시 참말로 있다고 집착하고 있는 새끼줄(實法으로서의 변계소집성)도 참다운 의미로 보면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法空), 그 본질은 이며(원성실성), 새끼줄(의타기성)이라 함은 여러 가지의 에 의해서 삼()이 임시로 새끼줄이라고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아는 것과 같다.

다음에 三無性이라 함은 불타의 密意로서, 三性에 의해서 중생이 에 집착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三性에 대해서 의 의미가 있는 것을 보인 것이다.

成唯識論卷九,

(1) 相無性이라 함은 변계소집성에 대해서 말하고, 實我實法으로서 집착되어 있는 바의 모습은 迷情 위에 나타나는 것으로, 예컨대 눈병이 있는 자가 헛보게 되는 허공의 꽃처럼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2) 生無性이라 함은 의타기성의 속성을 말한다. 가지가지 이 생기어 거짓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緣生)이기 때문에 일정한 성질이 없고, 또 불교이외의 學派나 범부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우연히 홀로 생긴(自然性)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들이 집착하는 것과 같은, 그 자체가 갖는 그런 성질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마치 과 같다는 뜻.

(3) 勝義無性이라 함은 원성실성을 가리킨다. 眞如根本無分別智의 대상이 되는 뛰어난 진리이며, 그것은 모든 것의 참된 본질이기는 하나, 어떠한 특정의 성질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에 집착이 없는 虛空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三無性 , 生無性·勝義無性은 의타기·원성실의 二性에 대해서 無性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空無라고는 할 수 없다. 이상의 三性·三無性에 의해서 非有非空中道하고, 三性不卽不離의 관계에 있으며 더우기 변계소집성은 情有理無, 의타기성·원성실성은 理有情無이기 때문에 三性을 합쳐서 中道를 밝히는 것을 三性對望中道, 三性이 각각 情有理無·假有實無·眞空妙有(無相眞實)인 점에서 하나하나에 대해 中道하는 것을 一法中道라고 한다.

三性에 대해서 모든 것이 唯識無境임을 하는 것을 唯識三性觀, 三性觀行이라고 한다. 곧 변계소집성은 虛妄唯識性, 원성실성은 진실의 唯識性을 보이고, 또 의타기성은 세속의 唯識性, 원성실성은 勝義唯識性을 보이는 것으로, 三性하는 순서방법을 밝힌 것이 五重唯識觀이다. 더욱 三性을 깨닫는 순서에는 遍依圓· 依遍圓·圓依遍三種이 있다고도 한다.

화엄종의 설. 법상종에서는 모든 것에 대해 그 本性과 상태를 구별해서 하는 性相隔別의 입장에서 三性說을 세웠는데, 이에 대해 화엄종에서는 性相融會의 입장에 서서 三性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말하여 모든 것은 진여의 나타남에 불과하다고 한다.

곧 원성실성인 진여에는 不變隨緣의 두 내용에 있어서, 生滅을 여의고 있는 것(不變)과 더불어 染淨에 따라서 가지가지의 존재가 일어난다(隨緣)고 하고,

의타기성은 그 본체적 입장에서 말하면 진여이므로 생멸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에 無性인데, 그러나 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이므로 似有라고 한다.

변계소집성은 범부의 妄情에 의해서 心外實我實法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情有인데, 그러나 그 ·로서는 있을 수 없고, 또 진여에는 妄染이 없기 때문에 理無라고 하여, 不變·無性·理無의 뜻으로부터의 本三性이라 하고, 隨緣·似有·情有의 뜻으로부터 末三性이라 한다. 三性同異에 대해서, 本三性의 의미로는 진여의 隨緣으로서의 모든 현상(諸法)은 곧 진여이기 때문에 三性不異이고, 末三性의 의미에서 말하더라도, 진여가 隨緣 해서 諸法이 된 것이기 때문에 三性不異이다. 그러나 本三性諸法卽眞如, 末三性眞如卽諸法을 의미하기 때문에, 本末三性不一인 것이다(華嚴五敎章卷中). 

眞諦譯攝大乘論에서는, 分別性所分別, 依他性能分別을 의미하고, 分別性으로서의 이 없기 때문에 依他性不可得이며, 不可得로서의 眞實性이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의 성질을 종교의 윤리적 입장에서 ·不善(無記三性으로 나누고, 三性에 의해서 事物의 성질을 구별해서 밝히는 것을 三性分別이라고 한다.

 

유식(唯識) : 本體轉變을 떠나서, 어떠한 實在도 없다고 하는 . 곧 우리들이 자기의 心外에 있다고 하는 物心의 모든 現象, 우리들의 第八識 그 자체가 主觀(見分)客觀(相分)으로 하여 나타나서, 인식의 대상과 같은 모습을 心外影像으로써 비쳐 떠올려 實在인 것처럼 인정하는데 불과하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건자체(本質)阿賴耶識중에 攝持하는 種子로부터 하여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외에는 實在는 없다고 한다. 이것을 唯識無境이라 하고, 萬有에서 했다고 하는 의미로 唯識所變이라고 한다. 이 이론을, 成唯識論 卷二에는

(1) 因能變(因變 · 生變이라고도 하고, 온갖 것은 阿賴耶識중에 거두어 보존돼 있는 종자에서 變生한다),

(2) 果能變(果變 · 緣變이라고도 하고, 그 결과 八識위에 主觀客觀의 구별이 있어서 對象하는 작용을 한다)으로 나누며 觀心覺夢鈔 卷下에는 (1) 熏習道理(種子는 스스로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에 심어진 것이라는 것), (2) 轉變道理(見相二分으로 하는 것)로 나누어 한다.

法相宗의 근본적 敎義, 同宗에서는 唯識하는데, 五位百法이 모두 을 여의지 않는다고 보이는 것을 總門唯識, 不離門唯識이라고 하고, 五位心王自相, 心所心王에 응해서 작용하는 相應, 色法所變, 不相應法은 이상의 三位에 잠정적으로 세운 것. 無爲法은 이상의 四位實性이라 하고,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해서 唯識이라고 가리키는 것을 別門唯識이라고 한다. 別門唯識은 어리석은 자를 위해서 能所를 분별해서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虛妄唯識 · 不淨品唯識 · 方便唯識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初地 이상의 보살이 唯識의 이치를 깨달아서 唯識無塵智하여 眞識을 가지고 있는 것을 眞實唯識 · 淨品唯識 · 正觀唯識이라고 이름한다. 成唯識論 卷九에도, 唯識敎理에 대한 9疑難(이것을 唯識九難이라 함)을 들어서 答釋하고 있다.

唯識九難이라 함은,

(1) 어떠한 교리에 의해서 立論한 것인가(唯識所因).

(2) 世間의 사실로 말하면 心外實在가 있는 것이 아닌가(世事乖宗難).

(3) 經典등의 十二處가 있다고 하는데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聖敎相違難).

(4) 諸法이라고 하는 것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空無한 게 아닌가(唯識成空難).

(5) 物的形狀이 있는데 어떻게 唯識이라고 할 수 있는가(色相非心難).

(6) 外界實在가 없다면 어떻게 外界事象을 직접 인식하는 現量智에 의해서 등을 알 수가 있는가(現量爲宗難).

(7) 꿈속에서 보는 대상은 깨고 나면 妄境임을 알 수 있지만, 깨어 있을 때의 일에 대해서는 그 를 쓸 수 없는 것이 아닌가(夢覺相違難).

(8) 他人의 마음은 자기의 마음 밖에 있으니 他心智에 의해서 그것을 알려고 한다면 他人의 마음은 心外이 아닌가(外取他心難).

(9) 앞의 물음에 대해서, 만일 自心중에 他心影像을 비추어 그 影像에 의해서 아는 것이므로 唯識無境이라고 한다면, 그렇더라도 自心 · 他心의 구별이 있으니 唯識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異境非唯難). 이상의 9를 말한다.

義林章 卷一 끝에는 모든 經論唯識說을 분류해서 境唯識 · 敎唯識 · 理唯識 · 行唯識 · 果唯識五種唯識으로 하고 있다. 특히 同宗修行으로서 五種唯識觀이 있다.

華嚴宗에서는 三界는 모두 一心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이것을 설명하는데,

(1) 相見俱存唯識 · (2) 攝相歸見唯識 · (3) 攝數歸王唯識 · (4) 以末歸本唯識 · (5) 攝相歸性唯識 · (6) 轉眞成事唯識 · (7) 理事俱融唯識 · (8) 融事相入唯識 · (9) 全事相卽唯識 · (10) 帝網無礙唯識十種唯識하여, 究極적으로는 帝釋宮網珠(因陀羅網)와 같이,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그 일체중에 또 각각 일체가 있어 窮盡함이 없고, 重重無盡事事無礙한 것이 唯識이라고 한다. 이것을 다시 五敎에 맞추어 처음의 3始敎, 다음의 4終敎 頓敎, 뒤의 3圓敎이라고 한다(華嚴經探玄記 卷十三). , 華嚴經大疏鈔 卷三十七에는 처음에 假說唯識을 더하여 小乘이라고 하여 (6)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범어 sat-paramita. 六波羅蜜多 · 六度 · 六到彼岸이라고도 한다. 피안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보살 · 마하살이 수행하는 대행에 여섯 가지가 있다는 것. ,

(1) 또는 檀那바라밀. 檀那布施 · 라고 번역한다. 이 보시바라밀은 · 無畏 · 을 남김 없이 주고 베풀면서도 주었다는 생각마저 버림으로써 자기 자신의 탐심을 끊고 집착을 떠나며 또한 타인의 가난함을 도와주는 윤리적 실천을 말한다.

(2) 尸羅바라밀. 尸羅持戒 · 라고 번역한다. 이 지계바라밀은 재가 · 출가 모두 대소 일체의 계와 율을 견고히 지켜 惡業을 멸하고 몸과 마음의 청정을 얻는 것.

(3) 羼提바라밀. 羼提忍辱 · 이라고 번역한다. 이 인욕바라밀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든 박해나 고통을 잘 참고, 도리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원한과 노여움을 없애고, 諸法을 밝게 관찰하여 마음이 安住하는 것을 말한다.

(4) 毘梨耶바라밀. 毘梨耶精進 · 이라고 번역. 이 정진바라밀은 심신을 가다듬고 힘써 善行 특히 여러 바라밀을 꾸준히 실천하여, 해태한 마음을 버리고, 善法을 점점 더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5) 禪那바라밀. 禪那禪定 · 靜慮라 번역한다. 이 선정바라밀은 마음이 산란하여지는 것을 멈추고 4 · 8· 108삼매를 행하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6) 般若바라밀. 般若는 지혜라 번역한다. 이 지혜바라밀은 어리석음을 고치어 모든 진리를 밝게 아는 예지, 또는 그 如實의 진리를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육바라밀은  · · 3所攝이라고 하며, 하나하나의 내용 · 순서 · 상호관계 등의 해설은 大品을 비롯하여 여러 반야경전 · 지도론, 그 밖의 여러 대승경론에 상세히 논술되어 있다. 또한 반야바라밀을 다시 方便 · · · 4바라밀로 나누어 모두 10바라밀이라고도 한다. 6바라밀은 대승보살의 이며 有部에서는 大毘婆沙論에 보시 · 지계 · 정진 · 반야의 4바라밀을 말할 뿐이다.

 

삼학(三學) : 불교를 배워 도를 깨달으려는 이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增上戒) · (增上心) · (增上慧) 말함. 또는 三勝學 · 三增上學이라고도 한다. · 의 악을 그치고 를 막는 계율. 은 산란심을 막고 안정을 얻는 법. 즉 모든 禪定 · 三昧, 을 깨뜨리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四諦 · 十二因緣 또는 眞如 · 實相하는 것이다. 따라서 三學은 실천 방면에서도 불교의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된다. 또는 불교경전을 삼학에 배당하여 經藏定學, 律藏戒學, 論藏慧學으로 분류하는 도 있는데 이에는 다른 설이 있다. 혹은 五分法身 · 六度 · 七淨 · 八正道 등의 내용 설명에 三學이 사용된다. 불교의 삼학을 의 삼학, 불교 외의 다른 학파의 설을 의 삼학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 無學 · 非學非無學. 이것은 불교를 공부하는 자의 수행단계의 세 구분이며 성문에 관하여 말하자면 初果이상, 無學은 아라한과, 非學非無學見道 직전의 加行位의 사람에게 배당된다.

 

계정혜(戒定慧) : 佛道에 들어가는 세 가지 . 戒律 · 禪定 · 智慧의 준말. 이를 三學이라 이름한다.  · · 로 범하는 나쁜 짓을 방지하는 것. 은 산란한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게 하는 것. 을 깨뜨리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 十二緣起 또는 眞如 · 實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 · · 3학은 실천 방면에서도 불교의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된다. 이 세 가지가 서로 도와 證果를 얻는 것이므로 에 의하여 을 얻고, 에 의하여 智慧를 얻는다. 또는 불교경전을 三學에 배당하여 經藏, 律藏, 論藏로 분류하는 도 있는데 이에는 異說이 있다.

 

열반(涅槃) :  · 寂滅 · 滅度 · 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般涅槃(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 ·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8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은 항상· 快樂으로, 不老 · 不死, 淸淨 · 無垢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에 있어서는 眞如寂滅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3열반을 세운다.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佛身 또는 機緣, 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影像涅槃像, 그날(215)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등이라고 한다.

 

삼신(三身) : 佛身을 셋으로 나눔.

(1) 法身. 은 영원불변한 萬有本體이고, 積聚의 뜻으로, 本體人格的 意義를 붙여 法身이라 한다. 또한 과 형상이 없는 理佛이다.

(2) 報身. 因緣에 따라 나타난 佛身으로, 阿彌陀佛과 같다. 菩薩位의 어려운 修行을 하여, 정진 · 노력한 결과로 얻은 有形佛身.

(3) 應身. 報身佛親見하지 못한 이를 제도하기 위해 나타나는 佛身으로 역사적 존재인 석가모니불과 같은 佛身이다.

法相宗에서 주장하는 3身說自性身 · 受用身 · 變化身. 위의 3을 도표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自性身 ---------------------------法身

受用身 ------自受用身-------------- 報身

          ------他受用身----勝應身------應身

變化身 ----------------劣應身------應身

最勝王經 2권에서는 法身 · 報身 · 化身을 말한다.

 

대승(大乘) : 摩訶衍那·摩訶衍이라 음역하며, 上衍, 上乘이라고도 한다. 은 타는 것이란 뜻이며, 迷惑此岸으로부터 깨달음의 彼岸에 이르는 敎法을 가리킨다.

阿含經에서는 불타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大乘이라 했다.

대승·소승이란 말은 釋尊入滅 후 그 言行傳承을 중심으로 불교(原始佛敎)로부터 그 註釋的 硏究의 불교(部派불교)가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따로 보살도를 하는 불교(대승불교)가 또한 발달되었는데, 이때에 후자의 敎徒가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殊勝한 것으로 규정하여 대승이라 불렀으며, 전자를 낮추어서 小乘이라 이름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전자의 敎徒로부터는 대승은 부처님이 말씀한 가 아니라고 非難하는 이른바 大乘非佛說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思想史的으로 보면 小乘大乘敎學의 기초 내지 前驅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다.

소승은 자신의 解脫만을 목적으로 하는 自調自度(調는 번뇌를 制伏하여 없애는 것. 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聲聞·緣覺이며, 대승은 涅槃의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여 自利·利他兩面을 다 갖춘 보살의 도라 할 수 있다.

小乘에는 반야경·四分律·五分律 등의 , 婆沙論·六足論·發智論·俱舍論· 成實論 등이 있고, 대승에는 般若經·法華經·華嚴經 등의 中論·攝大乘論·大乘起信論 등의 이 있다.

대승이 殊勝한 이유로서, 菩薩善戒經 卷七등에서는 , 世親攝大乘論釋 卷六에서는 十一을 들고 있는데, 보살선계경에서 말하는 七大乘이란 十二部經 가운데 最上의 경인 毘佛略에 기초를 두고(法大), 菩提心을 일으켜서(心大), 그 교를 이해하고(解大), 청정한 마음으로(淨大), 보살의 복덕과 지혜가 몸에 나타나며(莊嚴大), 三大阿僧祗劫의 수행을 쌓아(時大), 마침내 相好를 갖추며 無上菩提를 얻는것(具足大)이라고 했다.

印度의 대승에는 대략 中觀·瑜伽2系統과 밀교가 있다.

중국에서는 대승의 諸經論에 기초한 많은 敎派(三論·涅槃·地論·淨土··攝論·天台·華嚴·法相·眞言 등의 諸宗)가 있어서 각각 自宗의 우월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 대승에 관한 종종의 구별을 세웠다. 예컨대 진언종에서는 顯敎·密敎, 華嚴宗이나 천태종에서는 대승(대승 가운데 方便에 해당하는 五性各別을 세운 대승(대승 가운데 眞實敎. 모든 중생이 成佛하게 된다는 가르침)등으로 나누어진다. 有相大乘·無相大乘2종대승, 혹은 法相·破相·法性3大乘으로 나누는 이 있다.

우리나라·중국·일본의 불교는 전통적인 대승불교이며, 서장불교, 몽고의 라마교 등도 대승의 계통에 속한다. 버마·태국·스리랑카 등의 불교는 대승교도로부터 고래로 小乘으로 불리워 온 계통에 속하는 불교다.

천태종에서는 小乘에는 經律論三藏이 확실히 구별되어 갖추고 있는 점에 비추어 小乘敎三藏敎(藏敎)라 일컫는다.(화엄종에서는 小乘敎라 이름한다). 또 천태종에서는 小乘 가운데 有門(發智論·六足論 )空門(成實論), 그리고 亦有亦空門(毘勒論, 이 논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非有非空門迦旃延經(가전연경),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四門이 있다고 하고 이것을 小乘敎四門 또는 小乘四分이라고 했다.

智顗(지의)金光明玄義에는 理乘(모든 存在本質眞如 理性隨乘(對象隨應해서 작용하는 智慧得乘(스스로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證果)三大乘했는데 이것은 順次眞性·觀照·資成三軌에 해당시킨 분류다. 起信論에는 大乘本體衆生心이라고 記述하고 있다.

 

아리야식(阿梨耶識) : 의 신역 유식설이 제 8식을 阿賴耶識이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의 구역 유식설에서는 阿梨耶識이라고 한다. 攝論 · 地論 · 華嚴宗 등에서 사용된다. 신구 양 유식설의 학설상의 차이 때문에, 阿賴耶識과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阿賴耶識眞如와 다른 有爲生滅임에 대하여, 阿梨耶識眞如와 화합한 生滅, 眞如의 현상면을 가리킨다.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 : 진망(眞妄)일체의 모든 법에는 ·의 두 가지가 있는데, 無明染緣으로 일어나는 법을 이라 하고, 三學淨緣을 따라 일어나는 법을 이라 한다. 또한 인연으로 하는 은 모두 不實하기 때문에 妄法이라 하며 不生不滅하는 眞如는 진실함으로 眞法이라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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