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나교(Jaina敎)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불교와 함께 인도의 二元敎的 금욕주의 종교. B.C. 6~5세기경부터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무신론. 개조는 마하비이라(Mahavira)로 석존과 거의 같은 시대의 사람. 지나(jina : 勝者)라고도 부르며, 지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자이나교라고 부른다. 지나 이전에 23인의 祖師가 있었다고 하나 23조의 파르슈바(Parsva)만이 實在 인물이고 마하비이라는 그의 낡은 교리를 개혁하였다고 함. 자이나교에서는 우주의 성립 요소를 영혼(jiva)과 非靈魂(ajiva)으로 구분하였다. 非 영혼은 다르마(dharma : 운동의 조건) · 아다르마(adharma : 靜止의 조건) · 허공 · 물질의 네 가지이며, 영혼과 합하여 5개의 實體라고 한다. 물질은 原子로 되어 있고 下降性이 있다. 반대로 영혼은 上昇性이 있고 그 자체는 一切知이며 행복이지만 물질이 業力에 의하여 그 주위에 의탁하여 業身을 이루고 영혼을 속박한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윤회의 원인이다. 이 윤회를 벗어나자면 無殺生 · 不妄語 · 不偸盜 · 不淫 · 無所得이라는 다섯 가지 큰 서원의 계율에 맞는 엄격한 도덕적 행위를 하며, 또한 출가 고행에 의하여 선악의 漏入을 막고, 이미 얻은 業을 헐어버리고 영혼의 본성을 發顯시켜 止滅에 도달하여 해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열반이다. 영혼 · 비 영혼 · 선업 · 악업 · 漏入 · 계박 · 제어 · 止滅 · 해탈을 九諦라고 하며 선업과 악업을 제외하여 七諦라고도 한다. 또한 판단의 상대를 주장하는 不定主義와 비판적 관찰법을 말하는 나야(naya)의 論은 자이나교의 현저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 교단은 마하비이라 시대에 이미 크게 번성하였는데, 후에 寬容主義의 白衣派로 분열하였다. 백의파의 성전은 Siddanta라고 총칭하며, 45부로 되어 있다. 그 성립은 B.C. 3세기 경부터 6세기 경에 이른다. 空衣派는 900년경에 성립된 4베다라고 하는 代用聖典을 사용한다. 자이나교 역시 불교와 함께 회교도의 인도 침입에 의하여, 큰 타격을 받았다. 현재 인도에는 100여만 명의 신자가 있다.
참고
불교(佛敎) : 범어 Buddha-sasana. 佛陀(Buddha)·如來·世尊 등으로도 불리우는 釋尊의 가르침을 뜻하며 佛法·佛道라고도 불리운다. 즉, 석가모니를 교조로 삼고 그가 말씀한 敎法을 宗旨로 하는 종교다. 불교라는 말은 부처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된다.
① 불교의 성립과정을 보면, B.C.500년 경에 인도 釋迦族의 迦毘羅國의 淨飯王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신 太子 싯달타는 어려서부터 인간의 현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여 항상 沈思冥想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29세가 되자 멀지 않아 다가올 임금의 지위도 거절하고 출가수도의 길을 떠나 당시 종교계와 철학계에 명망이 높은 사람을 두루 찾아 다니면서 자기가 회의하는 바를 풀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회의를 풀어 줄 수가 없음을 알게 되자 독자적인 思索과 수련을 닦을 결심을 하고 6년 간의 수도생활을 계속한 결과 드디어 자기의 心眼이 열렸다고 한다. 이것을 일러서 見性悟道라고 하며, 그 후의 그를 가리켜 불타(佛陀=覺者)라 부르고 따라서 그의 교설을 불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② 불교교리의 특성. 불교의 요지는 四諦·十二因緣·八正道 등이다. 4제라 함은 苦諦·集諦·滅諦·道諦 등으로서 고제와 집제는 인간의 현실계와 또 이 현실계가 고통의 현실계로 되는 원인관계를 밝히는 것이며 멸제와 도제는 인간의 理想界와 그 이상계에 이르는 방법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12인연이라 함은 因緣의 도리를 구체적으로 논하는 것이다. 인연이라 함은 이 우주 만물의 생성발전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緣起라고도 한다. 8정도라 함은 4제 중의 도제의 구체적 방법을 가르친 것으로서 正見 등 8가지의 바른 길 즉 방법이다. 후세에 논의되는 불교의 모든 종교적 철학적인 교리문제는 모두 이 4제·12연기·8정도설을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존께서 80을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신지 4개월 후에는 그가 45년간에 걸쳐 설한 律과 經의 편찬을 보게 되었다. 교주 석가모니불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인격의 감화력은 그대로 律과 經안에 보존되었고, 이 율과 경의 위력에 하여 불교의 교단은 성숙되었다. 특히 다른 여러 종교에 비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을 들어 보면,
(1) 神을 절대적 존재로 내세우지 않는다. 불타가 후에 이상화되고 확대되어 절대·무한 및 그 밖의 성격이 부여되고, 각성과 구제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창조자·정복자와 같은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2) 智慧와 慈悲로서 대표된다.
(3) 자비는 무한이며 無償의 애정이라 할 수 있어, 증오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광신을 배척하고 관용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한다.
(4) 지혜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발전하는데 일체를 縱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無常과 일체를 橫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緣起가 중심에 있어, 이것은 후에 空으로 표현된다.
(5) 현실을 직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6)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는 실천만이 강조되고 있다.
(7) 조용하고 편안하며 또 흔들리지 않는 覺性(解脫)을 이상의 경지로 삼아 이를 涅槃이라 한다. 그 敎義는 석존의 正覺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팔만사천의 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하고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佛도 본래는 석존 자체를 가리켰다고 볼 수 있으나, 석존의 入寂 후 불신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 2身·3身 등의 논, 또는 과거불·미래불, 혹은 他方世界의 불·보살 등의 설이 나왔다.
③ 교리의 발달과 교단의 분열.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근 100여 년간 통일 상태를 유지하면서 내려왔다. 그러나 그 후 교단원들의 생활상의 모든 문제와 교리에 관한 견해의 차이로 교단은 드디어 전통을 지키는 上座部와 진보적 사상을 가진 大衆部라는 根本二部로 분열되었다. 그 후 약 4~5백년 동안에는 이 근본 이부에서 支派가 분열·파생되었으며 따라서 이 시대를 部派時代 혹은 소승 20부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여러가지 다른 교리를 낳은 시대로서 교리발전사의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 부파불교가 성행하던 시대에 약자는 자연 聖者에게 합류되어 성자만이 남게 되었는데 이것이 즉 소승불교로서, 이것을 소승불교 시대라 한다. 소승불교의 대표적인 것은 실재론적 입장에 선 說一切有部였다. 이 학파는 연구와 수도가 전문이었던 관계로 실사회에는 아무런 감화력도 주지 못하는 명목만의 불교였다. 종교로서의 힘을 잃은 소승불교로부터 소생재흥의 운동을 일으킨 것이 즉 대승불교이다. 대승은 실사회를 직접 구제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종교적 할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사상적으로도 소승의 실재론 사상에 대립되는 空·中道 사상을 중심으로 하였다. 그 原典은 반야경 등이다. 이러한 대승사상의 고취자는 龍樹(150~250)를 비롯한 그 계통의 학자들이다. 그 뒤를 이어 대승사상을 철학적으로 조직하는 데 큰 공로를 남긴 학자는 無着과 世親 등이다. 용수와 무착의 학설을 계승하는 그 각 계통의 학파는 후세까지 끊임없는 영향을 끼치면서 내려왔는데 특히 용수의 계통을 中觀派라 하고, 무착·세친의 계통을 瑜伽派라고 불렀다. 이들은 교리사적으로 인도 불교계의 최후를 장식한 학파들이다. 7~8세기에 이르러서는 바라문교의 영향을 받고 불교의 순수성을 잃은 밀교가 탄생하였다. 이 때부터 인도의 불교는 철학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종교적으로 쇠퇴기에 들어 갔다.
④ 불교의 전파. 佛滅 후 130여 년경에 출세한 아쇼카왕은 널리 해외까지 불교의 傳道師를 파견하였다. 남방으로는 세이론까지 파견되어 이것을 계기로 하여 버어마·샴·자바·인도차이나 등 남방 각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어 남방불교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에 전파된 불교의 사상은 소승불교가 주이고, 대승불교는 그 지역 민족들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그것은 신봉되지 않고 주로 원시불교의 三藏과 소승파인 上座分別部의 사상만이 신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남방불교의 특색은 불교의 典籍인 經·律·論 3 藏이 原語 그대로 전해져서 각국이 동일한 원전으로 유포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남방불교는 대체로 소승불교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인도의 북방인 카슈미르·간다라 지방을 거쳐서 중앙아시아 서역제국에 유포되고 또 거기서 다시 西藏에도 차급되어 중국까지 전파된 북방불교가 있다. 이 북방불교는 남방불교와 정반대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1) 남방불교의 원전은 팔리어로 되어 있으나 북방의 그것은 범어로 되어 있으며
(2) 남방에서는 장경을 원전 그대로 신봉하는데 반해서 북방에서는 각국이 모두 자기 나라말로 번역하여 신봉하고 있다.
(3) 남방은 소승사상이 신봉되고 있으나 북방에서는 대소승의 三藏이 倂用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 신봉되고 있는 것은 주로 대승정신인 것이 공통된 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북방불교 중에서도 인도의 불교사상을 고도로 발전시킨 것은 중국 불교이다.
이원론(二元論) : ① (哲學) 대상 고찰에 있어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원리로써 실재의 개개의 부분 또는 전체를 설명하는 입장. 또, 그 사고 방식(이를테면 주관과 객관, 의식과 존재, 오성과 감정, 천지, 음양 등). ② 우주의 근본 원리를 정신과 물질의 이원으로 믿는 설(데카르트의 물심 이원론은 그 대표적인 예). ③ (宗敎) 二元敎.(국어사전)
금욕(禁慾) : 육체에 관한 일체의 욕망과 명예·이익·부귀 등을 탐하는 욕망을 금하는 것. 인간은 한없는 욕구를 가졌지만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따라서 욕구는 理性으로 적당히 억제하지 않으면 때로는 도덕을 어기고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 한없는 욕망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자연히 감정적 충동에 대하여 여러 가지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게 되어 理性을 훈련하고 욕망을 제지하려는 생각이 생기는 것인데, 만일 이성으로 안되는 경우에는 육체를 괴롭히고 수행을 쌓아서 욕구를 제거하려 한다. 이것을 금욕이라 하며 속된 마음을 버리고 신앙으로 마음을 통일하기 위해 종교상의 수행수단으로 쓰인다. 방법으로서는 山中苦行·독신생활·기호물의 금지 등이 있다.
무신론(無神論) :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상·종교상의 견해나 관점.(국어사전)
석존(釋尊) : 범어 Sakyamuni. (BC 623~544) 불교의 교조로 존칭한 석가세존을 일반적으로 석존이라 부른다. 또는 석가 · 석가모니 · 瞿曇佛陀라고도 부른다. 석가는 그 분이 속한 종족 sakya의 명칭이고 muni는 성자의 뜻이며, 瞿曇은 석존의 성이고 悉達多(Siddhartta)는 그 분의 어릴 때 이름이다. 그 분의 德號로는 阿羅漢 · 明行足 · 如來 · 佛陀 · 世尊 등의 尊號가 있다. 석존께서는 약 2500년 전 지금의 네팔(Nepal)의 가비라(Kapila)에서 탄생하였다. 아버지는 淨飯, 어머니는 摩耶로서 인도 최고대의 七仙人이라 일컬어지는 瞿曇仙의 혈통을 가진 종족에 속하였고 대대로 왕통을 계승하여 내려왔다. 석존께서 탄생한 후 7일만에 마야부인이 죽고 그의 이모인 마하파사파제가 양육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일곱살 때부터 학문과 무술을 습득하여 능히 통달하였고 점점 장성할수록 사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진리에 대하여 명상을 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16세 때에 拘利(Koliya)족의 선각왕의 딸 야수다라와 결혼하여 라후라를 낳았다. 석존의 출생 연대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현재 불교도들은 일반적으로 B.C. 623년에 탄생하여, B.C. 595년(29세)에 출가하고 B.C. 589년(35세)에 성도하고, B.C. 544년(80세)에 入滅하였다는 설을 통용하고 있다. 그러나 19세에 출가, 30세에 성도, 81세 入滅說도 있다.
석존께서는 종교적 실천과 철학적 사색에 잠기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자 권속과 부왕, 그 밖의 여러 사람에게 대해서도 애착이 매우 강하여 영구히 함께 살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하여 도리어 세상의 무상을 느끼게 되어 출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대의 여러 釋尊傳의 일치된 견해에 의하면 석존께선 이미 출가 전에 모든 종교에 대한 개념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출가함으로써 자기가 탐구해야 할 일은 어떻게 그것을 현실적 · 체험적인 것으로 이룰 수 있는가 라는 점에 集注되었다고 한다.
석존께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당시 유명한 哲人이며 종교가인 아라라가라마와 울다가라마자에게 가서 배웠다. 그러나 이들의 가르침에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었고 그밖의 당시의 인도 종교가들로부터도 지도 받을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자 석존께선 수년간 철저한 고행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心身만 쇠약해졌다. 그러나 다행히 석존은 어린 시절 正坐思惟했던 일을 생각하였다. 苦 · 樂이 동시에 없는 禪定의 妙理를 자각하여 이때부터 용맹정진을 계속한 것이다. 그 결과 석존의 심중에서는 父王과 사랑하는 처자 권속은 물론 이 세상의 일체 만상의 애착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을 成道라고 부르며 이곳은 간지스(Ganges)강의 支流인 네에란자라의 근처에 있는 한 보리수 나무 아래였다. 그곳은 오늘 날 불타가야(Buddhagaya)라고 부른다.
석존께서 성도하실 때 그는 보리수를 등져 동쪽을 향하여 정좌하고 吉祥草로 만든 방석 위에 앉아서「내가 만일 도를 이루지 못하면 나의 피와 살이 메마르고 말 것이다」라고 하는 큰 결심을 하고 金剛座에 앉은 것이다. 그후 77일 만에 大覺成道하였으며, 이때부터 瞿曇悉達多는 소위 佛陀(Buddha)가 되어 一切智를 성취하여 모든 번뇌를 여의고 涅槃하고 해탈하여 如來 · 世尊이 되신 것이다. 세존이 되신 후 그는 과거에 고행을 같이 한 바 있는 다섯 명의 수행자 燆陳如 · 摩訶男 · 婆師波 · 阿說示 · 婆提에게 최초로 법을 전하였으니 그 장소는 녹야원이며 이것을 初轉法輪이라고 부른다. 다섯 제자에게 법을 설한 내용은 中道 · 四諦 · 八正道로서 이것은 그 후에 석존의 설교양식의 근본이 되었다.
이때부터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설교로 일관하여 보내셨다. 먼저 마갈타국의 왕사성에서 교화활동을 한 뒤에 고향인 가비라성에 돌아가는 도중에 그의 德化로 가섭 3형제와 그들의 100명의 제자를 귀의하도록 하셨고, 사리불과 목건련의 두 제자 및 그들의 제자 1250명을 제도하셨다. 그리고 고국에 도착하시어 부왕과 가족과 석가 출신인 우파리 · 아나율 · 아난타 · 제바달다 등을 제자로 삼았다. 또한 석존께서는 구사라(Kosala)국 사위성에 가서 급고독 · 기타 장자를 제도하고 어린 시절 부처님을 양육하신 마하파사파제와 과거에 자기의 妃였던 야수다라를 제자로 만드시니 여성 수행자 비구니도 나타나게 되어 비구, 우바새, 우바니의 사부대중이 완비하게 되었다. 석존께서는 계속하여 50년을 교화하시다가 구시나가라城의 사라(Sala) 숲에 들어가서 80세에 入滅하셨다. 입멸 후 7일만에 수제자 마하가섭의 주재로 구시나가라城 밖에서 화장하여 舍利를 八分하여 여덟 종족의 국왕에게 분배하여 봉안하게 하였다.
윤회(輪廻) : 범어 samsara의 번역으로, 僧婆洛이라 音譯하고, 淪廻라고도 쓴다. 또 生死라고도 번역하고, 生死輪廻·輪廻轉生·流轉·輪轉이라고도 한다. 수레바퀴가 굴러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業에 의해서 三界 六道의 迷한 生死世界를 거듭하면서 돌고 돌아 그치지 않는 것. 이 윤회설은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그 몸에서 떨어져 草·木·鳥·獸 등에 깃들인다는 轉住說로부터 발달한 것. 이 생각은 인도에서 유명한 業說과 결합되어 멀리 우파니샤드시대로부터 끊임없이 베단타(Vedanta)를 통하여 전해졌다. 샹캬라(Samkara)도 이를 채택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인도교 가운데 스며 들어와 보편적인 사상 또는 감정으로 되었다.
이 윤회는 불교에서 輪廻轉生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확실하게 윤회설을 브라흐만이 채택한 것은 고대 우파니샤드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B.C. 5세기 경에 배출된 六師外道 등으로 불리우는 여러 자유사상가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것을 주장하여 積集說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소위 육파철학에서도 베단타 학파 외에 상캬(Samkhya)학파는 윤회를 非情世間 즉 일반 자연물에게 까지 미치는 것으로 보고 그 해탈을 인생의 목적이라고 하고 바이세시카(Vaisesika)학파는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요가행의 수행을 역설하였다. 즉 윤회는 인도사상의 보편적이고도 뚜렷한 한 특색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個物이나 특수를 무시하고 보편자에 순종하여, 나아가서는 현세 초월적인 인도인의 사유방법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하늘의 六道가 있다고 說한다. 이것에 의하면 현재 우리들 앞에 있는 축생, 예를 들어 파리나 벌레 등도 전생에는 인간이었던 것이 바뀌어 태어났는지도 모르며, 또 장차 우리들이 저승에서 파리나 짐승 등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道 중의 어느 세계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와의 총체인 業(karma)에 의하는 것이라 하며 또한 이 業은 이승에 있는 우리들을 초월하여 생각되고 있어, 간단히 말하자면 善業에 의하여 善의 세계에, 惡業에 의하여 惡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한편 부분적이긴 하나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 중에도 이 윤회전생을 말한 이가 상당수가 있어, 예를 들면 니체의 永劫回歸의 사상 등은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한다.
무소득(無所得) : 無相의 이치를 얻어 마음 속에 집착 분별함이 없음.
영혼(靈魂) : 靈은 不可思議란 뜻. 肉體외에 따로 존재한다고 思惟되는 정신적 실체를 말한다. 佛敎에서는 精神과 肉體와를 구별하는 二元論에 입각한 영혼은 인정하지 않는다.
발현(發顯) :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 보임. 또, 드러나게 함.(국어사전)
해탈(解脫) : ① 毘木叉라고 음역. 풀려오다. 번뇌에 묶인 것에서 풀려 미혹의 苦에서 풀려서 나오는 것. 미혹의 세계를 넘는다는 뜻으로 度脫이라고도 한다.
② 본래는 열반과 같이 실천도의 究極의 境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여러 가지로 분류하여서 고찰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有爲解脫(아라한 곧 해탈한 자가 확실히 了解하여서 인정하는 마음의 작용. 곧 勝解)과 無爲解脫(열반), 혹은 性淨해탈(중생이 본래의 모습에서 번뇌의 汚染에서 벗어나서 청정한 것) 또 障盡해탈(현실에서 번뇌때문에 그 본래의 청정이 오염되어 있어 그 번뇌를 끊고 해탈할 수 있는 것) 혹은 心해탈(마음에 탐애를 여의는 것) 또 慧해탈(지혜에 의하여 무명 즉 無智에서 벗어나는 것) 혹은 慧해탈(아라한이나 아직도 滅盡定이 아닌 것)과 俱해탈(아라한이 滅盡定을 얻는 것) 혹은 時해탈과 不時해탈로 둘로 나누어 이것을 二해탈이라고 한다. 또 煩惱해탈·邪見해탈 등의 十해탈을 열거하기도 한다.
③ 귀로 불법을 듣고 해탈하므로 「귀를 기울이여 불법을 듣는다」고도 한다. 해탈의 眞味를 解脫味라고 한다. 그러나 해탈의 경지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으므로 一味라고도 한다. 소승에선 해탈하는 데 아주 빠르면 3년이 걸린다고 하며 3년 해탈이라고도 한다. 또 여래를 眞解脫(진실한 해탈)이라 일컫는 것은 아라한(소승의 해탈)은 일부분의 해탈로 진실한 해탈이 아니므로 이와 같이 해탈을 하여도 그것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자는 해탈의 깊은 구렁에 떨어진 자라고 한다.
관용주의(寬容主義) :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사고방식.(다음,한국어)
부정주의(否定主義) : 나치의 유태인 학살처럼 반인륜 범죄에 속하는 역사적 사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행위. 또는 그런 식의 역사 왜곡적인 태도.(다음,한국어)
나야說 : 범어 naya. 자이나 논리학에서의 일종의 관찰법. 자이나는 지식의 상대성·개연성을 주장하고 샤드바아다(syadvada)라는 논증법을 사용하여 모든 지식에 대한 일면적인 단정을 피하였는데 나야는 이 샤드바아다에 대립한다. 즉 일반 사람이 사물을 관찰하고 표현함은 나야에 의하는 것이며, 본래 다수의 성질을 가진 전체로서의 사물이 일부분으로 제한되어 특수의 立脚點에서 관찰·표현된다고 한다. 그리고 사물의 전면적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샤드바아다에 의하면, 자이나의 소위 超絶者로서의 樂이 없어지는 데 대하여 나야에 의하여서는 일반 사람들의 선악판단의 기초가 얻어진다고 한다.
사베다(四吠陀) :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근본 성전인 종교 문헌. 베다는 祭式의 실시와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서 발달한 관계로 각각 그 職掌을 달리하는 祭官에게 제각기 소속되어 4종의 구별이 생겼다. 즉 (1) 리그 베다(Rg-Veda). 모든 신을 모든 곳에 초청하고 그 威德을 찬미하는 호트리(hotr)제관에 속함. (2) 사마 베다(Sama-Veda). 일정한 선율에 맞추어 노래하는 우드가아트리(udgatr)제관에 속함.
(3) 야쥬르 베다(Yajur-Veda). 祭詞를 읽으며 祭儀·齋供의 제식 실무를 담당하는 아드바류(adhvaryu)제관에 속함.
(4) 아타르바 베다(Atharva-Veda). 본래 息災·增益을 本領으로 하면서도 수시로 추가 보충하고 제식 전반을 총감하는 브라아흐만(brahman)제관에게 속하게 된 아타르바 베다(Atharva-Veda)가 이것이며 앞의 3자를 3베다(trayi-vidya 三明)라고 한다. 이들은 본래 일관된 4부작은 아니고 각각 몇 가지의 부문과 계층으로 이루어진 집합문헌이다. 즉, 각 베다는 모두 다음의 4개의 구성요소를 갖고 있다. (1) 讚歌·呪句·祭詞를 집록한 상히타(Samhita). (2) 그 유래·의의·용법을 성설하는 산문부분의 브라아흐마나(Brahamana). (3) 특히 산림 중에서 독송전수해야 할 극비의 비법과 비의를 집재한 아라니야카(Aranyaka). (4) 우주 만상의 근원을 브라흐만(梵)과 아트만(Atman ; 我)의 一如의 근본 원리로 돌리어 설하는 베다期 철학사상의 최고조를 보여주는 철학서는 우파니샤드(Upanisad) 또는 베단타(Vedanta) 학파의 Brahma-Sutra가 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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